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239화
첫 인상은 소심하고 폐쇄적이라는 것이었다.
그저 사교성이 적어 남들과 어울리지 못한 것이다…….
그런 그녀를 차마 가만히 두지 못하여 다가선 것이었지만, 어느덧 그런 관심은 차차 의심으로 변하게 되었다.
'왜 제 비밀을 알면서도 말씀하지 않으신 건가요?'
그 끝내 그녀가 비밀리에 연구하는 자료를 맞닥트렸을 때에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어린 나이라곤 하나 신앙을 각성하여 정식 신자의 자격을 가진 몸.
그런 자신이 정녕, 이 이단의 땅에서도 허락받질 못할 연구를 보고 침묵을 해야 하는 것인가?
'……저의 부모님도 이단자셨어요.'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명확했다.
그녀 역시도 시작만은 이단자의 핏줄이었고, 그들의 실험체로 쓰였던 존재였으니.
-꾸드득.
그 의지에 기인하듯 부풀어 오르며 나타난 검은 팔은, 당시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그녀의 수치라 부를 것이었다.
'그분들은 저에게 평생이 가도 지울 수 없는 저주를 남기셨죠. 고결함을 상징으로 삼는 신자가, 이런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게 알려진다면 많은 이들이 실망하겠죠.'
설령 신앙을 거머쥔다 해도 이 몸에 흐르는 피를 바꾸진 못하리라.
그런 태생을 바꾸어내는 건 불가능하리라고, 심연 속에서 길러진 악마는 그저 악마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런 분들이라도 부모여서일까요?'
그런 태생을 선사한 부모를 저주할 법함에도, 그런 일을 저지른 이들을 떠올리는 안젤라는 차마 증오라는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실험은 괴로웠지만 자신을 내려다보았던 얼굴은 자상했고.
그 손길엔 빛이 어리지 않았을지언정 무척이나 따스하다 느꼈으니.
'저는, 지금도 그 두 분이 틀렸다곤 생각하지 않아요.'
'틀리지 않았다니, 신자인 당신의 입장에선…….'
'정말로 틀렸다면.'
검게 물들어진 팔에 감돌기 시작하는 새하얀 빛.
그건 분명 신성력이라 부를 힘이었다.
괴물의 몸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릇된 태생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녀는 빛이라는 것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행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태생부터가 잘못된 저에게 주님께선 빛을 내려주지 않으셨을 테니까요.'
그래, 신이란 모든 이들을 공평하게 사랑하니까.
그러니 죄를 정하는 것도, 그 죄에 따른 벌을 내리는 것도 엄연히 인간일 것이다.
이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의 결정이며, 역사라는 근간을 둔 사회의 체계에 따른 결정일 뿐.
세간에서 죄라고 부르는 건 그런 세태의 일환이니, 그 자체로 있어선 안 될 일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요, 페니. 당신이 지향하는 건 그저 모두가 경계할 뿐……. 제 부모님처럼 뚜렷하게 무언가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지식 자체를 습득하는 것 자체를 나무라선 안 되겠죠.'
당시의 안젤라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차마 용서받지 못하고 이단자로 낙인찍히고, 끝내 목숨과 존엄마저 잃어버리고 만 제 부모와 달리…….
그들을 여전히 동정하고 사랑하는 자식 된 자로서, 그와 같은 피해자가 다시 생기지 않았으면 하기에.
'……안젤라.'
하지만 그런 의사를 밝히면 도리어 자신은 이 길을 지향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저는, 안젤라가 용서한다 해도 계속 이 연구를 이어갈 거예요.'
우연찮게 이 머나먼 땅에 와서 발굴하게 된 이단의 지식.
그 지식이 말하는 모든 것이 자신을 매료했으니…….
그 지식이 이 세상에 절실히 필요하다 여기는 그녀는, 분명 자신이 못 본 채 하더라도 이단의 연구를 지향할 게 분명하다.
'그러다가 이후에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요. 자칫 잘못하면 저를 용서해준 안젤라도…….'
'그렇다면 끝까지 숨기세요.'
'……네?'
'끝까지 숨기는 거예요.'
