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206화
가문에서 버려지고 교단에 거두어졌을 무렵엔 그저 성공하고 싶단 생각만을 했다.
신앙을 가지고 성공이라니.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무척이나 철이 없지 않았나 생각이 들지만, 그런 부끄러운 과거 역시 지금의 자신에겐 밑거름이 되어주고 있었다.
불우했던 과거가 있기에 불우한 이들에게 공감하며 이타심을 느끼고.
부끄러움을 알기에 타인의 수치와 상처를 보듬어줄 자비와 박애를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니.
"작작 좀 해!!"
그런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자신은 제 앞에 있는 사람만은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메어리……?"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는 오라비. 슈베르트 블러드메리, 자신의 가증스러운 혈육.
대화를 한 지도 몇 시간이 지났건만, 메어리는 단 한순간도 그에게 반가움 같은 걸 느끼질 못하였다.
10년 만났다면 감동의 재회라는 걸 할 수 있을 터인에도.
"당신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당연한 것이다.
몇 시간에 걸친 대화를 돌이켜보았음에도, 그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대화를 하고자 하면 어느 순간 캔버스를 쳐다보고, 눈을 마주보려 할 때면 바로 시선을 홱 돌려버리기 일쑤.
그에 짜증이 난 나머지 마음을 추스르고자 시선을 팔면, 그는 어느 순간 목탄을 쥐며 그림을 그리는 데에 열중할 뿐이었다.
10년 전에 자신이 출가할 때와 마찬가지로.
떠나가는 것조차 돌아보지 않고 그림이나 그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래, 전혀 달라진 게 없잖아……. 사람의 말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그런 주제에 자기 주장이 확실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야. 언제나 웅얼거리다가 그냥 입이나 꾹 닫기나 하지, 무슨 제 앞에 있는 사람을 바보 취급 하는 것 마냥!!"
"미, 미안."
"미안한 줄 알면 좀 고쳐야 할 거 아니야!!"
어리다면 철이 없다 볼 수도 있다.
귀족가의 후계자로썬 그 또한 부족한 모습이겠지만, 그런 오빠마저 가문을 부흥시켜야겠단 이유로 무한한 사랑과 관심을 퍼부었던 것이 제 부모였다.
그런 오빠를 위해 자신을 가문에서 내쫓기까지 했건만. 정작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아온 자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한 가문의 가주라고 하는, 막대한 책임이 뒤따르는 자리에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체 10년 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부모님이 오빠한테 얼마나 많이 기대를 했는데 아직까지도 사람 눈도 제대로 못 마주보고……. 그런 주제에 가문을 물려받아? 백작가를 이끌어!?"
그 또한 사람에 따른 성향이라고도 받아들일 수 있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알아도 타고난 천성이 적극적이지 못해, 하는 일이 잘 안 풀린 것뿐이다……. 자비와 박애를 아는 신자가, 그런 이를 품어줄 마음 하나 가지지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런 배려를 가진 자신에 대한 존중이라곤 쥐뿔도 없는…….
"아, 그래. 이젠 엄청 살 판 났다 이거지?"
'차라리 네가 나를 대신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말이 나올 때.
그런 자책을 가장한 책임회피만큼은, 고결함을 숭상하는 신자이기에 더욱이 가증스럽게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가문이 멋대로 부흥하고, 아무것도 안 해도 자기 일을 대신해주는 아내가 있으니까, 기둥서방짓만 해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 수 있으니 그 정신머리를 고쳐먹을 생각도 안 하는 거 아니야!"
한 번 터져 나온 화는 봇물이 터지듯 용솟음치고, 이내 듣기에도 버거운 폭언으로 이어졌으니.
어떻게든 그것을 꿋꿋이 듣고자 했지만, 끝내 슈벨이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내뱉었다.
"……미안해."
"내가 사과를 받으려고 이렇게 소리치는 게 아니라는 걸 왜 모르는 건데!?"
10년 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사죄.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는 현실도피.
"내가."
그런 방식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것이 제 오빠였다.
그런 제 오빠마저 가문을 부흥시킬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며, 부모님은 그만을 감싸고돌았다.
그리고 자신은 끝내 버려졌다.
"내가 떠난 후에도 여전히 이런 꼴이면, 당신을 믿고 가문을 벗어난 난, 대체 뭐가 되냔 말이야……."
과거의 자신이 지금의 그를 본다면 얼마나 수치스럽고 화가 날까, 또 얼마나 세상이 원망스러웠을까.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게 신자로썬 잘못되었다 여길지도 모르지만, 신자 역시도 결국엔 한 명의 인간이 된 자다.
