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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232화 (232/255)

의무병의 환생 232화

처음에는 그저 이 시대에 적응하며 살고자 했었다.

의학을 혐오하는 세상이라곤 하나, 세상을 홀로 바꾼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니까.

'저는……. 제가 한 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의 기적으로도 차마 치료할 수 없는, 그저 약물처방만으로도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는 소녀를 마주했을 때.

그런 가엾은 소녀를 버리고자 하는 시대의 그릇됨을 깨달았기에, 그는 제 목숨과 존엄을 걸며 이 시대의 잘못을 꾸짖고자 하였다.

'아니, 제가 했던 일은 분명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 제 앞에 있는 여인.

그런 그녀와의 싸움은 사실상 패배가 예정된 거나 다름이 없던 것이었다.

'저는……. 저를 믿고 따라준 그 아이를……. 그 아이를 구제할 가능성을 보여준 나라의……!'

그런 패배를 '무승부'로 끌어올린 것은, 순전히 공작의 작위에 오른 자가 자신을 지지해주었기 때문.

그 무모한 도전의 끝에 자신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피해를 보았지만, 그럼에도 셰인은 당시 자신이 한 일을 결코 후회하지 않고 있었다.

'아이헨발트의 의지를, 이 시대에 이어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 당시에 내비친 자부심은 결코 틀리지 않았으리라고…….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오롯이 셰인 본인에 한한 것 뿐.

당시 재판에서 고발당해 주교의 직위를 박탈당한 여인은 자신을 증오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분명 그러리라 여겼건만…….

"……꿈, 인가요?"

정작 자신을 마주하고 있는 여인의 얼굴에는 초탈함만이 얼핏 엿보일 뿐.

자신을 향한 증오 따윈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비슷한 사람을 보며 자신이 착각이라도 한 듯.

"왜인지, 그리운 얼굴이 보이네요. 하하……."

아니, 착각이 아니다.

제 앞에 있는 자는 분명 그 날 재판대에 섰던 그 사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다 죽어가는 이 순간, 자신을 향해 반가운 감정을 보이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이제 와서, 도련님의 얼굴을, 마주하다니……. 꿈이라곤 해도, 무척이나 반갑네요."

후후, 하고.

그렇게 나직이 웃는 그녀의 고개가 이내 밑으로 떨어졌다.

행여나 머리가 땅에 박힐까, 셰인이 다급히 그 밑으로 손을 뻗었다.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조심스럽게.

도저히 원망하는 사람에겐 하리라곤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아니, 이게 당연한 거야.'

그로부터 벌써 8년.

그날 이후로 많은 사람을 만나오고, 그들을 마주함으로써 이 시대의 사람들이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를 알아갔다.

그 과정에서 신앙이란 무엇인지를 고찰하며 깨닫는 과정을 거쳐온 현재에 와선, 그날 재판에서 있었던 일들은 모두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을 구속한 것도, 그 날의 재판에서 내려진 판결 역시도.

"도, 련님……."

그러니 그녀가 자신을 적대하지 않는다면, 자신에겐 그녀를 도와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래, 지금의 그녀는 그저 한 명의 환자에 불과할 뿐이니.

"네, 말씀해 주세요. 어디가 불편하시죠?"

곧 셰인이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조용히 되물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야 많지만, 지금은 그녀의 증세가 어떤지 부터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으니.

"배……."

그 물음에 안젤라가 제 배에 손을 얹은 채로 힘겨이 대답했다.

배가 아픈 것일까?

설마 독이라도 섭취해서?

"배가, 고파…. 요."

"……네?"

"1달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

아, 그래.

영양실조이니 일단 밥부터 먹여야겠지.

* * *

금식.

의학적으로는 수술시를 제외하곤 권장되지 않는 행위지만, 교단에서는 금식을 일종의 수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공복을 견뎌내는 것은 그 자체로 고행이라 부를 일이며, 그럼에도 신앙을 유지한다면 영양실조에 의한 몸의 붕괴를 늦출 수 있게 되니까.

물론 그렇다 해도 망가져 가는 육체를 억지로 바로잡는 것.

그런 과정이 적응 단계로 돌입하게 된다면, 그 효력도 크게 떨어져 신성력으로도 회복을 노릴 수가 없게 된다.

그만한 고행을 거의 1달 이상 버텨낸 건 정말 대단한 일이겠지만, 막상 셰인이 그녀를 마주했을 때 경악을 느낀 부분은 따로 있었다.

"후우~ 이제야 좀 살 것 같네요~"

"……속은 괜찮아요?"

