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249화
잠에 들 때면.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요.'
언제나 그 날의 악몽을 꾸고는 하였다.
'제가, 잘못 생각했던 거예요.'
'……안젤라.'
'그래도 그들에게 사연이 있다 생각했어요. 제 부모님처럼……. 그래도 이뤄야 할 일이 있다고 여겼었어요.'
심문관 안젤라.
자신과 마찬가지로 타의에 의해 불경한 존재가 되었으나, 그럼에도 이단이라 불린 이들을 이해하고자 했던 자.
제 앞에 자리한 그 어떤 잔혹한 일이라도 시련이라 여기며, 그 인내가 끝내 결실을 맺으리라 여겼던 사람.
'하지만 그렇게 참고 견디는 중에, 이미 때를 늦은 사람들은 누가 구제해주는 거죠?'
모두에게 사연이 있다 하여 그들을 배려할 수가 있을까?
'이미 구제받지 못한 이들을……. 그저 희생이라고만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요?'
시작을 저지른 게 200년 전의 전쟁이었다 한들.
그로부터 통일된 대륙 내에서 많은 것이 억압당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악의를 정당화시킬 이유가 되진 않는다.
이단과 심문관. 그들 사이에 벌어졌던 전쟁은 너무나도 오랜 시간 이루어졌다.
이제는 누가 먼저 포탄을 쐈는지 따윈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토머스. 당신은 어떻죠?'
그렇게 서로를 증오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태어난 것이 그녀였고, 그리고 자신이었다.
'당신은…… 이곳에 있는 아이들의 죽음을 필요한 희생이라 여길 수 있나요?'
더욱 나아가 이 시대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그런 식으로 시대의 광기에 휘말릴 위험이 존재하고 있었다.
'당신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에게 이들 또한 필요한 희생이었다 말할 수 있나요?'
그래, 자신이 동경하던 동기마저 결국 그 운명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으스러져 간 이들을 기억하고자 했건만, 차마 그 모습을 더 보기 괴로운 나머지 끝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마저 내버리고 말았다.
그런 식으로 증오에 먹혀선, 비참히 목숨을 잃어간 동료들을 기억할 수 없게 되니까.
세상의 어둠에 밀린 나머지, 제 이름조차도 세상에 알리지 못한 채 어그러지고 사라져가는 그들을 추모하려면…….
그런 식으로나마 세상을 인지할 눈을 져버리고, 모든 것으로부터 눈을 돌리길 택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랬을 터이거늘.
* * *
"흥, 흥흥~♪"
돌연히 들려오는 흥얼거림에 서서히 트여지는 눈.
그와 함께 따사로운 햇살과 맑은 하늘이, 토머스의 두 눈에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꿈일까?
그래, 꿈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일이다.
눈이 멀어버린 자신이 세상을 볼 수 있는 건 오롯이 꿈을 꿀 때 뿐이었으니.
"여긴……."
"일어나셨나요?"
하지만 평소의 악몽과는 전혀 거리가 먼 장소다.
어렴풋이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
그와 함께 언덕에 쪼그려앉은 소녀가 몸을 일으켜 세우고, 토머스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왔다.
아니, 소녀가 아니라 그저 키작은 여인이었다.
하얗고 거친 피부와 푸석푸석한 장발.
붉은 눈동자는 성경 속에 나오는 흡혈귀를 연상케 했지만, 토머스는 제 앞에 있는 자가 그런 불결한 존재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저 천성이 쇠약하게 태어난…….
교단에선 저주받았다 할지언정, 의사라 불리는 이들에겐 환자로 여겨지는 인물.
"당신은, 누구시죠?"
그런 쇠약한 몸으로나마 미소를 잃지 않는 여인에게 물으니, 곧 그녀가 제 가슴에 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신이에요."
"……신?"
"당신이 섬기는 신과는 다른 분이지만요."
"……."
"……음, 이단의 신은 역시 당신과는 적인 걸까요?"
한편으론 서글퍼 보이는 얼굴.