가문이 부흥했다 한들 자신을 대신해 남은 자는 10년이 지나도 여전한 것을.
환경이 아닌 사람이 나아지길 바란다고.
증오스러운 가족에게나마 그런 걸 기대하는 것이 그렇게나 잘못된 일이란 말인가?
"메어리."
하지만 그보다도 더 껄끄러운 건, 하필이면 이런 모습을 가장 보이고 싶지 않은 자에게 보였다는 것이다.
배후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따라 서서히 돌아가는 고개.
허탈한 심정이 드러난 얼굴이 금발의 머리를 응시하다, 이내 밑으로 숙여졌다.
"미안, 많이 시끄러웠지?"
"아니……."
"내가 잘못한 거야."
뭐라 말을 하려던 셰인의 말을 가로막는 슈벨.
그 역시 메어리 이상으로 면목이 없다는 듯, 셰인과 제대로 눈을 마주보지 못하고 있었다.
"메어리가 화를 내는 게 당연한 거야, 내가 너무 글러먹어서……."
스스로의 잘못을 인지함에도, 그 시선은 드문드문 제 배후에 자리한 캔버스로 향해지고 있다.
정말로 정교한 그림이다.
흑백이라는 점만을 제외하면 배경을 박아넣은 것 같은 완벽함마저 느껴지는 그림.
"그래, 난……. 예전부터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남들처럼 요령도 없어고, 행동은 굼뜬 데다, 지, 지금처럼 말도 더듬고……"
"답답하면 그걸 고쳐야…."
욱한 심정에 소리를 치려던 메어리가,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밑으로 늘어진 두 주먹이 부르르 떨려온다.
그 감정을 응시하던 셰인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제 허리춤에 끼워 넣은 서류뭉치를 펼쳐보였다.
"슈벨 씨. 지금부터 당신을 대상으로 가벼운 테스트를 하나 진행하려는데, 괜찮겠습니까?"
10년 만에 만난 남매.
그 갈등의 깊이란, 형제애란 걸 제대로 느껴본 적 없는 셰인이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단 신경을 쓰는 걸 접어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먼저 고려하도록 하자.
"……테스트?"
"여기에 적혀있는 문답을 그대로 따라주시면 돼요."
자신의 추측이 정녕 옳은지에 대한 것을.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마련한 자료를 내어준 셰인이, 마찬가지로 메어리에게도 그 서류를 내어주었다.
"메어리, 너도 가능하면 해줬으면 해."
"…나도?"
"블레이즈에서도 신학에 대한 시험 정도는 치렀었지?"
시험 자체엔 교리적으로도 문제될 부분은 없었다.
물론 이단의 지식에서 기인했다며 거리를 둘 수도 있지만, 이미 메어리는 그에 대한 존중을 가지고 있는 상태.
"……알았어."
메어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셰인이 내어준 서류를 차차 훑어가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내용은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다.
가벼운 상식테스트, 도형에 대한 올바른 경로 찾기, 가벼운 산수와 단어의 조합.
그런 상식적인 것에서부터 무의식 적으로 같은 행동을 하는지, 간혹 귀에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거나, 시간의 흐름이 어느덧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등등…….
'이건…….'
그 문답을 훑어보던 메어리가 느낀 건 기시감이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에 적혀있는 것들을 반복하는 모습을.
"다, 다 적었어요."
그 자의 손에서 이내 서류가 떠났을 무렵, 그 내용을 검토하던 셰인이 자신의 품에 넣어둔 만년필로 글을 적어나갔다.
그 후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창밖에서 비춰오는 햇살이 서서히 노을로 바뀌었을 무렵, 셰인이 제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메어리가 숨을 죽이며 물었다.
"뭔가, 발견한 거야?"
"……듣기 싫으면 안 들어도 돼."
"들려줘."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알고 있다.
지금의 테스트가 이단의 지식에서 기인한 거니 부정당할 수 있다, 혹은 그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신자를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우려는 지금의 상황에선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의 그는 결과만 옳다면 과정을 불문에 붙이는 권리가 있고, 메어리는 그가 추구하는 길을 헤아리고자 하고 있으니.
"오빠는, 지금……."
그러니 그가 어떤 증상을 앓고 있는지.
"아니, 예전부터……. 어떤 상태였던 거야?"
신성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하지만 결코 저주라고 불러선 안 될 증세가 존재하는 것인지.
"……."
셰인이 그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제 손에 쥔 두 장의 서류를 교차로 살펴보았다.
