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245화
질끈 틀어쥐어진 손은 분노에 의한 것인가?
지금의 말이 너무나도 충격적이기에?
확실히 충격적이라면 충격적이긴 할 것이다.
줄곧 스스로의 자아라 믿어왔던 것들이 사실은…….
사실 누군가에게 빌린 것에 불과하다면, 누구나 그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따지자면 역사책에 있는 인물이 자신이라 착각하고, 그에 대한 망상의 나래를 직접 실현한 거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거기에 숭고함을 가지며 스스로가 상처 입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
제 앞에 있는 신자에겐 분명 처량하고 가엾게 보였으리라.
"…할 말은 그게 다야?"
하지만 공교롭게도 지금 이 순간 셰인이 선택한 건 개심이 아닌, 도리어 그 길을 계속 고수하는 것이었다.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여기까지 와서 그런 거에 일일이 놀라는 게 이상한 거지."
진실을 들었을 때의 혼란 역시도 잠시로 그칠 뿐.
"셰인 골드리안. 당신이 가진 기억은 그저 고대에부터 전해진 저주일 뿐입니다."
"그건 당신들도 마찬가지지. 선조들이 내려준 책임과 업보가 지금 시대에 터진 마당에."
"그건……."
-후웅!
마저 설득을 이어가기 무섭게, 셰인이 지친 몸을 이끌어 토머스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 주먹을 가로막는 한 심문관.
하지만 그 역시 형체가 일그러져, 셰인의 주먹을 버텨내지 못한 채 조각나기 시작했다.
"내가 카일 본인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약화되어서인가?
아니면 제 앞에 있는 자의 마음이 그만큼 굳세기 때문에?
"그 기억을 이어받은 내가, 이제까지 해온 일들이 없던 게 되진 않아."
그래, 흔들림은 잠시일 뿐.
그마저도 제 믿음을 향한 시험이라 느낀 듯 남자의 의지는 꺼지지 않는다.
자신이 소환한 심문관들과 대치하는 주먹엔, 그들을 이루는 윤회의 고리를 끊어내는 순수한 열망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미 200년도 더 된 인물의 기억이라 해도, 그걸 받아들이고 옳다고 생각한 건 나라고."
그러한 마음을 이끌어낸 것이 복제된 기억에 불과하다 하여,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잘못되었다 할 수 있는가?
아니, 허구라 해도 누군가의 마음을 이끌 수 있다.
종교라는 것이.
역사와 사상이라는 것이.
형태가 존재치 않은 추상이 사람을 이끌어온 전례는 이제까지도 무수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진실을 밝힐 거였다면 8년 전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했어야지."
그저 입장의 차이일 뿐이다.
이미 그는 제국의 관점보다도 앞서 의무병 카일의 기억을 우선으로 두었다.
그러한 기억을 가지고 이 제국에서 고독을 씹었을지언정, 그 고독에 밀리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을 구축한 것은 언제 어느 때에나 자신의 선택이었다.
'나에게 이어진 기억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그 기억을 이어받아 이룬 일들의, 그로부터 느낀 감동이 틀리지 않다 여기는 건.
그것만은 카일 페터슨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셰인 골드리안'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말대로."
그리고 토머스는 그 강경한 의사를 부정하지 않았다.
"이제는 돌아가기엔 너무나도 늦어버렸죠. 당신도……."
그것이 그가 관철하고자 하는 길이라면 존중을 할 뿐.
하지만 그 행위 역시도 결국에는 존중으로 그칠 뿐이다.
"그리고 저 역시도."
언제나처럼…….
그래, 늘 있는 일이다.
이단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존중하되, 차마 그들이 활개 치지 못하도록 그들을 상대로 사투를 벌여왔다.
이 사회를 지키기 위해선 그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그 본보기를 대중에게 보여 공포로 다스려야만 했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업이다. 그것이 자신이 나아가고자 한 길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는 그런 자신이 나아가는 길을 옳다고 말해주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제 앞에 있는 남자와 같은 이들을,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저주를 짊어진 존재로 여기라 말했었다.
'저주가 아니야.'
하지만 이 순간 자신과 대치하는 자는 어떤가.
시작은 타의에 불과했을지언정, 그 끝에 각성한 고결함만은 분명 진실 되었음을 증명하듯.
