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224화
[외전-테라스 내전(6)]
'밀항자의 색출, 말입니까?'
그것이 사교회의 출석 명령에 블레이즈를 벗어나기 전, 사샤가 자신의 부관인 존에게 내렸던 지시였다.
'자네도 알다시피 이스타섬의 원정 이후 해로의 개척이 수월해져 그 일대의 감시가 용이해졌지. 하지만 근래에 들어온 보고를 확인해 본 바, 수상한 세력이 해로를 통해 벽외와 제국을 오간다는 소식이 자주 들려오고 있더군.'
밀항과 밀수입.
감시가 뜸한 바다이니 어느 정도는 염두에 두었지만, 그 규모가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는 게 문제다.
어째서 그들이 가진 기술력이 날이 갈수록 크게 발전하고, 또 반란군들이 그걸 양산의 단계에까지 진보시킬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순간.
하지만 가장 심각하게 여겨지는 건, 결코 제국에서 환영받아선 안 될 '인종'까지도 밀입국을 시도했다는 점이었다.
필요하다면 식인까지도 일삼는 야만족들까지도…….
사실상 위험한 수배자들을 목줄도 없이 제국에 풀어놓는 꼴이 아닌가?
'황실에 보고를 올린다면 여러모로 말이 많아지겠네요.'
'그래, 그러니 우리가 책임지고 잡으러 가야지.'
그리 말한 사샤가 존에게 말의 문양이 그려진 금색의 패를 내어주었다.
로열나이츠의 권한.
황실에서만 하사할 수 있다 알려진 권한은 블레이즈의 사령관 역시 보유하고 있으며, 유사시에 영지 밖으로 노출된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 권한을 부하에게 양도할 수 있는 권리 역시 갖춘 상태였다.
'그걸 이용한다면 한 소대 정도는 바깥으로 부대를 보내는 것도 가능해지겠지.'
'……그걸 어찌 활용할지를 저에게 맡기겠다는 겁니까?'
단 한 명만 운용할 수 있지만, 블레이즈에 자리한 기술과 병력을 타지에서 '합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 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참모인 그의 입장에선, 이 권한을 사용하는 것이 석연찮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로열나이츠의 권한이 강력하다곤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면죄부에서 나오는 것.
자칫 오판으로 일을 그르칠 경우, 일이 완료되었을 때에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이 제 숨통을 옥죌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그가 그 권한을 받아들인 이유는 하나.
'자네가 맡지 않는다면 일라이에게 맡길 수밖에.'
'제가 하겠습니다.'
까라면 까야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당시 사령관이 제시한 선택지엔 자비 따윈 엿보이지 않고 있었다.
* * *
그래, 분명 그런 이유로.
일단 명분상으론 밀입국한 야만족들이 반란군과 내통했다는 사실을 알고, 현 제국군에게 그에 필요한 지원을 요청하고자 제국군의 최전선으로 향했던 것이었다.
그걸 위해 열차에서 먼저 벗어나, 그 책임자와 마주할 선발대를 조작한 것이었건만…….
"아아악! 이 빌어먹을 녀석이……!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이런 취급을 하는 것이냐!!"
저택의 집무실에 울려 퍼지는 시끄러운 비명소리.
아레이스타 자작령의 주인이 된 자는, 현재 제 집무실에서 포박된 채로 날뛰기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빈대로 존은 의자에 앉은 채로 포박된 그를 무뚝뚝한 눈으로 응시할 뿐.
그와 함께 영지에 찾아온 선발대의 병사들은, 그 배후에서 아레이스타의 기사들을 붙잡은 채로 상황을 긴장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러한 구도가 펼쳐진 이유는 실로 간단하다.
협력을 요청해야 하는 지도자의 꼬락서니가, 이제껏 전장에 몸을 담아온 장교의 눈으로 보기엔 너무나도 처참하기 그지없었기에.
"이봐요, 자작님."
