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216화 (216/255)

의무병의 환생 216화

기적을 숭배하는 시대다.

그 빛을 거머쥔 이들이 권력을 쥐고, 그 빛을 존중하는 이들이 밑에 자리함으로써 유지되는 사회.

그러한 나라에선 빛을 거머쥐는 것이야말로 출세로 직결되는 길이라 할 수 있었다.

기적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우매한 민중들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그저 그것밖에 되지 않는 존재였으니…….

하지만 그런 힘이라도 간절했다.

설령 반발을 억누르는 효율적인 수단이 압도적인 힘이 아닌, 실낱같은 희망이라는 걸 알더라도.

모두가 한결같이 그곳으로 나아가며, 시대가 권장하는 정석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란 것이다.

벨나르 벨레로프.

그는 그렇게 나아가는 사람 중 한 명에 불과한 자였다.

그저 출세라는 욕망만으로 빛을 동경한 흔해 빠진 젊은이.

아직은 신앙을 각성하지 못한 채, 교단에서 말하는 수행이란 것만을 일삼았던 자.

그런 그가 신앙을 머금는 그릇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정말로 우연적인 일이었다.

우습지 않은가.

헛된 희망만을 찾다 죽어나감에도,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식의 미련만을 남기고 떠나는 이들이 천지인 세계에 정작….

정작 누군가는 그러한 도구의 힘을 빌려 신앙을 연기하며, 교단 속에 숨어들어 고결함을 연기해 출세의 가도를 거닐 수 있다니.

'끝내 고결할지언정, 그 시작이 욕망에서 기인했다면 저들과 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둘 모두 빛을 거머쥐었다.

다른 점은 마음가짐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결국엔 남들의 시점에선 하등 상관도 없는 것이다.

자신이 품은 빛으로도.

자신의 마음을 빚어 만든 것이 아닌, 그저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거짓말로도 누군가는 구원받을 수 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런 거짓된 구원을 반복하고, 그로부터 진심으로 구원을 받는 이들을 몇 번이고 마주하니……

어느 순간부터 그런 현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역겹게 느껴졌다.

'그런 식으로 유지되는 사회가 정녕 옳은 것인가?'

'왜 신앙을 담는 그릇은 신앙을 연기하는 수단으로만 쓰여야 하는 것인가.'

신앙을 거머쥐지 않은 이들조차도 기적을 행사할 수 있는 세계이건만.

그것이 진실임에도, 이 시대는 그런 물건의 존재조차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가진 이를 불경하고 역겨운 존재로 지정하기에 급급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이 가진 완전성이, 고결함이, 그로부터 세워진 근간이 모두 붕괴될 테니…….

그래, 결국에는 신앙조차도 그 시작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 이 세계는 고결함이란 이름하에, 너무나도 많은 추악함을 묻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의 자신이 하는 건 필연적인 일이다.

언젠가 이 제국에서 벌어졌어야 할 일을, 그저 자신의 손으로 이룬 것에 불과하다 여겼다.

그것이 당연할 터이건만.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건만.

* * *

"뭡, 니까, 그건……."

그런 와중에 자신과 같은.

결코 이 시대에 환영받지 못함에도, 자신과 달리 빛을 거머쥔 이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 날개는 대체……."

그런 자와 거짓으로나마 대등하게 빛을 거머쥐었다.

이제 와서는 자신이 동경하고, 또 그렇기에 원망했던 힘에 대해 주눅이 들 필요가 없었을 터였다.

그랬던 그의 앞에, 자신이 상정했던 기적을 넘어선 무언가를 일으키는 광경을 보았을 때.

"어째서, 왜……."

-까드득.

여전히 하늘에서 내리쬐는 빛을 동경하는 남자의.

그렇기에 천장을 부수고자 제 손으로 만들어낸 날개를 부착한 남자가, 그 노력이.

이 순간 제 앞에 나타난 '고결한 존재'로부터 부정당하는 것이 느껴졌다.

"왜 이제 와서 내 앞에서 그런 걸 보여주는 거야!!!!!"

-콰아아아!!

날개의 밑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마나의 격류.

기계장치를 통해 증폭된 날개가 과열되며, 그 몸이 잔상이 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그 육체가 이윽고 셰인의 몸과 충돌.

