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218화
슈베르트 블러드메리.
메어리의 오라비이자 에버그린의 남편이 된 자.
다행히도 이전의 전란에선 목숨을 부지한 듯하였지만, 정작 그가 속해있는 길드의 건물은 모두 붕괴되어 있는 상태였다.
유일하게 그를 챙겨주는 아이작조차 사망한 가주를 대신해야 하는 상황.
사실상 이 도시에 지인 한 명 없이 홀로 버려졌다 할 수 있지만, 그런 상황에 그가 발을 들이길 희망한 곳은 임시대피소가 아닌 자신이 머무르고 있던 화실이었다.
무너졌더라도 자신의 방에 익숙함을 느껴서일까?
삭막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로 캔버스에 붓을 가져가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슈벨 씨."
그리고 당연한 거지만 그의 이름을 불러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특유의 집중능력이 발휘되었으니 당연할까?
억지로 깨우기보단 일단 기다려보자, 생각한 셰인이 근처의 의자를 끌어오려고 하는 것도 잠시.
문득 셰인의 시선이 그 옆에 기대어져 있는 캔버스 쪽으로 자연스레 향해졌다.
폭발에 불태워진 채 쓰러진 목탄화들과 달리, 그나마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그림으로.
'……최근에 그려진 건가?'
아마도.
아니, 확실하게 전란 이후에 그려진 그림이리라.
셰인이 의자에서 손을 거두고 그 그림을 훑어보았다.
깨진 창문과 무너진 외벽.
건물을 상징하는 간판의 글자는 쪼개져 흩어지고, 도시를 꾸미고자 세워둔 가로수와 그림들은 무참히 무너져 내려 있다.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검은 자국은 혈흔일까? 셰인에겐 여러모로 눈에 익을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그저 이곳까지 오는 길엔 굳이 신경 쓰지 않고자 했을 뿐.
"……."
그때가 돼서야 셰인의 시선이 이윽고 주변으로 향해졌다.
무너진 화실 곳곳에 드문드문 세워져 있는 캔버스.
그 모든 것이 처음 감상했던 그림과 마찬가지로 그가 직접 발을 들이고, 지나쳐온 곳들을 그려낸 풍경화였다.
그러한 그림이 이 주변을 가득 메우니 묘한 느낌이 덮쳐왔다.
처참함에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
마치 전쟁터의 한복판에 던져지기라도 한 듯.
"셰인 씨?"
그 감각에 휩싸일 무렵 들려온 목소리에, 셰인이 '웃' 하는 신음을 내며 몸을 주춤거렸다.
목발을 쥐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이.
-쿠당탕!
그렇게 나자빠진 셰인을 보며 화들짝 놀라는 슈벨이, 다급히 그를 향해 다가서며 손을 뻗어왔다.
"조, 죄송해요. 그……. 너, 너무 오랫동안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기에 그만."
"……아뇨, 정신을 놓은 제가 잘못한 거죠."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지금 상황이 실전이었다면 바로 목이 날아갔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테니.
'주의해야지.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마당에…….'
이전의 전란도 자신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할 때에 벌어지지 않았던가?
경계심을 곤두세우고 몸을 일으켜 세우자, 슈벨이 그 모습을 쳐다보며 조심스레 되물었다.
"그, 다치신 건가요?"
"별로 심각한 건 아닙니다. 1주일 정도 더 쉬면 나을 거예요."
적응단계라 해도 신성력에 의한 회복은 지금도 꾸준히 이루어지는 상태.
그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말하니, 슈벨이 이내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셰인에게서 관심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그 관심이 향해진 곳은 이전까지 셰인이 감상하고 있던 그림.
"혹시……. 이상하다 생각하시나요?"
그 그림을 본 순간 막연한 불안이 덮쳐온 듯, 슈벨의 얼굴색이 차차 어두워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상하다니, 어느 쪽을 말하는 것일까?
그림 자체?
아니면 며칠 동안 그림만 그리느라 밥도 안 먹고 그림을 그리는 자신이?
