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215화 (215/255)

의무병의 환생 215화

"……이거, 정말 놀랍군요."

그래, 이 순간 입 밖으로 내뱉어진 건 결코 비아냥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전란이 오가는 도시를 홀몸으로 누빈 것도 모자라, 우두머리인 자신의 곁을 지키는 간부들마저 홀몸으로 전멸시키고 여기까지 뛰어오다니.

만약 그가 전력인 상태에서 달려들었다면, 피를 쏟아내는 건 그가 아닌 이쪽이 되었으리라.

"비장의 칼날을 숨겨두지 않았다면 그걸로 끝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부서진 꼬리에 자리해 있는 자그마한 칼날.

강선을 꼬아 만든 와이어는 회전력이 더해지며 갑옷과 마나 등, 표적의 방어마저 뚫어버리는 예리함을 갖추고 있다.

내구성과 절대적인 반사 신경을 희생해야만 발휘할 수 있는 비장의 칼날. 하지만 제 목숨을 지키는 데엔 그마저도 싸게 먹히는 희생이리라.

'아니, 그것도 상대가 만전이 아니기에 가능했던 거다.'

급소를 빗겨갔을 뿐 몸 곳곳에 자리한 총상. 날붙이에 의한 벌어진 상처, 폭발물에 의한 화상자국…….

그 상처들은 이전의 간부진들과 겨루며 더욱이 벌어지고, 봉합된 부분마저 풀려 출혈을 가속화시키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진즉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

신성력이 없었다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으리라.

'안타깝군요. 거기서 저를 쓰러트리지 않고 도망쳤다면….'

그랬다면 이미 지하의 통로로 대피한 피난민들을 대가로, 자신의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었을 터이건만.

끝내 스스로마저 파멸로 밀어붙이는 이타심만큼 안타까운 것이 어디 있을까?

'……그렇다 해도 결국, 이게 그의 한계였다는 거겠죠.'

씁쓸한 동정을 표하며 꼬리를 셰인의 몸에서 빼내는 벨나르.

날개 하나 없는 몸은 그대로 축 늘어지고, 이내 전란이 오는 도시를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끼긱!

그렇게 등을 돌리려던 순간 날개에서부터 덮쳐오는 중압감.

추락하던 셰인이 붕대를 이용해 제 날개에 매달린 것이다.

"……구질구질하군요. 그런 몰골이 되어서도 저항을 하려 하다니."

"그럼, 씨발, 내가 여기까지 와서…… 곱게 뒤져야겠냐?"

밑으로 축 늘어진 팔은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상태.

기껏 해봐야 제 몸에 매달린 피 묻은 붕대로 추락을 막는 게 전부인 상태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쏘아보는 눈에는 독기가 어려 있고, 그 입에서 내뱉어지는 말은 너무나도 인간적이었으니.

"그거 참, 지독하게 냉정한 말이로군요."

그래, 지금의 그가 발하는 분노는 너무나도 인간적이었다.

이전에 제 동료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람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몸에 묻어난 피가 더욱 짙어진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가운데, 셰인이 지친 기색을 감추며 벨나르를 향해 한껏 비웃음을 토로하였다.

"왜……. 지 친구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니 막 후회되고 그러나?"

사실은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하고?

"후회되냐고요?"

가증스러운 소리다.

벨나르가 이를 갈며 제 속내를 낮게 읊조렸다.

"전혀요. 이 현장에서 설사 누가 죽더라도 복수심에 눈이 멀어 일을 그르치지 않겠다……. 그건 저를 포함한 모두가 각오했던 일입니다."

벨나르는 기억하고 있다.

상대가 되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막아서고자 했던 동료들의 모습을.

그건 막연한 공포가 아닌 분명 제 의지에서 비롯된 일.

그들은 자신의 선택으로 그의 앞을 가로막고, 그렇게 지금의 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당신을 가로막은 그들을 죽이면서,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겁니까? 어째서 그들이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당신을 가로막았는지……."

"아까 말하지 않았나? 구구절절 사연팔이를 읊는 건……."

"이유를 막론하고 목숨을 건 겁니다."

그래, 어떤 사연이건.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의 체제를 부정한다'는 의사를 표출하였다.