세워진 손날을 통해 막아낸 자리엔, 빛을 머금고 있는 검이 버젓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영지를 누비는 테러범들이 신앙을 연기하며 사용한 것과 같다.

신앙을 거머쥐지 못했음에도 신앙을 발휘할 수 있는 도구.

그리고 셰인은 언젠가 그런 물건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그 아이도 이 무기를 썼었지.'

생명검 클라우디아.

비록 세실이 당시 자신과의 결투에서 가지고 왔던 건 본판의 복제품에 불과하지만, 그런 검이라도 보통의 무기와는 이질적인 양상을 띠고 있었다.

무기임에도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신앙을 발산하기까지 하니.

"진짜…. 알면 알수록 이놈의 나라는……."

귀한 검이라 해도 엄연히'복제품'에 해당하는 무기.

그것을 다시 생산할 수단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진상을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쿠당탕!!

하지만 그에 대해 논하는 건 당장이 아닌 훗날로 미뤄야 할 일.

공격에 밀려나 건물의 외벽에 충돌한 셰인이 숨을 다잡으며, 제 측면에 자리한 날개를 힘겨이 돌아보았다.

'그건 그렇고 이건 또 뭐야?'

어느 순간 부유감이 사라졌기에, 그 힘에 의존하여 반격을 가하긴 했었다.

그 후에도 제 몸은 추락하지 않고 여전히 공중에 뜬 상태.

사지처럼 직접 제어하지 않음에도, 제 등에서 펼쳐진 날개는 자체적으로 펄럭이며 셰인의 움직임을 보조하거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주고 있었다.

'날, 지켜주는 건가?'

어떤 원리를 거쳐 생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시계탑에서부터, 메어리가 쏘아낸 무언가가 제 몸에 적중한 후 생겨났다…….

그로 인해 공중에서 활동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겨났다는 것만 알게 되었을 뿐.

"잘못 됐어……."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여기는 남자와 달리.

그를 쳐내었던 남자는 제 머리를 움켜쥐고, 그 두피에 손톱이 박힐 기세로 긁어대며 지금의 현실을 부정하고자 하고 있었다.

"이단이 신성력을 다루는 것도 모자라, 정식 신자들도 행사하지 못하는 기적 같은 걸 다뤄……? 뭐야, 그게…. 그런 걸 일으키면 나는……."

"……여유 있는 척 다 하더니."

"다른 사람들은 대체 뭐가 되는 거냐고!"

"이제 와서 인지부조화가 오고 자빠졌네 이 대머리 새끼가……."

-콰아아!!

다시 한 번 터져 나오는 마나의 격류.

그 출력과 함께 날아든 벨나르가 벽에 처박힌 셰인의 몸을 밀어내고, 이윽고 건물마저 붕괴시키며 그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게 만들었다.

그 손에 쥔 검이 가진 성능은 클라우디아와 같은 것.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전통으로 만든 것과 달리 급조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 힘은 복제품에 준하고 있었다.

한계 이상의 힘을 내어도 신성력으로 무마시키고, 더욱 나아가 추가적인 써클 생성을 통한 한계돌파의 힘.

"왜, 어째서. 이제 와서 그런 걸 내 앞에서 보여주는 거야!!"

그런 힘을 가진 녀석이 이성마저 상실하며 달려드니, 마나로 굳혀진 손날이 아파오는 게 느껴지고 있었다.

비행에 익숙하지 않은 셰인의 입장에선 그 공격을 일방적으로 흘려 넘기기만 할 뿐.

"나는, 잘못되지 않았어……."

차마 반격의 틈이 보이지 않아 서서히 익숙해지길 기다릴 무렵에도, 벨나르는 피를 쏟아낼 기세로 셰인을 향한 오열을 터트리길 반복하고 있었다.

"잘못된 건 이 나라고 이 시대야. 모두가 빛을 거머쥘 수 있는데, 그 수단이 있는 세상에 빛 같은 게 어떻게 올바름의 지표가 되냐고!!!"

-콰강!!

연이은 참격.

그 끝에 일어난 거센 마나의 파장과 함께 밀려난 셰인이 시선을 바로잡으며, 제 앞에 검을 쥔 이의 모습을 응시하였다.

