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200화
[외전-타락한 천사와 튤립 한 송이(中)]
골드리안은 제국의 시장을 주름 잡는다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골드리안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상회나 상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거대한 세력에 속해있지 않은 틈새시장을 노릴 뿐.
뿔뿔이 흩어져있을지언정, 골드리안에 독립해 활동하는 상인들도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제각각 활동하는 이들조차 어느 한 순간 주목을 하게 되는 일이 있으니, 바로 제국에서 새로이 유행을 하는 상품이 시장에 드러났을 때이다.
"그 중에서도 현 제국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상품이라 한다면 바로 '튤립'이겠지요."
"아! 나 그거 아!루!"
"네, 알고 계시는군요."
"아빠가 저번에 가져와서 정원에도 몇 개 심어뒀거든."
그리 말한 베놈이 스윽 창문을 열어 정원을 가리켰다.
화단의 한폭에 심겨져 있는 다수의 꽃들.
꽃봉오리가 위로 곧게 돋아난 붉은 꽃은, 주변에 있는 다른 것들과는 이질적인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다.
전체 비율로 보면 무척이나 희미한 수준이지만.
"뭐, 비싸게 들여온 것치곤 숫자가 적어서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허허, 그래도 심겨져 있다면 관심을 가질 법 한데……. 아가씨는 저 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요."
따분한 눈으로 쳐다보는 게 신경 쓰여서일까.
그 부분을 염두에 두며 물었지만, 에버그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튤립으로부터 관심을 거둘 뿐이었다.
"이야기나 계속해 줘."
"네, 그럼."
이후 베놈이 튤립을 응시하며 마저 설명을 이어갔다.
"튤립은 본래 변경지대에 있던 어느 한 귀족가문에서 은밀히 기르고 있던 꽃입니다. 그 꽃을 급전이 필요하여 가문의 재산을 처분하던 중, 한 상인의 눈에 들어 대량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이죠."
가세가 기울어 자신의 가문에서 애지중지 보관하고 있던 비전이나 가보를 팔아치운다…….
귀족사회에선 무척이나 흔한 일이지만, 그것이 대중화를 이루는 경우란 드문 일이다.
비전이란 대개 과정을 알지 못하되, 뚜렷한 결과만을 보존하며 이루어지는 것.
그 원리를 헤아리지 못하는 대중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튤립과 같은 식물의 경우 재배법만 알면 양산이 가능하겠지.'
아름다운 꽃이란 대개 보석보다도 큰 가치를 보이는 법.
보석은 가공해두면 계속 아름다움을 발휘하지만, 꽃이란 머지않아 저물어버리기에 숫자가 적다면 희소가치가 높아지게 된다. 튤립은 그 조건에 딱 부합되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튤립의 재배기간은 대개 3년에서 7년 정도입니다."
"……엄청 기네."
"네, 기르기도 무척이나 어려운 꽃이지요. 온난한 지역에서만 자라날 수 있기에 대륙의 북쪽지방에선 아예 기를 수가 없습니다."
북쪽은 물론이고 도시지역에 더해, 산지나 고원과 같은 꽃을 기르기 어려운 환경은 더욱이 기를 수가 없게 된다.
기르기 어렵다는 건 그 자체로 물량의 감소로 이어지는 법.
그리고 이런 점은 상인들에게 있어서 좋은 소재로 여겨지는 법이다.
"현재 제국의 상인들 중 상당수가 그 튤립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여러모로 소문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 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사람들은 그에 공감하며 소문을 크게 키우고, 이윽고 꽃을 접하지 못한 이들조차도 그 가치에 매료되기 시작했죠."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조차도 가치를 느끼다니……. 그게 가능한 거야?"
"정보라는 게 그런 것이지요."
형체가 없을지언정, 거기에 신뢰를 느낀다면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법.
뒷세계에서 여러 정보를 수집해온 베놈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튤립의 수요는 폭증하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기르는 시간이 느린 만큼 물량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공급이 적은 상품에는 그만큼 수요가 늘어나는 법…. 이 점은 골드리안의 일원인 아가씨께서도 알고 계시겠죠."
간단한 시장논리다.
그런 상황에선 그에 '대체할 수 있는 상품'의 수요도 늘어난다는 것 역시도.
