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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236화 (236/255)

의무병의 환생 236화

대찬 폭발과 함께 퍼져나가는 썩은 핏줄기와 눈알, 손가락과 장기 조각…….

-콰아아!!

이제는 오물이나 다름없는 그 육편들이 마나의 기류를 통해 날아간 직후, 그 뒤를 따라 나서는 거대한 손아귀를 마주한 셰인이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쿠우웅!!

약물복용을 통해 비대하게 증가된 힘.

그와 정면으로 충돌한 육체가 밀려나는 듯싶지만, 그 끝내 이루어진 힘겨루기에 뭉개진 건 셰인이 아닌 뫼비우스의 팔이었다.

'억제 해방-6써클.'

전성기이자 현생의 전력이 개방된 순간.

-끼긱!

충돌한 손을 밀어내는 것이 아닌 흘려내듯.

교묘히 중심축을 비틀어 힘을 흘려보내니 충격은 완화되고, 공격을 가한 손은 뭉개진 채로 옆으로 비틀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자세가 커진 순간에도 언데드는 발악을 멈추지 않는다.

-쩌저저적!!

가슴팍이 벌어지며 흉하게 드러나는 갈비뼈.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혓바닥들이 촉수다발처럼 엮이며, 터져나온 썩은 피를 군침 삼아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식탐에 젖은 입이 셰인의 몸을 뭉개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았으니.

-휘리릭!!

회전력을 가속도에 더해진 순간.

바닥을 디딘 한쪽 발이 몸을 튕기고, 이윽고 다다른 자리에서 반대쪽 다리의 탄력에 의해 그 몸이 공중으로 비상한다.

그 찰나의 순간을 잡아채지 못한 입은 허공을 씹을 뿐.

그 직후 회전하는 셰인의 몸이 위로 솟구쳐 오르고, 양 손에 매어진 톤파가 분리되며 만들어진 사슬이 그 주변을 둘러치기 시작하였다.

-촤르륵, 철컥!!

회전의 힘을 받아 거체를 휘어감싸는 사슬 무더기.

그로 인한 속박에 저항하기 전, 이윽고 땅에 착지한 셰인이 제 양손에 전력을 실어 넣었다.

'중첩 3써클-투구.'

양손에 집약된 마나의 파동이 폭발하는 순간.

-투콰가가강!!

그로 인해 던져진 살덩이가 주변을 뒤덮는 시체무더기를 뚫고, 이내 일대의 공간을 뒤집기에 이르렀다.

공간에 범람하는 유혈과 육편의 파도.

시체의 산 내부에 고인 썩은 피들이 걸쭉한 폭포가 되어 바닥에 흘러내리 무렵, 세인이 제 몸을 덮은 오물을 게워내며 톤파를 고쳐 쥐었다.

-카르, 크르…….

난동에 의한 소음과 붕괴는 잠시에 불과할 뿐.

그것이 마치 잠들어 있던 정신을 깨우기라도 하듯, 사방에서 시체들이 부르짖는 신음과 비명이 귓속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얼씨구? 여기 장례 잘한다고 소문이라도 났냐?"

애초에 시체들이 무더기로 있던 곳이 아닌가?

움직이지 못한다면 아예 움직일 수 있는 기관이 망가졌을 때겠지만, 이전에 맞닥트렸던 거인들은 아예 주변에 있는 놈들을 흡수하며 제 신체를 구축했었다.

시간이 갈수록 이곳에 있는 시체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그들 중 상당수가 이전에 쓰러트린 놈들 못지않은 저력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할 터.

하지만 공간이 원체 넓은 만큼 출구를 찾기도 쉽지 않다.

운이 없는 건지, 아니면 누가 의도라도 한 건지…….

뭐가 됐건 이곳에 추락한 순간부터, 기회를 잡기 전까진 무작정 달려드는 놈들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 이렇게 된 거……. 내 너희들의 고해와 한탄 정도는 들어주도록 하마."

그 점을 자각한 셰인이 시체들의 군세를 앞둔 채로, 자신의 양손에 쥐어진 무기를 다잡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들어와 이 산송장 새끼들아. 혓바닥만 빼고 모조리 씹어 먹어줄 테니까."

그 의지에 반응하는 마나의 격류가, 마치 고삐 풀린 군마처럼 사납게 날뛰기 시작했다.

그래, 이어지는 건 그것만이 전부인 사투였으니…….

* * *

-이거, 꽤 놀랍구나.

그러한 난동질이 끝에 다다랐을 무렵.

지나친 모든 자리에 재기불능의 시체를 한가득 쌓은 셰인이, 이내 그들의 사이에서 유일하게 서 있는 이를 응시하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전까지 날뛰던 행동이 무색하게도 아주 고요하게.