존이 그 분노를 최대한 감추듯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당신도 일단은 영주고, 군을 지도하는 책임자 맞으시죠?"
"그, 그래. 내가 바로 이 땅의 주인이다. 엄연히 폐하께서 군을 이끌라 지시를 내린 제국군의 장교란 말이다!"
그걸 당당하게 주장하는 자가 제 앞에서 벌인 게 무슨 일이었는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 부상 하나 돌보지 못한 채 벌벌 떨며 울고 있는 농민들을, 탈영병이랍시고 구덩이에 밀어 넣어 처형하려는 광경이었다.
과도한 징수에 징병으로도 모자라, 그것을 보고도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하고 본보기랍시고 아군을 죽여 대는…….
이단의 땅에서조차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개짓거리들.
"그런데 감히 멋대로 이 땅에 쳐들어온 것도 모자라, 영주인 나를 이렇게 무릎을 꿇려놔!? 이. 귀족도 아닌……. 변방 깡촌의 하찮은 버러지 주제에!?"
그럼에도 자작은 제 잘못을 인지하지 못한 듯, 자신을 포박해 쓰러트린 존을 죽일 듯 쏘아보고 있었다.
그의 입장에선 적들이 쳐들어오는 마당에 영지를 휘젓는 것도 모자라, 그대로 지휘부를 함락시키는 위험을 벌인 것이었으니까.
"로열나이츠의 자격이 있다고 해서 이런 일을 저질러도 되는 줄 아느냐!? 지금의 이건 엄연히 쿠데타다!! 이 일이 알려진다면 너를 포함한 블레이즈의 모든 것이 지워질……."
"쿠데타는 얼어 죽을."
-쿠당탕!
앉아 있던 의자마저 대차게 내동댕이치는 존.
그 매몰찬 폭력에 모두가 식겁함을 느끼는 가운데, 존이 특유의 협소한 눈마저 벌려 뜨며 그를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제대로 된 무기 하나 안 쥐어 놓고 돌진명령을 내리고, 전선이 밀리는 걸 보고도 후퇴는커녕, 나가 죽으라는 명령만 하다 지 목숨만 겨우 살리고 여기까지 돌아와서 화풀이나 해댄 녀석이 뭐? 쿠데타?"
수백, 수백, 수천…….
어쩌면 수만에서 수십만이나 되는 목숨이, 말 한 마디에 결정되는 것이 작전이란 것이다.
그 작전에 의해 많은 피해가 발생했을 때, 그에 따른 성과를 내지 못하는 건 그 자체로 자신을 믿고 따라준 이들의 신뢰를 쓰레기통에 처박는 것과 다름없는 짓거리.
하지만 상대는 그런 자각도 없이, 그저 제 알량한 자부심과 공훈에 눈이 멀어 애꿎은 병사들을 사지로 보내고 있었다.
"그,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그래, 애초에 병사의 목숨과 그 존엄 따윈 아무래도 좋다 생각하는 것처럼.
"나, 나는 태생부터가 타고난 존귀한 몸이다! 그런 너희들이 내 말에 복종하고, 더욱 나아가 목숨을 거는 건 그 자체로 영광이라 여길 일인 것을……!!"
그 특별함이라는 것이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의 아버지가, 그의 조부가, 더욱 나아가 선조가 일구어둔 것을 그대로 물려받아 손에 넣은 것이거늘.
그렇게 일구어둔 재산이 전부 날아갈 위기라는 것도 알지 못하고, 아득바득 비명을 지르는 무책임하고 무식한 모습에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정녕 잘못된 일이란 말인가?
"하, 이거 참."
계속 보고 있자니 이내 실소가 터져 나오고, 그를 기점으로 머리가 차게 식은 나머지 흥분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래, 애초에 정치가도 아닌 자신이 제대로 된 설득을 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겠지.