의문을 느끼는 페니에게, 당시의 안젤라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억압에 밀려 사라지지 않기 위해선 순리를 따라야 하고.
그 순리를 거스르고자 한다면, 자신이 외도에 들어선다는 걸 알려선 안 되는 법이니.
'물론 그건 무척이나 고독한 일이겠죠. 아무도……. 그 누구도 당신의 노력을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그 노력에 따른 보상도 존재하지 않을 테고요.'
보상이 없는 고독함이란, 평생을 독방에 가두어진 채 보내는 것보다도 더 괴롭고 외로운 여정이 될 것이다.
이 넓은 세상에, 그렇게 스스로의 세계를 한정시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계속해서 버티는 거예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재'의 이야기일 뿐.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서서히 변화해 간다.
그저 아무도 자각하지 못할 만큼 조용하고 은밀하게 이루어질 뿐.
'언젠가, 당신의 지식이 받아들여지는 날이 찾아올 때까지 계속…….'
그것을 알고 있기에, 안젤라는 제 앞에 있는 이에게 그 고독을 각오하라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날이, 정말로 올까요?'
'반드시 올 거예요.'
다름 아닌 자신이.
'제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세상의 어둠을 이해하고 있는 자신이 높은 곳에 오른다면.
분명 이제까지 놓치고 있던 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 믿고 있었으니.
* * *
'다들, 어디 있어요?'
하지만 그 또한 결국엔 확신이 없는 이상론일 뿐.
그런 식으로 큰 그림만을 그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아둔한 짓거리인지, 그녀는 억압된 이들의 광기를 마주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베르디.'
베르디 하트리스…….
반란군들의 소행에 의해 금식제를 위한 방 안에 한 달을 가두어진 채로, 그 흉측한 곳에서 살아남고자 외도에 들어설 수밖에 없던 아이.
제 생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의 소녀.
'괜찮아요.'
이제는 제 감정마저 죽여 버리고 만 그 소녀는.
그저 인내만을 거듭하며 미래를 상정하는 제 태도가, 얼마나 그릇되었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괜찮을, 거예요.'
그 소녀를 보고나서야 깨달았다.
인간은 과거를 돌아볼지언정, 미래를 정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한 존재라는 걸.
그렇게나 나약하여 제 앞날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으니 신앙에 의존하는 것이거늘.
그런 신앙마저 거부한 이들이 하고자 하는 건, 지금의 체제를 만들어가는 사회 그 자체에 대한 증오일 터인데.
'괜찮아……. 베르디.'
그런 오만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자신이, 이 가엾은 소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넌, 주님께서 구제해주신 거야. 주님께서 직접 축복을 내려주셨으니까…….'
그저 막연하게.
남들과는 다른 길을 지향했다는 마음이 무색하게도.
그렇게 신앙을 통한 구제만을 입에 담는 것이, 그녀가 당면하게 된 현실이었다.
'그러니까 괜찮아. 아무도 널 해치지 않을 거야. 널 해치려는 자가 있다면 모두가 나서서 지켜줄 테니까…….'
그러지 않더라도 그래야만 했다.
그런 식으로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 제 앞에 있는 이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그래, 그것이 악마로 태어나 성자를 꿈꾸었던 여인의 말로였다.
그 부푼 이상을 붕괴시켰던 건, 다름 아닌 자신이 살아가는 현재에 비극을 겪었던 한 소녀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잘못 생각했던 거야.'
변화를 추구하는 중에도 고통받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 또한 변화를 위한 희생이라 받아들이기엔, 줄곧 억압된 이들의 광기는 너무나도 뒤틀려 있었다.
그들 또한 현실의 부조리를 견디지 못해, 미래를 바꾸기 위해 싸우는 거라지만……. 정녕 그걸 위해 누군가의 미래를 빼앗는 것이 허락되는 일인가?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아.'
그런 게 허락된다면 이 세상 자체가 잘못된 것일 테니…….
그런 세태에 순응하는 것조차 누군가는 어리석다 부르겠지만, 안젤라는 차마 제 앞에 있는 어린 소녀를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 소녀를 떨쳐내야만 이뤄야 할 세상을 살아갈 각오를 발휘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자신에게 찾아온 이 시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렇게 되뇌고, 확신하며 마음을 다져왔건만……
"이어……."