"이상한 게 당연하다 생각해요. 아직 색을 다루는 게 익숙하지 않은 상태라……."
아, 그림 쪽이었군.
셰인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얘기했다.
"그런 생각은 전혀 안 들어요. 비록 예술엔 조예가 없지만……. 제 입장에선 충분히 잘 쓰시고 있다 생각합니다."
풍경의 표현이야 목탄화로도 경이적인 수준이었지만, 거기에 물감을 이용한 색이 더해지니 생동감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가 색을 다룬다면 분명 멋진 그림이 나올 거라는, 아이작이 누누이 강조했던 확신은 결코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분명 그럴 터이거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정작 슈벨은 그런 칭찬을 만족스럽게 여기지 못한 듯 씁쓸히 되물어볼 뿐.
그에 의문을 느꼈지만, 슈벨은 이미 등을 돌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 상태였다.
자신이 오기 전부터 줄곧 그렸던 그림을 마저 그리고자.
"줄곧, 상상해 왔어요."
팔레트에 붓을 가져가며 물감을 발라내는 슈벨.
물감을 적실 때만큼은 수전증이 일어났지만, 그것이 캔버스로 향할 때만은 정자세로 곧게 굳어져 있었다.
셰인이 그 광경을 응시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상상해 왔다니, 무얼……."
"색을 다룬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요."
제 물음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그저 그림에 집중하는 중의 혼잣말에 불과할 뿐.
입을 여는 중에도 멈추지 않는 손짓이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네, 예전에는 그랬죠. 모든 사람들이 저와 같은 세상을 본다고 생각했으니까."
천성적으로 전색맹과 자폐증을 앓고 태어난 몸.
그런 불우한 소년이 화가를 지향한 이유는 제 재능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남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어서란 사소한 이유였다.
"제가 보는 것이 남들과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아는 건 그리 길지 않았어요. 남들은 구분 지을 수 있는 색이, 저의 눈에는 그저 똑같이 보일 뿐이었으니까."
그래, 그림을 그린 계기란 정말로 사소한 것이었다.
그 끝에 색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남들이 바라보는 세상의 일부를 돌연히 공유하게 되었을 때 그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기쁘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하겠지.
그 이전에 평생 그림을 그려온 자로써, 그 색을 쓴 그림을 어떻게 만들어갈지를 상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색을 다루게 된 모습이 마냥 기뻐 보이지 않는 이유는 하나.
"하지만, 정작 색을 써서 그린 그림들은 예전과 다를 게 없네요."
말없이.
그렇게 이어지는 씁쓸한 말에, 셰인의 관심이 다시금 주변으로 향해지게 되었다.
사방에 자리한 회색빛의 도시.
사람은 물론 도시를 장식하는 다채로운 예술품마저 화마에 휩쓸려, 이내 잿더미만이 남게 된 장소…….
그 모든 것이 색을 일깨운 후 색을 알게 된 슈벨이 처음으로 마주한 세상이었다.
예술가를 지향함에도, 그는 색이라는 것이 마냥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먼저 깨달은 것이다.
"……지금은 무엇을 그리고 계신 건가요?"
그런 그림들을 수없이 그려온 자가 지금에 와선 무엇을 그리려는 것인가.
그 물음에도 슈벨은 아무런 대답 없이, 제 손에 쥔 팔레트를 마저 들어 올리며 붓을 휘저을 뿐이었다.
다시금 스스로의 세상에 가두어진 채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
그 모습을 응시하던 셰인이, 뒤늦게 주변에 널브러진 의자를 끌어와 그가 그리는 모습을 감상하였다.
전체적으로는 하늘색으로 덧칠해진 캔버스.
그 위에 찍히는 붓을 물들인 하얀 물감이, 그의 손짓에 맞춰 선을 그어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점으로 이루어진 선을.
'제국 예술계에선 꽤나 자주 쓰이는 기법, 이었지.'
하나하나 점을 찍어가며 그림을 표현하는 기법인 점묘화.
제국에선 물감을 섞는 작품을 불경하게 여기지만, 인간의 시력은 집중하지 않는 한 사물의 색을 뭉쳐 인지하게 된다.