"본래 이런 경우라면 커피의 대용품인 민들레 뿌리처럼 대체품을 찾겠지만, 튤립이라는 꽃은 보통의 꽃과는 달리 그 생김새가 무척이나 이질적이어 대체품을 찾기도 쉽지가 않지요. 그렇게 갈수록 꽃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져가고, 이로 인해 꽃을 틔우기 전의 알뿌리마저 거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 뭐. 구근만 있다면 꽃은 틔울 수 있으니까……."
알뿌리는 튤립과 달리 수년을 기다릴 필요도 없고, 언젠가 꽃이 핀다는 보장이 있다.
즉, 빠른 시기에 양산이 간으한 알뿌리만 사두어도, 튤립이라는 미래가치를 확정적으로 거머쥘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렇게 구근을 사는 것만으로도 수요를 충당하기엔 무리가 있었으니……. 그렇기에 그들은 튤립을 재배하는 업자들에게, 자신들이 그 튤립을 구매하겠다는 '증서'를 발부해 달라 요청을 했지요."
"증서?"
"바로 이겁니다."
베놈이 제 품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 에버그린에게 보여주었다.
튤립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한 장의 종이. 그 안에는 신뢰를 상징하는 마크와 더불어, 언제 어디에서 튤립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 역시 적혀있었다.
그 점을 본 에버그린이 바로 납득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컨대 물량에 비해 수요가 너무 폭발적이라, 자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거래를 할 수 있는 대체 화폐를 만들었다는 거구나."
"이해력이 좋으시군요."
베놈이 고개를 끄덕이며 최종적으로 현 이야기를 정리하였다.
"미래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만을 보고, 형체가 없는 자원을 문서의 형태로 가공하여 거래한다……. 그 자체로 '정보로만 이루어진 화폐(Bitcoin)의 교환'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화폐란 자신이 가진 권리의 물질적인 대용수단이자, 국가 차원에서 관리되는 대체자원이라 할 수 있는 것.
돈을 이용한 거래가 물질보다는 권리와 신뢰를 주고파는 행위임을 생각하면, 특정 물자의 유행에 대체자원의 거래가 잇따르는 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지금도 튤립의 수요는 증가하고 있으니, 증서의 가치는 가파르게 치솟고 있겠지.'
즉, 저점에서 구매를 한 후 고점에서 팔아치우는 돈벌이도 가능해진다는 것.
받는 일수나 취급하는 곳에 따른 구근의 개량에 따라 그 가치의 차이도 크게 날 테니, 그 점만을 본다면 주식과도 여러모로 유사한 면이 있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점은 주식의 경우 각 집단의 비전과 내력을 고려할 수 있고, 그것이 세력 간의 경쟁과 더불어 정세, 환경 등의 요인이 겹쳐 흐름을 읽기 어렵다는 것.
하지만 베놈이 말한 것은 튤립이라는 자원 하나가 뚜렷하게 정해져 있어, 시장의 흐름 역시 읽는 것이 아주 어렵지 않다.
'유행이 어느 순간 꺼지거나 하지 않는 한 그 가치는 계속 상승한다는 건가.'
턱을 괴며 상념에 잠기는 에버그린.
베놈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마저 제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지금 현재 제국에선 튤립의 가치가 무척이나 증가하고 있고, 이로 인해 여러 문제가 터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얼마 전에는 한 요리사가 튤립의 알뿌리를 양파와 착각하고 요리를 하는 바람에, 그 알뿌리를 귀중히 보관하고 있던 귀족과의 마찰이 생겨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 위기에 처하게 되었죠."
"허허, 고점을 매번 갱신하는 상품을 훼손하다니……. 그 요리사도 되게 운이 없네."
요리사의 입장에선 굉장히 억울한 일일 것이다.
제국의 유행과 별 관련이 없는 이들의 입장에선, 튤립이란 그저 단순한 꽃 한 송이에 불과할 테니까.
왜 사람들이 그런 물건에 열광을 하는지, 어째서 그렇게나 가치가 오르는지를 모르고 있을 테니…….
'……그냥 꽃 한 송이?'
그래, 그저 꽃 한 송이.
