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251화 (251/255)

의무병의 환생 251화

테라스 내전.

훗날의 역사에 그렇게 기록될 사건의 결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제국의 분단이라는 결과로 끝을 맺게 되었다.

거센 반란에 의해 제국민과 지도층 중 3할 이상이 적으로 돌아서고, 그들이 벌이는 광기의 진군을 막기 위해선 원하는 바를 내어줄 필요가 있었으니.

이에 새로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제 1계승자, 알랙산드로스 테라스는 자신의 아비를 포함해 교단의 권위자를…….

그리고 그들을 지키고자 했던 키르슈타인 공작의 죽음을 밝히고, 그들의 효수된 목을 반란세력에 넘김으로써 전쟁의 종결을 이루고자 하였다.

'내 그대들이 목표로 하던 이 들의 목을 내어주겠다. 그것을 승리의 상징으로 삼을지 말지는 그대들의 몫이다.'

황실 내에서조차 반란이 일어나고, 그 시체가 반란군들의 손에 쥐어진다.

그건 그 자체로 그들의 투쟁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바.

하지만 그 목적을 이룬 순간 광기는 사그라지고, 열기 역시 빠르게 식어가게 되니.

그때가 돼서야 반란자들은, 자신들이 이 결과를 손에 쥐기까지에 거닐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지도층의 목을 손에 넣기까지에 이루게 된 많은 피해.

그만한 피해를 또 앞으로 얼마나 치르고, 또 얼마나 오래 이어가야 할까? 그 끝에 자신들이 바라는 것은 정녕 존재할까?

그런 앞날에 대한 두려움은 비로소 전의를 상실시키고, 그때가 돼서야 전장에는 총성이 잦아들게 되었다.

하지만 그 침묵이 전쟁의 끝을 의미하는 건 결단코 아니다.

그저 자신들의 진영으로 돌아서며 체제를 정비하며, 냉정하게 이후의 계획을 검토하기 위함일 뿐.

그렇게 진영을 두르는 벽을 세우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땅을 향해 포구를 겨누며 적들을 향한 견제를 이어가는 시간만이 줄곧 이어지게 되었다.

붕괴된 낙원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휴전이란 협정 하에 불완전하게나마 평화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 * *

"자, 슬슬 이동하자고."

제도 아스토라의 광장.

그곳에 모여든 인부들이 광장에 전시된 작품의 잠금을 해제하고, 곧 자신들이 이끌고 온 수레에 실어가는 작업을 이어갔다.

전시하기로 했던 기간이 끝이 나 본래의 주인에게 회수되기로 한 것.

이제는 가로등처럼 눈에 익은 작품이 돌연히 사라지는 건, 본래 이곳을 자주 지나다니는 이들에겐 무척이나 허전하고 안타까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가지고 가시려는 거군요."

그건 마침 그 광경을 지켜보던 귀족 역시 생각하는 바.

슬슬 눈이 녹아가는 거리를 누비던 제국의 공작, 아이작 아인츠바이가 벤치에 앉아있는 여인에게로 다가섰다.

고급 코트로 몸을 싸매고 있는 양산의 여인.

그 밑으로 흘러내리는 금발은, 그녀가 유서 깊은 혈통을 이어받았음을 가르쳐주는 요소였다.

"뭐, 오래 둬봐야 좋을 건 없으니까요. 야외에서 그림을 보존하는 데에 드는 비용도 적지 않고."

"그건 제 쪽에서 부담할 수 있습니다만……."

"아아~ 저 이렇게 말 돌리는 거 별로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데 말이죠~?"

능청스레 말하며 양산을 스윽 걷어내는 에버그린 블러드메리.

잘 다듬어진 턱과 더불어 특유의 눈웃음은 인상 깊었다.

에버그린이 그런 새침한 눈길로 아이작을 떠보듯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공작님. 저 그림, 솔직히 자기 영지에 가지고 가서 대대손손 물려주고 싶으시죠?"

"……하하."

애매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는 아이작.

