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237화
지하의 타르타로스에 비하면 지상의 바빌론은 상대적으로 안전할 것이다…….
처음 상정했던 그 추측은 절반만 맞는 것이었다.
실제로 바빌론 내엔 키르슈타인이 진중히 여긴 듯한 생존자들이 소수 존재했지만, 애초에 언데드란 생에 대한 갈망이 식인욕구로 변질된 존재들.
살아있는 존재를 추적하는 그들이 바빌론으로 몰려들었으며, 그들에게 대부분의 생존자들이 이미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 가장 깊숙한 곳에 가두어진 질리언이 안전한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그런 안전도 결국엔 시간문제에 불과할 뿐.
"……윽."
그렇기에 지나쳤던 길을 서둘러 되돌아가려 했으나, 공교롭게도 둘 모두 한계까지 지친 상태였다.
현기증에 비틀거리는 질리언.
안젤라가 힘겨이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괜찮, 으신가요?"
"견딜 만 해. 그냥, 몸에 피를 너무 많이 뽑아가서 현기증 좀 날 뿐이지……."
몸 곳곳에 나 있는 주삿바늘은 역시 피를 뽑아내며 난 것인가.
안젤라가 지친 몸을 이끌며 그의 상처에 손을 가져갔지만, 이제는 몸에 축적한 신성력도 고갈되어버린 상태다.
제 몸 하나 돌보지 못하는 마당에, 어찌 타인을 향한 신성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키르슈타인 공작이 왜 내 몸에서 피를 뽑아간 건지 모르겠군."
그런 무력함에 대한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는 듯, 질리언이 마저 발걸음을 옮기며 급히 화제를 전환하였다.
상당히 지친 기력이 돋보이는 목소리.
"피라고 한다면, 사용할 곳이야 많죠."
안젤라가 피로에 지친 목소리로나마 그에 장단을 맞춰주었다.
"하기야, 동물의 피는 요리에도 쓰이기도 하니까……."
"먹는 정도면 귀여운 수준이죠. 제가 말하는 건, 기록을 활용한 거예요."
"기록……?"
"피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있으니까요."
피라는 건 유전자를 포함한 여러 정보가 깃들어 있는 물질.
그것을 이용하면 흔적을 조사함으로써 자취를 확보하거나, 그 피와 일치하는 인물을 추적하는 것도 가능하다.
거기에 더해 이단의 지식을 이용한다면 혈청을 이용해 약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극단적으로는 아예 무에서부터 유를 창조하듯 복제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니.
'그리고 언데드들을 만드는 윤회력의 활용에도 혈액이 사용되는 경우가 있었죠.'
낡은 시체보다는 싱싱한 혈액 쪽이 힘을 사용하기 적합한 매개가 되어주니까.
분명 그에게 피를 뽑아간 것도 그를 활용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동기가 사용하는 것처럼.
"안젤라는……."
그에 위기감을 느낄 무렵, 안젤라의 설명을 들은 질리언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참, 많은 걸 알고 있구나. 우직하게 검만 휘둘러온 나와는 달리…."
"…당연한 거예요. 심문관이니까."
심문관은 이단의 지식을 습득할 것이 허락되는 존재.
그들이 가진 지식량은 어지간한 학자를 뛰어넘으나, 그것을 활용해야 할 곳은 오롯이 이단을 징벌할 때뿐이다.
그 외의 방식으로 사용하는 건 명백한 위법이자, 신성력을 내려주는 주의 의지에 반하는 행위일지니.
"그리고 전, 그런 지식을 이용해서, 당신을 이용하고자 했었죠……."
"……."
"…원망하셔도 돼요. 당신에겐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고결함을 가져야 할 신자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자의 호감을 사고자 독을 내어준 것이 아닌가?
"내가 할 말이야."
하지만 정작 질리언이 그 날 고발을 했던 건 그녀에게 배신감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릇된 태생으로써 신앙을 각성한 몸.
감옥에 가두어진 후에도 그 신앙을 잃지 않은 만큼, 그녀가 그런 일을 한 데엔 분명 그럴 만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이제까지 함께해 온 너를 고발했으니까."
그래, 죄책감을 가져야 할 건 오히려 자신이었다.
당시에만 해도 그가 보낸 편지를 거짓으로 취급하고, 보다 오래 연을 맺었던 그녀와의 관계를 생각하며 결별을 선언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럴 만한 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안젤라는 그의 어리석음을 비난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보다도 더 현명했다고…….
