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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51)화 (51/141)

51화

“리리네 쿠키는 역시 맛있어…….”

“네 것도 괜찮네.”

꾸덕한 쿠키를 조금 떼어 입에 넣은 리리아나가 새초롬하게 입에 넣어 오물거렸다. 하지만 그럭저럭 괜찮네, 라는 리리아나의 말과는 달리 그녀의 입꼬리는 실룩실룩 말려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할아버지가 좋은 걸 숨기려고 참는 것처럼 움직이는 리리아나의 입술에 슬쩍 웃은 그 순간-

첨벙! 소리와 함께 호수에 빠진 제이슨이 수면 위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보였다.

“!”

아니, 난 분명 리리아나를 보고 있는데?

머릿속에서 마치 영상이 재생되는 것처럼 흘러가는 이질적인 장면에 놀라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어?’

하지만 호수의 수면은 더할 나위 없이 잔잔했고, 제이슨은커녕 허우적거리는 사람조차 보이질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게 뭐야?

눈앞에 펼쳐진, 아니 믿을 수 없는 장면에 눈을 깜박였다.

난생처음 겪…….

‘아니야.’

이전에 마차 사고를 당했을 때도 이랬었어.

눈앞에 보이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장면들, 기억들.

그때와 너무 비슷한 상황에 고개를 들자 그 순간, 아무것도 없던 호수 너머 숲에서 거짓말처럼 말을 탄 제이슨이 나타났고, 그 뒤로 챈들러가 따라 오고 있었다.

“하지 마!”

“겁쟁이! 좀 더 속도를 내야지!”

“진짜 그만 쫓아와, 형. 나 넘어져서 다칠 것 같단 말이야.”

“안 다쳐! 더 내려치란 말이야! 더! 더! 으하하!”

챈들러가 말의 엉덩이를 기다란 채찍으로 내리치며 위협하듯 제이슨을 쫓았다. 하지만 잔뜩 신이 나 상기된 얼굴의 챈들러와 달리 앞서 달리고 있는 제이슨의 얼굴이 공포에 질려 가는 게 눈에 선명히 보였다.

지금도 말의 목을 끌어안고, 거의 매달려 있는데.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그의 모습에 몸을 돌렸다.

‘설마.’

하지만 설마, 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챈들러에게서 도망치려 아예 속도를 내는 제이슨의 모습에-

“제이슨! 고삐 틀어!”

두 번 생각할 틈 없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첨벙!

눈앞에 펼쳐졌던 장면은 변하지 않았고, 물가에서 엉덩이를 위로 처든 말의 움직임에 호수로 날아가듯 빠진 제이슨이 수면 위에서 허우적거렸다.

“살려!”

그리고 그 순간 다른 건 생각할 수가 없었다.

오직 제이슨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아기씨!”

“아기씨!”

나를 말리려는 헤일과 달려오는 피어스를 뿌리친 채, 다른 생각 할 틈 없이 물가로 내달렸다.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죽는 거 싫어.

숨을 가쁘게 오르내리는 가슴에서부터 빠듯하게 차오른 열이 몸 안에서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심장에서 타고 나와 휘감듯이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지는 낯선 이질감.

그동안은 이능이 있다고 하는 말들에 반신반의했었는데.

순식간에 차오른 낯선 감각들이 온몸을 버겁게 채우는 게 느껴졌다.

마치 몸에 맞지 않은 작은 옷을 입은 것처럼.

숨을 쉴 수도 마실 수도 없게끔 차오른 그 순간 눈앞에서 물속으로 가라앉는 제이슨의 모습에 손을 뻗었다.

“안 돼!”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서 폭탄이 터진 것처럼 펑 하고 빛이 퍼져 나갔고 이어-

“그만.”

커다란 손이 내 눈을 가렸다.

“거기까지요. 숨을 들이마시고.”

“하악-.”

“내쉬어요.”

내가 미워하던 사기꾼, 올가였다.

* * *

“레티시아가 본관으로 온 뒤로 조용할 날이 없네. 정말.”

호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유리 온실에 헬렌과 마주 앉은 벨리아가 한숨을 몰아쉬었다.

심기가 매우 불편한 듯, 찌푸린 미간에 헬렌이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그 전까지는 별 탈 없었는데. 일이 많이 생기네요.”

“재수가 없는 애라 그래.”

둘만 있는 공간에 격의 없이 내지른 벨리아가 숨을 몰아쉬었다.

“사생아인 제 아비가 그 엄마 일찍 잡아먹더니, 이번에 그 딸은 아예 지 엄마 잡아먹고 태어난 거 아니야.”

“죽은 거래요?”

“죽었겠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벨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아니면 그 핏덩이를 샤리에가 왜 데리고 와서 집안에 맡겼겠어. 엄마 손에서 키웠겠지. 그리고 애 엄마가 있었으면 당연히 큰며느리 노릇 하려고 들어앉았겠지. 그대로 있었겠어?”

“하긴 그렇네요.”