실제로 사람들의 열광과 별개로, 에버그린은 저택 마당에 심겨진 튤립에 대해서 별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자신처럼 유행을 거스르는 이들은 분명 소수로나마 존재하고 있을 터.
"뭔가 재미있는 생각이라도 나신 겁니까?"
"……으음, 뭐 그렇지."
에버그린이 곧 무뚝뚝한 목소리로 베놈의 귓가에 속삭였다.
정말로 가벼운 호기심이었다.
만약에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가 말한 시장이 과연 어떻게 변하는가에 대한 가벼운 호기심.
"어때? 가능할 거 같아?"
"……허허."
이내 귓속말을 들은 베놈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확실히 재미있는 생각이로군요. 가치를 모르는 사람 역시도 시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한다면……."
두건과 복면.
흑색으로 뒤덮인 얼굴 중, 유일하게 드러나 있는 눈동자만이 에버그린에게로 향해졌다.
"그 결과가 어찌 될지 보고 싶으십니까?"
마치 간교한 뱀과도 같은 눈동자. 에버그린이 그에 조용히 대답했다.
"볼 수 있다면 보고 싶네."
아주 무뚝뚝한 목소리였다.
악의라고는 전혀 없이.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 뒤따라올 결과가 어떤지를 염두에 두기만 하는 모습.
그로부터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읽은 베놈이, 그녀의 앞에서 고개를 조아려 대답했다.
"네, 그렇다면 거기에 기꺼이 어울려드리도록 하지요."
그래, 이 소녀를 구해낸 것이 결코 후회할 일이 아님을 실감하면서.
* * *
"제네릭 얀데르센."
돌연히 울려 퍼진 목소리에, 제 사무실에서 서류를 바쁘게 둘러보고 있던 남자가 제 고개를 들어올렸다.
성인식을 치른 지도 몇 년이 지났건만, 아직까지도 어수룩한 티가 남아있는 후배 변호사.
그의 지도를 맡은 선배 변호사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그의 손에 쥔 파일을 빼앗아 스윽 훑어보았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번 일은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애초에 피고에게 신입 변호사가 붙는 건 그런 일이니까요."
피고가 자신의 죄를 사하고자 어떻게든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고자 기를 쓴다지만, 아무리 돈이 있다 해도 변호사 쪽에서 그 일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존재하는 법이다.
승소할 확률이 낮은 재판의 경우에는 애초에 거절하는 편이 낫다는 것.
이로 인해 피고가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할 경우, 사법부에서 직접 변호사를 붙여주어 변호를 받게 하는 '국선 변호사제도'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대체로 그 자리에 간택되는 건 경험이 적은 신입변호사들.
제네릭은 그러한 이유에서 채택된, 아직 경험이 적은 신입 변호사였다.
"가치가 폭등한 상품을 실수로 요리한 사람을 무죄로 만들다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죠."
"하, 하지만 해보지 않고선 모르는 일……."
"제네릭, 재판은 이번 한 번만이 아니에요."
가볍게 넘기려는 선배를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그 역시 제네릭과 같은 시기를 거쳐 왔던 몸이었다.
자신이 맡은 이의 무고를 증명해주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또한 결국엔 한때의 망상에 불과할 뿐.
"당신이 어느 정도 명성을 쌓은 때라면 한 번의 패배도 치명적이겠지만, 이제 막 재판을 시작한 당신에게 기대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패배는 실망하기보단 경험이다 생각하고 넘어가세요."
스윽, 안경을 치켜세우며 표독스러운 눈빛을 향하는 선배 변호사.
"무릇 변호사라면 뻔뻔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네, 에."
이내 그의 말에 고개를 축 늘어트린 제네릭.
선배 변호사가 그를 응시하다, 착잡함을 씹으며 사무실을 벗어났다.
그렇게 홀로 남게 된 현장에서, 제네릭이 제 책상에 올라있는 서류들을 훑어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확실히 선배의 말은 틀리지 않지만, 그래도 기껏 맡게 된 일을 이대로 흘려보내고 싶진 않습니다.'
애초에 모든 재판에서 변호사가 따라붙는 건 조금이라도 올바른 판결을 위해서.
눈에 보이는 것 외에 놓치는 부분을 통해, 피해자의 무고가 묻힐지도 모른다는 걸 우려해서이다.