"그런데 이제야,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된 마당에 그런 걸 보여주면……."

안구에 돋아난 핏줄은 혈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피눈물을 만들어버릴 정도.

그 피가 뚝뚝 흘러내려 시야가 붉게 물들어졌건만, 그 관심은 이미 자신의 눈에 새겨진 광명이 어린 날개에만 집중된 상태였다.

"그 날개가……."

칼끝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그릇에, 누군가로부터 갈취한 신앙을 통해 벼려진 칼을 겨누며.

"그 날개가, 내 동료들의 죽음을 더럽히고 있어……."

바스타드, 리퍼, 구스, 라즐리……. 그 외의 모두들.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한결같이 이 나라의 부정을 꾸짖고자 제 목숨과 삶을 걸며 동참했던 이들.

그들이 있었기에 자신이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제 앞을 가로 막는 자가 일으킨 기적이란, 자신이 가는 길 그 자체를 부정하는 거나 다름이 없었으니.

"이제 와서 그런 걸 보여주면, 나와 내 동료들이, 잘못되었다는 듯이….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대체 뭐가……."

"……도망자 새끼가."

하지만 그런 절규에 분노를 감추지 못한 건 셰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벨나르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이미 그가 검을 휘두른 자리에 남은 건 붕대의 끝에 뭉쳐진 마나의 덩어리뿐.

-콰아아앙!!

휘둘러진 마나의 철퇴.

그 파괴적인 일격이 벨나르의 몸을 거세게 밀어내어 공중에 띄우기 무섭게, 하늘 위로 날아오른 셰인의 몸이 크게 회전하였다.

"그런 이유로 이딴 짓을 저지른다고, 이 시대가 정말로 달라질 거라 생각하는 거야?"

그대로 회전하며 내리치는 발차기가 빛이 어린 칼에 적중.

그 힘을 버텨내지 못한 몸이 땅으로 내려앉기 무섭게, 그를 추적하고자 날아든 셰인이 주먹을 틀어쥐며 날개를 펄럭였다.

"아니, 달라지는 게 전부가 아니지. 그 끝에 네가 바라는 세계가 펼쳐지지 않으면……."

"같잖은, 설교 따위 집어 치워!!"

그딴 설교 따위에 들어먹을 거였다면 애초에 이런 일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설교?"

그 일념에 어린 칼이 충돌했지만, 공격은 힘겨루기조차도 되지 못했다.

벨나르의 검은 밀려나고, 그 벌어진 틈에는 어김없이 주먹이 쇄도해왔으니.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설교로 들려?"

-쿠웅!!

충격에 밀려난 벨나르의 육체가 이윽고 불타오르는 도시의 한복판에 추락.

그 충격에 피를 토해내며 버텨내는 가운데, 셰인이 빛이 어린 손아귀에 마나를 끌어 모으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느 순간 사방이 무너져내리고, 옆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어나가고……."

-쿠구궁!!

중첩 3써클의 내리치기.

그 일격에 건물이 산산이 붕괴되고, 가까스로 그 유해를 피해 도망치는 벨나르의 칼에 셰인의 발차기가 내려처박혔다.

"누군가를 겨우 구해냈다 싶으면, 저 멀리에서 수십 명이 떼로 죽어나가는 일이 빈번이 벌어지는 게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도시야."

그에 어린 감정이 여실히 느껴진다.

이성을 상실하며 내지른 분노를 초월한.

자신을 진심으로 어리석다 여기며 내지르는 한탄이.

그 절규가.

"그런 현장을 누비며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마당에!!"

이해를 요구하는 물음조차 허락되지 않고 주먹이 처박힌다.

"겨우 살아남은 놈들끼리 모여서 용기나 희망 같은 걸 가져보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 옆에 있는 동료의 머리통은 박살나있고, 무턱대고 복수를 하려고 칼을 휘두르면 울상을 지으며 목숨구걸을 하는 적군이 보이지!"

-콰가강! 콰앙!!

"그런 놈들도 나 살자고 죽여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턴 내가 뭘 위해 이런 짓을 벌였는지도 모르게 되는 거야. 처음엔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이 전장에 발을 들인 것 같지만 모두가 한결 같게도……."

