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61)화 (61/141)

61화

알프레도 스벤.

스벤 자작가의 차남이었으나 일찍 죽은 장남 대신에 자작가의 후계자가 되고 끝내 스벤 자작이 된 인물이었다.

자작이 되자마자 중앙 무대에 진출해 엄청난 처세술로 현 황제의 신임을 얻어 백작이 되었고, 궁내부 장관에까지 오른 그가 훗날 리안을 황제에게 데려가게 된다.

안젤라가 궁내부로 편지를 보냈으니까, 당연하겠지.

알프레도 스벤.

처음에는 네투아 공작가의 일을 도맡아 하면서 황실 내에 그 입지를 늘렸는데, 리안이 나타나고부터는 그의 후원자를 자처하며 네투아와는 결별했다.

그러곤 훗날 리안이 황제가 되었을 때에 공작 위를 하사받고 재상까지 거머쥐게 되어 그야말로 하위 귀족들의 우상 같은 존재가 소설 속 알프레도 스벤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가 차지한 공작위의 자리는-

‘에시어의 자리였지.’

테파로아 제국의 초대에서부터 지금까지 5공작가의 숫자는 불변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공작가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에시어가 망한 자리를 알프레도 스벤이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부패하고 부정한 짓을 일삼던 에시어 공작가와는 달리 공정함과 정의로움의 화신이라 불리던 알프레도 스벤 공작이.

‘과연 에시어를 무너트리는 데에 있어 그의 지분은 얼마였을까.’

50? 60? 100?

턱받침을 한 채 종이 위에 숫자를 끼적거렸다.

“레티시아 아기씨, 아주 잘하셨습니다.”

순간, 낙서처럼 글씨를 쓰다 ‘음? 뭐?’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문제를 다 맞추셨네요.”

“아.”

그러게.

마도구 위에 쓰여진 10 곱하기 5와, 6과, 10에 대한 답이 귀신같이 적혀져 있었으니까.

‘이러니 내가 천재라고 오해할 수밖에 없지.’

선생들과 할아버지, 리리아나까지도.

하지만 나는 오해 따위 하지 않았다.

이건 천재가 아니라 회귀자의 특권이었고, 지금은 운이 너무 찰떡같이 좋은 것뿐이었으니까.

“감샵니다.”

그렇다고 뭐 굳이 부정할 할 필요까지는 없지.

왜냐하면 이미 다 알고 있는 거니까.

운이 아니었더래도 다 맞았을 문제를 보며 수학 선생님이 주는 남은 문제를 슥슥 풀어 내려갔다.

오랜만에 단순 계산 문제를 풀고 있으니 잡생각이 싹 사라지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문제가 줄어드는 게 아쉬울 정도로.

‘조금 더 어려운 문제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진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시아 때도 고민이나 나쁜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하거나 우울할 때면 후원자님이 사 주셨던 단순 계산 문제만 있는 문제집을 풀고 또 풀었었다.

나중엔 하도 풀고 지워서 너덜너덜 걸레짝이 되어 다 헤지고 찢어져서 끝내는 버렸지만.

그래도 그걸 풀고 나면 복잡한 머릿속은 오직 그 수학 문제만 남고 깨끗해졌었다.

근데 지금은 문제가 너무 쉬워서 그런지 잡생각은 사라졌는데 중요한 문제가 여전히 머릿속 한가운데에 가장 크게 남아 있었다.

에시어가 망한 이유.

‘그래, 단순히 안드레아 숙부만의 문제가 아니야.’

안드레아가 아무리 개차반이라고는 해도 집안을 말아먹을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집안을 말아먹을 머리까지는 없었다.

원래가 망하는 집을 보면, 애매하게 머리를 쓰는 사람이 가주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안드레아 숙부는 정말 그럴 만한 머리가 없었다.

거기다 할아버지를 겪어 온 에시어의 가신들이 호락호락한 것도 아니고.

가문이 몰락해 가는데, 가만 손 놓고 있을 사람은 솔직히 많지 않았다.

베넷도 있고, 가장 큰 사업 파트너인 리비에 백작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솔직히 그렇게 쉽게 무너졌다는 걸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스벤 백작을 보고나니, 전생에 에시어가 망했던 데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게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히 할아버지가 익투스로 쓰러지시는 바람에 안드레아 숙부가 가주 대행으로 있으면서 횡령과 오만 부정을 저지르고, 끝내 2황자를 지지하다 리안이 황제가 되면서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망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어…….’

그리고 그 이유에 스벤 백작과 황태자 칼리안이 있다는 것도.

그 너머에 네투아 공작가도.

그래, 솔직히 말해서 2황자 카일이 네투아 공작가를 외척으로 두고 있는데, 그를 지지한 안드레아는 모든 것을 잃고 몰락해 죽었는데. 네투아는 계속해서 승승장구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은가.

