의무병의 환생 193화
8써클.
한때 셰인은 인간이 이론상 도달할 수 있는 최대의 경지를, 고작 16세에 도달한 소녀를 마주한 적이 있었다.
태생적으로 한 곳에 회로가 밀집됨으로써, 1써클만으로도 8써클이 개방되는 자질을 갖추고 있던 소녀를.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지. 인간의 몸이란, 고작 200년 남짓의 시간만으로 급격히 변화할 만큼 단순하지 않으니까.'
설령 환경의 어긋남으로 마물들이 창궐하고 생물들의 끊임없는 사투가 번복된다 한들, 셰인이 줄곧 마주했던 야만인들은 대체로 신체능력의 증가 정도로 변화가 그친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 소녀만이 변화가 도드라진 상태.
그건 환경에 의한 유전적인 진화보다, 외부 자극에 의한 '적응'에 가까운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열대지역에 있는 사람들의 피부가 점차 검게 물들어지고, 고산지대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폐활량이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것처럼, 그 아이의 회로도 비슷한 이유로 변화가 일어난 거라면, 외부 자극의 여하에 따라 이쪽도 구현할 수 있을 거다.'
거기까지 가설을 세운 후, 셰인은 오랜 연구를 거친 끝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마나의 회로란 외부의 자극만으로 그 경지를 억지로 해방할 뿐 아니라, 기존의 회로가 나아갈 흐름을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그래, 실제로 코델리아 역시 팔에 동맥이나 정맥이 8개가 존재하거나 하진 않으니, 몇몇은 통상의 마나회로보다 가느다란 모세 혈관으로 대체되었을 거다.'
그만큼 담을 수 있는 마나는 줄어들겠지만, 중요한 건 마나가 흐르는 회로를 한 곳에 뭉쳐둘 수 있다는 것.
그로 인해 각 써클간의 연계를 위해 마나를 외부로 방출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지만, 그로 인해 응용력이 떨어지는 대신 순수한 마나의 출력만은 높일 수 있다.
이를 거듭 연구하고, 연구한 끝에 만들어진 것이 바로 점혈-경락 수정.
혹은 써클중첩이라 명명한 기술.
지금의 세인은 그것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자신이 도달한 경지만큼의 써클을 기존 회로에 덧씌울 수 있게 된 상태였다.
'하지만 역시 부담이 되는 기술이다.'
셰인이 제 손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이전에 사용한 건 자신의 두 손가락에 회로를 생성하고, 그것을 튕겨 마나의 탄을 날려 보냈을 뿐인 조잡한 기술.
각 회로간의 간격이 손가락 차이정도에 불과한 것만으로, 제 팔 전체에 미미한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다.
여기서 출력을 더 높인다면 그만큼 체력과 반동의 소모도 커질 터.
'그래도 뭐…….'
그럼에도 그 페널티를 개의치 않는 이유는 하나.
'7써클로 올리는 거에 비하면 양반이지.'
2써클 정도의 중첩이라면 충분히 제어도 가능한 수준.
그러면서도 기존의 기술이 가진 위력을 크게 높일 수도 있으니, 사실상 전력의 폭발적인 상승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래, 지금 이 순간 실전에서 사용한 결과 확신했다.
이 기술을 잘 활용한다면, 그 저력은 제 전성기를 크게 넘어설 수 있으리라고.
"그래봐야 한 발……!"
그렇게 자신감을 키워가는 가운데, 뫼비우스가 제 몸을 부르르 떨며 기계팔을 바로잡기 시작하였다.
마나가 주입되기 무섭게 본래의 형태로 불안정하게나마 수복되는 기계팔.
전력은 약화되겠지만 속행은 충분히 가능하다.
셰인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손가락을 겨누었다.
"이걸로는 부족한가 봐?"
"그야 물론!!!!"
굉음과 함께 다시금 거체가 날아오른다.
터무니없는 속도.
그를 향해 셰인이 손가락을 튕겼지만, 마나의 탄환은 그의 몸을 꿰뚫었을 뿐 정지시키진 못하였다.
약물에 취한 육체는 고통에도 둔감해진 상태.
그 전진을 멈추고자 했다면 심장이나 머리와 같은 급소를 노렸어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의 기술을 몇 번이고 난사할 순 없을 거다…!'
다시 준비를 했을 때쯤엔 이미 그와의 거리가 좁혀진 상태.
이윽고 코앞에 다다른 뫼비우스가 제 오른팔을 크게 휘두르려는 순간.