실제로 지금의 물음은, 예술을 숭배하는 입장에선 거짓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름 아닌 제 가문의 이름을 걸고 출품이기도 하며, 적어도 처음 보았을 때부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저 그림 이상으로 감명을 받은 작품은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그걸 느끼는 건 아이작만이 아닌 상황.

예술의 도시를 이끄는 아이작은, 저 그림이 현 예술계에 많은 변화를 이끌었다는 걸 실감하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그 변화가 긍정적인 것만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공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저 그림은 제국에 두지 않는 편이 좋겠죠. 저 그림 한 장 때문에 저희 오라버니도 엄청 고생하는데, 눈엣가시로 여기는 사람들이 없을 거라 누가 장담하겠어요?"

샬레 그린.

선명한 녹색을 띠는 독극물은 2년 전까지 제국 곳곳에서 각광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 그림에서 사용되는 녹색은 엄연히 색을 섞어낸 것이었다.

색을 섞는 건 그 자체로 혼돈을 의미하는 것.

하지만 그런 풍조가 무색하게도 예술계에 출품된 후부터, 그 기법을 따라하며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차차 늘어가고 있었다.

거센 반발도 결국 처음에만 이루어진 것.

다름 아닌 제도의 중심에 걸린 그림이란 전례가 있는 만큼, 그를 반박하는 것조차도 허가를 내려준 황실에 대한 반박으로 이어지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런 식으로 서서히 녹색에 대한 갈망은 퇴색되어가고, 이윽고 샬레 그린의 통제로 인해 치솟던 가격도 수요가 하락한 순간 폭락하기에 이르렀다.

졸지에 암시장을 통해 도료를 매입하던 이들은 피눈물을 흘리는 상황.

물론 그들이 입은 손해는 그 도료를 독점한 골드리안만 못하겠지만 글쎄…….

"오히려 테올린 후작이라면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지 않겠습니까?"

"……후후."

에버그린이 웃음을 흘리며 부채로 입가를 감추었다.

"이런 걸 보면 보기 좋은 것들은 유행을 타기보단 한때의 추억으로 남겨야 하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림도 그렇고, 튤립도 그렇고……."

"튤립?"

"그런 게 있어요~"

그리 말하곤 수레에 안착하는 그림을 응시하는 에버그린.

작품을 감상한다기엔 무척이나 애틋한 눈이었지만, 그 옆에 선 아이작이 그 그림을 향해 보내는 건 안타까움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림이 아닌, 저 그림을 그려낸 화가의 행방 때문이었다.

"제국을 떠나신다는 게 정말입니까?"

슈베르트 블러드메리.

비록 귀족으로서의 소양은 떨어지지만 표면상으론 블러드메리 가문의 가주된 몸이다.

그 가문의 실세를 에버그린이 쥐었다 한들 그녀와 운명은 함께 하게 될 터.

표면상이라곤 하나 가문의 가주에 앉은 만큼, 가문이 이끄는 상회가 국외에서 활동한다 하면 그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완전히 떠나는 건 아니죠. 어디까지나 외국과의 거래를 담당하는 것뿐이니까."

"하지만 활동이 활동인 만큼 제국에 발을 들이실 일은 거의 없어지겠죠."

"종종 친가에는 들릴 생각이에요. 물론 오라버니는 제가 가문에 발을 들이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시겠지만……."

전쟁이 발발한 후 2년이 지난 현재.

골드리안은 여전히 제국의 내부 경제를 책임지고 있으나, 이미 제국 측에선 반란세력을 다수의 국가로 인정을 한 상태였다.

2년이 지난 현재에 제국의 영토는 기존의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

물론 그것만 해도 제(帝)국이란 칭호를 쓰기엔 충분하겠지만, 단시간에 시장이 토막난 만큼 골드리안 측에서의 손해 역시 무척이나 뼈아프리라.

거기에 더해 이 대륙에는 200년간 존재치 않은 개념인 '외교'를 도입해야 하는 상황.

그중 각 나라간의 거래에 적합한 세력은 내수를 담당해온 골드리안이 아닌, 아이러니하게도 현 변경지대의 실세로서 군림한 블러드메리 상회였다.