이 순간에 찾아온 예상치 못한 만남에,
"이어지고, 있었어……."
차마 제 신조가 무너지는 것을 막지 못한 그녀의 입에서, 이윽고 애절한 통곡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안젤라?"
그저 손아귀에 담긴 알약 하나에 눈물을 흘리는 안젤라.
그를 돌아본 질리언이 영문을 알 수 없는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래, 그는 모를 것이다.
페니는 정말로 자신의 충고를 받아들여 줄곧 자신의 연구를 숨겨왔으니까.
자신이 그 날의 약조마저 망각하며 이단의 정벌에 힘을 쓰는 중에도, 그녀는 자신이 언젠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란 믿음을 가지고 혼자서 연구해 온 것이다.
그 끝에 비참히 목숨을 잃어가면서도…….
그럼에도 그 연구를 이어받을 누군가를 기다리고자, 그 연구마저도 남들의 눈에 들지 않는 곳에 숨기면서까지.
"죽은 게 아니었, 어……."
"무슨……."
"살아, 있어."
그래, 그저 자신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었을 뿐. 세계는 분명 변하고 있는 것이다.
억압에 의해 무너진다 해도 그 잔재는 남고, 그 잔재를 이어받을 시대는 언젠가 찾아오는 것이다.
다름 아닌 고결한 의지를 지니고 있는 이에게 이끌린 이들이.
그들 모두가 합심하여 이끌어간 시대로부터.
"그 의지가, 살아서 저희들에게까지 이어져 온 거야……."
그러한 깨달음이, 이윽고 입에서 흘러나오는 흐느낌을 서러운 비탄으로 바꿔가기 시작했다.
이 순간 찾아온 장엄한 기적을 오롯이 혼자만이 느끼고.
그렇게 혼자만이 되뇌면서.
* * *
그리고, 타르타로스의 최심부.
-크르와아아악!!
깊숙이 들어갈수록 더욱이 늘어나는 시체들.
그들을 지친 몸으로나마 하나씩 제거해가는 셰인이, 숨을 돌릴 여유를 확보하고자 제 배후에 있는 자에게 등을 기대었다.
신성력을 품은 검을 틀어쥐고 있는 제복의 남자에게 의지하며.
"상당히 지쳐 보이는군."
"그럼 안 그러겠냐? 여기까지 오는 데에만 수백 마리는 족히 때려죽였는데."
그것도 통로에 있는 이들만 세었을 때의 이야기다.
라이히의 망령이 구현했던 군세까지 합친다면 천 단위는 가뿐히 다다를 터.
도리어 그 정도까지 상대하고도 움직일 여력이 남아있다는 것이, 그의 유일한 동행자인 잭에겐 경이롭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 타르타로스에 직접 들어온 건 처음이다만, 아무래도 여기 들어오기 전의 각오가 부족했던 모양이로군. 설마 이렇게나 넓은 공간에 이렇게나 많은 죄수가 가두어졌을 줄이야."
-서걱!
클라우디아를 거세게 휘둘러 앞서 다가오는 언데드를 베어넘기는 잭.
그 직후 측면에서 다가오는 언데드를 인지한 순간, 셰인이 그곳을 향해 톤파를 변형시킨 총을 발포해 그들의 머리통을 무참히 날려버렸다.
"죄수들만 많겠냐. 죄수였던 것들도 사방 천지에 다 있던데……."
-끼리릭, 철컥.
다시 무기를 변형시켜 사슬의 형태로 바꾸는 셰인.
그것이 채찍처럼 휘둘러지자 언데드들의 몸이 도륙 내어지고, 한 번에 도려내지 못하는 적은 그대로 휘어 감싼 후 몰려드는 언데드 무리를 향해 투척시켰다.
대찬 충돌과 함께 산발하는 언데드들.
그들의 사이로 뛰어나선 셰인이 마저 몰려드는 언데드들을 저지하며, 셰인이 나아갈 수 있는 활로를 열어주었다.
"따지자면 이들도 죄수였던 것들이 아닌가?"
"…네가 시체매립지에 있던 숫자를 봐야 했어."