"좋아. 당신이 그렇게나 떳떳하다면 마지막으로 한 번만 기회를 줄게."
그러니 이곳에선 자신의 방식으로. 블레이즈에서 하듯이 처리하도록 하자.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지 못하는 아레이스타 자작이 숨을 죽이며, 존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뭐, 뭘 하려고……."
"그냥, 간단한 문제 하나만 맞추면 되는 거야. 아주아주 간단한 문제 하나."
특유의 군모로 제 시선을 감추는 존.
그가 그러한 상태로 아레이스타 백작에게 질문을 건네었다.
"전쟁 중에 최후방에 자리한 장교들이 사망하는 경우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그래, 정말로 쉬운 물음이다.
어째서 장교가 부하를 소홀히 다뤄선 안 되는지에 대한, 정말로 상식선에 해당하는 질문.
"그거야 군이 전멸했을 때……."
-서걱!!
답이 끝나기도 전 거세게 휘둘러지는 칼.
그와 함께 자작의 시야가 크게 비틀어지며, 시야에 보이는 모든 광경이 역전되었다.
그 직후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기 전.
"하극상이다 이 멍청아."
그 마지막 속삭임을 끝으로 머리가 땅을 구르고, 피를 쏟아낸 몸이 집무실의 바닥을 무참히 더럽혀갔다.
그를 응시하던 무덤덤한 시선을 돌린 존이, 제 관심을 옆에서 몸을 고꾸라트린 채 흐느끼는 이에게로 향했다.
"블레이즈의 장군이어……."
칼을 휘두른 건 제 휘하의 병사가 아닌, 그들에게 제압당해있던 자작 휘하의 기사 중 한 명.
일부로 무장을 빼앗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았건만, 정작 그가 칼을 휘두른 곳은 제 주군이 아닌 존이 있는 곳이었다.
"제가 지금, 무엇을 저질렀는지 똑똑히 보셨습니까?"
"……네, 봤습니다."
"이제껏 충성을 맹세해온 분을 상대로 칼을 겨누었습니다. 그건……. 그건 기사로선 결코 해선 안 될 일입니다."
"보답 받지 못하는 신뢰만큼 비참한 건 없는 법이죠. 그 분노는 타당한 것입니다."
패전을 거듭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무능함을 질책하는 민중을 상대로, 반동이나 탈영 등의 이유를 들며 화풀이를 벌였던 몰상식한 작자다.
설령 그런 쓰레기라도 주군이라면 결코 배신해선 안 된다 배웠겠지만, 그런 기사도 또한 결국엔 기본이 갖춰져 있을 때에나 맹신해야 하는 법.
정석을 진리라 여기고, 그에 따르는 문제를 무시하는 건 자신의 책임과 자아를 내버리는 몰상식한 짓거리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런 사실을 망각한 집단의 패망은 언제나 예견된 일이겠지.'
깊게 한숨을 내쉬며 집무실을 벗어나는 존.
이후 저택을 빠져나와 영지를 돌아보니, 벽을 쌓아올려 방어선을 중축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성벽의 안쪽에 자리한 영지민과 피난민, 그리고 다른 전장에서 패배하고 이곳에 합류한 패잔병들…….
자작령에서 수용하기엔 터무니없이 많은 인원이지만, 이곳이 현 전선 중 최전방에 해당하는 곳임을 생각하면 그마저도 적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건……. 자신들을 이끌어줄 수 있는 제대로 된 지도자일 거다.'
그 점을 자각한 존이 사령관이 맡겼던 금패를 꺼내 내려다보았다.
임시로 부여받은 로열나이츠의 자격.
이 권한을 이용하면 귀족들조차 무릎 꿇리는 막강한 권한을 발휘할 수 있으며, 지금의 하극상도 명분이 있다면 면죄부를 발급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쓰레기라 해도 현 전선의 최고 책임자……. 용서받고자 한다면 최소한 이 전선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겠지.'