그렇게 숨만을 다스리며 제 앞에 나타난 그림자를 응시할 뿐.

-설마 이 몸이 사력을 다하여 만들어낸 군세를 전부 전멸시킬 줄이야.

"……너."

창백히 물들어진 피부에 썩은 눈동자.

목에 나 있는 밧줄 자국은, 그가 교수형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체나 다름없는 꼴로 그는 말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만난 시체들처럼 단순히 미련을 흘리는 정도가 아닌, 완벽하게 이성을 유지하는 듯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하면서.

-하지만 안타깝구나, 이 힘에 익숙해질 시간이 좀 더 주어졌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를 터이건만…….

그래, 분명 마주해 본 적이 있는 자였다.

거의 지나가듯 이루어진 만남이었지만, 셰인의 입장에선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는 상대.

"…진짜, 너도 참 대단한 새끼다."

과거의 악연이 이렇게까지 질길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나 이 자가 의외의 복병으로 다가오는 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누가 그 새끼 핏줄 아니랄까 봐 그냥 곱게 뒤질 것이지, 뭐 그리 미련이 많아가지고……."

-호오, 이 몸에 흘렀던 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가?

의외인 듯 감탄을 흘리는 남자가 제 몸을 스윽 내려다보았다.

매립지에 방치되어 깡마르고 딱딱해진 육체.

스스로도 이미 정상적인 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의 머릿속엔 기억이라 부를 것이 선명히 떠오르고 있었다.

-이스칸다르 라이히……. 그래, 이 몸의 주인은 그런 인물이로군.

그래, 마치 살아있기라도 하듯 아주 선명하게.

그 의식이 너무나도 선명한 나머지, 그는 자신이 가진 의식조차도 '복제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이런 몸으로나마 잠식한 힘을 이용해 군세를 만들 정도라니……. 아무래도 이 몸의 주인은 상당한 야심가였던 모양이군.

그 힘을 알고 있는 셰인으로선 감탄을 넘어 경악마저 느껴질 광경이었다.

페니 플레밍.

당시 섬에 있었던 그녀조차도 이 정도로 선명하게 의식을 유지하지 못했건만, 정작 지나치듯 잡아낸 작자가 그녀조차 넘보지 못한 경지에 도달하다니.

-그런 야심가의 미련을 빌어 만든 군세를 무참히 쓸어버리다니. 자네도 참 야박하기 그지없는 인간이로군.

그런 남자의 의지를 이어 탄생한 존재의 말을 들은 셰인이,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나 같아도 억울해서 곱게 뒤지진 못하겠네."

사실상 전생에 이어, 현생에까지 같은 인물에게 일을 저지당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

그 점을 자각한 셰인이 실소를 터트리며 주먹을 거세게 틀어쥐었다.

"남길 말은 없냐?"

증오나 원망…….

그런 감정 따윈 쥐뿔도 느껴지지 않는다.

전장에서 만난 적군이란 그저 서로 다른 진영에 속해 있는 인간일 뿐.

의외의 복병으로 다가온 게 짜증이 나긴 하지만, 그와 별개로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낸 집념은 존경마저도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러니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유언 정도는 들어주리라.

설령 기억을 이어받았을 뿐인 존재일지언정, 그런 식으로나마 유지를 이었기에 의미를 전할 수 있는 것이니.

-유언이라…….

그 물음에 라이히의 의지를 이은 망령이 쓴웃음을 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내 후회 한 점 없이 살았지만, 그래도 내 사후에 조의를 표해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건 서글픈 일이로구나.

이름조차도 남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여, 끝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다…….

그건 지도자를 지향한 이들에겐 그 무엇보다도 두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한 미련으로부터 깨어난 존재를 맞닥트린 셰인이 코웃음을 터트리며, 제 틀어쥔 주먹을 머리깨까지 들어올렸다.

"내가 입장상 조의는 못 해주겠고……."

빠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그렇게 혈관이 도드라질 정도로 주먹을 거세게 쥐며.

"조이 정도는 표해줄게, 이 X탱아."

-콰앙!!

이어지는 후려치기와 함께 시체더미 속에 처박히는 망령.

그 끝내 바들거리던 몸이 제어권을 잃고 축 늘어지는 가운데, 셰인이 지친 몸을 이끌며 매립지의 출구를 향해 차차 발걸음을 옮겨갔다.

'…젠장,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신성력이 없었다면 중도에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앞으로의 여정은 그런 회복력이 있더라도 버텨낼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호흡은 아직 괜찮아. 뼈도 부러진 곳은 없어. 출혈이 좀 있긴 하지만…….'

-주르륵.

복부의 갈라진 틈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

임시로 지져서 막은 부위가 격한 운동과 함께 터진 것이다.

