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242화
검이 휘둘러지는 찰나의 속도는 음속의 몇 배.
예리하게 쏘아진 검기는 닿은 모든 것을 자그마한 틈을 기점으로 전부 갈라버린다.
물질도, 공기도, 심지어 공간마저도.
그렇게 만물을 가르는 일격은 지나친 자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일시적으로 진공상태로 만들어버리니.
-쿠웅!!
그 비워진 공간에 공기가 채워지며 발생하는 난기류의 폭풍.
그 거센 재해를 동반한 일격을 막아낸 건, 다름 아닌 8써클의 마나를 집약시켜 벼려낸 한 자루의 칼날이다.
-쿠콰가가강!!
공격과 방어의 충돌.
그로부터 궤적이 틀어진 참격이 천장에 충돌하고, 뒤를 잇는 폭풍의 향연이 공간을 어지럽히기 시작한다.
무너져 내린 천장에 균열이 가해지며 낙석이 쏟아지려는 순간…….
아니, 그 붕괴 또한 지금 이 순간엔 어디까지나 조짐에 불과할 뿐이다.
그 예정이 이루어지기도 전, 검기를 튕겨낸 왼손을 거둔 셰인이 다리의 축을 돌려 오른손을 전방으로 뻗었다.
그 손에 쥐어진 건 두 개의 총구가 뚫린 총.
두 개의 톤파를 엮어 만들어낸 '더블배럴 샷건'이다.
-콰아아앙!!
거센 격발음과 함께 쏘아진 마나의 산탄이 갑주 곳곳에 충돌.
그 내부를 헤집고 들어간 물리력의 덩어리들이 추가적인 폭발을 일으켜, 적중한 자의 몸 곳곳에 터무니 없는 충격을 일으켰다.
-무슨……!
탄속도 폭발도 갑작스럽기 그지 없는 공격.
하지만 아무리 피해를 입었다 한들, 윤회력을 통해 구축된 육신은 힘만 보충된다면 재구축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찰나의 반격에 의한 부상 따윈 문제될 것이 없을 터.
-철컥!
그래, 신경을 써야 할 건 막 분리된 샷건을 톤파로 분리시키며 달려드는 남자.
-어딜 감히……!!
그에 격노하며 행동을 취하려던 직후.
-파팡!
발치의 마나가 기폭하기 무섭게 그 몸이 잔상이 되고.
이윽고 측면에서부터 느껴지는 살기에 오싹함을 느낀 볼레로가, 제 옆구리에 검을 세워 공격을 막아낼 준비를 취했다.
-콰앙!
아니, 옆이 아닌 아래.
로우킥에 의해 균형이 무너지기 무섭게, 전방에서부터 휘둘러지는 톤파가 그의 턱을 가격하여 고개를 밀어내었다.
-퍼엉!
그 뒤를 이어 턱을 노리고 쏘아진 총탄.
급소를 노린 공격을 고개를 비틀어 피해내고, 그 직후 휘둘러진 검이 셰인의 톤파와 충돌을 일으켰다.
-쿠궁!!
고작 한 번.
두 사람의 충돌에 의한 충격만으로 발이 디뎌진 땅에 거센 균열이 일어나니.
그런 찰나에 이루어진 공방은 전투에 조예가 깊지 않은 이들은, 감히 눈으로 쫓는 것조차도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
-이……!
뒤늦게 당황하며 힘을 끌어 모으는 제레프.
하지만 그 순간에도 셰인도, 그리고 볼레로 역시 서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저 서로를 노려본 채 무기를 틀어쥘 뿐.
그 순간이 찾아온 건, 고작 첫 공방 이후의 대치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5초 내외다.
-쿠과가가강!!!
잔상과 잔상의 충돌.
그로부터 터져 나온 파공성조차 뒤따르는 굉음에 삼켜지고, 소리의 연쇄적인 충돌은 그 자체로 폭풍이 되어 공간 전역으로 뻗어져나간다.
그 여파만은 천장을 넘어, 참격에 의해 십 수층의 붕괴가 이루어진 미궁에도 전해질 정도.
하지만 붕괴되어 쏟아져 내리는 파편 중, 그 어느 것 하나 그들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바스러지며 먼지가 되듯 흩어지고 있다.
붕괴의 피해마저 상쇄할 정도로, 두 강자의 충돌이 만든 파장은 터무니없이 거센 것이다.
-쿠구궁!!!
그 중심지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난전. 충돌할 때마다 서로의 몸을 깎아내는 살벌한 공격의 연속.
스치는 순간 치명타로 다가오는 충격마저 물리력의 격류에 흘러가나, 그 반동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생명력이 소진되어가는 게 느껴졌다.
'마나를 모을 새도 없다.'
손끝에 약간이라도 모이면 휘두르고 폭발시킨다.