-콰앙! 투콰아앙!!

연이은 난격.

그 이상으로 뼈를 찌르고 들어오는 함성, 더 없는 절망이 어린 경험담의 연속.

무의식적으로 그에 휘둘려 부유하던 벨나르의 몸이, 이윽고 창공으로 높이 튕겨져 나갔다.

"그때쯤 되면 정말 아무것도 상관없어져서 하늘만을 올려다보는 거라고."

그 고개만이 위로 올려진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전쟁이 벌어지기 전과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저 하늘만 멍청하게……."

어째서일까.

왜 지금 이 순간, 자신은 어린 청년의 말에 별다른 반박 하나 내뱉지 못하는 것일까?

그저 그의 말에 설득되어서?

아니, 그런 게 아니다. 애초에 상대는 자신을 이 순간에도 죽일 기회를 모색하고 있었다.

제 몸을 휘어 감싸는 피묻은 붕대의 힘이 그것을 증명한다.

지금의 말은 그저 시간 끌기다. 그걸 본능적으로 이해했음에도, 벨나르는 차마 그를 향해 바로 손을 뻗질 못하였다.

"네가 저지르려고 했던 게 그런 거다."

그가 하는 말이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그런 현실감이 마치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처럼 보였기에.

"무, 슨……."

힘겨이 몸을 바로잡은 벨나르가, 자신과 같은 고도에서 대치하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자신처럼 온 몸이 엉망진창이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이 전란의 현장이 만들어내는 광기에 침식되지 않고, 더 없이 인간적인 눈빛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고 있는 남자가.

"그런 결과 위에 세워진 나라가 바로 이 제국이라는 걸, 대체 왜 모르는 거냐고……."

그래. 이미 그는 이 전란의 시작을 겪으며 그 끝을 짐작하고 있었다.

이 순간을 회고한 누군가가 작성한 기록물조차도, 이 순간을 겪지 않은 이들에겐 망상의 나래를 펼치기 좋은 소재에 불과할 뿐이다.

누군가는 그러한 환상을 보며 전쟁이야말로 조화롭고, 아름다우며, 숭고한 일이라 말하겠지만 실상은…….

실상은 그저 모두가 한결같이 개처럼 죽어나갈 뿐인 장소다.

시작만은 숭고했을지언정, 그것이 길게 이어진다면 아무도 제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처참한 장소.

그렇기에 아무런 인과와 원리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끝내 추상적인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재해가 바로 전쟁이란 것이다.

"모든 걸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든다고, 그게 더 나은 세계가 될 거라고 생각하냐?"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건, 우울증에 걸린 이들이 자살을 기도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죽고 난 후의 세계가 적어도 이승보다는 나을 거라고…….

그래, 제 앞에 있는 남자가 하는 짓거리는 그와 똑같은 것이다.

동료의 비참한 죽음으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설령 이곳에서 살아나간다 해도 하늘만을 허망히 올려다보며.

그렇게 손에 거머쥘 수 없는 빛에 대한 동경만을 구원으로.

그것만이 전부라 여기며 결속을 굳힐 것이 예정된 말로란 말이다.

"너희들은 그저 도망자 새끼들이야."

"……입 다물어."

"지금 자기가 있는 곳이 잘못되었다는 생각 하나에 보이는 걸 다 때려 부수고……."

"네가, 뭘 안다고……."

"그 끝에 펼쳐진 게 지옥길이란 것 하나 못 알아 처먹는 놈들이 널 따르다 죽었던 놈들이라고. 그런 놈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도 아직도 이딴 짓을 벌일 생각이 들어!?"

"모든 걸 가진 네가……."

"정신차리고 이제 좀 깨달아 이 병신아! 너희들이 도망치려드는 장소에 낙원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는 걸!!"

"우리들의 숭고한 혁명을 그따위로 폄하하지 마!!!"

원성의 충돌.

그 세기가 더욱이 커짐을 증명하듯, 제 손에 쥔 검의 광명이 더욱 짙어지는 게 느껴졌다.

신앙이 없을 뿐이지, 그 마음만큼은 진실 된 것이다.

진심으로 억울하고.

