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208화
'선한 빛이었습니다.'
'빛을……. 셰인이 말인가요?'
아무리 고결하다곤 하나 근간을 이단에 두고 있는 몸.
그런 그가 빛을 각성한 것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파이몬은 거듭 강조하듯 메어리에게 말했다.
당시 그가 발했던 빛은, 자신이 보아왔던 그 무엇보다도 순수하게 보였다고.
'비록 저나 당신과 비교하면 무척이나 작은 빛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빛엔 한 점의 흔들림하나 엿보이지 않았습니다. 후후, 이상한 일이지요. 아무리 고결한 자라 한들, 신앙이란 매 순간 흔들리는 법이거늘.'
그러한 빛을 회고하는 그 순간.
언제나 피로에 젖어있던 그의 얼굴이 그날만은, 정말이지 부드럽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추기경님께서 그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는지를, 조금은 이해한 것 같습니다.'
그런 표정을 지었던 사람이 제 교육을 마치고 헤어지기 무섭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심문관인 이상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
파이몬 역시 제 죽음 정도는 각오했을 테니, 신자된 자로써 그의 명복을 빌어주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심문관 중에 배신자가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말을 듣기 전까진.
메어리를 포함한 모든 심문관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 * *
"배신자, 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 말이 내뱉어지려했지만, 주를 섬기는 자가 감히 제 입에 거짓을 담아선 안 되는 법.
토머스가 이런 일에 거짓을 말할 리는 결단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메어리."
곧 그가 말했다.
"저희들, 심문관은 그 누구보다도 타락의 길로 접어들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건 당신 역시도 잘 알고 있는 일이겠죠."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자신들을 들여다보는 법.
그 유혹을 신앙을 이용해 뿌리친다 한들, 결국에는 매 순간 제 신앙을 시험에 드는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고결한 자라 할지언정, 자신들이 옳은 길을 걷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 법이니.
"그렇게 외도에 들어선 심문관들이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건, 그런 이들을 단죄하는 것 역시 저희들의 역할에 포함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심문관들은 이단을 이해하되, 언젠가 자신과 함께 한 이의 손에 제거될 것 역시 각오해야만 한다.
그런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누군가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 하나, 적어도 심문관들은 그 과정과 끝을 '타락과 정화'라고 칭하지, 배반했다는 표현은 결단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파이몬을 살해한 자에겐 처음부터 신앙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이건 배반이었다.
그것도 심문관이 되었을 당시부터 교묘히 이루어졌던 배신.
"모종의 방법으로 신앙을 연기하며, 저희들의 사이에 섞여들었던 것이죠."
"신앙을 연기하다니, 그런 게 가능한 건가요?"
신성력이란 마음의 실체화.
오롯이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만 각성하는 힘이며, 심문관들은 그러한 마음가짐을 더욱 엄중히 심사받는 존재다.
그런데 신앙을 연기하여 성직자들을 속이다니,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지 않은가?
"블레이즈에서 활동했던 당신이라면 잘 알고 있겠죠. 세상은 빛이 드는 곳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그럼에도 토머스는 담담히 말할 뿐이었다.
그 역시 제 상식을 벗어난 일에 현혹되지 않고자 스스로 눈을 뽑아버렸던 몸.
그러한 각오를 하면서까지 무리를 지탱하고자 한 그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 상황 역시 일종의 시련으로써 여기고 있었다.
"그래요, 그림자란 볕이 들지 않는 곳에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죠. 하지만 그런 어둠 또한 세상의 일부라 할지언정, 볕이 들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것을 양지에 끌어들이는 건 결코 경솔히 이뤄선 안 될 일입니다."
그런 일을 경솔히 벌이는 자들을 제거해왔기에 이 제국은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설령 그 평화를 위해 무수한 이들이 희생하고, 양지에 드러나지 않은 무수한 더러움이 쌓여 날뛸지언정.
그에 거부감을 느껴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업을 내칠 경우, 그 대가는 민중의 피로 갚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 파이몬의 죽음이 혼란스러울지언정, 그 혼란을 극복하는 데에 사력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의지를 이은 당신이 여전히 고결함을 품고 있다면……."