여전히 이어받은 사상마저 옳음을 주장하며 빛을 퍼트리고 있지 않은가?
"당신처럼……."
그래, 분명 그는 모를 것이다.
지금의 말이, 자신을 외도에 들어서게 만든 이들을 외면한 자신에겐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지.
"타의에 밀려 죄를 범한 아이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면……. 당신처럼 고결하게 자라났을까요?"
-쩌억!!
이윽고 휘둘러진 주먹에 먹혀들어가는 넋두리.
주변을 두르고 있는 심문관들마저 주먹질에 찢겨나가고, 그 주먹이 토머스의 안면을 강타하며 몸을 바닥에 눕혀지기에 이르렀다.
쿠당탕.
바닥에 고꾸라지는 몸.
그를 내려다보는 셰인이 숨을 허덕이며, 그 주변을 지키고자 하는 심문관들의 모습을 눈으로 쫓아갔다.
힘이 다하여 사라지기 직전의 순간까지, 자신을 향해 무기를 치켜세우고자 하는 모습.
"어째서……."
그마저도 희미한 절규와 함께 차차 사그라져가기 시작했다.
이전에 흘렸던, 차마 자신이 듣지 못하고 외면했던 목소리의 연장선을.
"어째서, 그 밀실에 가두어진 아이들은……. 그렇게나 비참하게 죽어야만 했던 겁니까."
차마 제 앞에 있던 참혹함을 보고 싶지 않은 나머지 눈을 돌리고 말았던…….
그렇게 어둠에 잠재워진 세계에서 줄곧 떠올려온 처참한 광경을.
"어째서 그 아이들을 가두었던 이들은……. 그런 잔인한 짓을 하면서까지, 세상을 적으로 돌렸던 겁니까?"
그로부터 비롯된 의문의 꼬리에 또 다른 의문이 물리며.
"어째서……. 심문관들은 그들의 부모와 스승을 죽이고……. 어째서 그들의 스승이자 전우 된 자들은, 왜 사교도들과의 사투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해야 하는 겁니까?"
그것이 무한히 반복되는 머리를 움켜쥔 토머스가, 그 손가락에 힘을 실어 넣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증오가……."
부르르 떨리는 입술이 벌어지며 터져 나오는 핏방울.
"증오가, 증오를 낳는 시대입니다……. 어느 쪽도, 누군가의 잘못이라 말하는, 그런 시대에서 우리들은 태어난 겁니다."
누가 시작했는지 따윈 중요하지 않다.
그들 모두의 사정을 이해할지언정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어요……."
그래, 이미 그는 정해진 규율만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타의에 의해 이단의 힘을 손에 넣고,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이니 제 충성과 신앙을 증명하고자 심문관이 되고…….
그렇게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을 맞닥트려 분노를 느꼈음에도, 차마 그들을 죽여 버렸던 피해자들의 사정에마저 동정을 느끼고 말았으니.
그들을 향한 이해에 심취하면 그 또한 죄악이 되리라.
그를 유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배워왔기에, 세태의 강요를 버티지 못한 나머지 제 눈마저 뽑아버릴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렇게 거닌 길을 끝까지 고수해야 한다 여겼건만……."
그런 행동이.
그렇게나마 다져온 결의가 무색하게도.
"제 마음은 차마, 당신의 존재만은 부정하지 말라 말을 하고 있군요."
자신과 마찬가지로 타의에 밀려 저주를 이어받았음에도.
세태에 순응하지 않고 그를 거스르면서도 세상에 인정을 받기 시작한 자가…….
그를 마주하는 것만으로, 이제까지 해온 모든 것이 부질없어져가는 것이 느껴지고 있다.
"그럼, 왜……."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건 곧 곧 이제껏 억눌러온 모든 것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일.
"그럼 왜, 저는 이곳에 있는 거죠?"
그러한 부조화가 이윽고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혼란을 가증시켰다.
다 죽어가는 육신이 구토감에 발작을 일으키고, 그 입에서는 오롯이 괴로운 흐느낌만이 새어나오니.
"……신이어."
그러한 발버둥의 끝에 내뱉어지는 힘겨운 한 마디.