자신뿐 아니라 모두를 피해자라고 여기니.

그를 넘어 이 시대 자체가 잘못되었다 여기기에 전쟁이란 수단을 택한, 그런 자신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광적인 믿음이 제 손을 타고 전해져오고 있다.

그런 처절한 절규에서부터, 셰인은 자신이 느낀 외로움이 가증되는 것을 느꼈다.

"……미안하다."

그래, 아무리 설명해도 들어줄 리가 없었다.

아직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자들에게 있어, 경험담의 충고란 그저 듣기 괴로운 것에 불과할 뿐이니.

"진심으로……. 널 이해시키지 못한 거 딱 하나만은."

그로부터 밀려드는 미약한 죄책감이 손끝에 망설임을 만들다, 그 밑에 펼쳐진 도시가 셰인의 눈에 들어왔다.

이 광활한 도시에 펼쳐진 살육의 현장.

그로부터 이 시대의 미래를 읽어낸 셰인이, 제 팔에 손가락을 찔러 넣어 써클을 중첩시켜 갔다.

중첩 3써클.

그를 넘어 4개의 써클을 걸어.

-콰아아!!

그로부터 퍼져 나오는 격류가 피부를 찢기 무섭게, 그 등에 어린 날개에서부터 퍼진 빛이 더욱이 강렬해지기 시작하였다.

그 빛의 따스함을 느낀 셰인이, 이내 두 개의 손가락으로 만든 칼날을 위로 치켜세웠다.

'중첩 4써클-집도(執刀).'

그 이상만은 하늘에 도달할 기세로.

허나 그 칼날은 제 숙명을 잃지 않은 채, 하늘이 아닌 제 앞의 대상을 향해 휘둘러진다.

-쩌어엉!!

그로부터 비롯된 한 줄기의 섬광이 이윽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날을 그대로 도려내고, 이윽고 육체마저 도려낸다.

하지만 그 칼날에 의한 유혈은 전무한 상태.

밀려드는 고통조차도 찰나에 불과하며, 정신을 아찔하게 만드는 위기감도 잠시로 그칠 뿐이다.

그 육체는 이미 베어졌음에도, 그 손끝에 어린 빛에 의해 수복되어 버린 상태였으니.

-쩌저정!!

그래, 베어진 것은 육체를 제외한 모든 것.

칼도, 어긋난 동경의 상징인 날개조차 무너져 내린 순간.

이윽고 그 육체는 맥없이 땅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하였다.

'안, 돼…….'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런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그저 혁명뿐이었으니, 그걸 이루는 것만이 그의 소망의 전부였으니.

'저항을…….'

그 의지만을 표명하고자 추락하는 와중에도, 허공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를 노려보았다.

그 손끝에 어린 떨림으로, 그 발버둥으로나마 제 의사가 전해지길 바라기에.

'해야, 하는데, 왜…….'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 가지 못하고, 그 손끝의 떨림은 완전히 잦아들고 말았다.

부질없는 저항임을 알아서가 아니다.

그의 배후에 자리해 있는 존재가.

이제까지의 겨룸에서, 그를 대신하여 등에서 돋아난 날개를 움직였던 '누군가'의 얼굴이…….

'왜, 당신은…….'

그래, 날개가 달린 것이 아니다.

그의 등에서부터 나타난 무언가가 그 몸을 끌어안고, 그의 의지에 맞추어 날개를 펼쳐 움직였을 뿐.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 머릿결, 그와 같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 오롯이 붉게 뜨여진 눈동자만을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자신의 앞에서 떨어지고 있는 이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면서.

'믿음을 거머쥐지 못한 저조차도, 그런 얼굴로 쳐다볼 수 있는 겁니까……?'

하늘에서 내려온 사자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순간.

비록 그런 형상에 불과할지언정 아주 잠깐은.

그 신비한 존재를 마주한 순간 증오에 잠재웠던 동경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한 마음이 손의 떨림을 빛으로 대체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삶은 더럽혀졌을지언정, 그 끝만은 마냥 비참하지 않도록.

-쿠웅.

그렇게 고문으로 이어지지 못한 작은 희망만이 이 순간.

한 반란자가 맞이하는 최후를 조용히 달래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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