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202화 (202/255)

의무병의 환생 202화

메어리 블러드메리.

교단에 몸을 맡긴 후엔 다시 쓰지 않으리라 여겼던 이름이지만, 그렇다 한들 그 몸에 흐르는 피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교단에 속할 때에도 가문의 이름을 반납할지언정, 제 고향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가르쳐주었으니.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 했던가?

정작 제 고향은 예전과는 너무나도 많이 달라져 있었고, 제 오빠는 안주인에게 대행을 맡긴 채 타지에 가 있는 상태였다.

'달링은 지금 공부를 하러 다른 영지에 가있는 상태야.'

'……달링?'

'아이 참~ 그거야 내 남편을 말하는 거지, 부끄럽게 그런 걸 왜 물어보실까?'

행방을 묻자마자 얼굴을 붉히며 다정한 미소를 짓는 여인.

본래 신분으론 감히 남작가 출신으로선 거들떠도 못 볼 사람이지만, 제 오라비를 애칭으로 부르는 걸 보면 굉장히 금슬이 좋은 게 아닌가 싶었다.

제 오라비의 성격상 상상이 되지 않지만 어쨌든.

'일단 오빠를 한 번 보러 가야겠어.'

그래, 사실 가문에 돌아온 가장 큰 이유는 제 오빠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뒤늦게 태어난 늦둥이를 포기하면서까지 가문의 사랑과 지원을 독차지했던 사람을.

그런 사람이 지금에 와선 어떤 가주로 성장을 했는지, 적어도 같은 피를 이은 몸으로써 그것을 확인할 의무는 존재한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그런 이유로 그가 있는 곳으로 향한 티켓을 안주인에게 받은 것이었건만…….

-뿌우우우우!!

정작 그 티켓을 쓸 수 있는 장소에 도착했을 때, 메어리가 제 앞에서 비명을 지르는 철의 괴물을 보고 저도 모르게 경악을 지르고 말았다.

"뭐, 뭐야 이건……!?"

"뭐긴, 증기기관차잖아."

마침 가는 길도 같겠다.

함께 동행하게 된 셰인이 메어리의 옆에서 툭 내뱉었다.

"기관차? 그게 뭐야?"

"…여기 오면서 안 타봤어?"

"몰라 이런 거…. 난 제도에서부터 마차를 타고 왔다고."

실제로 열차는 아직 제국에 그리 많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중심지대와 변경지대를 잇는 선로는 기껏 해봐야 세 개 정도가 전부.

그 중 하나만이 블러드메리를 종점으로 두고 있을 뿐이니, 어느 쪽으로 유입 되냐에 따라 열차의 존재를 모르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무, 뭐지? 설마 블레이즈에서부터 이단 세력이 침투해온 건가? 그, 그러고 보면 영지도 엄청 이상했어, 노출증 변태들이랑 곰인형들이 돌아다니는 데다, 뭔가 막 위에서 펑펑 터지기도 하고……."

그래도 블레이즈에서의 경험 덕에 마냥 괴물소리네, 하며 떠들지는 않는군.

이단무새 짓을 안 하는 것만 해도 참 발전한 거다, 생각한 셰인이 열차에 발을 들이며 메어리를 돌아보았다.

"안 타냐?"

"타, 탄다고? 잡아먹히는 게 아니라!?"

"안 잡아먹혀."

"아니 그래도……."

"됐으니까 그냥 와라 좀."

셰인이 메어리의 손을 잡아끌어 열차의 입구에 발을 들였다.

그 직후 내뱉어지는 한 마디.

"무서우면 그냥 내 곁에 있어. 뭔 일 터지면 지켜줄 테니까."

"뭇!?"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는 메어리가, 다급히 잡혀있는 손을 내치고 셰인의 등을 밀어내었다.

"지, 지켜주긴 뭘 지켜줘 이 바보야!"

"……갑자기 왜 승질이야."

"그걸 몰라서 물어!?"

'몰라서 묻는다 이 녀석아.'

투덜거리며 나아가는 메어리.