둘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고서는 말이다.

‘근데 네투아는 카일이 황제가 되는 편이 더 나았을 텐데, 왜 리안을 지지한 거지?’

리안이 쉬워 보였을까?

하지만 어찌 됐든 리안은 소설의 남자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여타 소설의 남자 주인공들처럼 리안도 모든 능력치에서 만점이었기에 정치력도 뛰어났다. 그러니 리안이 그들에게 휘둘렸을 리는 없다.

그들이 휘둘렸으면 휘둘렸지.

‘그럼 리안이 설득한 건가?’

그럼 또 말이 되기는 하는데.

황태자가 된 리안이 흑화하여 당대의 권력자 둘을 쥐고 흔든다.

설정상 무리는 아니었다.

남자 주인공은 그런 맛으로 보는 거니까.

그렇게 완벽한 남자가 오직 한 여자만 사랑하는 판타지를.

‘그래, 그건 판타지지.’

어찌 됐든 그런 내용이라면, 리안이 네투아 대신에 에시어의 손을 잡게 만들면 되는 거다.

네투아의 후계자가 아니라.

‘근데 네투아의 후계가 누구지?’

지금 네투아 공작은 너무 노쇠한 탓에 리안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자기 손자인 카일이 있는데? 분명 지금의 네투아 공작이 아닌 다른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게 분명했다.

‘누굴까?’

내가 아는 사람인가?

“궁금한 게 있나요?”

문득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자, 어느새 선생님이 바뀌어 있었다. 나를 괴롭히기 좋아하는 철학의 키에트의 물음에 아주 잠시 고민을 해야 했다.

키에트에게 물어보면, 말이 길어질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다 이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지굼 네투아 공작가의 후계자는 누구예여, 선생님?”

“…에?”

뜬금없는 내 물음에 잠시 당황한 듯 키에트가 눈을 깜박였다.

“아직 정해진 바는 없지만 당연히 엘리아스 네투아 님이 되시겠죠.”

나를 빤히 보던 키에트가 코끝을 살짝 긁었다.

하지만 키에트의 말에 되레 당황한 것은 나였다.

‘엘리아스?’

그런 이름은 난생처음 들어보았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이랑 너무 다른데.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떠오르지 않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비아제 네투아님 아니구요?”

“비아-큽.”

내 입에서 나온 비아제의 이름에 순간 코웃음을 숨기질 못한 키에트가 큽 하고 웃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내가 네투아의 비아제를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다는 듯 입을 벙긋대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물어봐야 대답해 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 듯한 행동이었다.

“비아제 님은 그 댁에서도 내놓은 자식이랍… 아니, 아닙이다. 비아제 님은 아마 네투아 내에서도 후계에서 가장 먼 분일 겁니다.”

귀족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최대한 순화시킨 키에트의 말에 다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현재의 상황이 너무 달랐다.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 멍하니 고개를 들자 키에트가 그대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진짜 더러운 오물 냄새 때문에 짜증 나서 죽을 뻔했네. 가자, 제이슨.”

“으, 응.”

키에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난 챈들러가 제이슨을 툭 치며 교실을 빠져나갔다.

내 쪽으로는 시선 한 번도 두지 않는 그 뒷모습을 보며 리리아나가 혀를 찼다.

“유치해, 정말.”

그러곤 나를 흘끗 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신경 쓰지 마, 저러다 말 거야. 그 날 할아버지한테 된통 혼나고 에시어의 역사 10권, 가족의 우애 그 부분 100번 썼대. 그래서 골난 거 같아. 우리 둘 다 쳐다도 안 보잖아.”

“난 괜찮은데. 괜히 나 때문에 리리까지 같이 미움받네.”

“난 챈들러 오빠 별로라 상관없어.”

“나두.”

킥 하고 리리아나를 향해 웃어 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생각은 방에 가서 마저 하자, 싶어 몸을 돌리자 “아기씨.”라 부른 헤일이 다가와 작은 쪽지를 건네주었다.

“폴 님이 보내셨어요.”

폴?

헤일의 말에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얼른 손에 든 쪽지를 펼쳐 들었다.

[안젤라 위독]

역시나 리안 엄마의 소식이었다.

그리고 폴이 이렇게 다급히 소식을 전할 정도면 아마 오늘을 넘기기 어려울 듯했다.

‘어쩐다.’

입술을 살짝 말아 물었다.

나가서 리안이를 보고 싶은데.

오네로 가기 전이었다면 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리안이 옆에 있어 주고 싶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며 고개를 돌린 그때-

“내일 봐, 레샤.”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돌아서는 리리아나의 주변으로 후광이 비쳤다.

‘귀인이다.’

해서 그 귀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나, 나도 데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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