끝내 의견을 마무리 지은 토머스가 메어리의 옆을 지나쳐 출구로 나아갔다.
그래, 지금의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어야 할 일이었다.
"주교님을 살해한 범인은 누구죠?"
이제 막 심문관의 길에 들어선…….
아직은 심연을 모두 이해하지 못한 저 여인이, 이후에 찾아올 거대한 혼란에 끼어들지 않기를 바라기에.
"……메어리."
"각오는 되어 있어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돌아보는 토머스.
비록 그 앞에 보이는 건 어둠뿐이지만, 그 외에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몸이었다.
날이 저물며 어둠이 드리워지고 있음에도, 기도실엔 여전히 따스하고 부드러운 빛이 느껴지고 있었다.
제 앞에 있는 여인의 마음을 빚어 만든 빛이.
"가르쳐주세요. 파이몬 주교님을 살해한 것이 누구인지."
신앙은 마음의 실체화.
지금 그녀가 발하는 표현이 거짓되지 않았다는 걸, 토머스는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신앙을 가진 채로 심연에 들어선 것이 아닌.
그 속의 진실을 목도하고도, 그럼에도 신앙을 더욱 굳건히 다져온 여인이기에 더욱이.
* * *
"잘 보이세요?"
그날의 작별 이후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여전히 아인츠바이에 머물러 있던 셰인이, 자신이 줄곧 지켜봐 온 환자에게 넌지시 질문을 건네었다.
쓰고 있는 것은 안경이라기엔 무척이나 짙은 색을 띠는 물건.
외부에서 본다면 안구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흑에 가까운 색이었다.
"어……?"
그러한 안경을 뒤집어쓴 슈벨이 주변을 둘러보다, 곧 입 밖으로 미미한 탄성을 흘려보내었다.
이제껏 보아왔던 시야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는 의미.
자신이 만들어준 교정안경이 효과를 보인 것이다.
'고생한 보람이 있어서 다행이군.'
색각 교정 안경.
안경 내에 끼워둔 서로 다른 색의 필터를 이용해, 색각 이상자의 시야를 교정시켜주는 물건이다.
각 필터를 절묘하고 정교히 짜야만 효과를 발휘하는 만큼 다시 만들기도 쉽지 않은 상태.
그렇게 겨우 고생하여 만들어진 도구가 과연 어느 정도의 효율을 보일지…….
지금 막 꺼낸 용지는 그를 위한 테스트를 진행하고자, 셰인이 직접 색을 칠해가며 마련한 물건이었다.
"일단, 여기 이 시트를 확인해 주시겠어요?"
색각 이상 감별 시트지.
비슷한 색으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점의 안에, 그와 반대되는 색을 가진 점을 찍어 글자나 숫자를 적어 넣은 물건이었다.
뚜렷하게 보긴 어렵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집중을 하는 것을 통해 내부에 무엇이 적혀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색각 이상이 있다면 안의 글자가 보이지 않거나 왜곡되어 보일 터.
"평소랑은 다른 색으로 보이죠?"
"……네, 에."
"숫자는 안 보이고요?"
"수, 숫자요?"
색을 구분할 수 없는 전색맹에서 색이 탁하게 보이는 전색약으로.
그 또한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겠지만, 색약 역시도 미술가에겐 치명적인 증세인 건 변함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색이 탁하게 보일 뿐, 뚜렷한 색이라면 어렵게나마 구분이 가능해졌다는 것일까?
"이 안에 있는 색들, 구분하실 수 있겠어요?"
이내 세인이 시트지를 거두고, 각 색이 그려진 스펙트럼 용지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말없이 용지를 쳐다보는 슈벨.
곧 그가 가장 좌측에 자리한 색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건, 뭐라고 하는 색입니까?"
"적색입니다. 빨강색이라고도 하죠."
"여기 이건 파랑인가요?"
"아뇨, 그건 녹색이라고…."
슈벨이 가리키는 색들을 일일이 설명해주는 셰인.
답답하기도 했지만 당장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색약이라 한들, 그는 지금 이 순간, 난생처음으로 색이라는 개념을 접해본 것이니까.
"이게, 색……."