그 뒤를 혀를 차며 쳐다보던 셰인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마저 복도를 거닐었다.

"넌 어째 옛날이랑 달라진 게 없냐."

"다, 달라진 게 없다니 무슨 말이야? 나도 그 날 이후로 꽤 컸다고."

"겉이 아니라 알맹이를 말한 거야. 보통 수녀라면 점잖다는 이미지인데……."

"지나친 선입견이야. 애초에 수녀는 화도 안 내고 사는 줄 알아?"

그래, 수녀도 인간이고 감정을 느낄 줄 아는 존재지.

자비와 박애를 중시하며 부드러운 모습을 보일 순 있지만, 그것도 대부분의 상황에선 인내가 동반된 결과물이다.

좋게 말하면 참을 성 있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가식으로 똘똘 뭉쳐진 셈.

그런 점에서 메어리는 매사에 솔직하고 정직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기운 있는 게 보기 좋다고."

"……어?"

"들어가기나 하자."

멍하니 서 있는 메어리를 뒤로한 셰인이 티켓에 지정된 방문을 열어젖혔다.

열차 내에서 유일하다시피 존재하는 특별실.

특급이란 말이 붙은 만큼, 다른 곳들에 비해 독보적일 정도의 넓이와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애초에 티켓을 준 자가 이 열차를 제국에 도입한 사람이니 당연할까?

'덕분에 가는 길은 참 편해지겠어.'

또 강도가 들이닥치지 않을까, 신경을 기울이긴 해야겠다만.

* * *

-뿌우우~

증기의 힘을 빌리며 나아가는 열차.

그 안에 탑승한 메어리가 창 밖의 광경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입밖으로 연신 감탄을 흘렸다.

"가, 간다……. 정말 굴러가고 있어!"

'막 상경한 시골토박이가 따로 없군.'

물론 자신도 처음에는 저런 반응을 보였으니 이해 못 할 건 없었지만.

쓰게 웃은 셰인이 습관처럼 배낭에 손을 뻗다 손을 멈칫거렸다.

본래라면 여유시간이 될 때마다 개인연구에 힘을 쓰는 몸.

하지만 공교롭게도 지금은 그럴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있엇다.

개인적으로 지치는 감도 있고, 뭣보다 이번의 동행자는 이제까지와 달리 이런 연구와 멀리해야 할 신분이기도 하니까.

'리나는 내 제안을 받고 골드리안으로 돌아갔고, 잭 그 녀석도 충분히 확인했다며 황실로 돌아갔으니…….'

근 1년 간 자신과 함께했던 동행자들을 떠올리는 셰인.

그 뒤를 이어 떠오른 여인의 모습에 셰인이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루미네 그 녀석은 뭐, 에버그린의 곁에 남아 있겠지.'

애초에 에버그린 쪽의 사람이니 당연할까?

어차피 별로 인연도 없는 아가씨였는데 별 개의치 않아도 되리라, 생각한 셰인이 그녀에 대한 것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메어리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면 슬슬 점심때인데,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먹고 싶은 거?"

"이 열차 안에선 식사도 제공해주거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 어느 때에건 뭐든지 주문해도 괜찮아."

앞으로 이 열차를 타고 몇 주간 산길과 고원을 횡단해야 할 처지인 만큼, 당연히 이 안에서 의식주를 모두 해결할 필요가 있다.

그 점을 뒤늦게 자각한 메어리가 주눅이 든 듯 제 몸을 움츠렸다.

"뭐든지라니, 막 엄청 돈이 드는 거 아니야?"

별로 걱정 안 해도 돼. 누님이 준 티켓이라면 이 열차 안에선 뭐든 즐길 수 있으니까."

애초에 열차를 만든 자부터가 블러드메리 상회의 총수이며, 제 앞에 있는 자는 엄연히 블러드메리 가문의 일원이다.

가문이 가진 자산으로 사치를 부릴 자격은 충분히 존재할 터.

"못 본 새에 가문이 갑자기 부흥해서 놀란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너도 이제는 엄연히 백작가의 사람이니까."