그 당시의 소년이 어른이 되어 발하는 빛을 떠올리는 그녀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도련님, 참 의젓하게 크셨더라고요."
"아, 그래……. 그 아이를 만났다 했었지."
"네, 키도 저보다 훨씬 커지셨고……. 전장에서 저희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서인지, 몸도 마음도 무척이나 강인해지셨어요. 더군다나 신앙을 각성했다니……."
역시 그 날에 느꼈던 고결함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회고에 애틋함을 느낄 무렵, 질리언이 그녀로부터 말없이 시선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이단자를 증오하리라 여겼던 그녀조차도, 자신처럼 그가 가진 고결함에 매료되었다는 걸 알아버렸으니.
'하지만 그것도 그의 정체를 모르기에 가질 수 있는 마음이겠지.'
그 정체를 알게 된다면 지금의 평가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행여나 그런 의심이 어긋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우려가 되었건만…….
"그러고 보니, 도련님에게 들었는데……."
정작 안젤라는 그에 대한 걱정을 읽지 못하고, 고개만을 축 늘어트린 채 화제를 전환하고자 하고 있었다.
"페니, 기억하세요?"
"……."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자세한 사정은 전해 듣지 못했지만."
"그래, 일라이가 보낸 편지를 통해 들었어."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다.
블레이즈에서의 성인식을 치르러 갔을 무렵, 당시 인재라 여겨졌던 소년소녀를 모아 결성했던 '때까치'부대.
그 부대엔 자신과 안젤라를 포함하여 일라이, 존……. 그리고 페니 역시도 합류하고 있었다.
그런 옛 전우의 죽음을 이제 와서 알게 되다니.
그에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안젤라가 애써 입가에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편지를 보냈다면,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거겠네요."
"그래, 예정했던 계약은 끝났으니까……. 지금은 고향에서 보육원장을 맡으며 정찰병을 하고 있다더군."
"아하하, 일라이라면 정찰간 곳을 다 뒤집어버릴 텐데, 보직을 잘못 받은 거 아닌가요?"
"어찌어찌 일처리는 잘 되고 있다더군. 존은 사령관의 후임으로 점쳐지고 있다지만 몇 번이고 거절하고 있다던데……."
"그 아이답네요. 저희들 중에서 가장 똑똑했지만 뭣 하나 책임지는 건 정말 싫어했었죠."
"하지만 할 땐 하는 아이였지. 부대에 있을 적에도 그 아이의 작전 덕에 여럿 목숨을 부지했었으니까. 그리고 라이너도……."
문득 이어지던 추억담이 거두어지고, 이윽고 질리언의 말문이 닫혀버리고 말았다.
그 분위기를 읽어낸 안젤라 역시 입술을 깨물며 제 감정을 삭혀갔다.
"라이너 아슬란……. 분명 당신의 종자, 였었죠?"
"그래, 그리고 네 후배이기도 하지."
"교단에선 선후배 관계 같은 건 없어요. 성기사단은 서열을 중시하지만……."
라이너 아슬란.
라인하르트 가문을 대대로 반려로 여겨온 성기사 가문의 차기 후계자이자, 당시 검사였던 질리언의 종자노릇을 했던 어린 소년.
이후 어른이 되어 태양기사단을 이어받았다고 하였지만, 정작 돌아온 것은 순례원정 중 전사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다들, 사라져가네요."
소년기의 마지막에 우정을 다졌던 친우들.
그들과의 작별이 언젠가 기약으로 이어지길 바랐건만, 옥에 가두어진 8년의 시간 사이에 그들은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뒤늦게 접했음에도, 운명은 매정하게 그들의 무덤 앞에서 죽음을 기려줄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우리도…. 사라져갈, 지도 모르죠……."
목소리에서 차차 힘이 사라지고, 이내 그 몸이 털썩 하고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위태롭게 나아가던 발걸음에 완전히 힘이 빠진 순간.
그녀를 뒤따르던 질리언이 다급히 쓰러진 그녀에게로 다가섰다.
"안젤라?"
"두고, 가세요."
온몸이 치명상으로 가득한 데다 체력도 바닥이 났다.
당장 치료가 되지 않는다면 그리 오래 가지 못할 터.
당장 있는 통로야 오는 길에 언데드들을 전멸시켜 조용할 뿐이지, 그마저도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을 보면 시간문제일 것이다.
"……안젤라."
"질리언은, 아직 움직일 수 있죠?"
검을 휘두르는 것도 버거운 상태지만, 퇴로만 잘 찾는다면 홀몸으로나마 도망칠 수 있을 터.
