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233화 (233/255)

의무병의 환생 233화

'만약의 존재.'

타의에 의해 외도에 들어설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의 고결함을, 그것을 증명하고자 윤회력을 빚어 만들어낸 존재.

그저 언데드를 만들어낼 뿐인 힘으로 그런 존재를 구현하는 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베르디는 그것을 실현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아직도 신성력이라는 힘에 미지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걸 증명한 것.

그리고 지금 제 앞에 존재하는 것은, 그런 그녀가 다루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생성된 '의지를 가진 그림자'였다.

"제 동기가 다루는 힘이에요."

그리고 안젤라는 말했다.

이 힘을 다루는 건 베르디가 아닌 자신의 지인. 정확히는 심문관으로 활동했을 당시에 동료로 여겼던 이가 사용하는 힘이라고.

심문관들이야 신앙의 증명만 된다면 이단의 힘을 다룰 수 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설마 베르디와 같은 힘을 다루는 이가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셰인이 안젤라를 향해 혹시나 싶어 물었다.

"이 그림자를 다루는 술사가, 알리사인가 하는 분입니까?"

"아뇨, 알리사는……."

대답을 망설이는 안젤라.

그러면서도 시선은 셰인이 아닌, 제 앞에서 흔들거리는 검은 여인의 형상에게로 향해져 있었다.

"알리사는 제가 심문관으로 활동했을 때엔……. 그러니까 8년 전만 해도 견습이었던 아이였어요. 무척이나 사려 깊고 마음이 약한 아이였죠."

이단을 처형해야 할 자가 심약한 심성의 소유자라니.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보다도, 그런 마음을 가졌음에도 심문관을 지향한 것이 더욱 걱정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리고 지금 이 그림자를 만들어낸 술법은 애초에 '죽은 자'를 대상으로 한 거죠."

"……."

"……그렇군요, 알리사. 결국 당신도 심문관의 숙명을 피하지 못한 것이군요."

그래, 베르디 역시 죽은 자들을 회고하며 그 의지를 구축한 것이었다.

과거에 존재했던 이들과 유사하되, 결코 살아 있다곤 할 수 없는 존재들을…….

어째서 안젤라가 제 앞의 그림자를 안쓰럽게 여기는지를 이해한 순간이었다.

"그가 이곳에 있는 건가요?"

그런 허상의 존재를 향해 안젤라가 조용히 물었다.

그림자는 그저 웅웅대기만 할 뿐.

베르디가 다루었던 이들과 마찬가지로 말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안젤라는 무언가를 이해한 듯 제 표정을 어둡게 물들여가기 시작했다.

"그래요,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그가 알아차렸다면 분명 이곳에 왔겠죠. 그 과정에서 제가 있다는 걸 눈치 챘을 테고요."

-…….

"…그가 저를 탈출시키기 위해 당신을 이곳으로 보낸 건가요?"

-우우웅.

낮은 진동음.

고개의 끄덕임이 동반된 행동은 분명 긍정이겠지만, 정작 그녀를 마주한 안젤라는 그것을 반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몸에 조용히 손을 얹을 뿐.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알리사, 당신을 이곳으로 보낸 그도 분명 알고 있겠죠. 제가 이런 상황에서 도망칠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 역시 그 수도원에 있었던 참극을 마주했던 사람이니 만큼……."

'……참극?'

의문을 느끼는 셰인.

사정을 알 수 없기에 바로 이해할 순 없었지만, 당장 그것을 물어보기엔 여의치 않은 상태였다.

제 앞에 있는…….

자신이 모르는 장소에서 끝내 목숨을 잃은 심문관을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나도 아련하기 그지없었기에.

"그렇게 서로 같은 길을 거닐기로 약조한 동료의 흔적을 이런 식으로 마주하게 되다니, 운명이란 참으로 야속하네요."

그림자를 이곳으로 보낸 옛 동기.

그가 이 사태를 해결하고자 찾아온 것은, 전 심문관인 그녀에겐 결코 간과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쿠르릉!!

그에 대한 자각이 결심을 굳혔을 무렵 들려오는 진동.

건물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거센 진동이지만, 그건 일개 언데드에 의한 거라곤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

그 점을 인지한 안젤라가 각오를 굳힌 얼굴로 셰인을 향해 말했다.

"도련님께선 대피하도록 하세요."

"…대피라니요?"