-쿠득!!
그 전에 먼저 두 다리를 움직인 셰인이, 그의 안면을 제 손바닥으로 틀어쥐어 힘을 실어 넣고 있었다.
"이 좋은 기술로 손가락만 튕기려고?"
-쿠당탕!!
그대로 왼손에 던져진 거체가 수로의 벽에 처박힌다.
단순히 힘만 강화된 게 아니다. 신체를 두른 마나에 중첩된 써클이 닿은 순간, 그 불안정한 흐름이 마나에 균열을 내어 방어마저 분쇄시켰으니.
-콰아아아아!!!
하지만 공격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두 다리에 각각 2써클씩.
그렇게 회로를 변경시킨 셰인의 질주가 뫼비우스를 향해 쇄도하였다.
'막아야…….'
-콰앙!!
아래에서 위로 뻗어진 발차기가 몸체를 강타하고.
그 직후 이어진 붕대의 휘감음이 그의 머리를 당겨 셰인의 앞까지 끌어왔다.
그 직후 이어지는 스트레이트,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 올려차기의 연계.
육중한 거체가 그 충격에 잠시 떠오르다, 이어지는 강권에 충돌해 땅에 떨어지며 대찬 물보라를 일으켰다.
'뭐, 뭐냐. 이건…….'
사방에 물방울이 느릿하게 떨어지는 가운데, 충혈 된 뫼비우스의 눈이 그 사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물에 의해 가속화된 의식은 제 아무리 빠른 속도라도 감지할 수 있게 만드는 법.
-쿠궁!!
그럼에도 자신에게 쇄도하는 적의 주먹을, 이 순간 차마 막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의식보다도 앞서 신경이 반응을 했지만, 상대는 그마저도 유도하듯 페이크를 일으켜 가드를 뚫고 공격을 가해오고 있으니.
'눈으로, 쫓을 수가 없어…!'
-쿠궁, 쾅!!
맹렬한 연타음.
그 소음이 갈수록 더욱 거세지고 간격은 좁혀져간다.
고작 써클의 중첩만으로 이런 게 가능한지.
그 상식을 초월한 현상에 뫼비우스의 머릿속엔 의문만이 생겨났지만, 지금의 상황은 어디까지나 그런 의문을 의도하는 '허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 이거 역시 제정신으로 해먹을 일이 아니야.'
써클의 중첩…….
확실히 강력한 기술이지만, 그것을 원하는 부위에 일으키기 위해선 제 신체의 회로를 일일이 물리적으로 조작해야 한다.
한 번에 강력한 공격을 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지금과 같은 난타전에선 교묘히 신체의 혈도를 건드리기란 쉽지 않은 법.
결과적으로는 위력이 높아지지만, 출력의 상승과 더불어 동작이 늘어남으로써 신체의 밸런스가 크게 하락한다.
즉, 상대가 허점을 파고든다면 대처가 어려워진다는 것.
'그래, 지금……!'
그 점을 눈치챈 뫼비우스의 기계팔이 길게 늘어지고, 그것이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지며 셰인의 몸을 크게 강타했다.
쩌엉!!
굉음과 함께 튕겨져 나가는 몸.
전면부의 살가죽이 벗겨지며 피가 왈칵 터져 나왔지만, 애초에 가드가 늦었다면 그대로 몸이 갈라졌을 공격이다.
그만한 치명상을 입혔음에도, 정작 뫼비우스 역시 그에게 섣불리 결정타를 먹이고자 달려갈 수 없었다.
"쿠르륵, 흐윽……."
호흡기에 고인 피가 관을 타고 역류한다.
몸에 입은 피해가 그만큼 적지 않다는 것이지만, 주춤거림은 고작 잠시일 뿐.
"감이 오는군. 어떻게 상대할지……."
이후 들어 려진 그의 얼굴에는 분명 여유가 존재하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밀려놓고도 방법을 찾아낸 것일까?
정말로 대단한 인간이다.
라이히라는 녀석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다면 경의마저 느껴졌을 정도로.
"역시."
하지만 그런 감정과 제 한계의 자각이 포기의 이유가 되진 않는다.
"이 기술은 근거리 전엔 안 어울려."
그래, 아직 만들어진지도 얼마 안 된 기술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실전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시험하는 것보단, 기존에 테스트해왔던 걸 고수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지금 손에서부터 풀려지는 '피를 머금은 붕대'는 그걸 위한 것.
"어쩔 수 없지. 이미 피도 많이 흘렸는데 아껴봤자 똥만 될 테고……."