"지금, 제 몸엔 정녕, 당신이 내려주신 빛이 존재하고 있습니까?"
그런 넋두리만을 입에 담은 채, 머리를 땅에 박은 그가 양 손을 맞잡으며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 처참한 모습을 마주한 셰인은 차마 달려들지 못하고,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볼 뿐.
그래, 그 몸에는 분명 빛이 존재하고 있었다.
혼란을 느끼는 와중에도, 제 스스로의 죄를 뉘우치고자 하는 그에겐 여전히 빛이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 저에겐…….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하지만 그 앞에 보이는 건 여전히 어둠뿐.
타락을 방지하고자 스스로의 눈마저 뽑은 그는, 지금에 이르러선 스스로의 마음마저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오랜 세월 무뎌진 몸은.
그 빛이 발하는 따스함마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처절하게 망가져 있었다.
"……고결한 이단자여."
그런 자신에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 차차 도래하고 있다.
"부디, 내가……. 틀리다면 나를 막아주오."
그 점을 자각한 토머스가 제 고개를 들어 올리며 셰인을 마주하였다.
붉게 물들어져가는 붕대의, 그 밑으로 흘러내리는 추한 피눈물을 삼키며 절규를 토해내며.
"나의 의지가 아니라 한들, 이미 나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으니. 이미 구제받아서 안 될 존재로 전락했으니……."
그래, 그것이 심문관이라 불리는 이들의 말로였다.
설령 눈을 돌린다 해도 그 과업을 미래로 미루는 것일 뿐.
있었던 일은 분명 있었던 일이며, 그 잔재가 쌓여 만들어진 탑은 언젠가 무너져 내릴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무너져내린 것이 뒤엉킨 것을 세간에선 혼돈이라 칭하오니.
'그래요, 교황 성하. 당신도, 지금의 저처럼…….'
그래, 뒤엉킨 실타래를 풀 수 없다면, 차라리 그것을 파괴해버리자.
그러한 충동은 정의를 추구하는 자이기에 더욱이 필연으로 다가오는 법이니.
-그래, 바로 그거다.
그 전조를 직시한 과거의 망령이, 이 순간 그 충동을 자극고자 귓가에 차차 속삭이기 시작하였다.
-토머스, 너라면 분명 내 기대에 부흥해줄 거라 여겼다.
"!?"
그 존재를 인지하며 숨을 삼키는 셰인.
옥좌의 붕괴와 함께 잠식되리라 여겼던 망령이 돌연히 주변에 나타나고, 그와 함께 주변에 다시 검은 기운들이 스멀스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말도 안 돼. 옥좌는 분명 파괴되었을 텐데?'
그 옥좌는 천장이 붕괴되며 만들어진 낙석에 깔려 사라진 상태.
이제는 제 기능을 잃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제레프는 제 앞에 다시 나타나고 있었다.
그저 죽음을 연기하며 기회를 모색한 것인가?
옥좌라는 매개가 없더라도, 여전히 존재감을 유지할 정도로 그 미련이 강대하기에?
"이런 망할!!"
그것을 막고자 뛰쳐나가려 했지만, 주변을 가득 매우고 있는 폭풍이 너무 거센 나머지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다 죽어가는 자가 발하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아니, 이미 그는 자신과 싸웠을 때의 그가 아니다.
-운명을 거스르지 말거라 토머스. 우리들의 주인조차도, 태초부터 우리들이 결코 순수할 수 없다 일러주셨으니.
세상에 실망하고, 스스로의 무력함에 실망한 남자의.
그 원대한 증오와 혼란은 이 순간 그가 받아들인 힘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었다.
-그래, 우리 인간은……. 그 태생부터가 악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저항 따윈 하지 않는다.
이미 닳고 닳아버린 정신은, 자신에게 달라붙은 망령의 꼭두각시로 전락되길 희망하고 있으니.
-주님께서 자신의 분신을 결백하게 만들었으나, 그런 사랑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선조는 유혹에 넘어가 금기를 범하고 말았지.
그런 그를 향해 제레프는 그저 속삭일 뿐이었다.
간사한 회유, 혹은 진실이라 부르는 것을.