하지만 그런 쇠약한 몸으로 자신을 부축하며 나아간다면 둘 모두 죽게 된다.
"어차피, 전 이제 곧 한계니까, 질리언만이라도……."
그러니 사명을 다한 죄인은 이곳에 두고, 그 혼자라도 이곳을 벗어나기 바란다.
그런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음에도, 질리언은 그 부탁을 거절하며 그녀의 몸을 부축해 주었다.
"질리언……."
"…조용히 해."
이제는 발을 디딜 힘도 없는 몸으로.목 역시 메마른 나머지 말하는 것조차 버겁게 들린다.
"질리언, 그만해요."
그 우직함이 검사와 지도자로선 존경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누구라도 어리석다 여길 일이다.
"당신은, 저랑 달라요……. 그래도 돌아갈 고향과 가족이 있잖아요."
전우라 한들 죄인이 아닌가.
설령 서로의 앙금을 해소했다 한들 이제 곧 죽을 자가 아닌가?
하물며 그에겐 살아서 이뤄야 할 일이 있을 터인데.
"그 아이가 펼쳐갈 세계가, 궁금하지 않은 거예요?"
그걸 위해 자신을 고발했던 것일 터인데.
이 감옥에 저항 없이 온 것도, 그런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 생각했기 때문일 터이거늘.
"……그걸 보고 싶은 건 너 역시 마찬가지잖아."
그럼에도 질리언은 그녀를 부축하던 손을 놓질 않았다.
자신을 구하고자 한 친우를 저버린다니, 그게 비합리적이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만은 그러질 못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만으로 불가능이 가능해질 만큼 녹록하지 않은 세상이란 걸 알더라도.
"이제는, 그 광경을 보지 못하는 녀석들도 있는데."
점차 제 주변의 사람들이 사라져가는.
그 잔혹하고도 고요한 현실은, 그저 어른이 되었을 뿐인 지도자의 마음을 갈수록 무뎌지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마당에 자신을 구하고자 사지로 뛰어들었던 은사마저 제 손으로 내치라니…….
"이제 와서, 함께하지 못할 사람을 한 명 더 늘리고 싶진 않아."
"……."
"……살아도, 같이 돌아가는 거야. 안젤라."
대답은 그것으로 끝.
그렇게 묵묵히 제 몸을 잡아끌며 나아가는 질리언을 응시한 안젤라가, 이내 제 눈을 감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주여, 부디 저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당면한 현실에 느껴지는 무력함을 달래줄 기도 하나.
-절그럭.
그 기도를 조용히 외우며 나아갈 무렵, 저 멀리에서 금속의 마찰음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언데드가 입고 있는 갑주에서 비롯된 것일까?
경계심을 곤두세운 두 사람이 긴장하며 숨을 죽였지만, 그마저도 그리 길게 이어지진 못했다.
'……빛.'
그래, 분명 빛이다.
그들이 걸치고 있는 갑옷에 어린 건 분명 그렇게 정의할 힘이었으니.
"단장님, 저기 사람이……."
"라인하르트 공작님입니다! 공작님을 찾았습니다!"
분명 성기사단이라 칭해지는 이들.
현장에 난입한 그들이 질리언과 안젤라의 곁을 둘러치는 가운데, 혼란을 느낀 두 사람이 그들을 이끌고 나타난 이를 돌아보았다.
성기사를 상징하는 백색의 갑옷을 걸친 남자.
그 굳센 얼굴을 맞닥트린 두 사람의 머릿속에 공통된 이름이 떠올랐다.
"당신은……."
"…라이너, 인가요?"
아니, 이미 장례를 치르지 않았는가?
이 자리에 있는 건 라이너가 아닌 그와 닮은 사람. 그것도 라이너보다도 굉장히 젊은 축에 속하는 청년이었다.
"두 분 모두, 형님을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형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곧 그가 두 사람의 앞에서 무릎을 굽히고, 제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예의를 취하며 말했다.
"저의 이름은 레온 아슬란. 전대인 라이너 아슬란의 뒤를 이어, 새로이 태양기사단의 단장에 오른 아슬란 가문의 성기사입니다."
그것은 제 가문이 보필하는 가문의 수장이자, 자신의 대선배에 해당하는 신자를 향한 예우.
그리고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가족의 친우들을 향한 반가움.
그 정중한 인사를 마주한 두 사람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 있군. 세실과 비슷한 또래의 늦둥이 동생이 한 명 있었다고."
"네, 저도 기억하고 있어요."