"뭘 하려는 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당해주진 않을 것이다!!"
-콰드득!!
거센 호흡과 함께 더욱이 부풀어 오르는 육체.
약물의 호흡량을 늘림으로써 신체의 위력을 강화시키고, 체내의 마나흡입력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이다.
그만큼 신체에 부하가 가해지겠지만, 이미 이 자리에서 죽기를 각오한 몸.
이제까지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면, 더욱 무리를 해서라도 강하게 밀어붙이면 그만일 뿐이다.
"죽어라 셰인 골……."
그 일념에서 비롯된 최대 전력의 돌진이.
-콰앙!!!
굉음과 함께 끊어지고.
그 직후 뫼비우스의 몸이 자리에 멈춰 서게 되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어……?"
그 직후 몸에서 주욱 힘이 빠져버리고.
몸에 투입된 약물이 무색하게도 시야가 흐릿해지는 게 느껴지고 있다.
그 시선이 차차 밑으로 내려간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구멍이 뚫린 것마냥 깊숙이 파헤쳐진 복부…….
아니, 어디까지나 위에서 보았을 때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깊숙이 눌린 것뿐이다.
그가 집어던진, 복부에 처박아넣은 무언가에 의해.
-퍼어엉!!
그 무언가가 폭발을 일으킨 직후, 뫼비우스의 몸을 그 자리에 고꾸라지게 만들었다.
"쿠흐, 어……."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에 호흡기가 떨어져 나가고.
"우웨에엑!!!"
이윽고 솟구쳐 오르는 토혈이 바닥에 흐르는 물에 뒤섞이며, 혼탁한 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무슨, 무어가…….'
아직 거리가 있는 상태이거늘.
이전처럼 손가락을 튕겨 쏘았던 마나의 탄환과 비교하면, 그 위력이 터무니없었다.
총알이 아닌 대포알이라도 몸에 처박힌 것처럼.
"대, 체…… 뭘……."
"뭐긴."
흐릿한 시야에 보이는 것은 피묻은 붕대를 늘어트리고 있는 적의 모습.
아니, 그저 늘어트린 게 아니다.
그 손과 이어져 있는 붕대의 끝부분이 교묘히 엮여있다.
"그냥 던진 거지."
그래, 투석구와 비슷한 형태다.
그 투석구를 통해 무언가를 던졌고, 제 몸에 처박힌 채로 폭발을 일으켰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린 뫼비우스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어졌다.
"설, 마……."
-지이잉.
2중첩의 마나를 불어넣은 순간 손끝에서 일어나는 진동.
하지만 그 마나는 손이 아닌 밑으로 늘어진 투석구에, 그의 몸에서 흐르는 피를 머금은 붕대의 끝에 전이되며 뭉쳐가고 있었다.
단순히 2써클로 끝을 내는 게 아니다.
지금의 그는 제 몸에 흐르는 피를 붕대에 흘려보내고, 그 유혈에 마나를 불어넣어 신체 외부로 노출된 마나의 적응력을 늘린 것이다.
'세실리아 라인하르트.'
그 아이가 자신과 겨룰 때에 사용했던 피의 검처럼.
-후우웅!
그로 인해 투석구에 전이된 마나가 소용돌이쳤지만, 그 흐름은 흐트러지지 않고 투석구를 두르는 마나의 장막에 가두어져 뭉쳐지기 시작했다.
그 끝에 형성되는 건 극한까지 압축된 마나의 공.
셰인이 그 투석구를 쥔 손을 뒤로 빼내며 어깨에 힘을 실어 넣었다.
"내가 원래 던지기에는 꽤 일가견이 있었거든."
이어지는 것은 그저 던지기.
하지만 인간이란 별다른 도구의 도움 없이도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수십 미터 밖의 표적을 정확히 맞출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그 위력은 육체의 단련도와 기술로, 그리고 그에 동반된 물리력에 의해 증폭될 수 있는 법.
'중첩 2써클-투구(投球).'
선천적으로 인간이 타고난 재량을.
혈액과 붕대를 통해 외부에 안정적으로 전이시킨 길로 형성시킨 마나의 구체를, 신체에 응축시킨 마나의 폭발력을 이용해 증폭시켜 던지는 공격.
그 단순한 행위에서 비롯된 공격의 구속은 음속을 넘어서고.
의지의 소실 없이 노리는 대상에게 정확히 안착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콰아앙!!
소닉붐.