8써클이라는 경지에 올랐음에도 큰기술을 날릴 시간조차도 없다.
숨통을 도려내는 건 얇은 바늘이라도 충분하고, 상대 역시 그 점을 알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초 단위를 넘어 0.1초…….
혹은 그 이하의 시간에 걸친 수 싸움.
그를 넘어 의식조차도 아닌 신경의 반응에 의존하는 공방.
그걸 버텨내기엔 지금의 제 육체란 너무나도 나약하다.
검과 충돌하는 톤파의 전율에, 그 격통이 신경을 억눌러대니 체내의 혈액이 거꾸로 솟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런 반동을 참아내면 우위를 점하는 건 다름 아닌 자신.
치열한 난타의 끝에 볼레로의 몸이 밀려나가고, 그 손에 쥔 피의 검에 마저 균열이 일기에 이르렀다.
'이 녀석도, 이길 수 있어.'
그래, 이 순간 우위를 점하는 건 자신이다.
전생에 감히 범접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그 터무니없는 강자조차도 엄연히 인간임이 증명된 순간.
설령 터무니없는 재능을 갖췄다 할지언정, 그 역시도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는 필멸자인 것이다.
'조금만, 더……!'
그러한 확신에서 비롯된 승기를 바로잡았을 무렵.
"쿠흡!!"
가빠오던 숨을 버티지 못한 입에서 거센 기침이 터져 나오고, 그로 인해 몸이 주춤거린 순간 맹공이 멈춰졌다.
과호흡에 의한 산소포화. 그럼에도 억지로 호흡을 이어간 나머지 부하가 일어난 폐의 손상.
그로부터 이루어진 각혈에 만들어진 빈틈을, 구시대의 강자는 결코 놓치지 않았다.
-쿠웅!!
그대로 이어지는 발차기와 함께 밀려나가는 셰인의 몸.
그 뒤를 추적하듯 휘둘러지는 검을 응시하는 셰인이, 거세게 뛰는 가슴을 움켜쥐며 이를 깨물었다.
'11초 경과.'
그렇게 솟구치는 각혈을 도로 삼키며 생각한다.
'지금부터…….'
이 순간부터.
'지금부터는 넌센스다.'
줄곧 상정해둔 한계점을 돌파할 각오를 취해야 한다는 걸.
-쿠궁!!
가까스로 치켜세운 톤파와 충돌하는 검격.
그 궤적을 교묘히 틀어낸 셰인의 반대쪽 톤파가 볼레로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콰앙!!!
그 일격이 머리를 강타했으나, 그 충격은 끝내 투구와 강체술에 의해 상쇄되었으니.
그래, 아무리 출력을 높인다 해도 불안정하다면 유효한 피해를 입힐 수가 없다.
그 점을 되뇌었음에도, 셰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향한 반격을 이어나갔다.
'13초.'
결투가 아닌 전쟁에서의 승리를 갈망하며.
'15초……!'
그렇게 마음속으로 이어가는 초세기의 수치가 하나씩 오르고, 매 순간마다 몸을 들쑤시는 격통이 곱절로 늘어가는 게 느껴진다.
호흡에 심혈을 기울일수록 집중이 흐트러지고, 의식마저도 차차 희미해지니.
'17…….'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다.
몸이 버티질 못한다면 오기로라도 버텨내며, 그렇게 거듭 힘을 실어 넣기를 반복한다.
-촤르르!
그런 저항을 간과하지 못한 것일까?
무너져 내리는 공간을 수습하던 제레프가 뒤늦게나마 셰인을 향해 사슬을 쏘아 보내었다.
제 생에 최고로 치열했던 18초의 시간을 넘어선 순간.
-강하구나, 정말로…….
뒤이어 신경을 쓸 부분이 분산되기 무섭게 몸이 비틀거리고, 그 순간을 노린 볼레로가 날이 벼려진 칼로 셰인의 톤파를 강타하였다.
마나를 밀집시키지 못한 가드는 그대로 분리.
팔을 빼내어 피해를 무마시켰지만, 이어지는 후속타까지 피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정말로 강해. 무리하고 있다곤 하나 영웅에 필적하는 강함이라니…….
그렇게 밀리는 적을 상대로도 감탄을 금치 못할 수밖에 없엇다.
제레프 온슈타인.
그에게 있어 성경 속의 영웅이란 그 자체로 인류의 정점, 그 어떤 이도 꺾을 수 없는 용장이라 여겨지는 자였으니까.
그런 자의 최대 전력을 상대로 20초 이상을 버티고 있는데, 경의가 느껴지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겠는가?
-허나 내 너희들의 속셈을 눈치 채지 못할 줄 알았느냐!?
하지만 그 또한 결국 감탄으로 그칠 뿐.