"괜찮아요~ 옛날부터 몸 하나는 무척이나 튼튼했거든요~"

아니, 지금 말한 건 허약함이아닌 식성에 대한 부분이다.

교회의 지하에서 벗어난 후, 셰인은 그녀를 데리고 감옥도시 내의 식당에 숨어들어 배를 채워준 상태였다.

급하게 만드느라 있는 창고에 있는 재료를 대충 섞어 스튜로 끓인 거였건만, 정작 그 스튜도 부족해서 몇 번이고 새로이 끓이길 반복했을 정도.

지금에 와선 그녀의 앉은키와 비슷하게 그릇이 쌓여 있었다.

'나도 많이 먹는 편이지만 이 사람이랑 비교하면 애교 수준이군.'

위장은 이론적으로 본래 크기의 10배 이상도 늘어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확장되면 뇌에서 위장의 확장을 막아버린다.

이로 인해 사람은 배부름이라는 걸 느끼게 되는 것.

일반적으로 제 몸과 비슷한 양의 음식을 먹는 건 불가능하단 것이다.

'하지만 당시 재판에서도 그녀가 직접 말했었지. 과거에 생체실험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고.'

그 당시 재판에서 드러내었던, 기형으로 뒤틀려있던 검은 팔은 보통의 사람에겐 결코 나타날 수 없는 신체 부위.

그로부터 비롯된 신체기관은 보통의 사람과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반란군의 간부 중 하나였던 '뫼비우스'와 마찬가지로…….

그래, 그런 개조를 거친 만큼, 그녀의 존재를 일반적인 상식선상에서 판단해선 안 될 터이다.

"후후~ 도련님께서 저를 발견해주셔서 다행이네요."

골을 썩는 가운데 만족감을 토로하는 안젤라.

화색이 도는 미소는 처음 마주했을 때와 같은 '20대 후반의 여인'이 흔히 보일만한 것이었다.

도저히 세실의 아버지인 질리언과 동갑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동안…….

그 또한 신체개조에 의한 효과인지 궁금해 하는 가운데, 안젤라가 셰인을 향해 재잘거리기 시작하였다.

"사실 1년에 한 번씩 수행으로 1달 정도 금식을 하고 있거든요. 그건 이 감옥도시에 온 후에도 이어오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이번 금식제에선 밖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질 않더라고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기에 그냥 무작정 기다리기만 했는데 저를 발견한 게 도련님이라니. 세상일은 참 모르겠네요~"

"……걸쇠가 잠긴 건 안쪽이었는데 그냥 혼자서 나와도 되지 않나요?"

"죄수의 신분이라 행동거지를 조심히 해야 하거든요."

아, 그래. 수행은 몰라도 구속의 해제만큼은 간수들의 지시를 따라야겠지.

하지만 내부에서도 시간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는데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다니.

신성력이 없었다면 바로 아사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임을 생각하면, 그 누구라도 미련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 것이다.

'이쪽은 근손실 때문에 하루 세 끼 꼬박꼬박 챙겨먹기도 바쁜데.'

제 몫의 음식을 먹어치운 셰인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 미리 만들어두었던 주전자의 내용물을 컵에 따라 그녀에게 내어주었다.

"생강이 있어서 갈아놨어요. 마시면 목이 편해지실 거예요."

"후후, 고마워요, 도련님."

셰인이 내어준 찻잔을 대수롭지 않게 쥐는 안젤라.

그 내용물을 마시고 음미하는 행동에도 일말의 거리낌도 엿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말없이.

침묵 속에서 수분을 보낸 후.

"그 동안, 잘 지내셨나요?"

뒤늦게 자신을 향한 안부를 묻는 안젤라.

그녀의 말에 복잡한 심정을 느낀 셰인이, 테이블 밑으로 내려둔 손을 꼼지락거리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여러모로 파란만장하게 지냈죠."

"저랑은 반대네요. 이 감옥도시는 워낙에 철저하게 통제되는 곳이라, 저 같은 사람들에겐 무척이나 지루하거든요."

교단에서의 행실을 유지하고 있다면 이 도시에서도 모범수로 지냈을 터.

죄수의 신분으로도 신성력을 잃지 않은 것을 보면,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소신에 충실함을 유지하는 듯하였다.

친구를 배신했다는 자학감에 신앙을 잃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터임에도.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네요.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여겼던 도련님과 이렇게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날도 찾아오고."

하지만 역시 의외인 건 자신과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점일까?

아니, 자세히 보니 내색하지 않을 뿐. 드문드문 자신을 향한 눈짓에는 희미한 죄의식이 엿보이고 있었다.

