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207화
아이헨발트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 정의했던 증상이 있었다.
어떠한 사건을 겪어 스트레스를 극심히 받을 경우, 이와 관련된 공황장애나 우울증이 수시로 번복되어 나타나는 것.
그 증세가 정립된 후엔 아이헨발트에선 군인들의 케어에 신경을 써야 한다 주장했지만, 정작 같은 연합국에 소속되어있던 이들은 그 증상을 '의지박약과 근성부족'이라 가볍게 정리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렇게 질환을 방치시킨 병사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아군을 적군으로 오인해서 살해하는 일을 빈번이 터뜨렸었지.'
그런 사고를 터트린 이들조차도 관심종자네 떠들어대던 것이, 정신의학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흔히 벌어졌던 일이었다.
그래, 정신병이란 그런 것이다.
자각하지 못하면 사회에 은밀히 잠식하여 자신 뿐 아니라, 제 주변마저 파탄내머리는 질환.
그 위험성은 현 제국을 은밀히 잠식하는 녹색 역병(샬레 그린)못지 않으리라.
"저주 같은 게 아니야."
그런 피해자를 따라 다리의 맞은 편에 선 셰인이 씁쓸한 목소리를 흘렸다.
"너희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광인은 배척의 대상일지도 모르지만……."
"딱히 위로해 주지 않아도 돼."
그를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는 가운데, 메어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시선은 여전히 난간 밖의 강물에 둔 채로…….
수면에 흔들리는 얼굴엔 초탈함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냥, 갑자기 그런 말을 들으니 여러모로 혼란스러울 뿐이니까."
화가 아주 가라앉았다곤 할 수 없었지만, 마냥 이해하지 못했을 때와는 달리 마음이 개운해진 감도 있었다.
그 진실을 가르쳐준 것이 기도가 아닌 이단의 지식이라곤 하지만……. 아니, 이제는 이단이라고 부를 수도 없겠지.
그의 존재는 이 제국에도 인정을 받고 있고, 과정은 몰라도 결과가 옳다면 그 또한 이 제국의 체제에 편입될 수 있을 테니까.
"난 이만 가볼게."
그러니 그를 존중한다면, 괜히 그를 방해하지 않고 여기서 떠나는 것이 옳은 일이리라.
그렇게 난간에서 팔을 떼어놓았을 무렵, 셰인이 메어리를 바로 불러 세웠다.
"그냥 이대로 떠나도 되는 거야? 네 오빠랑은……."
"어차피 얼굴이나 한 번 보러 온 것뿐이야."
딱히 반가움 같은 걸 느끼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없는 사이, 가문을 물려받은 가주된 자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는지를 알고 싶었을 뿐.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그 혼란도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일 것이다.
이제까지가 그랬고, 앞으로가 그렇듯이.
"당분간은 이 영지에 체류하겠지만, 아마 그 동안 오빠를 보러 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해."
그리고 그건 제 오라비를 치료하고자 온 셰인 역시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바.
"……메어리."
그래, 당분간은 이별이다.
언젠가 다시 만나긴 하겠지만, 당분간 제 의지로 그를 만나러 갈 일은 없으리라.
그로부터 긴 시간의 작별을 느낀 셰인이, 조심스레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 부탁을 건네었다.
"신성력, 보여줄 수 있어?"
"왜, 내가 이런 일 때문에 신앙을 잃어버리기라도 했을까 봐?"
메어리가 스윽 제 손을 들어올렸다.
손끝에 어린 빛이 그녀의 주변을 타며, 이윽고 노을빛에 섞여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단을 향한 존중을 함에도, 그 존중을 넘어 자신의 혈육을 그에게 맡기는 와중에도 그 마음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그로부터 이 제국이 지향하는 정석을 벗어났음을 느꼈지만, 메어리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만이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걱정 안 해도 돼. 이런 일로 신성력이 꺼질 거였다면 애초에 그 섬에서 나오지도 못했을 테니까."
물론 근심이 아주 없진 않지만, 적어도 그건 자신의 신앙과는 별개 된 부분에서 비롯된 것이다.
"셰인, 너는……."
그 근심을 입 밖으로 내뱉으려는 것도 잠시.
곧 셰인이 그녀와 마찬가지로 제 손을 들어올려, 자신이 품고 있는 신앙을 보여주었다.
그래, 이단자로서 빛을 거머쥐었으니.
그는 이 제국에서도 자신의 원대한 뜻을 조금씩이나마 펼쳐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 쓸데없는 걱정이겠지."
자신이 아는 사람 중 가장 고결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분명 그 마음은 앞으로도 줄곧 이어지리라, 생각한 메어리가 안도를 느끼며 그에게서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렇게 모든 걱정을 털어내고 떠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고 보니 물어보는 걸 잊었네."
마지막으로.