그런 이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반란군이며, 그런 의지가 모여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이 전란이다.

그런 마음만은 분명 전해졌으리라고, 하다못해 그를 통해 무언가 고칠 의향 정도는 발휘하리라고…….

그것마저 무시하며 타협을 해오지 않았기에, 이 제국이 지금과 같은 재해에 휩쓸린 것이거늘.

"그런데 이 제국은…. 당신처럼 이런 썩어빠진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놈들은……. 이런 의견조차도 무시하기 일쑤지."

그래, 이런 식으로 소신을 주장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제 선조들은. 자신들에게 200년 전의 역사를 전가해온 이들은, 제국의 억압에 꺾이지 않고 그 의견을 이 순간까지 전해져온 것이다.

참을 만큼 참았으니.

그러니 어느 한쪽이 사라지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싸움을 각오하기 위해.

"그러니 지금의 사단으로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끝까지 갈 뿐이야. 이제는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그렇게 한이 어린 말을 내지르며 분개하는 가운데.

"거 존나게 푸른 하늘이네."

셰인이 벨나르를 응시하며 태연한 목소리를 입 밖으로 흘려갔다.

아니, 정확히는 그 너머에 존재하는 하늘을 보며.

순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벨나르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쏘아보았다.

"무슨……."

"이상하지 않냐? 이렇게 도시가 죄다 불타고 있는 마당에 하늘만은 저리 쨍쨍하다니."

폭연과 화마에 의해 희뿌옇던 하늘도, 지금 이 높이까지 올라오니 더없이 푸르다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한 경치에 매료된 듯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리는 모습.

당장 그를 향해 원망을 토로하던 벨나르의 입장에선, 너무나도 가증스럽고 어처구니없는 모습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당신, 지금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네가 하려고 했던 게 바로 그런 일이란 거다."

그렇게 부정하려던 벨나르를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쏘아붙이는 셰인.

붕대 하나에 의존하여 몸을 축 늘어트린 상태에서도, 자신을 향한 눈에는 여전히 힘을 잃지 않고 있었다.

"어떤 이유로 전장에 발을 들였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을 뿐이야. 이미 뒤져나간 놈들의 시체 따위, 저기 펼쳐진 보기 좋은 하늘에 비하면 눈에도 담을 가치도 없는 것들이지."

벨나르 벨레로프.

그리고 그를 따르는 이들은 스스로를 반란자가 아닌 혁명가라 칭한다.

자신들이 하는 투쟁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남들이 각오하지 않은 피를 흘릴 정도의 노력을 한다면, 진정 이 세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이다.

설령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무언가 의미 정도는 존재한다고.

"그것도 못 깨달은 멍청이한테 예언 하나 하는데……. 넌 여기서 살아나간다 해도 네가 원하는 걸 손에 넣을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셰인이…….

카일이 체험했던 전쟁이란 그런 이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숭고한 게 있다면 그건 오롯이 제 기억에도 남길 수 없는 묘비뿐이며, 그런 죽음을 멀리서 지켜본 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쓴 판타지일 뿐.

"전쟁이 시작되면 어떤 이유에서건 네가 개처럼 뒤져나가거나, 개처럼 뒤져나갈 동료들을 보게 될 테니까."

그래, 지금의 자신이야말로 제 앞에 있는 자의 미래다.

그런 자신과 같은 길을 거닐려 하는 모습이 철없기 그지없게 보이는데, 어찌 그들에게 동조할 수 있겠는가?

"같잖은…. 도발을……."

하지만 상대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평화를 유지해온 땅에선, 그 누구도 전쟁이라는 '재앙'을 체험하지 못했으니.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기꺼이 응해드리죠. 제 동료들의 숙원을 해소해 주기 위해서라도!!"

-까드드득!!

강철의 날개가 요동치며 솟구쳐오르는 몸.

시계탑보다도, 제국에서 가장 높이 세워진 벽보다도 더 높은 곳까지 올라섰을 무렵, 이내 그 밑에 자리한 모든 것이 점으로 뒤바뀌었다.

-서걱!

그 높이에 오른 직후 거세게 휘둘러진 날개에 의해 붕대는 절단.

