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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41)화 (41/141)

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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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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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 소리와 함께 페일런이 안으로 들어왔다.

“저, 부……관님?”

“여기 있어.”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어 얼굴도 보이질 않는 베넷의 목소리가 그 너머에서 들려왔다.

“알아보라는 건.”

“아, 네.”

살가운 인삿말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베넷의 물음에 페일런이 정신을 차렸다.

“말씀하신 대로 애드먼 자작의 아들이 오네에서 소란을 자주 피우고 있는 모양입니다. 신고도 여러 건이고요.”

“같이 있었다던 다른 둘은.”

“아, 몬노 남작의 차남과 델피아 남작가의 막내아들이라고 합니다.”

페일런이 고개를 들었다.

“근데 그게 요즘 귀족 영식들 사이에서 유행이랍니다.”

“유행?”

“네. 후계 범위에서 벗어난 귀족 자제들이 오네나 디아브리아에 가서 평민 하나 잡고 화풀이를 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고…….”

유행을 탈 게 없어 그딴 게 유행인가 싶은 베넷이 고개를 들었다. 페일런 역시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말세예요. 말세.”

페일런이 혀를 끌끌 찼다.

“방위대는.”

“그게 문제예요. 방위대 쪽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질 않거든요.”

“…….”

“뭐 이유야 뻔하죠.”

저를 빤히 보는 베넷을 향해 페일런이 어깨를 으쓱했다.

“대부분의 사건들은 귀족들이 힘으로 억누르니 방위대가 필요 없고, 개중에 일부 반발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그들만 적당히 돈으로 입막음하고 마니까. 굳이 일도 많은데 그쪽까지 손을 안 대려 하는 거죠.”

“그 사이에서 그들도 받아먹고.”

“……그렇죠.”

일부지만요.

과연 어느 쪽이 그가 말하는 일부에 속하는지는 언급하지 않는 페일런의 말에 베넷이 펜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다 고개를 들었다.

“애드먼 자작도 돈깨나 썼겠군.”

“예, 몬노 남작과, 델피아 남작도. 뭐 다른 가문들도 한 번씩은 가볍게.”

톡톡-.

“오네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솔직히 평소라면 베넷도 그냥 넘길 문제기는 했다.

하지만 아기씨께서 직접 언급한 문제였다.

‘우리 가신 가문 영식이 오네 애들을 괴롭혀써.’

‘나 곧 오네 가는데 걔들이 나 못 알아보고, 나도 괴롭히면 어뜨케?’

그가 우리 가신 가문의 영식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느냐는 물음은 이제 의미 없었다. 그녀의 이능이 그쪽이라는 걸 베넷은 이미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예지 쪽 이능을 타고난 이들의 명이 짧다는 게 염려될 뿐.

툭-.

펜대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었다.

“애드먼 자작 쪽이 케이먼 님과 가깝던가?”

“네, 거의 공생 관계죠. 악어와 악어새. 물론 이쪽은 좀 더 나쁜 쪽이긴 하지만요.”

“가주님께서 케이먼 님 돈줄 말리라는 건 어떻게 됐어.”

“가문 쪽 재정은 전혀 지원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만?”

말끝을 늘이는 페일런을 향해 베넷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시선에 페일런도 못내 불편한 듯, 관자놀이를 긁었다.

“에시어의 이름을 팔고 다닙니다. 가문뿐만 아니라, 가주님의 이름을 앞세워서 돈을 끌어모으고 있어요. 이번에는 신대륙에서 금을 캐 오겠다고…….”

“미쳤군.”

그 황당무계한 발언에 베넷이 고개를 내저었다.

모든 면에 있어서 완벽한 가주인 마고 에시어의 가장 큰 단점은 가족들이 하나같이 정상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형제들은 물론이고, 자식까지도.

물론 개중에 정상인 사람도 있긴 했으나, 특히 마고의 큰형이었던 케이먼 에시어는 정말이지 형편없는 인간이었다.

직계인 데다가 선대 가주가 가장 사랑했던 장남이라는 타이틀을 갖고도 가주가 되지 못했으니, 거기서 말 다한 거겠지.

거기다 동생인 마고에게 가주직을 빼앗긴 뒤로는 아예 가문을 망하게 할 작정인지, 크게 한탕 소리를 하며 끊임없이 가문의 돈을 축내고 있었다.

무역선을 띄운다는데.

솔직히 말하면 정말 무역선을 보내는지 어쩐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쓰레기 같은 인물이라는 평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나 몇 해 전 배를 띄워 불법으로 노예를 들여오다 제국군에게 걸린 이후로 마고는 그에 대한 모든 지원을 끊어 버렸다.

‘당장 있는 지분도 다 빼 와.’

‘은행에도 전해. 돈 한 푼 내주지 말라고!’

그 때문에 한동안 가문이 시끌시끌했었는데.

이제 조금 잠잠하다 했더니만.

‘사기 칠 궁리 중이었나.’

한심함에 가볍게 혀를 찼다.