그렇게 자리를 벗어나려던 메어리가 자리에 멈춰선 채로, 시선을 하늘로 향하며 물었다.
걱정보다는 미련이라고 부를 감정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해소될지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했던 고백에 대한 답, 지금도 마찬가지야?"
마지막으로 헤어졌을 당시의.
그때에 자신에게 말했던 유예의 끝에 도달한 이 순간. 메어리는 그의 얼굴을 마주보지 못한 채 대답을 요구하였다.
어찌 보면 잔혹하다고 할 수 있는.
"미안해."
그래, 자신뿐 아니라 그에게도 상처가 남게 될 요구.
메어리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밑으로 늘어진 손을 움츠렸다.
"또 미뤄달라는 건 아니지?"
"……응."
대답이 늦어질지언정 망설임은 잠시일 뿐.
이미 그는 자신의 두 번째 삶에 추구할 것을 찾았고, 모든 일을 끝마친 후 제 행복을 찾겠다 결심을 한 상태였다.
"그 때랑은 달리, 지금은 이 마음을 포기해선 안 될 이유가 생겼거든."
제 아량이 더 컸다면 손을 뻗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또한 결국에는 자신의 이기심이고 욕심일 뿐이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은 손길은 도리어 상처를 줄 뿐이니.
"그래, 만나보니까 그럴 거 같더라고."
그리고 메어리 역시 그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알지 못하는 만남 속에서, 같은 자를 사랑한 여인을 마주하였다.
자신보다도 더 오랜 시간 동안 그 마음을 유지해오고.
그 마음의 크기도.
아량도 감히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결한 여인을.
그 여인이 거머쥔 책임은 자신보다도 더 거대하지만, 그 책임마저 끌어안으며 그에 대한 사랑마저 유지하겠단 마음은 신을 향한 마음 이상의 견고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메어리는 그 원대한 마음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스스로가 나약하지 않다 상기함에도, 그녀가 가진 강대함을 넘어설 자신이 없었기에.
"셰인."
그에 대한 자각은 열렬했던 마음이 무색하게도 한 순간에.
저물어가는 꽃이 떨어지듯 덧없고 조용히 이루어졌으니.
"널 좋아했다는 건 진심이었어."
"……알고 있어."
"알면서도 차버린 넌 진짜 나쁜 녀석이야."
빛이 어린 손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모든 상처를 치료해주는 힘을.
그럼에도 고통이 잦아들지 않는 건 어째서일까?
"마음이 아주 없는 게 아니라서 더……."
그래, 지금의 상처는 여전히 계속해서 남아 이 순간을 상기시키겠지.
하지만 그런 상처를 족쇄로 남겨둬선 안 될 터이다.
"오빠를, 잘 부탁할게."
그렇게 상처만을 입은 여인은, 자신이 이루지 못할 사명을 그에게 전가한 채로 노을길을 거닐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도 머지않아 등을 돌릴 뿐.
그 길의 끝은 어디로 향할지 모르지만, 당분간은 그들이 같은 길을 거닐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 그러기를 바란다.
거절한 자도, 거절 받은 자도.
이별이란 그렇게 씁쓸하고, 더없이 아픈 것이니.
"슈벨 씨."
그 끝에 본래 화실로 돌아온 셰인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나마 집중이 흐트러진 순간이었을까?
마침 작업하던 그림에서 시선을 돌린 슈벨이 셰인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 네…… 메어리의 연인 분이로군요……."
"연인 아닙니다."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그 씁쓸함을 삼킨 셰인이 의자를 끌어 앉아 슈벨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러고 보면 소개가 늦었네요. 저의 이름은 셰인 골드리안, 당신의 아내인 에버그린의 동생이자, 당신을 치료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보낸 치료자입니다."
"에, 에버……?"
눈을 껌뻑이며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는 슈벨.
그 시선도 머지않아 셰인에게서 스윽 거두어졌다.
별로 이상하게 보진 않았다. 타인과 눈을 마주보기 어려운 건 자폐증의 흔한 증상이니까.
"에바가, 당신을 보낸 겁니까?"
그래도 기억력까진 문제가 있진 않은 모양이군.
그에 안도의 미소를 지을 법하건만, 그럼에도 셰인은 차마 제 앞의 환자를 상대로 희망을 가질 수가 없었다.
'당신이 정해. 그를 끌어들일지 말지.'
에버그린은 제 앞에 있는 자가 이 시대에 도래한, 그 어떤 역병보다도 위험한 '유행'을 지워낼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다 하였다.
확실히 서번트 증후군이라면 그럴 가능성이야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평균보다도 좀 더 가능성이 있을 뿐.
비록 제대로 된 계획은 짜여져 있지 않지만, 이 자의 존재만으로도 풍조를 개변시킨다는 목적은 '해볼 만한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문제는 이에 따르는 윤리적인 문제다.