"아아, 그래. 그 곳에서 몰려드는 것들을 막느라 황도군도 진을 빼고 있지."
어쩐지, 이 깊은 곳까지 혼자서 왔다 했더니.
이곳에 온 이유가 엄연히 미행이 아닌, 황도군을 이끌 정도로 중대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런 상황에 그 혼자만을 보낼 정도로 상황이 꼬여버린 것뿐.
"가까스로 나 혼자만이 이곳에 왔다만……. 자네를 만나지 않았다면 꽤나 골치를 썩었을지도 모르겠군."
숨을 바로잡으며 클라우디아를 휘두르는 잭.
그 빛이 발하는 궤적을 지켜보던 셰인이 자세를 고쳐 쥐며, 제 손에 쥔 톤파를 질끈 틀어쥐었다.
"그런 것보다 매립지를 보고 뭔가 드는 생각은 없어?"
"이 제국이 참으로 많은 이들을 숙청했다, 라는 것을 말인가?"
"잘 알고 있네."
으름장을 놓으며 달려드는 언데드를 후려치는 셰인.
이후 함께 나아가는 잭이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얘기했다.
"……대륙 하나에 비하면 적은 양이지."
"그 말은 좀 빡치네. 목숨을 숫자가 아닌 비율로 따지는 건."
"정치에선 그럴 수밖에 없는 법이지. 의사인 자네에겐 미안한 소리다만……."
"얼씨구, 황실의 개가 의사에 대해서 뭘 안다고 떠드실까?"
그리고 병사 주제에 정치라는 말을 입에 담다니.
자칫 쿠데타라도 일으키는 게 아닐까 우려가 들 정도다.
"…황도군은 왜 여기까지 온 거야?"
그래, 지금의 물음은 그런 우려 역시 뒤섞인 것.
그 물음에 잭이 곧장 대답했다.
"머지않아 제국을 이끄실 분의 명이 있었기 때문이지."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셰인의 우려 역시 반쯤은 사실이었으니…….
"그저 건강상의 이유로 예술제에 참여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막상 방에 찾아가 보니 그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그 종적이라도 쫓고자 왔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태자님께서도 저지하고자 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나?"
"하하, 그래서 그 잘나신 태자님께선 계승식이 얼마 안 남은 마당에 반란이라도 저지를 생각이란 거야?"
"의혹이 사실이 된 참이니 그것도 각오해야겠지."
아직 계승식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금의 황제는 엄연히 카이네르 테라스이다.
그가 언데드의 군세를 일으키는 사술에 손을 뻗었다면, 황제를 섬기는 이들은 그 사실을 축소시켜 보고하거나 그것을 지지하려 들 터.
결과적으로 내란은 더한 혼란 속으로 접어들 것이며, 그걸 저지하기 위해선 지금의 사실을 공표하여 황제를 직접 황좌에서 끌어내려야 할 것이다.
설령 머지않아 계승식이 예정되었다 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이제 곧 제국을 이끌어야 하는 몸이기에 더욱이.
"……그것 참 정의로우신 양반이군. 얼굴은 모르겠다만."
-쿠궁, 쿵!!
이윽고 도달한 통로의 끝에서 출입문을 닫아버리는 셰인.
그 후 몰려드는 언데드들이 아우성을 치며 문을 두드리는 가운데, 그 문을 함께 등을 기대며 닫아낸 잭이 숨을 돌리며 셰인을 돌아보았다.
"그럼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 이제는 자네 차례인가?"
적어도 이 잠금은 바로 풀리지 않으리라.
겨우 몰려드는 언데드들과 격리되었음을 자각한 잭이, 그 순간의 여유를 빌어 셰인을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셰인 골드리안. 자네는 무슨 이유로 이곳에 온 거지?"
이단자이자 성자.
그리고 '과거에서 온 존재'는, 왜 전장이 아닌 이 위험한 곳까지 들어온 것일까?
"자네는, 폐하를 만나서 무슨 일을 할 생각인 건가?"
잭에겐 그것을 알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황도군의 기사라는 거짓된 신분이 아닌, 머지않아 이 나라를…….
그리고 난세를 이끌어갈 군주가 될 자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