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229화 (229/255)

의무병의 환생 229화

'정말로 이번 전쟁엔 불참할 생각이야?'

그것이 마지막으로 정보를 요구했을 당시에 들었던 되물음.

반란군들이 변경지대의 절반을 먹어치우고, 중심지의 방어선을 차차 돌파했을 무렵에 토해내었던 걱정이었다.

그런 마당에 전장에 누구보다도 익숙한 자가 아예 불참을 선언하다니. 누구라도 의외라 여길 일이 아니겠는가?

'어차피 나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으니까.'

하지만 셰인은 스스로의 분수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전생에도 일개 병사에 불과했던 몸.

환생 후 힘을 길렀다 한들 군대에 비하면 극히 사소할 것이며, 그런 자신이 참여한다고 하여 전장의 판도를 바꾸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그저 믿어볼 뿐이다.

자신이 보아온 제국을.

더욱 자신이 이제껏 이룩해온 것들을 보며 이 시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또 얼마만큼 변화했는지를.

'그러니까 뒷일은 이 나라 사람들에게 맡기고……. 나는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지.'

'그 방법으로 채택한 게 황제와 독대권을 가지는 거고?'

황제 카이네르 테라스.

제국을 통일시킨 업적을 이룬 후, 200년간 평화를 이룩해온 테라스 황가의 현 계승자.

셰인이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건 현 제국의 최고 실세라 불리는 자였다.

'우리 동생은 굳이 독대까지 하며 황제와 무슨 얘기를 나눠보려는 걸까나?'

'별 거 아니야, 그냥……. 같이 인생사는 이야기나 좀 나눠보려는 거지.'

'하하, 황제와 만나서 하는 게 술 한 잔 마시며 잡담하는 거라니. 고작 그것만으로 뭔가가 바뀔 거라 생각하는 거야?'

'그럴 거라곤 생각 안 해.'

폭력도 언쟁도……. 그것을 통해 무언가가 바뀐다는 건 결국 승자의 논리일 뿐.

결과가 정해졌다 한들 많은 부분이 어긋날 수 있으며, 지금의 제국은 그런 어긋남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는 상태다.

그런 전례를 마주한 마당에, 황제와의 마찰 한 번에 무언가 바뀌리라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냥, 그런 거라도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그런 것뿐이지.'

'……아무렴, 뭐라도 해야 나중에 뒤탈이 없는 법이지.'

대강 말의 의미를 이해하며 미소를 짓는 에버그린.

이후 그녀가 내어준 쪽지에는, 셰인이 요구했던 것과 관련된 대략적인 정보들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황제와 독대하는 건 불가능할 거야. 애초에 대부분의 사람들도 행사가 벌어질 때마다 멀리서 관망하는 게 고작인데, 근래엔 건강이 악화돼서 고위귀족들의 알현도 거부하는 상태거든.'

설령 로열나이츠의 자격이 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그 역할은 비밀수사원 겸 고위공직자.

그 정도의 권한만으로 최고권위자의 독대를 바라는 건, 법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무모하다 여겨질 일이리라.

'하지만 비공식적인 만남이라면 얘기는 달라지겠지.'

'비공식?'

'근래 제도에서부터 키르슈타인 공작령까지 이어지는 샛길이 은밀하게 다져지고 있거든. 비밀리에 높으신 분께서 그곳으로 향할 예정이란 거지. 그리고 다른 황실의 일원들은 예술제의 참석을 결정했지만, 정작 폐하께선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을 하고 계시니…….'

즉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황제가 키르슈타인 공작에게 비공식적인 협력을 요구하고자 한단 것이다.

그리고 키르슈타인은 죄인을 다스린다는 역할을 맡은 가문.

예술제와 같은 공적인 행사에 불참할 명분이 있는 만큼, 그 가문이 다스리는 영지에선 공적인 장소보다도 자유로운 만남을 가지는 게 가능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럼 나는 이쯤에서 손절하도록 할게.'

정작 황제가 왜 그곳으로 향했는지를 묻기 전, 에버그린은 벽을 치며 정보의 공유를 거절하려는 의사를 보였다.