얼굴은 물론 분위기도 자신들이 알고 있는 라이너와 유사한 상태.
이윽고 신뢰를 느낀 두 사람의 관심이 주변 성기사들 그에게로 향해졌다.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절조와 리더쉽이 느껴지는 지도.
부하들 역시 그를 진중히 따르는 것으로 보아, 많은 이들에게 신뢰를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주변에 있는 언데드들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이후에도 언데드들이 몰려오겠지만, 그 정도는 저희들 선에서도 처리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래, 언데드란 신성력에 무척이나 치명적인 존재니까.
하물며 전투를 의식으로 삼아 신앙을 가지는 성기사란, 역사적으로도 언데드들의 천적이었던 이들이다.
기사단이 몰려왔다면 토벌은 몰라도 호위 정도는 능히 해낼 터.
그에 대한 자신감을 표출한 레온이 호송을 이어가기 전, 두 사람의 몸에 신성력을 비추며 몸의 상처를 달래주기 시작했다.
그 손에 쥐어진 붕대와 연고는 응급처치를 위해 마련한 물건.
지금은 제국 곳곳에 구급법이 전파되었으니, 성직자 출신자가 다룬다 하여도 별로 이상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치료법이다.
"……호송하기 전에 묻고 싶군."
신경이 쓰이는 건 '그들이 왜 이곳에 있느냐'다.
지금과 같은 시국이라면 더욱이.
"아슬란 단장. 성기사들은 지금쯤이면 전장에 나서야 하지 않나?"
"그 말씀대로, 저희 기사단을 제외한 나머지 성기사단은 전부 전장으로 향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왜 태양 기사단은…."
"알랙산드로스 테라스."
마저 질문을 하기도 전에 이어지는 대답.
제국민이라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이름이 내뱉어진 순간, 치료를 받는 두 사람의 몸에서 큰 경련이 일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가 입에 담은 이름은 이 제국에서 가장 큰 권력을 쥘 것이 예정된 인물이었으니까.
"제 1태자님께서, 키르슈타인 공작이 폐하를 납치한 정황을 확인하여 그 조사를 위해 직접 군을 이끌고 이 영지에 당도하셨습니다."
"폐하가……. 납치?"
둘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듯 레온을 쳐다보았다.
1달간 금식제를 행했던 안젤라는 물론, 질리언 역시 키르슈타인의 감시 하에 엄중히 관리되어 바깥소식을 듣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공작이 황제마저 납치를 했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네, 저희도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습니다만……. 태자님께선 공작령을 압박할 정도의 병력을 차출할 필요가 있다 판단하여 교단과 마탑에 각각 증원을 요청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이 공작령에 오게 된 것은 태자가 이끄는 황도군과 교단 출신의 성기사단, 그리고 마탑 소속의 마법사들.
비밀리에, 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정예병으로 이루어진 대대 단위의 병력이 이 공작령으로 진군한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
하지만 믿기 어렵다 해도 어떤 이유건 제국을 이어받을 이가 내린 명령.
명분이 어떻건, 교단과 마탑의 입장에서도 일단 장단 정도는 맞출 필요가 있을 터이다.
"그런데 설마 언데드들이 들끓고 있을 줄이야……. 키르슈타인이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게 알려진다면 제국이 발칵 뒤집힐지도 모르겠군요."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해도, 무언가를 눈치채고 이곳으로 병력을 이끌고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 선구안을 뒤늦게 눈치 챈 레온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한편으론 그런 명분으로나마 이곳에 올 수 있던 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제 앞에 있는 것은 아슬란 가문의 오랜 반려이자, 제 형이 종자였던 시절에 보필했던 자.
더욱 나아가 친우라 불러도 마땅한 자였으니.
"잠시만……. 태자님께서 교단과 마탑에 의뢰를 했다고요?"
하지만 안젤라는 그에 반가움을 느끼지 못하고, 도리어 심각함에 안색을 창백히 물들이고 말았다.
"아, 네. 지금 둘이 합류된 부대가 외부에서 언데드들이 영지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아니, 그게 아니라."
설명을 하는 레온을 만류하는 안젤라.
이후 힘겨이 이어지는 말은, 자신의 상식선에선 결코 있을 수 없다 여겨지는 것이었다.
"지금, 마탑의 학자들과 교단의 신자들이 협력하고 있다는 건가요?"
만물을 탐구하고자 하는 학자와 교리를 진리라 맹신하는 신자.
그 둘이 블레이즈가 아닌 제국 내에서 협력하여 부대를 이루다니.
황명이 있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