점묘화는 그런 특성을 살려 '언뜻 보았을 때' 서로 다른 색을 섞은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기법.
슈벨은 그러한 기법을 그저 색의 조합 정도가 아닌, 빛의 세기와 잔상을 표현하는 데에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제가 본 건 아니에요."
그 터무니없는 집중능력에 감탄마저 느껴지는 가운데, 그림은 어느덧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얼마 전에……. 대피소에서 만났던 누군가가 얘기했던 걸 전해들은 걸 그렸을 뿐이죠."
하늘에서 천사가 나타나, 그곳을 함께 비상하던 악마를 쓰러트렸다고.
그 이야기를 회고한 슈벨이 붓을 내려놓고, 이내 완성된 그림을 조용히 응시하였다.
빛을 품고 있는 날개와 그에 둘러싸여 있는 한 인간의 모습.
그로부터 비롯된 희미한 금빛이 날카로운 잔상이 되어, 회색의 날개를 가지고 있는 존재를 베어 넘겨 추락시키고 있었다.
이제까지 그려온 풍경화와는 심히 이질적인, 흔히 종교화라고 부를 만한 신비한 느낌에 초점을 둔 작품.
슈벨이 이제까지 그려본 적이 없는 계열의 그림이었다.
"잘 모르겠네요. 이게 잘 그려진 건지. 이제까진 제 눈으로 보아온 것들만 그려왔으니까요. 이런 식으로, 남의 얘기를 상상해가며 그린 적은 없어서……."
이제까지와 같은 점이라 한다면 역시 흑과 백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일까?
그런 아쉬움이 유일한 감상자를 향한 불안으로 다가올 무렵, 문득 슈벨의 관심이 뒤늦게 그 감상자에게로 향해졌다.
"……셰인 씨?"
자리에 앉은 채, 자신이 그린 그림을 응시하는 남자의 모습.
하지만 그림을 감상한다기엔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저 그 자리에 멍하니 앉은 채로, 숨마저 죽인 채 그림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으니.
"셰인 씨, 왜……."
-두근.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조차 심장의 박동음에 삼켜지고.
-두근, 두근.
이내 그런 소리의 반복만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좀 더 빠르게.
그리고 강하게.
그로부터 비롯된 혈류의 가속이 체온을 높여 이마에 식은땀을 맺히게 만들고, 호흡이 가빠짐과 동시에 현기증이 몰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 감각에 눈을 질끈 감았음에도, 제 앞에 펼쳐진 광경은 지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삐이이이.
귓가에 감도는 이명만이 어그러진 세상을 가득 채워간다.
아마도 그 이전까진 비명과 폭음이 전부였겠지.
분명 그랬으리라고…….
어둠 속에서 아른거리는 폐허와 시체들이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비명이…….'
정신을 놓은 순간 무언가 터져나올 듯하지만, 그런 절규 한 마디 내지르는 것이 이곳에서는 허락되질 않고 있었다.
제 앞에 있는 자가 적인지 아군인지.
자신에게 해를 가져올지, 혹은 머지않아 죽어나갈지도 모르는 곳이었기에…….
그렇기에 그저 입을 굳게 다문 채로, 이 상황이 끝나기만을 바라고 갈망하며 조용히 떠돌아다니기만 할 뿐.
그러한 과정 속에서 자아마저 잃어가고, 사방에 널브러진 시체로부터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게 된다.
생존에 대한 본능조차도 고통에 삼켜지고, 이윽고 광기에 침식된 정신은 제 살을 물어뜯는 행위의 망설임마저 지워가기에 이르니…….
'하지만 그런 혼란스러운 순간에 제 눈을 사로잡을 정도의 광명을 마주한다면.'
그 빛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너져 어그러진 주변과 달리 그저 순수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제 앞에 나타난 것이다.
마주한 것만으로도 마음의 술렁임은 가라앉고, 그 편안함에 자연스레 이끌려 발걸음을 옮기니…….