괜스레 부담을 느낀 셰인이 힘겨이 제 속내를 털어내었다.

"……제가 원망스럽지 않으신 건가요?"

"원망할 게 뭐가 있겠어요?"

어깨를 으쓱이는 안젤라.

"도련님께선 그 날 재판에서 내려진 형량을 다 치르셨죠. 그 후에는 번듯한 사회인으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누구도 도련님의 활동에 왈가왈부는 할 수 없겠죠."

하지만 찻잔을 쥔 손엔 서서히 힘이 실려 가고 있다.

자신이 아닌 스스로를 향해.

증오가 아닌 자학에 가까운 감정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반면 전 아직 용서받지 못하고 있죠. 공작의 암살미수란 그 죄가 무척이나 무거우니까요."

그래, 본래라면 사형이 이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지.

그럼에도 주교의 신분과 더불어 이제까지 사회에 봉사했다는 점, 그리고 그녀의 형량을 줄이길 바라는 대중이 작성한 탄원서 덕에 그 형량이 10년 정도로 줄어든 것이었다.

이단자에겐 몰라도 준법시민들에겐 독실한 신자로 여겨졌단 것일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서로의 전과가 아닌, 당장의 상황에 어찌 대응할지가 될 것이다.

"그런데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던데……. 제가 이곳에 있는 8년 동안 세상이 참 많이 바뀌긴 했나 보네요. 반란군과 제국군 간의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더군다나 금식제를 벌였던 1달 사이에 이 도시는 언데드들의 소굴이 되어버렸다니."

이 도시 안쪽은 물론이고, 바깥쪽도 모두 뒤집어진 상황.

이 제국에 충성을 맹세하며, 사회의 안전을 위해 봉사해온 그녀에겐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이 느껴지는 상황일 것이다.

뭣보다 과거에 자신이 심판하고자 했던 소년이, 어른이 되어 이 감옥도시에 유입되었다면 더욱이.

"도련님께선, 이 위험한 도시에 무슨 이유로 찾아오신 건가요?"

적어도 죄수의 신분이 아니라는 건 알겠지.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이 언데드가 들끓는 도시에 어째서 찾아왔는지에 대한 의문이 가증되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벌어진 사태에 대해 무언가 알고 계신 게 있으신가요?"

우연한 만남이라곤 해도 이 도시의 유일한 생존자가 아닌가?

우연찮게 학살의 타깃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어떤 이유에서 살아남았건 그녀에겐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말해도 되나?'

하지만 셰인은 차마 그녀를 향해 신뢰를 가질 수가 없었다.

과거의 일만이 아니다.

아직도 그녀는 신성력을 유지하고 있고, 그건 심문관으로 지내왔던 때부터 줄곧 이어온 마음에서 비롯된 힘일 테니까.

그런 그녀에게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밝힌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실 이 사태가 이 나라의 황제와 연루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교단원으로서 그 위대한 피를 섬기는 그녀가, 정녕 자신을 적대하지 않을 거라 보장할 수 있을까?

"……질리언."

그 속내를 쉬이 드러낼 수 없는 나머지, 셰인은 이 영지에 찾아온 '부차적인 이유'를 먼저 입에 담고 말았다.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하지만 황제와의 독대라는 대의를 위한 일을 제외한다면, 개인적으론 셰인에겐 무척이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일이었다.

"질리, 언?"

그리고 그건 안젤라 역시 마찬가지다.

애초에 그녀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건 라인하르트 영지에서. 그녀가 죄인의 신분이 된 것도 그가 그녀를 고발했기 때문이었으니.

"라인하르트 공작님이 이 영지에 계신 건 알고 계시나요?"

"……아뇨,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그래, 비교적 최근에 벌어진 일이니, 기간 내에 금식제에 돌입했다면 모를 만도 하겠지.

셰인이 마저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대외적으로 납득시킬 만한 명분에 대한 설명을 마저 이어갔다.

"……그런 이유에서 라인하르트 공작님에게 반란 의혹이 생겨 일시적으로 이 영지에서 구속하게 되었어요. 저는 공작님이 잡혀 있는 걸 보고, 몰래 이 땅에 들어와서 책임자와 교섭을 하려 했던 거였고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거짓말은…….

황명이 있었던 만큼 구속의 해제엔 절차를 따르겠지만, 탄원서 정도는 로열나이츠이자 구국의 영웅취급을 받는 자신도 제출할 자격 정도는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에 와선 그를 명분으로 삼아, 그 친구 된 자에게 변명을 하는 꼴이라니.