-그렇게 더럽혀졌음에도 그 핏줄들은 여전히 고결했던 순간을 동경하고 있으나,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한 동경 또한, 스스로의 추악함을 감추기 위한 부질없는 저항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속삭임을 외면할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그런 과정을 알지 못한 채 수단만을 이어받은 후세는 스스로를 고결하다 믿겠지만……. 그러한 믿음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언젠가 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답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 그런 깨달음이야말로 우리와 같은 이들이 끝내 파괴를 갈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게다.
태초의 뱀이 유혹했던 고결한 존재가 끝내 세상을 악으로 물들였듯.
뒤틀린 고리를 끊어내길 가장 갈망하는 건, 다름 아닌 스스로 타락의 길을 택한 천사인 법이니까.
"빌어먹을……."
그 광경을 마주한 셰인은 차마 그것을 저지하려 들 수가 없었다.
지하 깊은 곳까지 홀몸으로 들어서고, 넘어서지 못한 숙적을 몰아붙이고자 전력을 다했던 그는…….
이미 세상을 떠버린 자의 미련조차 넘어서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한계까지 밀리고 말았으니까.
-……그대에겐 감사를 해야겠구나.
그런 그를 조롱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더욱이 넘쳐흐르는 검은 힘을 다스리는 제레프가, 검은 안개 속에서 붉은 안광을 셰인에게 번뜩이며 말했다.
-그대가 토머스의 존재를 부정해준 덕에, 내가 예정에 둔 미래가 보다 빨리 찾아왔으니까.
"개소리 집어치워!! 이 뱀 같은 새끼가!!"
고함과 함께 뻗어지는 주먹.
그 부질없는 저항을 상대는 너무나도 가벼이 막아내었다.
-뱀이라…….
주변에 소용돌이치는 검은 인영이, 윤회력으로 구축된 검은 손아귀가 그 부질없는 저항을 막아 세웠으니.
-듣고 보니 이해가 되는군. 어쩌면 태초의 뱀 역시 지금의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지도 모르지.
"무슨……."
-주님께서 빛이 생기라 하시니 빛이 생겨났으며.
그 주먹을 움켜쥔 손은 견고하되, 그다지 많은 힘이 실리지 않았다.
그저 저항을 막아 세우는 정도의 의미만을 가지며.
-그 빛이 드리워진 자리에 하늘과 땅이 자리하였고, 그 땅에 물을 몰아넣자 초목이 자라나며, 그 위에 새와 고기가……. 그 뒤를 이어 무수한 생명이 창조되었노라.
그렇게 자신이 입에 담은 성서의 구절을 뒤이어 말할 뿐.
-그래, 뱀이란 인간보다도 먼저 세상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렇게 격동하는 세계에서 시시각각 변화를 이뤄간 세상을 마주한 것이지.
완성된 세계에 돌연히 태어난 인간은 알지 못하는 그 순간을.
세상이 창조되는 그 광활하고 장대한 순간을 목도한 뱀은, 그 변화의 순간이 끝나는 때를 어찌 받아들였을까?
-결국 뱀 역시 하나의 소망을 가졌을 뿐인 게야.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의 순간을……. 그 동경을, 주님의 분신이 이어받는다면 어찌 될지를.
그 변화의 진리를 담은 선악의 열매를.
신의 분신이 섭취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창조와 탐구의 능력'을 전가 받게 함으로써.
-그 또한 주의 말을 어긴 죄악의 상흔이라곤 하나, 그것을 안고 가야 한다면 결코 변화를 거부해선 안 되는 법이겠지. 시작은 유혹이었을지언정, 이미 존재하는 본성을 억누르는 건 더 큰 혼란을 초래할 뿐이니…….
"궤변, 따윌……."
-카일 페터슨.
이윽고 이어지는 이름에, 셰인의 들어 올린 주먹이 그 자리에서 멈춰지고 말았다.
그것은 자신의 이름.
아니, 진상을 아는 자조차도 부정했던 자신의 정체성.
-왜 그리 저항하는 겐가? 자네 역시 이 시대의 피해자이지 않은가?
그래, 제 앞에 있는 자는.
자신에게서 200년 전에 존재했던 한 남자를 마주하려 들고 하고 있었다.
그 존재로 하여금, 제 앞에 있는 남자마저도 자신의 이상에 회유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