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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샤~ 우리 양고기 먹으러 가요!”
야시장. 정말이지 처음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패트리샤, 저것도 맛있겠어요!”
후각을 자극하는 여러 음식들에 침이 절로 흐를 정도였으니.
“달달한 것도 먹을까요?”
육고기부터 해산물. 튀김부터 꼬치까지.
길게 늘어선 노점에 매번 채 열 걸음도 걷지 못한 채 걸음을 멈췄다.
나도 먹는 양 하나만큼은 어디 가서 꿀리지 않았는데.
아르세르는 차원이 다른 듯했다.
도넛부터 아이스크림 음료까지.
그녀의 손에 이끌리어 야시장 구석구석을 돌았다.
“패트리샤, 여기요!”
“하아, 이제 좀 쉬고 싶어요.”
목 끝까지 차오른 포만감에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배가 불러 걷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배불러서 못 걷겠어요.”
“응? 배불러요?”
아르세르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서도 한껏 울상이 된 내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소공작님은 시계탑 앞에서 만나기로 하셨다고 했죠?”
“네.”
“그럼 그쪽으로 가서 쉬실래요?”
아르세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었다.
“잠시 앉아서 쉬시면 좀 괜찮아지실까요?”
나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미련하게 먹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이 시끌시끌한 분위기 때문인지 너무 많이 먹어 버렸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많이 권했나 봐요.”
“아뇨. 조절하지 못한 제 잘못이죠.”
흘긋 아르세르를 바라봤다.
나와 같은 양을 먹은 게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아르세르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광장 또한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패트리샤, 여기 앉아도 되겠어요?”
“네.”
아르세르는 내게 분수대 단에 앉길 권하는 것을 조금 주저하는 듯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이제 십 분 정도만 있으면 로렌스가 오기로 한 시간이었다.
시계탑 앞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우글거리는 사람들을 보니 그곳에는 가고 싶지도 않았다.
“패트리샤, 많이 힘들면 이곳에 계실래요? 소공작님은 제가 이곳으로 모시고 올게요.”
“…그럼, 그래 줄래요?”
“네! 그보다 혼자 계실 수 있겠어요?”
아르세르는 혼자 있어야 할 내가 걱정되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차피 그녀도 로렌스 게르하르트를 만나기 전까진 혼자 기다려야 하면서.
내 걱정부터 앞서는 아르세르에 웃음이 나왔다.
“광장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혼자는 아니죠. 걱정할 거 없어요.”
“그래도 조심히 계세요. 금방 올게요!”
아르세르는 내게 조심하라 당부하고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하아….”
내가 왜 이렇게 많이 먹었지?
스스로 생각해도 미련하고 바보 같아 헛웃음이 흘렀다.
배가 부르다는 생각도 못 하고 계속 먹다 결국 이 신세였다.
“하아….”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한 것이 체한 것 같기도 했다.
“나 뭐 하냐, 진짜.”
근처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집시들의 경쾌한 선율과 신이 난 사람들의 웃음을 보니 다시금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예의가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아무래도 저택으로 돌아가야 할 듯했다.
식은땀이 삐질거리며 흐르는 걸 보니 정말 체한 듯싶었다.
아니. 로렌스와 아르세르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 줄 수 있으니 차라리 잘된 건가?
“패트리샤, 괜찮아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르세르가 돌아왔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그녀의 뒤에 서 있는 로렌스가 보였다.
그는 한껏 당황한 얼굴로 나와 아르세르를 바라보았다.
“어머, 식은땀이….”
아르세르가 놀란 듯 내 얼굴을 훑었다.
“패트리샤. 이게 지금….”
한껏 걱정을 담은 로렌스의 눈을 보고 있자니 얼굴이 붉어졌다.
“몸이 안 좋으면 나오지 말았어야지!”
“….”
“언제부터 이런 거지? 열은 없는데….”
그의 커다란 손이 얼굴을 덮었다.
“오히려 찬 것도 같군. 하아, 영애는!”
작게 한숨을 쉰 로렌스가 아르세르에게 짜증을 냈다.
“이런 사람을 지금껏 끌고 다닌 겁니까?”
순간 자신을 향한 타박에 아르세르가 놀란 듯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러나 가장 놀란 건 아마 나인 듯했다.
흐끄. 흐끅.
속절없이 흘러나오는 딸꾹질을 뒤로하고 서둘러 로렌스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하아,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많이 먹어서.”
걱정 어린 로렌스의 붉은 눈에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아마 그의 눈만큼 새빨간 색이었을 듯했다.
“뭐?”
“많이 먹어서 체한 거예요.”
말을 마치자 밀려드는 수치심에 더는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체했다고? 많이 먹어서?”
친히 다시 한번 더 확인시켜 주는 로렌스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흘긋.
길어지는 침묵에 로렌스를 올려다봤으나 이내 고개를 내렸다.
뭐 이런 애가 있지?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황당함과 짜증이 섞인.
