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214화
붕괴되는 파편 속.
발판을 잃은 몸이 부유감에 휩싸이는 가운데, 벨나르의 시선이 자신이 튕겨져나온 자리로 향해졌다.
그 역시 자신이 부숴낸 발판의 위태로움에 주춤거리는 상태.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아직 지지대를 잃지 않은 발판을 밟고,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도약할 준비를 취하고 있었다.
'대단하군요, 여기까지 오는 데에만 해도 지쳤을 텐데 이 정도의 힘이라니.'
완전한 회복은 무리더라도 전투속행력만은 확실한 상태.
그 끈질김은 전장에 선 성기사들 못지않을 것이다. 이단의 몸으로, 오롯이 기적을 가진 자만이 행사할 수 있는 질긴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을 가진 이단자인가…….'
성직자란 교리에 얽매여 대부분의 행동에 제약을 받는 법.
그건 전투를 업으로 삼는 성기사들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바이며, 이단을 처형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심문관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럼에도 상대는 그들과 달리 '정석'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며 빛을 거머쥔 상태.
"자유가 존재하는 신앙이라니……. 이 세계에 그보다 특별한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 직후 울려 퍼지는 파공성.
무너지기 직전의 발판을 박차고 뛰어오른 셰인이, 곧 허공에 떠있는 벨나르의 머리를 향해 손날을 휘둘렀다.
그 몸을 단숨에 도려낼 기세로.
-기이잉!
하지만 기계음과 함께 회전한 몸은 참격을 피해내고, 표적을 잃은 셰인의 몸이 그 밑으로 추락하였다.
옆의 건물에 가까스로 도달하지 않았다면 거리에 내동댕이쳐졌으리라.
"……망할, 저건 또 뭐야."
돌아본 순간 눈에 들어온 건 등에서부터 펼쳐진 기계장치.
육안으로 구조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뒤엉킨 기계장치가, 그것을 모두 포개듯 펼쳐진 '강철의 날개'에 덮여져 있다.
그 날개로부터 퍼져 나오는 기류는 분명 마나에 의한 것이리라.
벨나르가 그 힘에 의존한 채 몸을 띄우며 비릿한 미소를 터트렸다.
"나름 오늘을 위해 고심하며 만들어낸 장치입니다만……. 어때요. 멋있지 않습니까?
"그래, 대머리도 하늘을 나니까 멋있긴 하네."
날개와 더불어 민머리가 태양빛을 반사하니 눈이 부실 지경이다.
그런 비아냥조차도 벨나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윽한 눈으로 셰인을 내려다보았다.
"셰인 골드리안."
통성명이 없어도 그가 누구인지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7년 전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든 재판의 주인공.
5년에 걸쳐 제국에서 가장 위험한 땅을 누볐을 뿐 아니라, 그로부터 많은 성과를 내어 명성을 날렸던 자.
그리고 제국에 돌아온 후엔 무수한 반란군과 범죄자를 소탕하고, 거기에 더해 푸른 화살보다도 격이 높은 세력인 제3제국의 수장을 산 채로 채포해 넘긴 자.
"어차피 회유를 들을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만약의 기대를 걸고 당신에게 제안을 걸어보도록 하죠."
하지만 근간은 이단자.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이 제국에 반기를 든 몸이다.
그런 자가 자신과 함께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그런 생각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 왔건만.
"왜, 너도 감동 구걸질이라도 할 생각이냐?"
그 기대를 품은 제안을 내뱉기도 전, 셰인이 밑으로 풀려진 투석구에 마나를 끌어 모을 준비를 취했다.
"같잖은 사연팔이를 하기 전에 이 주변이나 둘러봐라. 이 현장에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누가 있나."
폭음과 비명, 폭발과 화마에 의해 으스러지는 도시.
그러한 장소에선 같잖은 사연팔이도, 숭고한 대의도, 미련도 모두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단말마를 가장한 유언조차도 결국엔 사치일 뿐.
"싸우기로 했으면 입 닥치고 덤벼. 이쪽은 댁이랑 나눌 얘기 하나도 없으니까."
-파앙!!
다시 허공을 향해 던져지는 마나의 포탄.
하지만 공중에 있는 표적은 지상과 달리 대상의 고도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만큼, 명중률은 급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성가신 건 저 꼬리다.'
저 꼬리로부터 일어난 파장.