"……망할."

급한 대로 수술실과 연고를 꺼내고 상처를 꿰매는 셰인.

이후 붕대를 감아 응급처치를 마쳤지만, 그 부상에 안주하며 쉴 시간 따윈 없었다.

-카르르아악!!

시체매립지를 빠져나온 이 순간에도, 자신의 살을 탐닉하는 언데드들은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몰려드는 것도 곧이다.

그 점을 자각한 셰인이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쓸쓸히 중얼거렸다.

"지치네, 정말로."

고비를 넘겼다 생각하면 또 다른 적들이 덮쳐오며, 한숨을 돌릴 틈도 없이 위기는 계속해서 덮쳐온다.

전생에도 숱하게 겪어왔던 일이지만, 그 때엔 그래도 의존할 수 있는 동료라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자신의 뒤를 봐주고, 부상을 입은 자신의 몸을 지탱해줄 수 있는 이들…….

그런 이들의 부재를 실감하기에 깨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사실상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야만 한다는 걸.

'……쓸 수밖에 없나.'

그에 생각이 미치기 무섭게, 이윽고 셰인의 떨리는 손가락이 자신의 관자놀이로 향해지기 시작하였다.

7써클.

그 경지를 해방시킨다는 건, 사실상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로 돌입한다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어쩌면 격전지까지 가기도 전에 쓰러질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높은 확률로 그럴 테지만…….

'…이미 각오한 바다.'

애초에 그만한 각오도 없이, 혼자서 군세를 상대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일 터.

그 점을 명시한 셰인이 이내 이를 악 물며 제 머리에 손가락을 찔러 넣으려던 직후, 문득 셰인의 시선이 복도의 반대편으로 향해졌다.

"……어?"

어둠만이 자리해야 할 장소를 서서히 밝혀가는 빛.

그 직후 입 밖으로 내뱉어지는 탄성과 함께, 제 머리로 향하려던 손끝에 주저가 어려갔다.

이 어둠 속에서 자신을 제외하곤 결코 나타나지 않으리라 여긴 빛이,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자리한 곳에 도래하였기에.

"무리를 하기엔 너무 빠르지 않은가?"

그 빛과 함께 이루어진 속삭임과 함께 몰려드는 언데드들이 도륙 내어지고.

이윽고 잿가루를 퍼트리는 이들의 사이로 누군가가 발을 옮겨오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네 친우여. 그동안 잘 지내었는가?"

낯설지 않은 목소리로 반가움을 내뱉는.

자신과 같은 금발을 가진 구릿빛 피부의 청년이.

* * *

같은 시각, 바빌론의 최상층.

-콰드득!!

마주한 모든 잠금장치를 부수고, 이윽고 철창마저 잡아 뜯어 부숴낸 괴물.

검은 털이 돋아난 괴물은 오롯이 본능에만 충실한 존재였으며, 그 존재가 추적하는 것은 오롯이 제 코끝에 맡아져 오는 선명한 피 냄새뿐이었다.

그로부터 돋워지는 식욕을 쫓아 도달한 곳은 성의 가장 깊숙한 곳. 그리고 그곳에 가두어진 채 널브러져 있는 한 남자…….

오랫동안 방치되어 쇠약해진 몸 곳곳에 나 있는 침 자국은, 모종의 수단으로 피가 뽑혀져 나갔음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크르르, 아…….

그래, 아무리 현 시대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자라곤 하나, 그 또한 몸이 건재할 때의 이야기.

어떤 이유건 빈혈로 인해 무기력한 상태라면, 그저 다가서는 것만으로 식욕을 채우기에 충분하리라.

-크르르…….

그렇게 차차 발걸음을 내딛는 가운데, 축 늘어진 남자가 힘겨이 고개를 들어올리며 다가오는 검은 괴물을 응시하였다.

곡선을 그리는 뿔에 검은 털을 가진 거체의 괴물을.

"……안."

그를 눈에 새긴 남자가, 제 기억 속에 존재하는 기시감을 입밖으로 힘겨이 내뱉어 말했다.

"안, 젤라?"

그 이름이 그의 입에서 내뱉어진 순간 이성은 바로잡히고.

-스르륵.

부풀었던 검은 육체가 가라앉으며, 그 빈자리에 이윽고 젊은 여인의 형상이 자리 잡게 되었다.

넝마나 다름없는 거적을 걸친 몸엔 식겁함이 느껴질 정도로 상처가 가득한 상태.

"알아, 보시는군요."

"……잊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괴물이 되어서도 인간으로써의 마음을 잃지 않은 옛 친우가 아닌가?

그런 그녀에게 질리언이 느낄 것은 오롯이 반가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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