'병을 치료해야 할 의사가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에게 도움을 빌린다.'
과장을 하자면 시대를 바꾼다는 원대한 목적을 위해, 자신과 연관이 없는 이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거나 다름이 없는 일이다.
그것이 정녕 의사에게 허락되는 일일까?
"……일단 색맹치료에 대해서 설명을 드릴게요."
그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 차차 이뤄가야 할 일일 것이다.
그렇게 셰인은 앞서 나타난, 자신이 먼저 처리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기로 하였다.
이제까지처럼, 늘 그렇듯이.
* * *
교회란 이 제국의 어디를 가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장소.
그건 아인츠바이 공작령 역시 예외가 아니었으며, 메어리는 제 심란함을 추스르고자 그곳에서 기도를 드리는 시간을 보내고자 하였다.
"……추기경님?"
그렇게 들리게 된 장소에서 익숙한 얼굴을 마주한 건 우연이라 여길 일.
곧 메어리가 제 앞에 자리한 이를 훑어보았다.
노을빛을 투과시키는 스테인드 글라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성스러운 장소에 등을 돌려 앉은 남자가, 곧 메어리를 스윽 돌아보았다.
"그 목소리는……. 그렇군요, 메어리로군요."
터벅터벅.
비어있는 기도실에 발자국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진다.
이내 빛이 드는 장소에 들어선 것은 큼직한 흉터가 얼굴에 그려진 남성.
하지만 두 눈만은 붕대를 통해 감겨져 있다.
한 치의 앞도 볼 수 없는 상태. 메어리의 앞에 나타난 건 그런 남자였다.
"추기경님께서, 왜 여기에 계시는 거죠?"
추기경 토머스.
이단을 벌하는 걸 업으로 삼는 이단심문관들의 수장인 그는, 이단 신고를 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바티칸의 지하수용소에 머무르고 있어야만 한다.
그것도 심문관들을 이끄는 수장인 만큼 어지간한 일엔 행동해선 안 되는 법.
그런 그가 공작령에 들렸다는 건, 그 자체로 경계심을 곤두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만. 분명 고향에 들리고 온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자그마치 대륙 하나를 지도하는 나라.
변경과 중심지대는 그 거리가 멀어 통행이 쉽지 않은 법이다.
메어리가 긴장을 하며 그를 향해 말했다.
"그, 열차라는 걸 타고 왔습니다."
"열차?"
"마차보다 훨씬 빠르고 안정적으로 정해진 장소를 왕복할 수 있는 물건이에요.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가 되지 않으시겠지만……."
"아뇨,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직접 탑승해본 적은 없지만, 변경에서 활동하던 심문관들을 통해 전해들은 적이 많으니까요."
그래, 이단이라 불리는 이들은 제국의 감시가 활발한 중심지대보단, 변경지대 쪽에 더 많이 주둔해있는 상태다.
그런 이들이 현재엔 반란군들과 합세하여 기승을 부리는 상태.
그 사실을 되새기며 긴장을 추스르는 가운데, 파이몬이 제 고개를 메어리에게로 향하였다.
"심문관 메어리."
시야가 가려졌음에도, 본래 시선이 향할 곳이 정확히 자신이 마주해야 할 자에게로 향해져 있다.
긴장을 느낀 메어리가 주머니에 넣어둔 목걸이를 꺼내 제 목에 걸어갔다.
말뚝이 박힌 십자가의 형상.
정식으로 심문관 자격을 가진 이들에게 주어지는 물건이다.
"제가 왜 이 영지에 있는지를 여쭈어보셨지요?"
"……네."
본래 추기경은 함부로 움직여선 안 될 자.
그런 그가 바티칸을 벗어났다는 건, 그만한 사태가 이 영지를 기점으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제국으로 돌아온 후, 정식으로 심문관의 자격을 받은 메어리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의무가 있었다.
"파이몬이 사망했습니다."
설령 그것이 심문관을 지망한 자신을 이끌어준 스승의 부고라 할지라도.
* * *
주교 파이몬.
악마 사냥꾼이라는 살벌한 이명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불같은 태도는 어디까지나 이단을 향한 것일 뿐이다.
그는 독실한 신자였고, 그 누구보다도 정의를 추구하는 자였으며, 사회의 혼란을 그 누구보다도 경계하고, 그렇기에 고결한 마음을 가진 이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존경해온 자였다.
'메어리. 당신은 블레이즈에서의 고된 여정을 통해 신앙을 각성한 사람이었죠.'
그리고 메어리는 그런 자에게 가르침을 가지고, 그에게 깊은 감회를 느껴 심문관으로서의 마음가짐을 가진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당신에게 줄곧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만……. 혹시 셰인 골드리안이라는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그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신자의 몸으로써 한 이단자에게 매료되었던 인물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