주변에 퍼져나간 그 힘에 무언가 감지된다면 음속보다도 빠른 속도로 신호가 전해지고, 그것이 날개와 연동된다면 지형에 구애되지 않는 자유로운 움직임으로 회피가 가능해진다.
"아, 그래요. 확실히……."
물론 날개와 꼬리만이 그가 가진 전력의 전부는 아닐 터.
"저희가 태평하게 대화를 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죠."
-끼리릭, 철컥!
날개 밑에 내장된 기계장치가 풀리고, 이윽고 드러난 다연발의 기관총이 셰인을 향해 겨누어졌다.
-투타타타타타타!!
빗발치는 마나의 세례가 지나친 모든 곳에 아지랑이의 궤적을 남기고, 적중한 지점의 모든 것을 찢어발긴다.
그 총탄의 궤적을 피하고자 지붕을 질주하며 건물의 아래로 뛰어내리는 셰인.
이후 측면의 창문으로 들어서며 건물 안으로 몸을 굴렸으나, 탄환의 파도는 그마저도 무참히 도륙내어 건물을 붕괴시켰다.
-콰강!!
그 건물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떨어지는 폭탄은 그 자체로 공포나 다름없는 것.
폭발이 일어난 건물에서 튕겨져 나간 셰인이 지붕을 구르며, 투석구에 마나를 끌어 모을 준비를 취했다.
"바스타드 크리넷, 리퍼 더 반데드……. 그 외에 많은 동료가 당신의 손에 쓰러졌지요."
반면 벨나르는 그 목소리에 여유가 있는 상태.
전체적인 압도감은 이전에 마주한 바가 있던 '뫼비우스'에 비해 떨어지지만, 상대에겐 공중을 비행한다는 터무니없는 강점이 존재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제가 눈여겨본 인재 역시도 당신에게 매료되었어요. 회유를 하기도 전에 그를 끌어들인다는 계획이 좌절되었을 정도로……."
-파앙!!
다시금 던져진 마나의 포탄.
그에 반응하며 이루어진 날갯짓이 근소한 차이로 회피에 실패했지만, 꼬리의 반사신경은 그마저도 차단시켜 포탄의 궤적을 틀어버리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것도 완벽한 방어라곤 할 수 없었다.
고작 두 발.
그것을 방어한 것만으로 꼬리의 관절이 약간 비틀어질 정도의 충격을 받았으니.
"여유 있는 척하지 마라. 사실 자기가 제일 똥줄 타는 주제에."
싸움을 길게 끌고 싶지 않은 건 피차일반일 것이다.
자신의 경우 반란군들을 돌파하고 오느라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고, 하물며 이제껏 상대해본 적도 없는 '공중의 적'과 겨뤄야 할 판국이니까.
그리고 상대의 경우 체력보다는 시간적 여유로 인해.
"이렇게 계속 노닥거려도 되는 거야? 그쪽도 어느 정도 일을 저지르고 나면 증원이 오기 전에 내빼야 할 텐데……."
하지만 이만한 사단을 벌인 작자가 그런 것 하나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이미 충분히 날뛰었음에도 바로 모습을 감추지 않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걱정해주시는 건 고맙지만, 여유를 부리는 데에도 여러 이유가 있는 법이죠."
-콰강!!
휘둘러진 날개와 함께 떨어지는 폭탄.
형태는 그저 금속조각을 뭉친 것에 불과하지만, 내부에 스며든 마나는 육체에서 떨어지는 순간 의지가 빠르게 소실되게 된다.
그로부터 비롯된 힘이 0에 근접한 순간 내부를 조이는 힘은 해제.
-콰가강!!
터져나가는 금속 파편이 석재와 금속으로 이루어진 건물을 무참히 찢고, 그 일대를 붕괴시켜가길 반복했다.
단련된 육체는 물론 마나의 장막조차 그대로 찢겨질 충격.
그러한 폭탄이 주변을 어지럽히는 중에도 벨나르의 나불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첫 번째는 이 도시에서 난동을 치는 것 자체가 저희들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공작령이 더욱 크게 무너질수록, 이후에 있을 전란의 초석은 더욱이 단단히 굳혀질 테니."
-투타타타타!!
폭발의 뒤를 이어 쏘아지는 총탄이 도주경로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갈아버린다.
그 공격을 피해 지붕의 맞은편에 자리한 탑의 뒤로 몸을 숨기는 셰인.
벨나르는 그런 셰인을 굳이 추적하지 않고, 그 자리에 부유한 채 조롱하듯 속삭였다.