제레프의 몸이 휘둘러지기 무섭게, 옥좌를 향해 달려 나가는 토머스의 앞이 무수한 비석으로 틀어 막혀버렸다.
볼레로와의 공방 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공간.
그러한 혼란과 볼레로를 보조하는 데에 신경을 기울인 틈을 타 접근하려 했으나, 제레프는 그 과정에도 토머스를 끊임없이 견제하고 있었다.
아예 사각을 노린다면 모를까, 인지되었다면 대처를 하는 건 어렵지 않은 상태.
그렇게 길을 틀어막은 비석을 심문관들이 몸을 처박아 붕괴시켰지만, 그 때엔 토머스 역시 한계에 부닥쳐 바닥에 몸을 주저앉히고 있었다.
그에 붉은 안광이 승기에 찬 눈웃음으로 뒤바뀐 순간.
'지금, 입니다.'
토머스가 고개만을 셰인에게로 향하며 제 입을 움직였다.
그래, 지금의 이 싸움은 결투가 아닌 전쟁.
-퍼어엉!!
그것을 흐릿한 의식으로나마 되새긴 셰인이 볼레로의 옆을 지나쳐, 그 사각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
움직임에 반사적으로 검을 치켜세우는 볼레로.
찰나에 배후를 노리는 것을 견제하는 것이었으나, 정작 뛰쳐나가는 그의 배후가 아니다.
저편에 자리하고 있는 옥좌.
자신이 노리는 '주군'이다.
-콰아아아!!!
그 점을 자각하기 무섭게 몸에 어린 마나가 요동쳤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태.
이전까지의 공방 속에서 그는 '자신이 질 지도 모른다'라는 가능성을 인지하였고, 그로부터 비롯된 경계심은 이 찰나의 순간에 허점을 만들어내었다.
-지이잉!!
그리고 셰인은 그 순간의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곧장 손에 마나를 집중하며 토머스가 열어준 틈으로 난입.
직후 펼쳐진 두 개의 손가락은, 자그마치 8써클에 달하는 출력을 한계까지 벼려내어 만들어진 칼날이다.
'절개-용골참.'
그 기세만은 용의 목을 도려낼 정도로.
그러한 각오로 단련을 거듭해온 칼은, 끝내 만물을 도려낼 수 있는 예리함을 갖출 지어니.
-서걱!!
그 칼날에 옥좌가 도륙 내어진 순간, 그에 앉혀진 이의 머리가 떨어져 나가며 피분수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 싸움의 결말.
28초라는, 한계치의 세 배에 달하는 시간의 인내를 거쳐 이루어낸 결실.
"…쿨럭!"
이윽고 고꾸라진 셰인이 토혈을 쏟아내며 제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제어를 벗어난 마나가 심장을 터트리기 일보 직전.
가까스로 혈도를 눌러 막아낸 셰인이 바닥에 뻗어 숨을 헐떡였지만, 그 무방비한 목이 갈라지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절그럭.
그저 말없이.
자신의 곁까지 다가온 그림자는 우두커니 선 채, 고개만을 숙여 자신을 내려다볼 뿐.
"뭘, 꼬라봐 새끼야……."
시선을 느낀 셰인이 입꼬리를 치켜세우며 비아냥을 토해내었다.
"지 주군도 못 지킨 놈이, 어딜 뻔뻔스럽게 눈을 부라려? 눈 안 깔아?"
노골적인 욕설에도 불구하고 그는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래, 자신이 알고 있는 볼레로라면 더 이상 자신을 노리지 않으리라.
그 날의 싸움 이후, 주군을 향해 제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간청을 드렸던 충성 높은 녀석이라면.
지금 느끼는 수치는 자신을 향한 게 아닌, 제 주군을 지키지 못한 스스로를 향한 것이 분명할 테니.
-제국의 검이어!!
그 직후 검을 들어 올리는 그를 보며 통곡하는 제레프.
옥좌가 베어 넘겨진 직후, 그의 존재 역시도 피해를 본 듯 검은 형체가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만, 그만두십시오!! 설령 옥좌가 손상되었다 해도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저 옥좌에 앉을 이는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은 이들을 몰아내십시오! 그리 한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이곳에 있는 둘을 죽인다면 기회는 여전히 존재한다 생각하는 것일까?
확실히 지도자란 누구로든 대체할 수 있고, 그건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옥좌 역시 마찬가지다.
힘을 모을 옥좌는 다시 만들면 된다.
황실의 피만을 확보한다면 그 위에 앉을 이는 누구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기사란 본래 제 주군에게만 충성을 맹세하는 법.
그런 마당에 지켜야 할 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건, 곧 스스로의 존재의의를 잃어버리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
"미안하다, 이런 식으로 승부를 보게 돼서……."