아니, 에버그린의 수완을 생각하면 거기에서 그치지 않겠지.

체펠리 후작가가 반란군들의 습격으로 힘을 잃은 현재, 변경지대는 그들을 대신할 대상으로 백작가문을 노리고 있으니까.

그 중에는 블러드메리를 포함해 에버그린의 입김이 닿은 가문도 존재하는 상태.

어느 가문이 실권을 쥐건 에버그린이 실세로 군림할 가능성이 높아진단 것이다.

"……백작가는 무슨."

물론 메어리는 그런 내막을 전혀 알지 못하는 데다, 자신이 블러드메리의 일원이란 자각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다.

골드리안과 거리를 둔 셰인과 비슷한 이유로.

"애초에 난 교단에 들어간 순간부터 블러드메리이길 그만둔 몸이야. 가문으로 돌아온 것도 어디까지나 가족들 얼굴이나 좀 보려고 그랬던 거고……."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에버그린은 가문의 실권을 쥔 후에도, 제 시부모는 극진히 모시기로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지금에 와선 해안지대의 휴양지로 요양을 보낸 상태.

표면상의 이유와 달리 변경의 어수선함을 경계하여 대피시킨 거지만, 뭐가 됐건 제 가문의 사람을 친절히 모시는 건 좋게 볼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여전하구나, 넌."

그래도 조금은 가문의 부흥에 기뻐할 줄 알았건만.

여러모로 김이 빠지는 반응에 피식 웃음을 터트릴 무렵, 메어리가 셰인을 향해 툭 말을 내뱉었다.

"너는 많이 달라졌네."

"……내가?"

"응, 엄청."

그래, 지금의 메어리는 셰인에게서 조금 낯선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외모는 좀 더 어른스러워진 걸 제외하면 별 차이가 없지만 분위기는…….

그래, 특히 분위기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당시에만 해도 언제나 꿋꿋하게 제 소신을 밀어붙였다지만, 지금은 여러모로 지친 감이 보였으니.

"신성력, 각성했다며?"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는 자신과 같은 부분이리라.

신앙이란 아무리 고결한 사람이라도 매 순간 시험을 받기 마련. 그것을 버텨내는 것을 고행으로 삼는다곤 하지만, 익숙한 것과 괜찮은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심신의 피로함은 겉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으리라.

"…들었구나."

"당연하지. 너 지금 제국에서 얼마나 유명한지 알아? 교단 사람들의 사이에만 가면 네 얘기가 매번 튀어나올 정도라고."

제 유명세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건 셰인 역시도 자각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반란 세력의 수장을 잡은 황실 직속 수사관.

에버그린이 말하길, 그 자체로 영지를 하사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업적이라고 하였다.

그 덕에 1년간 그가 가는 곳에는 반란군의 기색은 존재하지도 않은 상태.

누군가는 그가 제국의 평화에 일조했다며 영웅 취급을 하기도 하였다.

"정말 제국에 돌아온 후로는 놀라운 일투성이야."

이단자가 제국의 영웅이라니.

그것이 우스운 듯, 메어리가 턱을 괸 채 셰인을 응시하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못 본 새에 고향이 발전한 것도 그렇고, 이단자인 네가 신성력을 각성했을 뿐 아니라 황실 휘하의 수사관이 되고……. 더군다나 이제 와서 우리 둘이 가족이 되다니."

"아니, 가족이라고 보기엔 좀 그렇지 않나?"

셰인이 메어리의 말을 바로 부정하였다.

친척이나 사촌도 넓게 보면 가족이라곤 하지만, 애초에 그와 에버그린은 배다른 남매다.

그리고 메어리는 엄연히 제 신변을 가문이 아닌 교단에 위탁한 사람.

둘 모두 가문에 소속감이 없는 만큼, 관계적으로 본다면 조금 더 가까운 타인 외엔 별 변화가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야."

그렇게 툭 내뱉은 메어리가 쓴웃음을 짓고는, 이내 창밖을 조용히 응시해기만 하였다.