"질리언을 위해 이곳에 왔다고는 하지만, 지금 이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저 언데드들이 깨어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

그건 셰인 역시 염두에 두고 있던 일이었다.

이 광활한 도시에 존재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지 않았는가?

그만한 이들을 죽은 것도 어디까지나 시작일 뿐.

그 재앙은 이 영지를 넘어 제국 곳곳으로 뻗어나갈 것이 분명하다.

"안젤라 혼자서 갈 생각이에요?"

하지만 안젤라는 그에 주눅이 들긴커녕, 이 순간 사지로 나아갈 각오를 발휘하고 있었으니.

"죄수의 신분이라곤 하나 심문관으로써의 사명을 져버린 건 아니에요. 그 누가 일을 저질렀건, 금기를 저지른 이들을 보고 마냥 도망갈 수도 없죠."

설령 상대가 공작이라 해도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공작의 자리에 오른 자가 이런 일을 벌였는데 잠자코 있을 수만은 없다.

하물며 내란이 벌어진 상태에서 내부에서 벌어진……. 어쩌면 재앙으로 번질지 모르는 문제를 더욱 방치해선 안 될 터.

"그렇겐 안 되겠는데요."

그럼에도 셰인은 그녀의 걱정을 거절하고, 그녀보다도 앞서 건물을 뛰쳐나갔다.

"도련님, 잠깐……!!"

-쿠과강! 쾅!!!

깜짝 놀라 뒤를 따라가려는 순간 울려 퍼지는 폭음, 그리고 살벌한 파열음의 연속.

그 사이에 드문드문 들려오는 총성이 언데드들의 함성마저 틀어막고, 끝내 거리엔 침묵만이 감돌게 되었다.

"……무슨."

뒤늦게 밖으로 나갔을 때에 마주한 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시체밭.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자의 주변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6써클."

그 강대한 힘의 파장을 소유한 청년이 안젤라를 돌아보며 말했다.

"현재 제가 올라 있는 경지입니다."

14살에.

그 당시 재판에서 마주했던 소년이 올라있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강함이, 그의 주변에 자리한 아지랑이와 진동을 통해 증명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눈여겨 보이는 건 그에게 동반되고 있는 빛무리.

"그리고 저 역시 당신만큼은 아니지만, 신앙이란 걸 이해하는 사람이에요."

무력도 있고, 언데드들에게 치명적인 빛을 다룰 수도 있다.

그 손에 쥐어진 기계장치형의 무기는 이단의 기술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에 뒤따라올 문제 역시 그의 손에 쥐어진 금패를 통해 무마시킬 수 있다.

'로열나이츠의 자격.'

결과만 옳다면, 어떤 의미에선 심문관보다도 더욱이 이단에 깊숙이 관여하는 게 허락되는 권리.

"이 정도면 함께 사지로 나아가기엔 충분하겠죠?"

그 권한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한 상태였다.

설령 이 사태에 황제가 연루되어 있다 한들, 애초에 다른 황실의 일원들도 납득했다면 몰래 혼자서 이곳까지 찾아오진 않았을 테니까.

* * *

-쿠구궁, 쿵!

알리사라 불린 검은 그림자를 따라가는 가운데, 도시 전체에 붕괴음이 울려 퍼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도시 내의 건물들이 무너지고, 그 파편 속에서 깨어난 언데드들의 몸에도 더욱이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

부패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며, 그로 인한 뭉개진 육체가 변화하는 작용 역시 눈에 띌 정도로 가속화를 이루고 있다.

"…신기하게 생긴 성이네요."

그러한 혼란 속을 은밀히 누빈 끝에 도착한 곳은 영지의 중심지. 그곳에 위치한 키르슈타인의 상징인 바빌론 성.

성이라기보단 무수한 건물이 한 곳을 중점으로 쌓여, 넓이가 널찍한 탑처럼 변해 버린 형태에 가까운 건물이었다.

중축된 흔적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크기를 확장시키는 듯하나, 지금 중요한 건 도시에 판을 치는 언데드들 중 일부가 그곳으로 유입되고 있단 것.

-우우웅.

그리고 알리사가 가리키는 건 바빌론이 아닌, 그와 이웃한 자리에 세워진 자그마한 건축물.

겉으로 보면 그저 시설의 입구로 보이지만, 그 밑으로는 성과 비등한 크기를 자랑하는 거대한 수감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지하수감소 타르타로스.