"……힘든 길을 거닐기로 하셨군요."

"출세를 위한 건데 뭔들 못하겠어요?"

태생부터가 골드리안의 핏줄을 잇지 않았는가?

그 피에 흐르는 야망은 변경의 실세로 군림하는 것을 넘어, 현재엔 골드리안의 틀을 벗어났음에도 그를 넘어선 곳까지 오를 기회를 거머쥐게 만들었다.

영토는 작아졌을지언정, 국가의 분단으로 인해 외세를 견제하게 된 상황이니까.

한정된 체제가 아닌 점차 확장되어가는 세계.

그러한 시대엔 모든 일에 큰 책임이 따르고, 지위의 중요성도 더욱 강조되는 법이다.

그런 상황에 출세를 위해선 사람을 휘어잡을 힘 역시 필요할 터.

하지만 그건 결코 무력이나, 정보에서 기인한 협박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만인을 이끌 수 있는 존재.

소위 상징이라 불리는 것은 앞으로의 여정엔 필요할 테니, 에버그린은 저 그림을 아이작에게 양도할 수 없는 것이다.

"…소중히 간직해 주시죠."

그런 그녀의 심정을 헤아리듯, 그리고 그 또한 제국을 위한 일이라 여긴 듯 체념하듯 말하는 아이작.

"저 그림이 현재에 이끈 변화는 미미할지라도, 먼 훗날엔 이 시대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알려질 테니까요."

"하하, 시대를 대표하는 그림이라니. 제국의 유행을 똥값으로 만든 작품이 말입니까?"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도 전승되면 역사가 되기 마련이죠."

그래, 당장 자각이 없을 뿐.

저 그림이 불러온 변화는 분명 이후에 있을 변화의 초석이 되어줄 것이다.

그 변화를 이끌어가는 것을 사명으로 여긴 아이작이 만족스레 미소를 지으니, 에버그린 역시 마찬가지로 정중함을 담아 고개를 숙여 인사하였다.

"줄곧 제 남편을 보살펴 줘서 고마워요. 아이작 공작전하."

답지 않게도 정중한 인사.

그 또한 그녀가 자신이 눈여겨본 인재를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겠지, 생각한 아이작이 손을 흔들어 그녀를 떠나보내 주었다.

"아, 안주인님 오셨습니까?"

"준비가 끝났으니 슬슬 출발하겠습니다!"

수레에 다가서기 무섭게 자신을 향해 배려를 보여주는 상단원들.

그들에게 눈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한 에버그린이 마차에 오르기 전, 에버그린이 마지막으로 수레에 실려있는 그림을 응시하였다.

혼색을 바탕으로 하여 정교히 그려진 그림.

하지만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기껏 꾸려낸 아름다움조차도 노골적으로 표현된 잔혹함에 삼켜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남편이 제 재능을 개화시킨 후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인 작품.

그리고…….

'그의 재능을 개화시켜 주었던 남자가 의뢰했던 작품.'

관점에 따라 아름답기도, 혹은 잔혹하기도 한……. 그 자체로 세계의 축소판이라 보아도 무방한 한 장의 그림.

하지만 그 두 가지의 개념이 혼재된 것을 정녕 혼돈이라 할 수 있을까?

그저 그런 것만을 의미했다면 저 그림이 2년이란 긴 시간 동안 이 나라에 남지 못했을 것이다.

올곧음을 지향하면서도 더러움 역시도 포용한…….

그 모든 것을 수용한 세계야말로 진정 조화란 말에 어울린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면.

"전쟁터에도 꽃은 핀다는 건가."

각박한 시대에도 희망은 존재한다.

딱 지금 시대에 필요한 조언이지 않은가?

* * *

"가는 것이냐?"

2년.

그 시간에 걸쳐 신세를 졌던 고향을 떠나는 날이 찾아왔을 무렵, 저택의 입구에 고풍스러운 차림의 사내가 셰인을 불러 세웠다.

바쁜 몸이니 몰래 나가려고 했건만 어떻게 알고 따라온 건지.

"뭐,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하니까요."

셰인이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마중 나온 이를 돌아보았다.