그와 동시에 밑으로 늘어진 철의 깃털들이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형태를 구축해 간다.

곡선을 그리는 칼날이 가시에 나선을 그리듯 뭉쳐지고, 그것이 내장된 장치의 용수철에 감겨진다.

이윽고 사출된 공격은 추락하는 23초의 시간 동안 그의 몸을 벌레처럼 갉아먹을 것이며, 그렇게 그는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처절한 고통 속에서 비참히 죽어갈 것이다.

그래, 그로부터 퍼지는 유혈이 붉은 비가 되는 순간이야말로 전란의 시작이리라.

"비참히 죽으십시오, 셰인 골드리안!!"

비통한 외침과 함께 이윽고 그의 날개가 휘둘러진 직후, 셰인이 위로 향해진 제 손에 힘을 실어 넣었다.

하지만 손가락만이 겨우 까닥거릴 뿐.

'아, 이젠 무리인가.'

위로 향해진 것도 어디까지나 중력을 거스르지 못해서.

뭣보다 다리를 디딜 곳이 없으니 제 몸을 지탱할 수조차 없다.

하늘이란 그렇게나 그에겐 이질적인 전장이었으니.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한탄스러운 건, 이곳에 오는 길까지 자신에게 동조해 줄 동료를 찾을 수가 없었단 것이다.

'하기야, 서포터 혼자서 해봐야 얼마나 한다고…….'

이 시대에서 전쟁을 준비하면서도, 그 전쟁에 반대하려던 것은 오롯이 자신뿐이었거늘.

'외롭네, 정말로.'

그런 처지에 괜스레 웃음이 새어 나오고.

그에 대한 체념으로 인해 손에서부터 힘이 빠져나가는 직후.

-번쩍!

멀리서부터 터져 나오는 섬광.

그것이 앞서 셰인의 눈에 들어온 직후, 쇄도해온 무언가가 그들이 있는 현장에 난입해 왔다.

한 줄기의 빛.

그것을 본 순간 손끝에 어린 체념이 사라지고, 이윽고 그의 신경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하였다.

"……메어, 리?"

찰나의 반응.

뒤늦은 깨달음.

-파악!!

이윽고 시계탑에서부터 쏘아진 섬광이 현장에 난입한 순간, 그 광명이 그들이 있는 곳을 크게 뒤엎었다.

그리고…….

* * *

-쿠구궁!!

중심을 잃은 건물이 기울어지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건물들이 도미노처럼 우수수 무너져 내린다.

사방에서 치솟는 불꽃이 유혈마저 태우고, 피냄새마저 잿바람에 뒤덮이며 구역질을 자아내는 현장.

제 오라비의 방에만 가면 숱하게 맡았던 냄새였건만, 그 냄새가 지금 이 순간만은 유난히도 슬프고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그런 장소였다.

그리고 이미 일이 벌어진 만큼, 앞으로 이런 광경이 제국 전체에 퍼져나가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래, 결국에는 일어났을 일이야.'

억압받은 이들은 더욱이 늘어나고, 그럼에도 이 제국은 그 체제를 바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리고 그것을 크게 앞당긴 건 지금 메어리의 손에 쥐어진 십자 모양의 장신구.

그 안에 어린 빛은 결코 자신이 주입한 것이 아니었다.

오롯이 인간만을 중심으로 한 제국의 교리를 부정하는 물체이자, 신앙을 거머쥐지 못한 이들조차도 그 힘을 다룰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도구.

그것은 그 자체로 제국의 근간을 무너트릴 위험이 있었다.

그러니 신자의 입장에선 더없이 가증스러워야 할 물건이겠지만, 그럼에도 메어리는 그것을 내치지 않고 여전히 제 손에 쥐고 있었다.

지금의 혼란에 신앙을 잃어서일까?

아니면 이 장신구에 주입된 신성력이 자신이 동경하는 이의 것이기에?

'메어리. 나 역시 너와 마찬가지다.'

그런 동경심을 빌어 떠올린 것은 자신의 옛 지인이자, 같은 길을 거닐고자 하는 사람.

그 자가 들려준 말이, 지금 이 순간 메어리의 마음속에 너무나도 크게 와닿고 있었다.