자신의 정보력에 크나큰 자부심을 가진 그녀답지 않은 행동.

'손절? 샛길만 알려주고 땡 치려는 거야?'

'더 조사하려면 조사할 순 있지만……. 아무래도 황제가 연루된 일이다 보니 이쪽도 사릴 수밖에 없거든. 상호확증파괴란 말 알지?'

서로가 공멸이 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줄 수 있는 전력을 갖출 경우,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상대와의 직접적인 싸움을 피하게 된다는 논리다.

마찬가지로 이 제국에 대한 치명적인 정보를 여럿 보유하고 있다 한들, 그걸 경솔히 뿌린다면 황실 측에선 대대적인 진압에 나설 것이 분명할 터.

동향을 파악할지언정 자세한 내막까지 파헤치는 건 삼가야 하는 만큼, 이쯤에서 물러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이런 누나라서 실망했어?'

'…아니, 원래 오래 살려면 겁쟁이인 편이 낫지.'

'하하~ 당신은 오래 살고 싶지 않나 보네?'

정보가 한정된 상태로 비밀리에 움직이는 권력자와의 독대권을 가지려는 것이다.

하물며 비공식적인 자리인 만큼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터.

자신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리는 것도.

더욱 나아가 황제 쪽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도, 그 모든 것은 온전히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일 것이다.

'이미 충분히 오래 살았어.'

하지만 그런 위험은 이제껏 숱하게 겪어왔던 것.

목숨을 걸고 활동하는 건 이제는 익숙함을 넘어 적응마저 된 만큼, 지금의 셰인은 제 목숨에 그다지 미련이 없는 상태였다.

어디까지나 제 목숨에 한해선.

'정말로 그런 이유만으로 사지로 향하는 건 아니지?'

'…….'

'…내가 사람 꽤 많이 만나보면서 느낀 건데, 노인들이 욕심이 없는 건 그냥 몸에 힘이 없어서 그런 것뿐이더라고. 여든도 넘은 야심가에게 쌩쌩한 육체가 주어진다면 뭔들 못하겠어?'

하물며 환생자라니.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진 그는, 이 두 번째 생에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아직도 넘쳐나지 않는가?

'그러니까 조심히 다녀와. 전생은 몰라도, 지금의 당신에겐 돌아갈 장소 정도는 있으니까.'

'…….'

* * *

-덜커덩.

이내 하수도를 빠져나와 맨홀의 뚜껑을 여는 셰인.

그 후 밖으로 빠져나온 곳은 골목길로, 에버그린의 추종자인 루미네가 가르쳐 준 '가장 인적이 드문 장소'였다.

쓰레기 매립지라고는 하나, 애초에 잠입이 전제되는 선에선 이런 길이라도 마련된 걸 감지덕지 여겨야 할 터.

악취를 견디며 쓰레기장을 가로질러 골목길로 들어서니, 이윽고 거대한 그림자가 셰인을 맞닥트리게 되었다.

'여기가 키르슈타인의 감옥도시인가.'

어두운 밤 아래, 영지를 가두듯 둘러진 거대한 성벽.

높이는 블레이즈의 반절 정도지만, 내벽의 군데군데엔 가시망이나 초소 같은 것들이 무수히 달려있다.

외부의 침입이 아닌 내부에서부터 비롯된 탈옥을 막기 위한 벽으로, 키르슈타인에서 수용하는 죄수들은 그 내부에 한해선 어느 정도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되게 된다.

'영지민들을 죄수로 대체해서 운영하는 도시라고 했었지.'

키르슈타인은 대대로 죄인을 다스려온 가문.

그만큼 제국에서 가장 흉악하고 악명 높은 범죄자들을 상대하고 있으며, 그런 이들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독자적인 사회체계의 구축을 채택하고 있었다.

영지 밖으로 나갈 수 없되, 규칙을 준수하면 다른 영지와 다름 없는 생활을 보장하는 것.

그렇게만 보면 죄수들의 지상낙원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죄수란 이미 법을 어긴 경험이 있는 자들이다.