"두 번째 이유는……. 그래요, 지금 저를 상대하는 건 당신 혼자이기 때문이죠."
그 직후 주변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그에 신경을 곤두세우기 무섭게, 셰인이 디디고 있는 지붕의 양옆으로 두 개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셰인 골드리안. 군인인 당신이라면 알고 있겠죠? 아무리 날고 기는 영웅일지라도, 개인의 몸으론 '군대'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새의 부리를 연상케 하는 가면에 더해 털옷을 입은 수상쩍은 남자.
마치 까마귀와 같은 모습을 한 그가, 제 손에 쥔 예리한 칼날을 셰인을 향해 휘둘러왔다.
-휘리릭! 까강!!
현란한 칼질 속, 손날에 깎여나간 금속의 표면에서 불똥이 터져 나온다.
그 순간 빈틈을 노리고 손을 찔러 넣으려는 순간 측면에서 난입해 오는 남자. 그 자의 반대쪽 손에 쥐어진 총구가 셰인에게로 겨누어져 있다.
단발식 소총? 대포?
아니, 등에 지고 있는 탱크와 노즐로 이어진 분사구다.
-화르르륵!!
그로부터 쏘아지는 기름이 업화가 되어 셰인의 몸을 감쌌다.
화마를 피해 몸을 굴리기 무섭게 같은 자리에 내려앉은 거구의 남성.
건물 밑에서부터 뛰어오른 갑옷의 사내가, 제 몸 곳곳에서 증기를 뿜어내며 셰인을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이런 씹……."
-콰아앙!!
증기를 뿜어내며 휘둘러진 망치의 거센 휘두름.
그에 직격한 채 지붕 위를 구르는 셰인이, 어느 순간 자신의 주변을 두르는 인기척을 눈치채며 이를 갈았다.
"제가 이끄는 푸른 화살의 간부진들입니다."
장비도 복장도 모두 제각각.
그리고 실력이나 경지는 이제까지 마주했던 잔챙이들과 급 자체가 다르다.
그저 무장만을 믿는 이들이 아닌, 하나하나가 '정예'취급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이들.
애초에 여기까지 비행을 한 것 자체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유도를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 실력을 말하자면……. 그래요, 당신이 상대했던 바스타드나 리퍼와 동급이라 할 수 있겠죠."
둘 모두 셰인에게 패배했던 작자들.
하지만 싸움이란 머릿수가 많은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법이다.
강체술만 하더라도 동시다발적인 타격에 취약한 법.
자칫 협공을 허락한다면 이 몸은 순식간에 도륙나리라.
"비겁하다고 하진 않겠죠? 적지에 미련하게 홀로 들어온 건 당신이었으니."
-위이이잉!!
선두에 선 반란군의 손에 쥐어진 전동톱이 엔진음을 내며 불씨를 퍼트린다.
그에 위화감을 느끼는 가운데 날개를 움직여 자리를 슬슬 벗어나는 벨나르.
셰인이 그에 조급함을 느끼며, 다급히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붕대를 쏘아 보내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까앙!
그 직후 난입한 자가 휘두른 날붙이에 튕겨나가는 붕대.
이내 힘을 잃어버린 붕대가 축 늘어진 순간, 그 뒤를 이은 간부들이 셰인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도망이라니요? 이건 일종의 배려입니다. 저희들 푸른화살은 의외로 동료애가 짙은 편이라서 말이죠."
블레이즈를 필두로 했던 공작에서도 그에게 많은 방해를 받지 않았는가.
그렇게 사로잡힌 이들 중엔, 자신의 오랜 친우이자 원대한 꿈을 함께 꾸었던 이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끌어들였던 동료마저도 그의 손에 처절히 짓밟힌 상태.
그들과 함께 동료애를 쌓고 변혁을 꿈꾸었든 이들에게 있어, 지금 그들이 둘러친 이는 증오스러워 마지않을 존재였다.
"비록 예상하진 못했지만, 당신을 이곳에서 만난 건 행운으로 여겨야겠지요."
그래, 그것이 세 번째 이유.
제3제국의 수장마저도 체포한 그는 현 시점에서, 이 제국의 희망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공작령에 이어 그 역시 이 땅에 묻히게 된다면, 그를 희망으로 삼을 제국인들의 마음을 무너트려 민중의 불신은 더욱이 가속화되리라.
'자 그럼, 복수전은 그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이윽고 날개를 더욱이 활짝 펼친 벨나르의 시선이 어느 한 곳으로 향해졌다.