한심하다는 이를 볼 때의 그 얼굴이었다.
다시 한번 모르간과 동급이 된 나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대체 뭘 얼마나 먹었길래.”
“죄송해요. 제 탓이에요.”
그때 아르세르가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제가 괜히 권해서….”
후드득. 후드득.
굵은 눈물방울이 아르세르의 얼굴을 타고 떨어졌다.
그제야 로렌스는 제가 괜한 사람에게 짜증을 냈다는 걸 깨닫고 아차 싶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
“하아, 영애. 죄송합니다.”
로렌스가 난처한 듯 아르세르를 살폈다.
“흐윽, 아니요. 정말 죄송해요. 제가 너무 들떠서 공녀님을 살피지 못했어요.”
다시 한번 굵은 눈물방울이 아르세르의 얼굴을 타고 흘렀다.
“아….”
로렌스의 화에 놀랐을 아르세르에게 미안했고, 괜히 난처해진 로렌스에게도 미안했다.
마음 같아서는 아르세르를 달래 주고 싶었지만.
그녀의 눈물이 그칠 때까지 곁을 지켜 주고 싶었지만.
속이 점점 불편해졌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후우, 저기, 잠깐. 지금의 상황에서 정말 무책임한 말이라는 거 알지만 속이 안 좋아서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순간 마주친 로렌스의 시선이 크게 흔들렸다.
“소공작님. 여기까지 와 주셨는데 정말 죄송해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을 훑었다.
손 한가득 묻어나는 식은땀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세르. 전 먼저 가 볼게요.”
아르세르는 당황한 듯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커다란 눈을 몇 번 끔뻑이었다.
“아, 그 배는 꼭 타 보세요. 그럼 갈게요.”
로렌스는 날 마차까지 데려다주고 싶은 듯 손을 뻗었지만 이내 아르세르를 바라보고는 손을 거뒀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었고 추태도 이런 추태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뒷모습을 보이는 게 이렇게 창피한 적이 있던가 싶었다.
* * *
곧 해가 뜰 듯한 새벽.
“하아….”
작게 한숨을 내뱉자 곁에 앉아 있던 카를로스가 허둥거리며 일어났다.
“공녀님, 괜찮으세요? 아니면 아직도 많이 편찮으세요?”
꾸벅거리며 선잠을 자던 엠마도 카를로스의 목소리에 잠에서 깬 듯 서둘러 날 살폈다.
“공녀님, 괜찮으세요?”
엠마가 젖은 물수건으로 내 얼굴을 훑어 내렸다.
“미안. 깼구나.”
“별말씀을요.”
미안하고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뱉자 엠마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만 가 보라니까 왜 다들 아직까지 여기 있어.”
“아프신 분을 두고 어딜 가요?”
엠마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다.
해가 뜨는 듯 창 너머로 어스름한 불빛이 흘러 들어왔다.
“약 먹고 나서는 확실히 괜찮아졌어. 걱정할 거 없어.”
우습게도 광장에서 먼저 빠져나온 나는 헤라르일라 저택에 도착했을 때쯤 정말이지 엉엉 울었다.
배는 계속해서 아프고 열까지 나는 게 아니겠나.
게다가 의원이 오기 전에는 속이 불편해 숨까지 잘 쉬어지지 않았다.
나 하나 때문에 어제저녁 헤라르일라 공작저가 뒤집어졌다.
공작은 놀란 척 걱정하며 의원을 불렀고 카를로스와 엠마는 밤새 곁을 지켜 주었다.
다행히 약을 먹고 이젠 참을 만해졌지만 사실 그렇다고 속이 괜찮아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밤새 두 번이나 속을 게워야 했으니 말이다.
걱정 어린 엠마의 손길이 내 목과 어깨까지 내려왔다.
“에휴. 땀이 이렇게 나시는데 괜찮긴요. 그 의원 완전 돌팔이 아니에요?”
나는 힘겹게 몸을 굽히고 땀을 닦아내는 엠마의 허리를 조심스레 잡아당겼다.
털썩 침대에 몸을 기댄 엠마가 놀란 듯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아이, 공녀님.”
“어차피 내가 그만 가서 자라 해도 안 갈 거잖아. 그러니까 그냥 여기서 자.”
“말도 안 돼요. 제가 어떻게 공녀님 침대에 누워요.”
“어차피 네가 좀 누워도 안 닳아. 봐봐, 내 침대가 좀 넓어? 그냥 누워.”
엠마는 불편한 듯 뭐라 중얼거렸지만 이내 몸에 힘을 뺐다.
“카를로스. 너도 이리 와.”
“공녀님! 카를로스는 남자예요!”
당황한 카를로스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엠마가 빽 소리를 질렀다.
그 높은 목소리에 순간 머리가 띵하고 어질거렸다.
“엠마. 나는 환자예요.”
“저, 저는 괜찮아요.”
엠마가 아차 싶은 듯 죄송하다 중얼거릴 때 카를로스가 입을 열었다.
악녀에게는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