'나 역시도 내 소중한 가족이 내 앞에서 목숨을 잃었을 때……. 그럼에도 찾아오지 않는 구원에 내가 섬기는 분을 원망한 적이 있었다.'

어째서 제 가족이 목숨을 잃었는가. 분명 그를 섬기고 있음에도 왜 자신은 이렇게 고통 받아야 하는가.

그러한 아픔 역시, 결국 자신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느끼는 것이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배신을 당할 일도 없는 법…….

그래, 인간이 가진 신앙이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무언가를 바란다는 욕망이야말로,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고결함의 근간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끝없이 시험을 받는 거겠지. 몇 번이고 믿더라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에 절망하고, 그렇게 그를 향한 불신을 가지는 날이 수 없이 찾아오는 거야.'

레온 아슬란.

그런 이름을 가진 사내는, 자신보다도 먼저 그것을 깨달았던 자였다.

지금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에.

어쩌면 지금의 자신이 깨달은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그 시기에 이미 깨달았단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셰인은 그렇게 절망하던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신앙이란 자신이 바라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닌, 당면한 절망을 이겨내기 위한 용기를 가지고자 스스로에게 사명을 부여하는 행위라고.'

그래, 그를 마주했기에.

자신보다도 더한 절망 속에서 그 고결한 이단자를 마주하고, 그에게 이끌려 일어설 수 있었기에.

'우리가 섬기는 분은 결국엔 아무것도 이루어주지 않아. 그걸 인정하는 건 분명 우리가 섬기는 분의 격을 떨어트리는 거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모두를 평등하게 다스리는 분께서 오롯이 나만을 사랑하고 나만을 위해준다는 건, 그거야말로 지나친 욕심일 테니까.'

모두를 평등하게 여기는 이가 어찌 개인에게만 과도한 사랑을 베풀어줄 수 있을까?

그에 실망할 법함에도, 그는 그 깨달음조차도 제 신앙의 기반으로 삼으며 그 마음을 굳게 다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분께선 모두를 위한 존재가 되어줄 수 있는 거겠지.'

어미가 되어주진 못해도 햇볕을 가려주는 그늘이 되고, 도구가 되어줄 순 없어도 지친 몸을 기대고 쉴 수 있는 기둥을 마련해 줄 수 있으니.

손을 뻗지 못해 관망할 뿐인 존재임을 깨달았음에도.

대가 없는 사랑은 그 자체로 용기가 되고, 고독함을 달래주며 앞으로 나아갈 이상을 마련해주니.

"그래, 레온……. 나도 마찬가지야."

그 유대를 회고한 그녀의 손아귀에 다시금 빛이 어려가기 시작하였다.

절망 역시도 결국에는 한때일 뿐.

거듭되는 불신의 끝에 다시금 신뢰를 가진다면, 그 마음은 더욱이 굳세게 다져지는 법이다.

강철을 두드린 끝에 벼려낸 칼날처럼.

그렇게 당면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스스로가 만들어낸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이건."

'그리고 이 세계는 그런 마음이 실체화되는 세계이다.'

그것만이 전부일 뿐이라지만, 그 마음을 빚어 만든 힘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가 무수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저 쓰기 좋은 치료제이기 이전에, 상처 입은 육체를 복원시키기 이전에, 사물의 기록을 잃고, 그 과거를 되새기는 힘이기 이전에……. 아직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미지로 가득차있는 힘.

즉, 빛이란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이며, 메어리의 손에 쥐어진 '한 발의 탄환'은, 그런 미지의 가능성에 기댄 끝에 쥐어진 것이었다.

'그렇군요. 이것이 당신의 뜻…….'

자신이 동경하는 이의 마음이 자신이 가진 마음과 융화되고, 그렇게 뭉쳐진 그릇이 이윽고 빛을 머금은 한 발의 탄환으로 바뀐 순간.

겉으로 보기엔 정말로 보잘것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기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그저 우연히 만들어진 결과물…….

-철컥.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그런 우연에 의미를 부여해 왔다.

기적이라는 의미를.

그렇게 숭배의 대상을 찾고, 그로부터 힘을 얻어온 것이 인간이란 존재다.