어느 감옥이건 모범수라 불리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거늘, 이곳에 있는 이들이라고 편안한 삶을 영위하는 게 쉬운 일일까?

'그런 더러운 장소에 왜 위대하신 황제폐하께서 들어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골목의 그림자에 몸을 숨긴 셰인이 제 손의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에버그린이 내어준 감옥도시의 지도.

어디까지나 대략적으로 그려진 것에 불과하지만, 당장의 목적지를 결정하기엔 충분한 물건이었다.

'이 중에서 황제가 있으리라 추측되는 곳은 둘인가.'

하나는 중심지에 자리한 거대한 성인 바빌론.

키르슈타인 일가의 소속원들과 더불어, 그에 충성을 맹세한 이들이 머무르는 장소다.

반대로 타르타로스는 감옥도시에서 위법을 저지른 이들이 수감되는 장소.

온갖 흉악죄인들이 들어선 소굴은 고귀한 신분이 들어설 만한 장소는 못 되겠지만, 그렇게 따진다면 애초에 황제가 이 도시에 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않겠는가?

'비밀리에 뭔가를 하고자 하는데, 죄수들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

어느 쪽이건 도시의 중심부와 이어져 있으니, 일단 방향은 그쪽으로 잡고 움직여도 될 터.

그렇게 숨을 죽인 셰인이 등의 소켓에 끼워둔 목발을 바로잡고, 골목길 밖을 조용히 응시하였다.

심야의 시간. 벽에 둘러쳐진 도시는 고요하기 그지없다.

죄수 겸 영지민들이야 통금시간을 엄격히 지켜 잠에 들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치곤 감시자들의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사전에 들어본 바에 따르면 이 도시의 감시체계는 가문의 비전 탐색술을 익힌 간수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했는데…….'

하지만 주변엔 사람도 없고, 심지어 마나의 유동조차도 엿보이질 않는다.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감시방법이 있는 것일까?

만약을 대비해 경계심을 곤두세우며 나아갔지만, 그럼에도 골목길을 빠져나왔을 때부터 느껴졌던 싸한 느낌이 지워지질 않는다.

'역시 이상해……. 감시는커녕 사람의 그림자조차도 없다니.'

설마 전쟁 중이라고 수용한 병력을 외부조력으로 보낸 건?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전쟁이 벌어진다 해도 사회 자체가 마비되어선 안 되는 법.

하물며 수감소는 반사회주의적인 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자칫 관리를 소홀히 하면 내부의 적으로 다가올 위험이 있다.

전시상황이라면 더욱 통제를 강화하지, 그 관리를 소홀히 하는 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란 것이다.

'뭣보다 감시자들뿐 아니라 죄수의 기척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거리는 물론이고 건물의 내부에도…….'

아니, 그림자가 딱 하나 있다.

길을 거닌 끝에 도착한 사거리 지역.

사방이 뚫려있는 장소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하나 존재하고 있다.

'환자인가?'

가능성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잠입 중에 무턱대고 달려들 순 없는 노릇이다.

그 점을 명심한 셰인이 제 손을 오므리고, 안쪽에 나 있는 구멍을 전방으로 향하며 마나를 발휘하였다.

열화상 망원술.

사물을 빛이 아닌 열을 이용해 감지하는 술법으로, 원리가 원리인 만큼 야시경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를 통해 투시된 광경이 곧 색으로 물들어지며, 주변의 열기를 전부 표현해 주었다.

그중 열이 감지되는 부분은 '노란색에서 붉은색'을 띄어야 정상일 터.

하지만 정작 응시하는 그림자는 주변과 다를 바 없는 파란색을 띠고 있다.

인간에게 당연히 느껴져야 할 '체온'을 잃었다는 것이다.

'……죽었다.'

스윽 주변을 둘러본 셰인이 조용히 거리를 향해 나아갔다.

역시나 아무도 간섭해 오지 않는다.

애초에 시체가 방치된 것부터가 이상히 여길 일.