그렇게 다채로운 색이 그려진 용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슈벨.
이제야 색을 자각하여 기뻐하거나 놀랄 법함에도, 정작 용지를 응시하는 그에겐 뚜렷한 감정이 엿보이질 않고 있었다.
자폐증에 의한 돌발적인 집중은 흔한 일이니 당연할까.
'지금은 내버려 두는 게 좋겠군.'
그래, 이걸로 오늘 분의 치료를 끝내도록 하자.
그렇게 용무를 마친 셰인이 쪽지만을 남겨두고 화실을 벗어났을 무렵, 마침 찾아온 누군가가 복도로 나선 셰인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 셰인 씨."
아이작 아인츠바이.
슈벨이 속한 예술가 길드의 길드장.
허리춤에 끼워진 케이스에 들어 있는 건 분명 물감이리라.
"슈벨의 상태는 괜찮습니까?"
"현재 단계에선 색약 정도로 증세를 완화시키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조금 더 조정한다면 일상생활엔 지장이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겠죠."
보고로부터 희망을 느낀 듯 흐뭇한 미소를 짓는 아이작.
그를 복잡한 심정으로 훑던 셰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오늘 굳이 찾아오신 건, 혹시 전할 얘기가 있으셔서 그런 건가요?"
아이작은 가문의 차남이자 한 길드를 운영하는 사람.
그만큼 귀족으로서도 길드장으로서도 맡고 있는 사명이 많은 상태며, 슈벨이 눈여겨보는 인재라곤 하나 관리해야 할 사람도 많은 상태다.
정기 방문을 제외한 시기에 찾아왔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의미일 터.
"아, 네. 준비를 한다면 지금부터 하는 편이 좋다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이후 활동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지도 모를 일.
그 보고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앞으로 1년 후, 제도의 황궁에서부터 예술제가 열릴 예정입니다."
"……예술제?"
"제국에서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행사죠. 사실상 귀족들이 모이는 사교회 중, 가장 거대한 행사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취지는 제국 내의 귀족들이 가문을 대표하는 예술품을 전시하고, 각 지역의 문화를 공유하며 결속을 다지는 것.
입장비를 지불할 여력만 있다면 평민이나 귀족 등 관람하는 데엔 조건을 타지 않지만, 이는 즉 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에게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출품 자격을 부여받은 귀족들은 당연히 자신이 고용할 수 있는 최고의 예술가를 고용하려 들 터.
사실상 현 시대의 예술가들이 재량을 연마하는 이유는, 그 예술제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귀족들에게 고용되어 제 명성을 높이기 위함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는 가급적 그 시기에 슈벨이 저희 가문을 대표할 인물로 선출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슈벨 씨를, 말입니까?"
"가문이 다르다곤 하지만, 그의 굉장함을 알리기 위해선 저희 가문을 대표하는 편이 가장 좋을 테니까요."
아이작은 슈벨의 재능을 익히 눈여겨본 몸.
그 재능이 목탄화에 국한되지 않을 기회가 찾아온 현재, 아이작은 1년 후에 있을 예술제야말로 그 존재를 드러낼 적기라 여기고 있었다.
"요는 예술제가 오기 전까지 교정이 끝났으면 하는 거군요."
"거기에 더해 작품을 만들 여유시간도 필요합니다만……. 가능할 것 같습니까?"
"……."
조심스럽게 묻는 아이작.
셰인이 자신이 빠져나온 방문을 스윽 돌아보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조금 생각을 해봐야 될 것 같네요."
색맹의 치료가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그가 진정 세상으로 나가는 데엔 아직 많은 부분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자폐증세를 가진 그를 공개적인 자리에 내보내어도 되는지.
혹은 그의 천재성과 연관이 있는 그 증상을 치료할 필요가 있는지.
그리고 예술제라는 '마지막 기회'를 빌어, 자신이 염두에 두고 있는 '혁명'을 진행해도 되는지…….
* * *
그래. 화실을 벗어난 후 거리를 산책한 건, 그 중대한 고민들을 홀로 곱씹어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아니 씨발."
거리 한복판에 떡하니 전시된 간판.
그것을 본 세인이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욕을 토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