“그래서 모인 돈은.”

“이제 시작 단계인 모양입니다.”

“가주님의 이름 파는 건, 은퇴 이후에는 사라졌겠지?”

“대신 안드레아 님을 만나려고 필사적이라더군요.”

어쩜 그렇게 뻔하게 구는지.

“투자자들한테 소문내. 케이먼 무역과 우리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가주님께도 따로 보고서 써서 올려 드리고.”

“예.”

“그리고 애드먼 자작에겐 아들 단속 제대로 하라고 전해. 특히나 그 피에르 애드먼.”

“네, 알겠습니다.”

베넷이 고개를 숙여,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보곤 안경을 올려 썼다.

“아, 그리고 말씀하신 그 귀족이요.”

“귀족?”

순간 페일런이 뭘 말하는 건가 싶어 미간을 좁히자, 그가 급히 말을 붙였다.

“그 경매장에서 아기씨가 사들인 노예 사려던 귀족 말입니다.”

“아.”

그제야 떠오른 듯 베넷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 귀족.”

“남쪽 레팡 지역의 영주인 엥두앙 남작이라고 합니다. 친황후파구요. 근데 소문이 아주 더러워요.”

“어떻게.”

“변태라고요.”

어깨를 으쓱한 페일런이 베넷을 바라보았다.

“특히 그 성적으로요. 소문이긴 하지만 그 저택 지하에서 죽어 나온 어린애들이 한둘이 아니랍니다.”

“역시나 그것도.”

“방위대는 움직이지 않죠.”

“친황후파에 증거가 없을 테니까.”

“네.”

베넷이 책상을 다시금 톡톡 두드렸다.

‘그 귀족은 꼭 잡아서 혼내 줘.’

애드먼 자작의 영식에 대해서는 언급만 하고 넘어가셨던 아기씨께서 그렇게까지 말하셨으니.

“방위대에 우리 사람 누가 있지?”

“시무아가 있습니다.”

아. 잘됐네.

우리 쪽의 그것도 매우 성격이 곧고 더러운 이의 이름에 베넷이 웃었다.

“실적 없어서 까인다고 구시렁거렸으니, 그 집 싹 뒤져 보라고 해.”

“알겠습니다.”

베넷의 말에 페일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리고 며칠 뒤.

“해서, 그 집 안에 있던 아이들 열 명을 구해 낸 모양입니다.”

“잘됐다!”

일을 잘 마무리했다며 나를 찾아온 베넷의 보고에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걱정했었는데.

솔직히, 소설 속에서 매우 자주 끔찍한 지옥이라고 표현되었던, 그 지하에서 쟈이든만 구해 냈다는 죄책감이 내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었다.

특히나 내가 그 날, 쟈이든을 구해 낸 탓에, 그 대신 팔려 간 노예가 쟈이든과 똑같은 짓을 당해 지옥에서 헤매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벌떡 몸이 일으켜졌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내가 다른 사람을 희생시킨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근데 다 구해 냈다니.

눈물이 날 정도로 안도가 내려앉았다.

올가의 말대로 내 이능의 특성이 말도 안 되는 이타성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 이능 생각하니까 또 급우울하네.’

아직도 여전히 도형 그리기에 실패하고 있는 내 무쓸모한 손가락을 보니 눈물이 쏙 들어가는 것 같았다.

울 자격도 없다.

이타성은 무슨.

“휴.”

긴 한숨과 함께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러자 이미 내 상태에 대한 소문이 자자한 건지, 베넷의 시선이 내 손끝을 향했다.

하지만-

“가주님과의 약속 일자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역시나 베넷은 위로하지 않았다.

“알고 이써.”

“오네에 꼭 가셔야 한다면 분발하셔야 할 겁니다.”

“알아.”

봐주지 않으실 거라는 걸.

그래, 봐준다는 건 할아버지의 사전에 아예 없는 단어였으니까.

쳇.

괜히 기죽이는 그의 말에 입을 오리처럼 내밀어 삐죽이자, 그런 내 모습에 피식 웃은 베넷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웅, 고마워 베넷.”

내 해맑은 인사에 고개를 숙였다 든 베넷이 웃으며 몸을 돌렸다.

“휴우.”

내심 나를 찾아왔다기에 돈 언제 갚을 거냐고 따지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물론 그럴 사람이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모르는 거 아닌가.

근데 내가 그 날 말했던 걸 다 해결하고는 사후 보고까지 깔끔하게 해 줄 줄이야.

‘이러니 할아버지가 신임하시는 거겠지.’

지금도 아프다는 핑계로 침실에서 거의 나오질 않으시는데도 가문이 잘 원활하게 돌아가는 건 전부 베넷의 덕이었으니까.

안드레아 숙부가 그걸 알아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몰라야 내가 데려올 수 있을 테니까.’

그냥 평생 몰라라.

어차피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었으니까, 아마도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도 그는 변하지 않을 거였다.

그러니 안드레아의 에시어는 가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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