그런 괴리적인 상황에 경계심을 곤두세우며 시체를 살펴보니, 호흡 반응은 물론 박동에 의한 미세한 떨림조차도 감지되지 않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방치된 지 10시간은 훌쩍 넘었나.'

사람의 시체란 3시간만 지나도 바로 부패가 시작되며, 10시간이 지나면 문외한이라도 육안으로 구별이 가능할 정도로 변색이 일어난다.

지금의 시체는 엄연히 12시간은 지난 상태.

자세한 사인은 부검을 해봐야 알겠지만, 당장 따져야 할 건 사인이 아닌 감옥도시에서 시체가 방치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죄수가 아닌 간수의 시체가.

'설마…….'

셰인이 이내 기척을 감추는 마나를 해제하고, 주변에 있는 건물의 문과 창문을 닥치는 대로 열어젖혔다.

야간이 통금시간이라면 죄수들은 건물 안에 들어가 있을 터.

하지만 건물 안에 존재하는 모든 죄수들은 예외 없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그것도 이전에 확인한 간수와 마찬가지로 이미 12시간은 넘게 시체로 방치된…….

'아니, 죄수들만이 아니다.'

건물을 수색하며 거리를 누비던 멈춰지는 발걸음.

이후 눈에 들어온 광경에 셰인이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말았다.

도시의 광장부에 쓰러져 있는 무수한 그림자들.

죄수가 아닌 간수들의 시체가, 한결같이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양새로 쓰러져 있다.

죄수들과 달리 이변을 눈치 챘으나 끝내 목숨을 잃은 것이다.

"……망할, 잠입 같은 걸 할 때가 아니었군."

이내 셰인의 시선이 그들의 몸이 쓰러진 방향으로 향해졌다.

바빌론. 감옥도시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성.

그 상징의 밑에 자리한 간수와 죄수들은 모두 사망하고, 현장에는 부패한 냄새만이 감돌고 있다.

"하, 이건 또 뭔 지랄이야?"

하필이면 황제가 온 장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그 누구라도 심각함을 느낄 상황이 아니겠는가?

* * *

"……쿨럭."

어두운 복도 내에 메아리치는 기침소리.

그와 함께 랜턴에 의존하며 나아가던 몸이 휘청거리는 순간, 배후에 남자가 노쇠한 몸을 부축해 주었다.

흑의를 걸친 냉철한 인상의 남자.

랜턴이 없었다면 주변과 동화되어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피부를 제외한 모든 것이 검게 물들어진 남자였다.

"괜찮으십니까?"

"미안하네, 자네에게 이런 병든 몸을 부축하게 만들다니…."

"아뇨, 이런 상황이니 제가 해야 마땅한 일이겠죠."

은밀히 행동해야 하니 호위조차도 황실에 두고 온 상황.

유일하게 그 곁을 수호하는 가신인 자신이, 홀몸인 그의 곁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오셨군요, 폐하. 그리고 키르슈타인의 공자님."

이윽고 어두운 통로의 끝에 도착하게 된 곳은 무척이나 고요하고 공허한 장소.

그곳에서 두 사람을 반겨준 건 검은 사제복을 입은 노인 한 사람뿐이었다.

그런 그가 부른 지칭에 현 영지의 주인, 알베르트 키르슈타인이 석연찮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지금은 공작입니다, 제레프 경."

"아아, 죄송합니다. 이 제단을 준비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기에 그만……."

멋쩍게 사과를 내뱉은 노인이 자리에서 비켜서고, 두 사람에게 안에 자리한 현장을 보란 듯이 내세워주었다.

넓은 방을 밝히는 건 오롯이 천장에 달린 조명 하나뿐.

사방이 칠흑과 같은 어둠으로 덮인 가운데, 유일하게 그 조명빛에 비춰진 의자만이 반사광을 자아내고 있었다.

"드디어……."

권위자를 위해 마련되었다기엔 너무나도 초라한 물건.

"오랜 비원이 성취되는 날이 찾아왔구나."

하지만 이제껏 숱하게 황좌에 앉아온 노인에겐, 제 앞에 있는 의자가 그 무엇보다도 눈부시게 여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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