불타오르는 현장과 연막으로 뒤덮인 거리.
그곳에 검은 천을 뒤집어쓴 채로 이동하는 무리의 선두에, 낯설지 않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작 아인츠바이.
협력자인 브루투스로부터 전해들었던 공작령의 핵심인물 중 하나.
그 역시 제국에 충성하는 인물일 것이며, 그가 인솔하며 대피시키는 이들도 마냥 평범한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천벌이란 죄를 지은 자에게 내려진다고 하죠."
-끼기긱!
이내 날개의 밑에 자리한 금속장치가 가동하고, 그 안에 하나둘씩 금속폭탄이 생성되기 시작하였다.
지력이 소실되는 순간 압력이 해방되어 고압으로 파편을 퍼트리는 물건.
그러한 것이 수십 개가 동시에 투하된다면 한 지역 정도는 쑥대밭이 되리라.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수한 폭탄의 세례! 이것만큼 천벌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힘차게 외친 순간 들어 올려지는 아이작의 고개.
그 얼굴에 드리워지는 공포감은 분명 제 미래를 예지했기에 나타난 것이리라.
그 얼굴 그대로 시체가 될 것을 상상한 순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스릴, 그 희열.
이윽고 입가에 미소를 짙게 그린 벨나르가 장치를 가동하려는 순간.
-퍼엉!!!
멀리서부터 폭음이 울려 퍼지고.
그 직후 거센 힘을 가진 무언가가 벨나르가 있는 곳을 향해 쇄도해 오기 시작했다.
'무슨…….'
그것을 의식으로 감지하기도 전, 제 몸을 두르고 있는 외장갑이 퍼트리는 파장이 그것을 먼저 감지.
이내 반사적으로 몸이 기울어졌을 무렵, 그 옆을 지나친 이의 모습이 뒤늦게 벨나르의 눈에 들어왔다.
"구스……?"
구스 테일러.
간부진 중 가장 육중한 갑옷을 걸치는 남자.
다소 떨어지는 기동력을 증기를 방출시킨 가속력으로 충당하며, 그로부터 휘둘러지는 망치는 그 자체로 공성병기에 준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무자비한 강함을 지닌 이의 몸이 공중으로 튕겨져 나간 것도 모자라, 그 갑옷이 산산이 붕괴된 채 제 앞에서부터 떨어지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
저 멀리까지 토해낸 피로 포물선의 궤적을 그리며.
"꺄아아아아악!!!"
그 직후 익숙한 목소리가 끔찍한 비명이 되어 울려 퍼졌다.
매서운 여성의 목소리.
크게 일그러져 있지만 분명 알고 있는 것이다.
'라즐리……!'
이전까지 고통스럽게 지르고 있던 비명마저 머지않아 잦아들고, 이내 목이 부러진 그녀의 몸이 자리에서 축 늘어졌다.
셰인 골드리안.
잠깐 눈을 뗀 사이에 반절 이상의 시체를 바닥에 뉘인 그가, 제 손에 쥐어진 라즐리의 시체마저 자신이 선 지붕의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온몸을 적신 피는 더욱이 흥건하게.
그 색이 너무 짙기에 붉은색을 넘어 검게 보일 정도였지만, 또렷이 뜨여진 눈은 분명 자신에게로 향해져 있다.
자신의 주변에 주둔해있는 적들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이, 이 자식이……."
-콰앙!!
그대로 달려든 간부의 복부를 후려치는 주먹.
주먹에 적중한 복부의, 그 내부의 오장육부가 뒤틀려 터진 순간 입 밖으로 왈칵 피가 터져 나왔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절명.
그 육중한 거구를 밀어내며 발걸음을 내딛기 무섭게, 질겁한 간부 중 한 명이 셰인을 향해 쌍검을 휘둘러왔다.
그 공격이 맥없이 빗겨나가고.
-서걱!
반격을 가하고자 휘두른 손날이 뒤늦게 치켜세운 가드째로 절단. 보호를 받지 못한 머리는 두 동강이 나 사방으로 피를 터트렸다.
'저건…….'
잠시 눈을 뗀 사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간부들이 여럿 쓰러져나가고, 이내 한 명만이 셰인과 대치하게 되었다.
고작 혼자서 아홉이나 되는 간부를 전멸시킨 순간.
하지만 셰인은 굳이 그 한 명에게 손을 휘두르지 않았다.