그것이 삶이고, 역사이며, 그로부터 개화된 신앙일지니.

하나 그것을 깨달았다는 것만으로 안주해선 안 된다.

자신에게 찾아온 우연을 기적이 아닌 기회로 여기고.

그로부터 결실을 이루어야만, 그 과정을 되새기는 순간에 기적이란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 생기는 것이니까.

"주여……."

그 깨달음은 망설임을 지우고, 이윽고 빛을 품은 총탄이 그녀의 손을 빌어 손에 쥐어진 총에 장전되기에 이르렀다.

그 총구의 끝을 저 창공을 향해 겨누며.

"저 고결한 이에게."

그렇게 무언가 변화할 거란 믿음을 가진 채로 짧은 기도문을 읊는다.

그러지 못할지언정 그럴 기세로.

그럴 각오로 살아가고자, 그렇게 나아가는 것으로.

"그 용기를 복 돋으며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그러한 소망을 품은 총탄이 이윽고 격발되고.

그 섬광은 혼란 속으로 추락하는 성자의 어깨를 꿰뚫어 빛을 퍼트렸다.

그리고…….

* * *

-콰차앙!!

금속의 파괴음이 창공에 울려 퍼지고, 그와 함께 균형이 크게 비틀어진 벨나르의 몸이 밑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뭣!?'

날개의 장치가 망가진 나머지 부유장치가 사라지고 있다.

강대한 힘을 가진 무언가가 적중하여 왼쪽의 날개가 붕괴된 것.

그 여파는 오른쪽의 날개에도 전해져, 이윽고 허공에 떠오른 벨나르의 몸을 그 자리에서 추락시키고 있었다.

'대체, 뭐가…….'

찰나의 시간.

제 날개의 파편이 흩날리는 것을 돌아보던 벨나르가 이전에 벌어졌던 광경을 회고하였다.

그를 처형시키기 위한 준비가 끝났을 무렵, 시계탑에서부터 쏘아진 한 줄기의 섬광이 그의 몸을 꿰뚫었다.

총탄의 궤적이라기엔 너무나도 선명하고 맑은 빛을 가진…….

그 빛이 자신이 아닌 그의 몸을 꿰뚫고, 그로부터 터져나와야 할 피가 빛에 뒤덮여 시야를 가로막았다.

그로부터 무언가 힘이 발휘된 것일까, 직후 그 몸이 회전하며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그를 향해 쇄도했던 모든 공격이 튕겨져 나가 공격은 무산되었다.

'그리고 그 회전의 힘을 빌어 허공에서 투석구를 휘두를 힘을 발휘했다.'

-까드드득!!

상황파악을 마친 벨나르가 마나를 이용해 기계를 조작하여, 내부에 자리한 예비용 날개를 펼쳐내었다.

본래 있던 것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체공 정도는 가능하다.

사용할 수 있는 무기도 그만큼 줄어들지만 무게가 줄어들어 속도 역시 늘릴 수 있다.

뭣보다 공중에 있다는 이점은 변하지 않는 상태.

그래, 분명 그럴 터이건만.

"야. 대머리."

정작 추락했어야 할 그 역시 허공에 몸을 고정시킨 채, 자신과 같은 고도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 어깨에 처박혔던 섬광의 형체를 굳히고…….

더욱이 넓게 펼쳐낸 상태로.

"뭔지는 모르겠는데……. 나 지금 안 떨어지는 거 맞지?"

그를 뒤덮는 무수한 깃털이 펄럭임에 맞춰 흩뿌려지다, 이내 빛의 가루가 되어 그 움직임에 궤적을 그려간다.

덧없이 순수한 빛과. 더없는 따스함을 품고 있는……. 마치 성경 속에 등장하는 주의 사자가 가진 상징과도 같은 물건.

"……왜."

그래, 총탄에 맞았던 어깨에서부터 나타난 것이다.

날개가.

분명히 빛으로 이루어진, 날개라고 부를 물건이.

"어째서, 당신에게…… 그런 일이……?"

그러한 기적을 마주한 순간.

끝내 신앙을 거머쥐지 못한 인간은,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치욕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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