물론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경제적인 피해가 뚜렷하기에 승소의 가능성은 적겠지만…….
'공교롭게도, 저 역시 튤립이라는 꽃이 그렇게 가치가 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평생을 변호사가 되기 위해 책만을 읽었으니 유행을 모르는 것도 당연할까?
실제로 훼손했다 일러지는 튤립의 알뿌리도, 생긴 것을 보면 양파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잘 모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 부분은 선배의 말이 옳겠지요.'
그래, 애초에 법도, 윤리도. 개인의 잣대보다는 대중을 따라야 하는 법이다.
유행을 모른다는 건 도리어 변호하는 데엔 해가 되는 부분.
변호사가 되는 자라면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단, 세상의 기준을 따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제 마음을 굽히며 마음을 한결 가볍게 먹으려는 것도 잠시.
"아, 신입 변호사 양반, 여기 공문 하나 왔으니 받으시오."
사무실의 창문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마침 자신에게 전보를 전하고자 찾아온 우체부였다.
그 안에 적혀있는 편지를 읽은 제네릭의 두 눈이 휘둥그레 뜨여졌다.
"재판장님께서 사고를 당했다는 겁니까?"
"재판소까지 가는 마차의 말이 흥분해서 마차가 넘어진 게 다행이었지. 다행히 마침 근처를 지나는 노인이 구해줘서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지만, 그래도 나이가 있는 몸인지라 성직자들에게 맡기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예정이오."
"그럼 재판 일정은……."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원래라면 재판장님께서 부상을 회복하기 전까진 일정을 미뤄야 하지만, 재판을 열으신 귀족 분께서 어떻게든 당장 재판을 끝내야 한다 다그쳐서 다른 재판장을 급하게 섭외했으니 말이오."
일정에는 변경이 없되, 어디까지나 재판장의 교체만이 이루어진다.
공문에 적혀있는 것은 그 재판장이 누구로 교체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북쪽에서 활동하던 양반이라는데, 마침 이 부근을 지나고 있어서 그 분이 맡기로 했소만……. 뭐, 재판이 아주 달라지진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이오."
"아, 네. 공문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도 내 일인데 감사할 필요가 있나? 첫 재판이나 무사히 마쳐보소. 패소하더라도 상심하진 말고."
이내 자리를 벗어나는 우체부.
그를 떠나보낸 뒤, 제네릭이 제 앞에 놓인 공문을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북쪽 출신……. 그리고 현 재판에 오른 것은 현 제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상품의 파손.'
턱을 괴는 제네릭의 시선이 제 옆에 있는 자료로 향해졌다.
피고를 변호하고자 모아둔 자료 중, 튤립과 관련되어있는 정보들을 닥치는 대로 모아온 것이었다.
그 중 제네릭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하나.
'그리고 튤립은 추운 지방에선 나기 어렵다.'
즉, 북쪽 지방에선 튤립의 유행은 애초에 없다시피 한 상태라는 것.
이 점이 재판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재판장 역시도 엄연히 같은 인간인 만큼 원리와 원칙만으로 재판을 진행할 순 없다.
"변호사라면 뻔뻔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던가요?"
감정과 지식, 그리고 상식.
그 모든 것은 개인마다 다르게 적용되기 마련이며, 그 또한 이용하기에 따라선 재판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
"이거라면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로부터 비롯된 호승심은 어찌 보면 풍조를 거스르는 행위.
세간에 몰아치는 유행을 거스른다는 건 분명 비난을 받을 일이지만, 제네릭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고의도 아닌 실수로.
그저 남들과의 상식차이에서 생긴 문제로 죗값을 치러야 하다는 건, 그가 가진 철학에 반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래,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는 신입 변호사에게는 그러한 마음가짐이 존재하고 있었다.
* * *
그리고 그런 이가 주도하는 재판이 치러진 지도 수 개월이 지난 후.
[충격. 튤립의 알뿌리를 훼손한 피고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재판. 하지만 재판장은 피고에게 양파값 만을 배상하라 판결을 내려…….]
"이야, 이게 진짜로 되네."
에버그린이 제 손에 쥐어진 신문기사를 읽으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