그것을 마주하기 어려운 나머지, 토머스가 무의식적으로 제 눈을 주변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해맑은 하늘과 대조될 정도로 척박한 땅. 이미 낡고 으스러진 쇳덩이들은 한때의 형체마저도 엿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에 드문드문 자라나있는 풀들만이 그나마 봐줄만 할까?
"뭘, 하고 계신 겁니까?"
아니, 불어오는 바람도 참 잔잔하다.
그에 포근함을 느낀 토머스가 돌연히 물으니, 신이라 자칭한 여인이 어느덧 손에 쥔 것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꽃에 물을 주고 있어요."
물뿌리개라 불리는 물건.
그 물건이 언제부터 손에 쥐어졌는가, 생각할 무렵 여인이 토머스에게서 물러나 자신이 앉아 있던 곳을 내세우듯 보여주었다.
"이 척박한 땅에도 드디어 꽃이 자라났거든요. 한 송이 뿐이지만……."
"……민들레?"
"이런 땅에선 이런 것이라도 필요하겠죠."
흔히 잡초로 분류되는 꽃이지만, 그럼에도 홀씨가 돋아난 꽃을 응시하는 그녀의 입가엔 부드러운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톡.
그런 미소를 지으면서 제 앞의 꽃을 무참히 꺾어버리다니.
"무슨……."
"그러고 보니 그거 아시나요? 민들레의 뿌리는 말리고 갈아서 차로 만들 수 있다고 하던데."
당황하기 무섭게 화제를 전환하는 여인.
그에 멍한 표정을 지을 무렵, 어느덧 제 곁으로 다가온 그녀가 토머스에게 하나의 잔을 쥐어주었다.
"자, 드세요."
검은 액체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자아내고 있다.
그 향만은 커피와 유사한 차.
마찬가지로 제 손에 찻잔을 쥔 여인이 언덕에 쭈그려 앉은 채로, 멀리 펼쳐진 광활한 평원을 흐뭇한 눈길로 응시하였다.
이전까지 물을 주고 있다 여겼던 물뿌리개 역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신, 인가.'
분위기부터가 신비하고.
또 제 앞에서 물체를 마음대로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불경하다거나 불쾌하다곤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지기에,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으며 몸을 주저앉힐 뿐.
"고민이 있으신가요?"
그렇게 서로 나란히 앉은 채 차를 마시길 몇 분이 지나니, 여인이 다소곳이 앉은 채 토머스를 향해 물었다.
토머스가 눈을 껌뻑이며 되물었다.
"……고민, 말입니까?"
"그게 제 역할이니까요."
여전히 차를 마시며.
나긋한 눈으로 세상을 응시하는 여인이, 자신의 소명을 입에 담아 말했다.
"이곳에선 뭐든지 말해도 돼요."
이곳에서만은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뭐든지 들어줄 수 있다.
우상이란 그런 넓은 아량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니까.
반대로 그런 아량을 제외하곤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인간이란 그저 말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달라질 수 있는 존재다.
그런 자비에 이끌리기라도 한 것일까?
"……두렵습니다."
줄곧 침묵하던 토머스의 입이 힘겨이 열리고.
그를 귀에 들은 여인이 변함없이 차를 들이키며 되물었다.
"두렵다니, 무엇이 말이죠?"
"모든 것이."
이제껏 숱하게 해왔던 말이다.
주로 고해실에서.
아무런 답을 기대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런 식으로나마 마음의 안정을 가져왔으니.
"저희들은, 태생부터가 그릇된 시대에서 태어났으니까요."
그래, 그런 식으로 언제나 세상의 더러움을 부각시키고, 그런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는 스스로를 비천한 존재로 격하시켜왔다.
그렇게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길수록, 신에게 의존하는 마음을 강하게 키울 수 있으니까.
"그런 시대에서나마 정의를 추구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고결함을 간직한 채로 외도에 들어선 이들을 정벌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왔죠."
그들을 떠올리자 찻잔을 쥔 손이 서서히 떨려오기 시작한다.
"그것을……. 모두가 옳다고 믿어왔습니다."
이단에게 가족을 잃은 심문관.
이단자였던 가족에게 실험을 받았던 심문관.