마치 기억 속에 묻어둔 것을 돌이켜보듯이.

"식사 나왔습니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열차의 점원이 카트를 끌고 주문했던 요리를 가져와 주었다.

특실에 제공되는 음식답게 화려한 세팅.

하지만 서로의 앞에 내어진 식사에는 여러모로 큰 차이가 있었다.

셰인은 주로 육류와 양을 중심으로 한 식사.

그리고 메어리는 육류가 하나도 포함되지 않은 채소로 이루어진 식단…….

"채식주의인 건 여전하네."

움찔.

샐러드를 포크로 찍은 메어리가 손끝을 주저하였다.

"…알고 있었어?"

"뭐, 블레이즈에 있었을 때에도 겸상이야 자주 했으니까."

대부분은 자신이 식사하는 중에 메어리가 따라붙어 견제하는 식이었다.

식사를 왜 그렇게 게걸스럽게 하냐. 좀 더 검소하게 먹지 않겠느냐, 그런 일을 하면 주님도 이놈~! 하실 거다 등등…….

당시엔 성가시고 귀찮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 또한 관심의 표현이 아니었나 싶었다.

"흐, 흐응~ 그때부터 나한테 관심이 있었다 이거지? 내가 먹는 것도 지켜볼 정도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식단을 걱정한 것뿐이었다만.

"기분 나빴다면 지금이라도 사과할게."

"아, 아니!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어! 오히려……."

"……오히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급히 얼버무리며 포크로 양배추를 찍어 누르는 메어리.

녹색 채소를 입에 머금은 그녀의 입에서 후후, 하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모습이 나쁘지 않게 보여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지만, 그런 소소한 감상도 머지않아 동정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혹시 채식주의인 거, 가문에 있었을 적에 고기를 못 먹어서 그런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아무리 가문이 가난했어도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먹었다고."

1주일에 1번.

사실상 21끼에 한 번 꼴로 고기반찬이 나온 거다.

셰인의 식생활에선 절대로 상상조차 못 할 일.

"…지금은 눈치 볼 거 없을 것 같은데, 교리적으로도 과도한 육식만 하지 않으면 괜찮다 하지 않았나?"

사치도 그렇지만 너무 아끼는 것도 좋지 못한 법.

그것이 영양보충을 위한 식사라면 더욱 그래야만 한다.

그러니 메어리가 식사를 거리낌 없이 즐겨주기를 바랐지만…….

"옛날부터 동경했었거든. 지금처럼 색이 선명한 채소를 잔뜩 먹는 거."

정작 메어리는, 오히려 채소가 즐비한 식탁이기에 만족한다 의견을 토로하였다.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색이 선명한 채소란 제대로 된 관리하에 이루어져야만 나올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대체로 고급지다는 인식이 큰 편이니까.

구황작물로도 쓰이는 감자나 가장 흔히 먹는 재료인 밀을 포함한 곡물 등등.

그런 것을 먹여도 쑥쑥 크는 가축에 비해, 생명이 넘치는 녹색의 채소 쪽이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크흠."

그래도 자신은 골드리안에 있었을 적엔 아비의 비호 아래 먹을 것만은 부족함이 없었건만.

괜스레 동정심을 느낀 셰인이 헛기침을 하며, 제 식탁에 있는 것을 담아 그녀의 접시에 올려주었다.

"이거 먹어둬."

"……어?"

"아무리 좋아도 채소만 먹으면 몸 상할 거야. 이거라면 고기를 대신해 필요한 걸 보충할 수 있을 테니까 먹어둬."

자신에게 있어선 정말 아까운 요리지만, 그래도 제 앞에 있는 사람이 영양을 제대로 챙기지 않는 것도 보기 싫은 일이다.

"아, 고마워……."

메어리가 그의 호의를 느끼며 홍조를 띄우곤, 제 접시에 올라온 음식을 내려다보았다.

접시의 변두리에 한가득 담긴 것은 채식주의자들이 보충하기 어려운 단백질이 듬뿍 함유된 요리.

콩볶음이었다.

[작가 후기]

성의(콩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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