흉악범들이 수감된 곳에, 이 사태의 흑막이자 그녀를 일깨운 심문관이 향한 것이다.

"질……. 라인하르트 공작님은 바빌론에 특별수감을 해놨다 했었죠?"

"네, 이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중요인물들의 경우에는 지하가 아닌 바빌론을 기점으로 생활하니까요."

하지만 평소엔 특별취급을 하는 곳일지언정, 현재엔 타르타로스와 달리 일부 언데드들이 그곳으로 유입되는 낌새를 보이고 있었다.

언데드란 삶을 갈망하며 산 자에 대한 강한 식탐을 발휘하는 존재.

그들이 몰려가는 곳엔 생존자들이 존재한단 의미겠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그들의 목숨이 시한부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했다.

"도련님."

그 점을 자각한 안젤라가 눈살을 찌푸리며, 밑으로 늘어진 제 손을 틀어쥐었다.

"도련님께서 어떻게 그만한 힘을 손에 넣고, 또 어떤 경위로 신앙을 깨닫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을게요. 그 또한 지금에 와선 도련님을 신뢰할 수 있는 지표가 되어주니까요."

그래,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애초에 여기까지 함께 오지도 않았겠지.

"그러니 그 신뢰를 빌어 한 가지 부탁을 드릴게요."

그리고 상황이 시급한 마당에 힘을 가진 자를 신뢰할 수 있다면, 그 자에게 힘을 빌리는 건 당연한 선택일 터.

"질리언에겐 제가 가볼 테니, 도련님께선 알리사를 따라 제 동기를 도와주셨으면 해요."

"……안젤라가 아니라 제가요?"

"공교롭게도 자신이 없거든요. 같은 길을 거닐기로 한 마당에, 죄수의 신분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으니……."

납득할 수 있는 이유다.

부정을 저질렀다 한들 옛 동료의 정을 봐서 구출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만, 자비와 협력은 별개로 쳐야 할 일이니까.

그녀를 심문관의 수치로써 여긴다면, 상대 쪽에선 같은 자리에 서서 싸우는 걸 달갑지 않아 할지도 모른다.

"공작님에게 향하는 건 괜찮은 건가요?"

하지만 그건 질리언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권력을 위해서라곤 해도, 비밀리에 제 친구를 이용하고자 했던 것이었거늘.

"속죄 정도는 해야 하니까요."

"……."

셰인이 말 없이 성을 응시하는 안젤라를 돌아보았다.

그래, 자신 역시도 그녀가 없었다면 먼저 질리언을 구출하러 갔을지도 모르지.

대의보다도 개인을 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인 법.

그 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조력자를 우연히 만났다는 건, 셰인에게도 천운으로 여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 공작님은 안젤라에게 맡길게요."

그렇게 그녀에게 맡기고 지하감옥으로 내려가려는 것도 잠시.

"떠나기 전에 잠깐."

다시금 입을 열어 제 발목을 붙잡는 안젤라.

"마지막으로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이후 그녀를 스윽 돌아보자, 안젤라가 여전히 바빌론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안젤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얼 말이죠?"

"그냥, 가벼운 질문이에요. 도련님께선 블레이즈에 가셨으니 분명 만나보셨을 테니까."

곧 그녀가 말했다.

"페니 플레밍."

셰인에게 있어선 결코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이름을 하나.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 혹시 블레이즈에서 만나보셨나요?"

"……."

"동기였거든요. 질리언과 존, 일라이와 같은 부대의……."

그래, 분명히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질리언이 성인식을 치렀을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특출난 능력을 가졌던 소년병 부대에 소속된 적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중에는 안젤라와 일라이가, 그리고 당시 이스타 섬에서 보았던 페니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대의를 추구했으나 끝내 마녀사냥을 당하고, 그 유해마저 구 황제의 망령에 잠식되어 타락해 버리고 만 비운의 학자…….

그런 고결한 이단자의 의지를 이어받은 자신이, 교단 사람인 그녀에게 그 최후를 어찌 설명해야 할까?

"…결국 그렇게 되었군요."

대답을 망설이는 잠시의 시간.

그 사이에 무언가 짐작을 한 듯 안젤라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마치 그녀가 어떤 일을 당했고, 그 최후가 어떤 이유로 이루어졌는지를 예상하고 있는 듯한 말이었다.

"알고 계셨던 건가요? 그녀가 이단을 지향했던 걸."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조용히, 그 자리에서 등을 돌리며 바빌론을 향한 발걸음을 차차 내딛을 뿐.