자리에서 등을 돌리며 다른 곳으로 나아갈 뿐.
그 방향을 알아차린 간부가 공포를 삼키며 셰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주, 죽……."
"비켜."
그가 노리는 건 오롯이 전의를 가진 자 하나.
이 전쟁에 자신의 의지로 들어선 이들뿐이다.
그 외에는 딱 죽이지 않고 끝내는…….
그 정도의 자비를 베풀 정도의 의식 정도는 존재하고 있었다.
"딱 한 번만, 다시 말한다."
그것을 홀로 남은 간부는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비켜."
여기서 물러선다면 자신은 죽지 않고 끝날 거라고.
어차피 막아선다 하더라도 그를 막아내지 못하리라고.
그것을 직감하며 서서히 움직이는 발걸음이, 이내 건물의 사이에 자리한 거대한 석상으로 향해졌다.
마치 탑과도 같은 높이를 자랑하는 도시의 예술품.
누군가에겐 자랑이라고 여겨질 그 작품을 등진 채로.
"죄송해요, 벨나르."
그녀는 자리에서 비켜서지 않고, 제 손에 쥔 창의 끝을 셰인을 향해 겨누었다.
"당신과, 같이 가지 못해서."
무의식적인 본능을 억누르고자 퇴로마저 차단한 여인.
그 마음을 냉정한 눈으로 쳐다본 셰인이 자신에게 휘둘러지는 창을 붙잡고, 그것을 악력으로 부러트렸다.
-서걱!!
그 필사의 돌격에 돌아오는 것은 오롯이 두 개의 손가락만으로 이루어진 칼날.
그것이 휘둘러짐과 동시에 터져나간 피가 석상을 물들이고, 그 사이에 자리한 미세한 틈이 혈흔을 부자연스럽게 틀어내었다.
아무래도 좋을 뿐이다.
셰인은 제 앞에 자리한 시체를 뒤로하며, 그 석상을 있는 힘껏 걷어찼다.
발바닥에 어린 거센 힘과 함께 석상이 기울어지고, 그것을 발판으로 삼듯 발을 내딛기까지.
"하……."
가히 기계적이라 해도 무방한 살육.
광기 하나 엿보이지 않는 냉혹한 학살. 그리고 진군.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내 폭격에 대한 생각마저 지워버린 벨나르가, 자신을 향해 질주를 준비하는 남자를 보며 저도 모르게 폭소를 터트렸다.
우습지 않은가.
복수를 갈망했던 자신의 동료들이 저렇게나 한순간에, 저렇게나 보잘것없이 죽어버리다니.
"셰인 골드리안, 당신은……."
사연도, 이름도 모두 의미없이, 저 길거리에 나다니는 쓰레기들로 전락한 동료들의 꼬락서니가 너무나도 우습고, 애처롭기 그지없게 보였다.
"당신은, 정말로 인간이 맞는 겁니까?"
그런 미래야 이미 각오했던 일이다.
그저 그것이 저 남자의 손에.
고결한 성자라 불러 마땅한 자의 손에 이루어지리라 생각지도 못했을 뿐.
"이단의 몸으로나마 이 제국에서 성자로써 불릴 자격을 갖춘 당신이……."
이단자로서 신앙을 각성하며, 그렇게나마 만인의 희망으로써 다가온 자가 사실은.
다른 누구보다도 이후에 찾아올 거대한 혼란을,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정녕 저를 죽이기 위해 인간이길 포기하기라도 한 겁니까? 저희를 막기 위해 비로소 악마가 되기로 한 거냔 말입니다!!"
-투파파팡!!
그런 상대의 평가 따윈 아무래도 좋을 뿐.
그대로 기울어지는 석상을 밟으며 전진하는 셰인이, 이내 석상의 끝에서 전력을 다하여 도약을 가했다.
그 힘을 버티지 못한 석상은 무참히 붕괴.
잔상이 되었던 몸은 표적의 앞에 도달하고 나서야, 그 형체가 바로잡히게 되었다.
'결정타를 가하는 순간만은 확실하게.'
-콰가각!!
그 일념에 의해 휘둘러진 주먹에 반응한 꼬리가 박살나고, 반대쪽 손을 펼쳐 만들어낸 손날이 이윽고 벨나르의 몸에 휘둘러졌다.
-푸칵!!
서로의 흉기가 교차로 휘둘러진 순간.
예정된 천벌은 붉은 비로 뒤바뀌어, 그 밑을 지나는 피난민들의 위에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