그것을 자각한 것만으로 막중한 책임감이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그런 무거움을 느끼기 싫어 사령관의 후계자 자리도 매번 거절한 것이었건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나 출세에 소극적인 자신조차 감정적으로 나올 정도로, 이 제국은 너무나도 많은 부분이 뒤틀려 있는 상태였다.
"존."
그런 상황에 막막함을 느끼는 가운데 들려오는 목소리.
배후로 시선을 돌리자, 시종복을 입은 동년배의 여인이 존의 눈에 들어왔다.
일라이 덴.
자신의 동기이자, 블레이즈에서 차출한 정예 중의 정예.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녀는 온 몸이 피칠갑이 된 상태로,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었다.
"지시하셨던 대로 보급품을 이 영지까지 무사히 수송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수고 많았어."
그런 더러운 몰골조차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존.
선발대로써 잠시 떨어져 나왔지만, 그녀를 홀로 열차에 두고왔다 하여 걱정 따윈 하지 않았다.
그녀는 블레이즈 내에서 기용할 수 있는 최강의 병력. 설령 적들이 그 보급을 노리고 접근한다곤 하나, 그녀에겐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일라이가 가능한 건 그것뿐이지.'
그저 무식하게 강한 힘을 행사하는 것 하나.
그 점을 자각한 존이 일라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과거 사령관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자네에게 맡기지 않는다면 일라이에게 맡길 수밖에.'
"왜 그렇게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시는 거죠?"
제 불안을 알기나 하는 걸까.
일라이가 피가 묻은 얼굴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되물었다.
"드디어 저에게 청혼하실 생각이 드신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냐?"
"존, 저도 이미 혼기가 많이 지나있는 몸입니다. 그런데도 처녀의 몸으로 책임져야 할 튼튼한 아이들이 백이 넘게 있는 제가 안쓰럽지 않으신 겁니까?"
"그거야 네가 짊어지기로 한 일인데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지."
평소와 같은 쌩뚱 맞은 소리에 어울려주니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책임감이라는 것도 결국엔 스스로가 만들어낸 짐일 뿐.
일단은 현재에 집중하자. 생각한 존이 그녀를 따라 거리를 거닐었다.
"열차는 역에 정차된 상태지?"
"일단 정거장까지 무사히 호위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사전에 전해 들었던 분들과도 중도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만……."
이윽고 도착하게 된 장소는 영지의 선로가 들어오는 장소.
그 앞에는 열차에 들어있는 짐꾼들을 지도하는 단안경의 여인과, 그 곁을 지키는 갑옷의 기사가 존을 환영해 주고 있었다.
이 열차를 설계한 블러드메리와 협력관계에 있는 골드리안의 대표자. 그리고 그녀에게 고용되어 용병을 맡고 있는 전 라인하르트 가문의 기사.
그들의 정체를 대강 짐작한 존이, 그 옆에서 불안한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는 중년의 남자를 돌아보았다.
기사처럼 갑옷을 걸치되, 군데군데에 권위자임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귀족?"
"이곳까지 오는 길에 합류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니까, 그……."
그에 대해 떠올리는 일라이가 턱을 괴고, 눈살을 찌푸리며 신음하다, 이내 떠올린 이름을 입밖으로 내뱉었다.
"훼블리즈 후작님?"
"……실버레이트 백작이오."
숫자부터 내용까지 무엇 하나 같을 게 없는 이름.
그에 불쾌함을 느낄 법함에도, 정작 실버레이트는 별 불만 없이 일라이에게서 관심을 거두었다.
제 앞에서 야만족들이 피떡이 되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자네가 블레이즈의 장교인 나저러 장군이군. 이곳까지 오는 길에 그 옆의 아가씨에게 이야기는 들었다네."
"이야기를 들으셨다면 얘기는 빨라지겠네요."
실버레이트의 정중한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는 존.