그 뒤를 이어 일어난 충격과 압축이 풀리며 일어나는 물리력의 팽창.
"쿠, 허…… 어……."
공격에 노출된 뫼비우스의 고개가 뒤로 튕겨져 나가다, 그 무릎이 땅에 처박히고 말았다.
순수한 마나로 이루어진 포탄인 만큼, 고압으로 쏘아진다면 마나의 장막마저 찢어버려 내부에 피해를 입힌다.
방어무시와 더불어 후속폭발까지 일으키는 파괴적인 일격.
그에 노출된 뫼비우스의 몽롱한 정신 속에, 이제껏 되뇌었던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인간을, 초월했을 터다…….'
그래, 분명 그럴 터이건만.
비록 이 육체가 머지않아 한계에 달할지언정, 그 강함을 마지막에 한 사람만을 위해 바치겠다 맹세했거늘.
'신체가…….'
하지만 아무리 의지가 강하다 한들, 그 원대한 이상을 담기엔 이 육체는 너무나도 나약하기 그지없다.
'붕괴된다.'
고작 1달 남은 수명마저 빠르게 잦아드는 것이 느껴진다.
무리한 진격에, 그마저도 넘어서는 공격을 받아내었으니 당연한 일.
반면 상대는 여전히 그 자리에 멀쩡히 몸을 세우고 있다.
그 역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지만, 그가 가진 고결함은 빛이 되어 육체를 느릿하게나마 치료시켜주고 있으니.
싸움 자체가 단기전에서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어쩌면 지금의 패배는 결정된 거나 다름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아…….'
그럼에도 뫼비우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저 자와 함께 죽는다면……. 그것으로나마, 그 분에게 위협이 될 녀석을 제거할 수 있다면……!!'
호흡기마저 떨어진 입.
거친 호흡이 이를 악무는 행동과 함께 잦아들고, 산소를 요구하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며 몸에 잔재한 약물의 흐름을 몸 곳곳에 퍼트려간다.
앞으로 기회는 한 번.
하지만 그에게 달라붙는 것만이 성공한다면, 제 몸 깊숙한 곳에 내장된 폭탄을 이용하여 이 일대를 날려버릴 수 있다.
신체에 자극을 줌으로써 강제적으로 리바운드를 일으키는 마나의 폭탄.
그것을 이 지하에 터트릴 수만 있다면 그를 매몰 시킬 수 있으리라.
-휘리릭!
하지만 그 필사의 저항마저 기다리지 않겠다는 듯.
이윽고 뫼비우스의 배후로 돌아선 셰인이, 그 전신을 제 붕대로 재빠르게 휘어감기 시작했다.
"역시, 넌 그 자식 급은 아닌가."
사경을 헤매는 상대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그럼에도 틈 하나 주지 않고, 그 몸을 완벽히 구속해내며.
"하긴, 그 녀석이 그 싸움에서 진심을 발휘한 건 딱 한 번 뿐 이었지. 그런데도 이 정도로 고전하다니……. 나도 아직 많이 멀었네."
그렇게 제 몸에서 뽑아낸 피를 흥건히 적셔낸 붕대로, 상대의 전신을 휘어 감싼 채 오른팔에 힘을 실어 넣는다.
그 순간 뫼비우스는 느낄 수 있었다.
그 팔에 감도는 마나의 고리를, 그 개수를.
"뭐, 뭘 하려고……."
그래, 지금 그 팔에는 세 개의 고리가 생성되어 있다.
'중첩 3써클.'
그로부터 비롯될 공격은,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위력이 될 터.
"너무 억울해하지 마라. 나도 이건 목숨 걸고 쓰는 거니까."
"그, 아악!!"
어떻게든 발악을 하고자 했지만, 그 때엔 이미 시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잔상이 되어있었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몸은 저항 채 허락되지 않고 휘둘리기만 할 뿐.
이후 몸을 구속하는 감각이 사그라졌지만, 어디로 던져졌는지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은 버텨야 한다.
이 공격을 버티지 못하면 그를 향한 결정타를 날릴 수가 없으니.
'몸을, 단단히 굳혀라! 최대한, 견고하게…….'
풍압을 견디고자 몸을 오므리고, 피를 쥐어짜듯 근육을 부풀려 마나를 밀집시킨다.
-쿠과가가앙!!!
그렇게 한계까지 강화된 육체가 벽과 충돌하고, 그것을 미친 듯이 파고들어 그 육체를 압박해왔다.
온몸이 찢어질 듯 아파온다.