그러나 전쟁에선 이겼지만 결투에선 완전히 패배했다.
그런 패배감에 씁쓸함을 느끼며 눈을 감은 직후.
-서걱!!
절단음이 울려 퍼지고, 그 뒤를 이어 쓰러져가는 몸이 이윽고 가루가 되듯 사라져갔다.
그를 기점으로 주변에 잔존한 검은 안개도 증발하듯 소실.
옥좌를 기점으로 모였던 윤회력이, 그 힘을 생산하고 받아들일 그릇을 찾지 못한 채로 소멸되기 시작한 것이다.
-네 이노옴…….
그렇게 사라져가는 건 제레프 역시 마찬가지.
제 최후를 직감한 듯, 검은 안개 속에 꿈틀대는 붉은 안광이 보다 격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너희들이 이런다고 하여, 예정된 미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공간에 메아리치는 격노.
하지만 그 목소리도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희미해져가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게야. 조금 늦어졌을 뿐이지, 예정된 필멸의 순간은 분명……!!
그 단말마마저 끝내 사라지고, 이윽고 공간에는 침묵만이 감도니.
그 고요함 속에 남아있는 두 생존자가, 상처 입은 몸을 주저앉히며 숨을 고르기 시작하였다.
"끝난, 겁니까?"
"…네, 일단은."
주변을 잠식하는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것을 자각한 토머스가, 교황이 사라진 자리의 앞에서 성호를 그으며 나지막이 기도문을 읊기 시작하였다.
만악의 근원을 처리했음에도 마냥 기뻐 보이지 않는 모습.
끝난 것은 어디까지나 이 지하의 사태뿐임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당연하겠지, 애초에 이 놈들은 전쟁의 주범이 아니니까.'
그래, 끝난 건 이 지하에서의 일 뿐이다.
교황과 황제, 그리고 제국을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인 공작이 합심하여 만들어낸 재액.
그것을 막는 데엔 성공했으나, 그로 인해 제국의 지도층은 회복이 불가능한 타격을 입고 말았다.
그리고 전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상태.
외세의 습격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으나, 지도층을 잃은 나라가 그 습격을 버텨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였다.
'그래도 어떻게 대처할지는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은 좀 쉬어야겠어.'
그러한 미래를 예감한 셰인이 주저앉은 그대로 몸의 상처를 붕대로 감아가기 시작했다.
이후가 어떻게 되건, 이 지친 몸을 회복시킬 정도의 여유를 소홀히 여겨선 안 될 테니.
-터벅, 터벅.
그렇게 얼마나 응급처치를 이어갔을까?
돌연히 들려온 발걸음소리에 멈칫한 셰인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황급히 고개를 향했다.
"어디가시는 겁니까?"
추기경 토머스.
제레프의 장례를 간소하게나마 마친 그는, 셰인과 달리 제 상처를 다스리지 않고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고 있었다.
무너진 공간의 잔해를 가로지르고, 이윽고 셰인이 들어왔던 통로를 향해.
"아직, 저에겐 해야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평소와 마찬가지로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하며, 제 발걸음을 마저 옮길 뿐.
비틀거리는 발걸음이지만 거기엔 절박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셰인인 혹시나 싶어 그를 향해 물었다.
"……교황과 황제 말고도 흑막이 또 있는 겁니까?"
"아뇨, 그와는 별개 된 일입니다."
"그렇다면 좀 더 쉬고 가시죠."
옥좌에 앉은 이의 목을 베어넘긴 순간부터, 주변에 잔존하던 검은 기운도 모조리 사그라지고 말았다.
이전 제레프의 반응을 본다면 목적이 저지된 건 분명할 터.
급한 불은 껐으니 서둘러 일을 처리하기보단, 이 순간의 여유를 빌어 휴식과 회복에 전념하는 것이 이후를 위해서도 옳은 판단일 것이다.
그게 당연한 일이건만…….
"슈베르트 블러드메리."
흠칫.
이어지는 말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 마는 셰인.
그 이름을 입에 담은 토머스가 자리에 멈춰선 채로, 제 숨을 보다 깊게 몰아쉬었다.
"저는 심문관으로써, 그러한 이름을 가진 인물을 구속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교황 성하의 추적에 우선을 두어 검문이 늦었을 뿐이지, 이번 일을 끝내면 바로 그를 조사하는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었죠."
"……."
"……그리 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마치 자신을 시험하는 것처럼.
그리 말하며 붕대에 감겨진 눈을 셰인에게로 향하는 토머스.
"……진짜."
아직 응급처치를 모두 끝마치지 않았음에도.
"내가 이래서 같이 싸우는 놈들한테 정을 안 붙이려고 하는 건데."
한계에 다다른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자신을 저지하고자 하는 한 이단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