그리고 태초부터 이단에 대한 증오에 가르침을 받고, 그것만을 정의로 여겼던 심문관…….
"하지만 언젠가는 알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들이 정벌해온 이들조차도, 결국에는 피해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걸."
그들에 의해 피해를 받은 이들 역시도, 자신들이 가진 증오를 정당하고 정의라 여기며 교단에 칼을 내세워왔다.
그 날.
수도원을 지키던 이들을 모조리 죽이고, 아이들을 가두어 비참히 죽였던 반란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도 양심이란 게 남아 있는지. 그 아이들을 죽인 것에 정녕 죄책감이라도 느끼는지…….
그렇게 하나둘씩 모두를 처형하길 반복하는 토머스의 앞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남자가 울부짖으며 외쳤다.
'우리는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만든 이 시대를 저주한다.'
그런 절규에 휘둘리는 것도 타락이라 부를 일인가?
그렇다면 그들을 외면하는 것이 신자된 일이겠지만, 차마 그들의 비통함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저는, 그저……."
그런 이들을 이해하려든 여인마저, 자신들이 보살펴온 아이들이 죽은 것을 보고 자비를 져버리지 않았던가?
"추한 세계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래, 처음부터 모든 게 그릇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시대에서나마 자신을 구제했던 빛을……. 그것만을 구원이라 여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끝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해 버리고 말았다.
"저는 그저…… 도망쳤을 뿐입니다."
점차 변화해가는 세계에서.
그런 변화에 의해 생겨나는 혼란을 억눌러야 한다고.
그러니 머지않아 타락이 예정되리라 여겼던 동료의, 그 필연의 순간을 애도하고자 그러한 태도를 유지했던 것이건만.
'심연 속에도…….'
정작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는 이단의 길을 거니는 이에게.
'빛은 존재했어요.'
그렇게 죄인의 신분이 되어 심문관의 자리에 물러났음에도, 마치 구원이라도 받은 듯 상쾌한 얼굴을 하며 투옥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타락한 이들을 처형하는 것 역시 업으로 삼아왔던 그들에게.
타락한 이들마저도 고결함을 가질 수 있음을…….
그녀는 그 당시 재판에 섰던 소년으로 하여금, 그 가능성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추한 세계라……."
하지만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 빛을 느낄지언정 그 빛을 바라볼 수 없으니.
그 마음을 느낄지언정, 그 마음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매료하는지를 알 수 없기에, 모두가 고결하다 인정하는 성자마저 적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니.
"확실히, 세상을 살아가는 건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죠."
그럼에도 그러한 성자로부터 파생된 여인이.
그 고결한 마음을 빚어 만든 우상은, 이런 자신을 향해 자상히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매 순간이 저희를 괴롭게 만들고,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 생각될 정도로 숨이 막힐 때도 여럿 있어요."
그렇게 몸을 일으켜 세우고.
이전에 꺾었던 민들레를 스윽 들어 올리는 여인.
"하지만 토머스. 당신도 분명 알고 있을 거예요."
그에 후우, 하고 바람을 불자 홀씨가 떨어져 나가고, 그 홀씨들이 언덕의 아래로 날아가 땅에 서서히 안착하기 시작하였다.
"추할지도 모르는 세계에도 아름다움은 존재하고."
그로부터 서서히 피어오르는 싹과 줄기. 그리고 만개하는 노란 꽃.
"그런 아름다움은, 당신과 같은 사람들의 손으로도 빚어낼 수 있다는 걸."
어느덧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진 노란 꽃밭.
하지만 그 시작만은 분명 한 송이의 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 남자가 발한 빛이 세상을 변화시킨 것처럼.
"……토머스 씨."
그 꽃밭에서 서서히 불어오는 바람이 홀씨를 흩날리고, 그것이 보다 넓은 세상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그 현장으로부터 등을 돌린.
"당신을 이 땅으로 이끈 것은 무엇인가요?"
스스로를 우상이라 소개한 여인이, 자신을 섬기지 않는 이단의 신자를 향해 물었다.
"세상을 판단할 눈마저 잃어버린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 건……. 그건 당신이 추하다 말한 세계에선 추구해선 안 될 일인가요?"