"그에 대해선 일이 다 끝난 후에 나누도록 하죠."

사방에 죽음을 거부하는 시체들이 들끓고, 한 치의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절체불명의 상황.

그런 상황에 재회의 약속을 하는 걸 어리석다 여길지도 모르지만, 서로 다른 길로 나아가는 두 사람에게는 여전히 빛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 재회의 약속이란 서로가 살아야 할 집념을 돈독히 다져주는 것.

"무운을 빌게요, 도련님."

"저야말로."

그러한 기약을 끝으로 서로 멀어져가는 두 사람.

이내 시체들을 따라 바빌론의 입구로 들어선 안젤라의 앞에, 그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무수한 시선이 눈에 들어왔다.

키르륵, 카윽.

사람의 언어라곤 할 수 없는 일그러진 목소리.

그와 함께 번득이는 붉은 안광이 어둠을 가득 채워가는 가운데, 안젤라가 쓰게 웃으며 제 손을 앞으로 뻗어 보였다.

"제 측근들마저 이렇게 매몰차게 전멸시키다니……. 그 어린 공작님, 그렇게 안 봤는데 참 가차 없는 사람이었군요."

500년 동안 제국을 수호해온 가문조차도 이렇게나 타락하다니…….

아니, 이런 붕괴야 언젠가 예정되었던 걸지도 모른다.

심연 속의 괴물은, 언제나 심연을 들여다본 자들을 마찬가지로 들여다보는 법.

키르슈타인 역시 심문관들 못지않게 제국의 어둠을 접해온 만큼, 타락의 길에 들어설 여지야 수없이 존재하고 있었다.

"괴물을 잡으려면 심연으로."

하지만 그에 대한 반발은 결코 폭력으로 이뤄선 안 될 일이다.

그러한 행위에 사회가 바뀔지언정, 남게 되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이 불태워진 잿더미에 불과할 뿐.

그 위에서 유해만을 거머쥐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지, 태생을 어둠 속에서 시작한 그녀는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하나 심연 속에도 빛은 존재하리라."

그러한 어둠 속에서부터 일깨워진 빛을 발하며 성호를 긋는 그녀의 몸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제 옷을 찢을 기세로 두툼하게 부풀어 오르는 육체. 그 사이사이에 돋아난 흑색의 털과 머리에 돋아난 건 검은 산양과도 같은 뿔.

이윽고 번뜩이는 가로선을 그리는 눈동자는, 자신을 향해 식탐을 발하는 언데드들보다도 더욱 살벌히 빛나고 있었다.

"당장 비켜."

그런 흉악한 육체로 변함에도 그녀에겐 의지가 존재하고 있다.

그 의지를 빚어 만든 빛이 존재한다.

"그 사람은……. 질리언은 너희들 같은 더러운 놈들이 다가설 사람이 아니니까."

이명-개심한 악마.

태생은 이단자의 핏줄이자 그들의 실험체로서.

하나 그 끝에 신앙을 각성한 괴물은, 이 순간 자신을 인정해준 이를 구하고자 심연 속에 들어가길 택하고 있었다.

* * *

-우우우웅.

타르타로스의 지하 깊은 곳.

그곳에 은밀히 세워진 제단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검은 기운이, 그와 이어진 통로를 통해 퍼지며 스산함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힘을 받아들여 괴물로 바뀐 이들은 곤죽이 되어 나자빠진 상태.

그들의 썩은 피만을 몸에 물들인 남자가 그 사이를 가로질러 걸어가, 이내 안개가 채워진 방 안에 발을 들였다.

-터벅, 터벅.

단조로운 발걸음 소리에 반응을 한 건 안개에 감싸인 옥좌에 절을 올리는 노인뿐.

"……네가 이곳에 오지 않길 바랐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의 존재를 인지한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고, 이내 검은 안개 속으로 보이는 서로의 모습을 응시하였다.

그 후 감도는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불청객.

그가 붕대에 가려진 제 눈가에 손을 올리며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이곳에 있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제레프 교황 성하."

교황 제레프.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교단을 이끌었던 최고 권위자.

그런 그가 곧 자신을 찾아온 불청객을 마주하며 낮게 읊조렸다.

"……토머스."

심문관장 토머스.

교단에 자리한 부정을 쫓아 이곳에 찾아온 남자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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