“없는 것들이 원래가 더 무서운 법이야. 샤리에랑 눈 맞아서 놀아났으면 당연히 평민일 텐데. 멀쩡히 살아 있는데 에시어가 가진 돈, 권력 이런 거에 눈독을 안 들인다고?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지.”

벨리아가 찻잔을 들며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그런다고 내가 가만있을 사람은 아니지만.”

흥, 하고 코웃음을 친 벨리아의 표정에 찻잔을 든 헬렌이 표정을 살짝 숨기듯 고개를 숙였다.

그냥 이대로 마주 보고 있다간 벨리아를 비웃고 있는 제 속마음을 들킬 것만 같았다.

‘그러면 안 되지.’

제가 이 벽을 어떻게 세웠는데.

이딴 말로 무너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평상시에는 잘 숨기다가도 정말 아무것도 아닌 말에 터져 나올 것 같은 실소를 막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요.”

그럼에도 억지로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형님께서 계시니, 에시어가 이만큼이나 유지하고 있는 거죠. 저였으면 어림도 없었을 거예요.”

“자네라도 알아주니, 고맙네.”

“…….”

“그이도 그렇고, 아버님도 그렇고 내 수고를 너무 당연히 여기셔서 조금 짜증이 나던 참이었는데.”

레티시아의 이야기에 나빴던 감정이 금세 나아진 듯 웃은 벨리아가 머리를 매만지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요즘 내가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서 마음 같아선 자네한테 다 넘기고 좀 쉬고 싶은데.‘

“그러실 수는 없죠. 제가 뭘 할 줄 알아서요.”

“그러니까.”

“…….”

“자네가 아무것도 모르고 시집을 와서, 내가 손을 놓을 수가 없네.”

은근슬쩍, 저를 깎아내리는 벨리아의 말에 헬렌이 작게 웃었다.

“형님 말씀이 맞아요. 저야 형님 덕분에 책 보고, 그림 보고 쉬고 하는 거죠.”

매번 똑같은 패턴의 대화에 만족한 듯 벨리아가 생긋 웃으며 찻잔을 들어 올리려던 그 순간-

챙그랑!

“죄, 죄, 죄송합니다.”

찻물을 따르던 하녀와 부딪힌 벨리아의 치마 위로 찻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번지듯 치마의 색이 짙어지는 그 순간.

짝-

가차 없이 하녀의 뺨을 내리치는 벨리아가 주먹을 쥔 채, 손을 털었다.

“아, 아파.”

그 손이 아플 정도면 맞은 하녀의 뺨은 어떻겠나 싶었지만, 헬렌은 부러 못 본 척 고개를 돌려 딴청을 피웠다.

“나가서 하녀장 불러와.”

“네.”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턱 끝에 살짝 고여 떨어지려는 걸 손등으로 닦은 하녀가 몸을 돌려 빠져나갔다. 그러곤 연신 때린 손이 아픈지 주먹을 쥐었다 핀 벨리아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에 앉았다.

“정말 마음에 드는 애가 하나도 없어.”

“엘린은 휴가 간 모양이에요.”

“아, 내보냈어.”

“네?”

처음 듣는 이야기에 헬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요?”

“앞동에 일 있던 날, 베넷한테 불려 갔다 왔다잖아.”

“아아.”

아리나와 엘린의 연결 고리가 들키면, 괜히 불똥이 제게 튈까 아예 잘라 버린 모양이었다.

‘탈 날 텐데.’

엘린은 그래도 벨리아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질 않은가.

“그래도 곁에 오래 두었던 아이인데, 괜찮으시겠어요?”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에 살짝 언질을 주었다만-

“필요 없는 물건은 그때그때 치워 버려야지.”

“…….”

물건이라.

헬렌이 뒤쪽에서 이야기를 다 듣고 있는 하녀들의 얼굴을 슬쩍 보며 찻잔을 들었다.

‘멍청하긴.’

하녀들이야말로 제게 가장 필요한 존재들인데.

대체 백작가에서 뭘 배워 온 건지.

다 망해 가는 남작가였던 제집에서도 배웠던 거였다.

네가 부리는 개의 밥은 굶기면 안 된다.

혹시라도 내쫓아야 한다면…….

‘죽이렴.’

그게 후환을 남기지 않는 길이라며, 웃으며 말씀하셨지.

이건 정말 최후의 방법이고, 어지간해선 배불리 먹여서 잘 달래라고.

“그래도 아쉽긴 하네.”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헬렌을 깨우는 벨리아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뭐가요?”

“엘린 말이야. 일은 참 잘했는데.”

혀를 쯧 하고 차며, 고개를 내젓던 벨리아가 유리온실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머, 애들 말 탄다.”

앞서 달리는 제이슨과 뒤를 따르는 챈들러의 모습을 보며 웃는 벨리아의 표정에 헬렌 역시 마주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잔뜩 겁에 질려 있는 제 아들의 표정에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때-

“제이슨! 고삐 틀어!”

누군가의 고함과 동시에 빛이 쏟아져 나왔고, 이어 첨벙! 하고 뭔가가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제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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