"하지만 도시가 이런 상황이라면 공작님은……."

"아뇨, 분명 괜찮을 거예요."

걱정과 자괴감, 그 외에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을 토로하기 무섭게 안젤라가 셰인의 말을 부정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 감옥도시에선 몇몇 죄수들은 특별히 취급하거든요. 이를테면 고위 공직자 출신이나, 저처럼 이 영지에서 확보하기 어려운 능력을 보유한 사람들의 경우……. 그들은 도시가 아닌 바빌론의 특수감옥을 기점으로 생활을 하게 되죠."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긴 그녀가 향한 곳은 셰인이 스튜를 끓였던 아궁이……. 그 옆에 자리해 있는 식품창고와 이어진 통로.

그곳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그녀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이런 사달을 벌였다 해도 일단은 공작의 작위에 오른 인물이니 바로 죽이려 하진 않을 거예요. 자칫 잘못하면 과도하게 이목을 집중시켜 적을 늘릴 수도 있으니까."

제 친구의 행방에 대해 거론함에도 목소리가 심히 굳어져 있다.

그에 대한 걱정을 내색하지 않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심문관으로서의 추론을 위해?

"안젤라는……."

그녀를 따라 창고로 따라 들어간 셰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키르슈타인 공작님이 이 사건을 일으켰다 생각하시는 건가요?"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에요."

이후 창고에 방치된 자재들을 뒤적거리는 안젤라.

그 손이 중점으로 향한 건, 셰인이 창고를 뒤적이던 중에도 어느 정도 염두에 두었던 것이기도 하였다.

"키르슈타인의 지도자가 바뀐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에요. 아무리 가문에 대한 소속감과 제국의 충성이 강하다곤 하나 젊은 나이에 권력을 가진 만큼, 주변의 환경과 입김에 쉽게 영향을 받아 어긋난 길로 나아갈 가능성도 있겠죠."

이윽고 꺼내든 것은 해골마크가 그려져 있는 병.

주로 위험물을 취급할 때에 쓰이는 물건으로, 그 안의 성분을 조사해본 결과 복어에서 채취하는 '테트로도톡신'으로 확인이 되었다.

위험성만 해도 청산가리의 5배.

극소량만 음식에 투입해도, 어지간한 성인남성을 바로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극독이다.

"하물며 감옥도시 내에 있는 죄수들 뿐 아니라 간수들에게까지 '독이 든 식사'를 일제히 먹일 정도의 일을 벌일 수 있는 자라면……. 당연히 이 땅의 최고 권위자를 먼저 의심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이 사달을 벌인 건 키르슈타인 공작이다.'

안젤라는 그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에 황제가 연루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는 셰인과 달리……. 아니, 최종적으로 그걸 바라는 건 황제일지라도, 그 결단을 실행한 건 키르슈타인 공작이 맞을 것이다.

'그저 충성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 이상으로 노리는 게 있는 것인지…….'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선 역시 당사자를 만날 필요가 있을 터.

그리고 이 도시에 대해서 잘 아는 건, 그저 지도만을 겨우 확보한 셰인이 아닌 이 도시에서 8년을 보낸 안젤라가 될 것이다.

"저기, 안젤라. 괜찮다면……."

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자 하는 것도 잠시.

-우우웅.

돌연히 식품창고에 들려오는 진동음.

그에 신경을 곤두세운 두 사람의 시선이 이윽고 창고의 입구로 향해졌다.

'습격인가?'

아니, 언데드는 아니다.

특유의 썩은 냄새나 신음소리는 전혀 동반되지 않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지금의 소음은 마나를 다룰 때의 그것과 같다.

'술사!?'

어쩌면 이 언데드들을 일으켜 세운 술사일지도 모른다.

그에 경계심을 곤두세우며 손에 마나를 모은 것도 잠시.

이윽고 자신들의 배후에 돌연히 찾아온 존재를 맞닥트린 순간, 셰인이 저도 모르게 마나를 해제하며 그를 멍하니 쳐다보게 되었다.

"이건……?"

나타난 건 인간…….

아니, 검은 안개가 인간의 형체로 굳어져 만들어진 존재였다.

기이하기론 언데드보다 더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마주했을 때에 셰인은 그 어떤 경계심도 표출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건……. 베르디의?'

만약의 존재.

분명 이스타섬에서 베르디가 그렇게 명명했던 존재와 똑같이 생긴 실루엣이다.

그리고…….

"알리사?"

그를 알아본 건 안젤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확히는 셰인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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