그를 향한 존중을 빌어, 이단의 신을 섬겨 발했던 칼날에 대한 동경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자비로움이 자신을 침식하는 어둠을, 자신의 의지를 부축하고 유혹했던 '타의'를 걷어내려는 그 순간…….
하지만 토머스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베어 넘겼던 칼날은 자비롭고 부드러울지언정, 결코 기적 같은 게 아니라는 걸.
그건 그저 기회였을 뿐이다.
이끌어주는 것이 아닌, 자신의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신이 아닌 인간이 인간을 구제하고, 서로가 누군가의 빛이 되어주는 시대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이단의 신이여."
그것을 가르쳐준 이를 마주하는 현재에도, 토머스는 제 몸에 발하는 빛을 느끼고 있었다.
제 앞에 있는 존재에게 매료됨에도, 이제껏 고수해온 신앙은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저는, 당신을 섬길 수 없습니다."
"알고 있어요."
"아마도 이곳에 오는 건 마지막이겠죠."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럼에도 여인은 미소를 지을 뿐.
"하지만, 우리는 이 순간 서로를 존중하고 있어요. 그 마음만은 이곳을 벗어난 후에도 이어지겠죠. 네, 분명히……."
그렇게 따스함이 느껴지는 손을 거두었을 무렵, 배후에서부터 서서히 빛이 비춰오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리라.
그러한 빛을 쫓아 무의식적으로 발을 내딛고, 그렇게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기 전.
"당신의……."
토머스가 다시 그녀를 마주하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이 순간의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해서.
"당신의,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그녀가 자신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피오 아스클레……."
그런 토머스를 향해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입에 담아 말했다.
자신을 파생시켰던 한 남자의 염원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을.
그러한 인물의 의지를 이어받아, 이윽고 신앙을 개화하였던 평범한 소년이 우상으로 섬기는 이를.
"……아니. 신이라면 좀 더 그럴싸한 이름을 써야겠죠."
그래, 그녀는 결코 신처럼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희망이 되어줘야 한다면, 그런 존재를 연기하는 것조차도 마다하지 않으리라.
이어지는 것은 그러한 마음에서 비롯된 소개였다.
"아스클레피오스(피오 아스클레의 자식들)."
그래,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그리고 그에게 의지를 이어준, 이름없는 야만족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이름이리라.
"앞으로 '저희들'을 그렇게 불러주시겠어요?"
그 이름을 입에 담으며 미소를 짓는 여인의.
그 자상함을 느낀 토머스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그녀로부터 등을 돌려 빛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모쪼록.
아직은 이단에 불과한 신의 이름을, 이 밖에서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오기를 빌며.
* * *
그러한 기나긴 꿈에서 서서히 벗어났을 무렵.
"정신이 드셨나요?"
돌연히 옆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토머스의 정신이 서서히 뜨여지기 시작하였다.
그의 세상은 여전히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전까지 무언가 보인 듯하였지만, 그 또한 결국에는 꿈에 불과할 뿐이었으니.
"……메어리, 입니까?"
하지만 제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기억에 남은 자의 것이었다.
심문관 메어리.
심문관이 된 후 1년이 지나, 더 이상 신입이라고만 볼 수는 없는 강경한 여인.
그녀는 현재 다른 심문관들을 대신하여 토머스의 옆을 지키고, 그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1달이에요."
"……1달?"
"네, 그 동안 계속 의식을 잃고 있었어요."
그 동안 그가 의식이 깨어나기를 바라며 줄곧 옆에서 기도를 올렸다.
매일 같이 매일 같이.
분명 1달이란 긴 시간 동안 공복이었을 터임에도, 그 빛을 받아들인 육신은 평소와 달리 조금 개운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 상냥한 칼날에 몸이 베어져서일까.
"커피."
하지만 역시 그 이후의 기억은 떠오르질 않는다.
이윽고 찾아온 나른함에 심취한 토머스가 입 밖으로 희미한 넋두리를 흘렸다.
"커피, 요?"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군요."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이전까지 엿보였던 꿈의 잔상만을 희미하게 쫓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