진행한 건 일종의 지능테스트와 심리테스트.
그에 대해선 메어리는 아이헨발트를 기준으로 약간 벗어난 정도로 나왔다.
시대에 따른 사상과 교육수준을 고려하면 오차범위의 내부.
반대로 슈베르트의 경우, 같은 피를 이어받았음에도 그 차이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벌어져 있었다.
지능수준은 물론 심리적인 불안수치도 터무니없는 상태.
일상생활에도 큰 지장이 있는 레벨이다.
"메어리, 네 오빠는……."
그리고 그러한 증상에 더해 자신이 보았던 그의 그림을.
그리고 아이작과의 대화를 통해 파악한 점을 따지면 한 가지 결론이 나온다.
"선천적으로 자폐증을 앓고 있는 상태야."
그것도 평범한 자폐증이 아니다.
'학명-서번트 신드롬.'
인류사를 통틀어 가장 희귀하다 알려진 정신질환이다.
* * *
자폐증.
정신적으로 외부에 대한 자극이 무척이나 희미해져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사회성이 크게 떨어져 외부와의 소통이 어려운 정신질환의 일종이다.
이로 인해 반사회적인 성향이 크게 도드라지는 그들은, 끝내 인간과 어울리기를 거부하며 '스스로를 자신만의 세계에 가두는(자폐)'경향이 크게 도드라지게 된다.
'그리고 대개 자폐증에 걸린 사람은 뇌의 일부분이 마비된데 비해, 그 반대되는 부분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경향이 있지.'
장애가 생긴 부분은 지식과 언어능력을 담당하는 좌뇌.
반대로 우뇌가 담당하는 감각기관이나 신경반응 등이 비대하게 발전하며, 이 경우 터무니없는 기억력이나 집중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자폐증 환자가 특정 행동을 반복하거나 어느 순간 집중상태에 돌입하고, 그를 방해할 경우 발작증세를 보이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스스로의 세계에서 가두어진 상태에서 외부 자극을 받는 건, 그 자체로 보통의 사람에겐 '세계의 붕괴'나 다름없는 충격을 받게 되는 거니까.
'그리고 이런 장애 중, 간혹 비정상적으로 집중능력이 두각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전체적인 지능수준은 크게 떨어질지언정, 집중능력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는 것.
이로 인해 암기나 산수, 예술과 같은 분야에 독보적인 재능을 보이며, 그로부터 비롯된 능력은 빈말 없이 '천재(서번트)'라고 평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빈말 없이 시대에 둘 이상 존재하기도 어려운 천재 중의 천재.
그것이 슈베르트 블러드메리라는 서번트 증후군의 환자였다.
'에버그린이 왜 이 남자를 제 곁에 두려고 했는지 알 것 같네.'
제대로 쓰지 못하면 반사회적이고 그림만 그리는 멍청이로 보이겠지만, 그 재능을 살려낸다면 시대를 평정하는 '천재'로써의 재능을 부각시킬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훗날에 기대를 둔 평가일 뿐.
의사인 셰인은 제 환자가 희귀질환을. 그것도 전공도 아닌 병을 앓고 있다는 데에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천재라고 좋게 포장을 한다 한들, 결국에는 자폐증에 걸렸다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그래, 예전부터 이상하다 생각했었어."
슈베르트의 진상을 알게 된 후, 길드 건물을 벗어난 메어리가 다리의 난간에 기댄 채로 노을을 응시하였다.
노을에 젖은 강물을 응시하는 혼탁한 눈동자.
그 빛을 눈에 새기는 입에서 새어나오는 건 원망조차도 되지 못한 넋두리였다.
"엄마랑 아빠도 없는 돈을 다 털어가며 가정교사들을 고용했지만 한 달도 못 가서 그만두기 일쑤였고, 영지민들에게도 엄청나게 욕을 먹었어. 당신 아들내미는 바보에 멍청이인데, 왜 애꿎은 혈세를 그 바보 녀석을 가르치는 데에 투자하냐고."
차라리 딸내미나 잘 키우고 데릴사위나 들여라, 라며.
하지만 그게 이 제국에서 어디 쉬운 일일까?
장남이야말로 가주의 자리를 잇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지거늘. 당연히 장남이 있다면 그가 가문을 이어받길 바라는 마음에, 투자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당연함에도 메어리는 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그 순간만은 그 당시 아비를 다그쳤던 영지민들이 옳았다고.
"그런데 타고난 광인이라니…….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잖아."
정신의학이 정립된 제 조국에서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혐오는 존재했었건만.
종교가 의학을 대체하는 시대라고 다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