비록 야만족의 행적 조사라는 명분으로 소대만을 겨우 빼내었지만, 일라이를 포함해 블레이즈에서 추려낸 정예 중의 정예로 이루어진 이들이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전쟁이라 한들 개인의 역할 역시 무시하지 못하는 법.
하지만 그들을 군에 편입시키는 걸 환영하기 전, 한 가지 따지고 가야 할 문제가 있었다.
"이곳의 책임자인 아레이스타 자작은 어찌 되었나?"
"처리했습니다."
무덤덤하게 답하며 군모를 눌러쓰는 존.
실제로 그의 목을 베어 넘긴 자는 따로 있지만, 그 상황을 만들었던 건 엄연히 자신이다.
대외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건 분명 자신일 터.
"……그런가."
그것을 숨기지 않고 말했음에도 실버레이트는 분노나 당혹 등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아레이스타가 어떤 인물인지 아는 만큼, 그런 결과야 이곳에 오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일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겠네. 그런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자였으니."
전장이란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가혹한 장소이며, 그것을 깨닫지 못한 자는 결코 군을 이끌어선 안 된다.
이전의 패전은 그 점을 자각시키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고, 그러한 깨달음은 곧 제 앞에 있는 '전쟁 경험자'의 신뢰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고 있었다.
"백작님, 이라고 하셨죠?"
그리고 그런 식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건 실버레이트만이 아니었다.
그와 동행한 리나와 미겔은 물론, 일라이조차도 제 앞에 있는 자에겐 별 불만을 품지 않은 상태.
존이 그 점을 빌어 제 앞에 있는 이에게 한 가지 제안을 건네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제안하겠습니다 백작님, 부디 이 전선을 책임져줄 책임자가 되어주지 않겠습니까?"
"총지휘자를……? 자네가 아닌 내가 말인가?"
"본래 영지에서도 참모에 불과한 몸이었습니다. 하물며 귀족도 아닌 제가 이 많은 사람에게 신뢰를 얻기에도 무리가 있겠죠."
사샤는 자신을 사령관의 후계로 지정하고자 했지만, 그건 공교롭게도 '마지못해' 청하는 것에 가까운 거였다.
더 적당한 인물이 있다면 자리를 양도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
하지만 그것이 모든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겠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대신 이곳에서 신세를 지는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당신을 보필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당신조차도 어엿한 지휘자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휘관은 모든 결정을 홀로 도맡아야 하는 중책.
군대를 이끌어야 하는 만큼 많은 책임에 휘둘릴 것이며, 참모와 같은 장교들은 어떤 식으로든 전장에 기여하며 그들의 여유를 덜어줄 필요가 있다.
어느 쪽도 집단생활에선 반드시 필요한 일.
지금의 제안은 책임의 회피가 아닌, 일종의 역할을 분담하자는 것이었다.
"……받아들이지."
그 점을 수긍한 실버레이트가 굳센 각오를 내뱉고는, 곧 시선을 자신의 배후에 자리한 열차로 향하였다.
마치 이후에 자신이 내뱉을 말을 어느 정도 짐작한 듯.
"그럼, 앞으로 나와 함께 이 전선을 꾸려갈 자네에게 묻도록 하지."
열차에서 빠져나온 인부들이 가지고 나온 것은 블레이즈의 마크가 새겨진 상자.
그 안에는 소총과 기관단총과 같은 무기와 더불어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폭발물이, 심지어 기관총이나 야포와 같은 중장비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전문적인 군사훈련도,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조차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을 죽일 수 있게 만드는 병기들.
"지금 가장 먼저 내가 결정해야 할 일이 뭐라고 생각하나?"
그를 눈에 새기며 행한 물음에 존이 바로 대답했다.
"저 무기들을 사용할지 말지가 되겠죠."
나라에서 금기로 여겨지는 무기로 군대를 무장시킨다…….
그건 무엇보다도 많은 책임을 짊어질 것을 각오해야 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