약물로 인해 희미해진 감각조차 되살아날 기세로, 그 정신을 제 주군의 존재만을 떠올리며 버티고, 버티길 반복한다.
-콰아아앙!!
이윽고 그 파고드는 기세가 굉음과 함께 사라졌을 무렵. 신체를 덮쳐오는 압박감 역시 씻은 듯 증발하였다.
체공이 길어진 것으로 보아 벽을 뚫는 것을 멈춘 듯하였지만,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일단 착지할 곳을, 착지할 곳을 찾아야!'
이 몸이 착지하는 순간 그는 분명 달려들으리라고.
그러니 그에 대응해야 겠다 생각했지만.
'착…… 지?'
눈을 부릅뜬 순간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고…….
오롯이 그 생각만이, 이 순간 뫼비우스의 머릿속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잠식해가기 시작했다.
'……별?'
아니, 밤하늘이었다.
이전의 전란이 무색하게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그와 동시에 제 피부를 쓸어 넘기는 차가운 감각이 관심을 사로잡고, 이윽고 그 흐름을 따라 시선이 자연스레 밑으로 향해졌다.
저 멀리에 보이는 성.
그 밑에 불바다가 되어있는 도시.
그 곳곳을 누비는 사람들조차, 이 순간만은 벌레마냥 하찮은 크기로 보일 정도다.
'여긴, 대체 어디인……!'
발을 디딜 틈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허공.
그럼에도 지상과는 아직도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
제 몸이 아직까지도 던져졌을 때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하늘 높이 솟구치고 있는 것이다.
'그 지하에서부터 지반을 뚫고, 지상으로, 빠져나왔다고…?'
이것은 환상인가?
아니, 결코 환상 따위가 아니다.
떠오른 몸도, 저 밤하늘도, 반란 세력의 연합이 체펠리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든 전쟁터도.
지하에서부터 제 주변에 함께 튀어 오른 파편 역시.
-파파파팡!!
그 파편이 튕겨지며 울려 퍼지는 연쇄적인 파공성.
그와 함께 자신을 추적해오는 무언가가 이윽고 제 위까지 날아오르며, 더 없이 환한 광명을 퍼트리기 시작하였다.
'셰인 골드리안.'
그가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나온 파편만을 밟고, 자신이 있는 곳까지 뛰어올라 추적을 해온 것이다.
"네 주인님한테 전해."
그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그를 맞닥트린 셰인이 누더기가 된 오른팔을 대신해 왼손을 틀어쥐며 작게 읊조렸다.
"내가 손대중이 가능한 선에서 붙잡히는 걸 다행으로 알라고."
그건 분명 자신에게 하는 말.
하지만 주먹은 자신에게 겨누되, 그 시선은 자신이 아닌 지상으로 향해진 상태였다.
그를 따라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해진 곳에 보이는 건, 검은 제복을 입은 채 영지의 밖으로 말을 타고 도망치는 누군가의 모습…….
'각, 하!!'
총통 라이히.
제3제국의 지도자로서 새로운 세계를 이끌어갈 자. 자신의 주군, 그리고 우상…….
하지만 도망쳐야 할 그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솟구쳐 오른 허공을 응시하며 말을 멈춰 세우고 있었다.
지금의 소란이 지상에서 보기에도 터무니없어서인가?
아니면 불바다가 된 하늘의 위쪽에, 그 하늘을 비추는 광명이 아주 잠시 동안 눈길을 사로잡아서?
"셰인, 골드리안……."
뒤늦게 깨달았다.
이 자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노리고자 하는지.
이제 곧 제 몸속에 존재하는, 이제 곧 뇌관이 자극받아 터지게 될 마력의 폭탄을 어디에서 터트리려고 하는지를.
"이 자시이이이이익!!"
그에 눈이 뒤집힌 나머지 발악을 하듯 손을 뻗었건만.
그 저항마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그보다도 먼저 셰인의 주먹이 뫼비우스의 안면을 꿰뚫었다.
안면을 누른 주먹은 더욱이 거센 빛을 발휘하고, 그 육체를 디딘 마나는 기폭되어 중력을 역행한 육체를 본래 나아가야 할 곳으로 떨어트린다.
아래로, 더욱이 아래로.
그 몸이 땅에 추락하는 그 순간까지.
-콰아아아앙!!!
그 끝에 울려 퍼진 폭음을 기점으로.
인간을 초월한 괴물은 거악을 심판하는 철퇴로써, 그 소명을 다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