어느 샌가 그러한 빛에 이끌린 이들이 주변을 가득 채운 것을, 그 모두가 한마음이 되는 것을 자각한 순간 스스로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렇게 혼란이 잦아든 순간 모두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해 줄 존재가 찾아왔다고.'
'설령 그러지 않을지언정, 그렇게 믿는 것을 통해 이 고통과 절망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걸.'
하지만 어째서인가.
그저 그림일 뿐인데…….
무너진 거리를 표현한 그림의 끝에, 그저 하늘을 비상하는 천사의 그림을 보았을 뿐임에도.
그것만으로 이 공작령에서 벌어진 내란의 절망과, 그 끝에 찾아온 구원의 순간이 재현되는 것만 같았다.
심층부에서 빛을 품은 나무를 마주했을 때가 그렇듯.
그 이전에 섬을 떠났을 무렵 하늘과 땅을 뒤덮은 빛을 마주했을 때가 그렇듯.
'그리고, 스승님을 만났을 때에도…….'
가혹한 전장 속에서도 누군가를 살려내는 자의 손짓이.
그로부터 구제받은 이들의 모습이 차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기에, 그 길을 향해 자연스럽게 나아가게 되었다.
당시에만 해도 그것이 구원이자, 이 땅에서 자신의 마음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겼었다.
'그랬던 내가 왜.'
뚝뚝.
볼을 타고 떨어져 내리는 투명한 물방울이, 이윽고 그의 밑에 펼쳐진 손아귀를 적셔가기 시작하였다.
'이제 와서, 이런…….'
아무리 상처가 아물어도, 하얀 붕대를 두껍게 묶더라도, 그 밑에 물들였던 피는 사라지지 않는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분명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제 소신을 꺾는 선택을 해가면서까지 해야 할 정도로, 이 시대는 너무나도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으니까.
"셰, 셰인 씨, 왜……."
"슈벨 씨."
하지만 그러한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다고.
그런 세상을 살아갈 각오가 되어있따 해도, 그럼에도 그런 세상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정녕 잘못된 일일까?
"딱, 한 가지…… 당신에게 부탁을 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희망 정도는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잔혹하고 가혹한 세계라 할지라도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은.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에 대한 열망의 자유마저 앗아갈 정도로, 신이란 비정한 존재가 아니다.
그것이 전란의 끝에 이루어진 깨달음.
혹은 언젠가, 언제나 제 마음속에 새기고 쌓아온 세계의 진리.
"부디, 한 장만……."
그렇게 도달해낸 결론이, 이윽고 자신이 찾아낸 가능성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절박한 심정을 토로한다.
그 어떤 논쟁도, 폭력도 없이.
이 시대에 범람할 광기와 폭동을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을 갈망하며.
"제가 바라는 그림을 한 장…… 그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란, 정녕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한 장의 그림만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인지.'
오직 그것만이 이 순간…….
두 시대를 경험하고, 그릇된 역사의 반복을 막고자 하는 자가 찾아낸 유일한 희망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
하지만 아인츠바이 공작령의 습격사태 후 1년이 지났을 무렵.
그 사건을 시작으로 제국 내의 반란세력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그들의 선동에 이끌린 민중은 반란군을 지지하며 제국을 향한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시작된 사건을 훗날의 역사엔 이렇게 기록한다.
'테라스 내전.'
반란세력의 선동에 의한 민중의 폭동과 일부 지도층의 반란으로부터 시작된 제국 초유의 사태.
이로 인해 핵심지도층은 붕괴되고, 200년간 통일되어온 제국은 분단됨으로써 평화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카일 페터슨.
그런 이름을 가진 남자의 기억을 이어받은 청년이 22세가 되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작가 후기.]
다음 10편은 테라스 내전에 대해 다룬 외전 에피소드입니다.
외전의 경우 이제까지의 내용을 돌아보고 내용을 회수하자는 취지에서 계획한 것으로, 주인공이 아닌 이제껏 등장해온 조연들을 위주로 전개가 될 예정입니다.
사실상 250~260화 즈음으로 예정에둔 2부 완결을 위한 밑준비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모쪼록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