테올린 골드리안.

자신의 배다른 형이자, 그럼에도 자신의 몸에 흐르는 피를 존중해주는 사람.

제국으로 복귀한 지도 언 5년이 넘은 현재, 셰인에게 있어 제 앞에 있는 자는 무척이나 고맙고 감사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건 테올린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바.

지난 2년간 제 말을 고분고분 들으며 교육을 들어준 그는, 테올린의 기준에선 이 가문을 벗어날 자격이 충분히 갖춰졌다 판단이 되고 있었다.

"받아두어라."

그 손에 쥐어진 증표는 그걸 인정하기에 내어주는 것이었으니.

"그 인장을 보여준다면 대륙 곳곳에 골드핸드에서 운영하는 은행에서 얼마든지 대출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앞으로의 활동엔 큰 도움이 되어주겠지."

"……출금이 아니라 대출입니까?"

"책임질 수 있는 선에서 일을 벌여라……. 내 누누이 강조했던 가르침을 잊은 건 아니겠지?"

빚만큼 책임과 연이 깊은 것이 또 어디 있을까?

하물며 그런 식으로 압제를 걸지 않는다면, 그는 이제까지 그랬듯 자신의 그릇을 넘어서는 일에 뛰어들려 할 것이다.

"…형님은 괜찮으신 겁니까?"

하지만 그건 제 앞에 있는 그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전쟁이 벌어진 후 많은 이들이 이 제국을 불신하거나, 떠나기를 희망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 마당에도 골드리안은 여전히 이 제국에 남기를 희망한 상태. 그로부터 비롯될 위험도, 책임도……. 그 모든 것은 제 앞에 있는 그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떠나기로 결심한 현재에도, 셰인은 그 책임을 함께 짊어지지 못한 데에 아쉬움을 느낄 정도였으니.

"몇 번이고 누누이 얘기했지만 골드리안은 이 정도의 위험은 숱하게 겪어왔다."

"하지만……."

마저 걱정을 토로하려던 순간 제 어깨에 올리는 손.

무게가 어려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향한 자상함이 느껴지는 손짓이다.

"가주는 가문을 지키고, 그 외의 혈육은 고향을 벗어나 이름과 피를 퍼트린다……. 그것이 당연한 일인 것이다."

"……."

"…내 너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는데, 어찌 이 가문을 벗어나 뜻을 펼치려는 너를 잡아둘 수 있겠느냐?"

그래, 그는 그런 남자였다.

자신의 위상을 드높여주는 자부심이 가문에서 나왔으니, 그에 뒤따르는 책임도 함께 안고 가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는 사람.

"……형님."

그런 사람을 셰인은 진심으로 존중하고, 존경하며, 한편으론 동경마저도 품고 있었다.

앞으로도 제대로 된 귀족 따윈 되지 못할, 이런 모자란 녀석조차도 거두어준 아량을 가진 남자를.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런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니, 테올린이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그 인사를 겸허히 받아주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무엇을 하더라도 잊지 마라. 네가 골드리안 가문의 셰인이라는 것을."

늘 딱딱한 표정을 짓던 그에겐 보기 드문 얼굴.

하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은 순수하게 기쁨을 토로해도 좋지 않겠는가?

* * *

-뿌우우!!

골드리안 영지의 변경에 위치한 기차역.

그곳에 발을 들인 셰인이 접수처에 선 채로, 자신이 타게 될 열차를 멀리서나마 지켜보았다.

전쟁이 시작된 후 2년이 지난 현재엔 대륙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잡은 물건.

그건 제국뿐 아니라 대륙 전체에 걸쳐 해당하는 일이다.

사실상 국경을 넘는 여행과 외교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상태.

그러한 물건을 이용하는 건 즉, 지금부터 이 제국을 벗어나 다른 나라로 향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승객여러분들께 안내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희 열차는 곧 국경을 넘어 라이덴발트로 향할 예정이오니……."

목적지는 라이덴발트.

구 라인하르트 공작령을 수도로 둔 나라이자, 전쟁 직후 최초로 제국에서의 독립을 희망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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