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리안이 울고 있었다.
처음 보는 아이의 눈물에 당황한 건 나였다.
아니, 엄마를 잃은 아이가 울 거라고, 당연히 울고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으나, 저리 서럽게 울 줄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어떤 상황에서건 리안은 잘 울지 않았으니까.
울음을 참는 게 아니라, 감정이 사라진 것처럼 그는 무감했고 우는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는 듯 구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극악하게 괴롭힐 때도 그랬고, 혼자 남은 그를 사람들이 찾아와 이유 없이 괴롭힐 때도. 심지어 소설에서조차 그가 눈물을 흘렸다거나, 울었다는 장면은 없었다.
그랬기에 리안의 서러운 울음에 숨이 막혔다.
그가 토해 내는 슬픔이 너무 아프고 선명해서, 솔직히 말하자면 그를 위로해 주겠다고 온 내 모습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가 겪고 있는 저 슬픔이 어떤 감정인지, 그가 지금 얼마나 힘들고 슬플지 전혀 가늠조차 할 수 없으면서, 무슨 위로를 하겠다는 건지.
나의 알량함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바보 같아.’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여길 왔을까. 한심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 그의 곁으로 다가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혼자 두고 갈 수도 없어 그냥 그대로 자리에 굳어진 채 그와 폴의 모습을 떨어져서 바라볼 뿐이었다.
그를 위로할 단어가 내게 없어서도 그랬지만,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안전거리를 넘어 설 수가 없어서 더 그랬다.
리안이 싫어할 테니까.
가뜩이나 슬픈 애를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돌아가야겠어.’
점점 더 서럽게 우는 리안의 모습을 보다 문득 그가 남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렸다.
“헤일, 나…….”
하지만 돌아서려는 그때-
“선생님.”
멀찍이서 리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좀…….”
“그래, 내가 들어가서 보마.”
하지만 그리 말을 하면서도 폴의 옷을 잡은, 떨리는 손을 놓지 못하고 있는 리안이 고개를 숙였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툭툭 떨어져 바닥을 적시면서도 움켜쥔 손을 풀지 못하는 리안의 모습에 눈물에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방금 전까지 선을 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이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내가 옆에 있을게.”
싫은 나라도 옆에 있는 게, 혼자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래서 그의 손도 잡았다.
폴의 옷자락을 움켜쥔 것처럼 내 것이라도 잡으라고. 불안하지 않게끔 손깍지까지 꽉 껴 잡았다.
“폴, 들어갔다 와.”
폴이 나와 리안을 번갈아 보다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시만.”
그러곤 이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삐걱대는 문소리와 자박자박 멀어지는 발소리가 탁 소리와 함께 사라졌고, 이에 흠칫 몸을 떠는 리안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그러곤 앞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나 너 안 봐.”
“…….”
“그리고 여기 너무 캄캄해서 안 보여. 그러니까 나 신경 쓰지 마.”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하는 내 얼굴을 바라보는 리안의 시선에 나도 모르게 그를 보게 될 것 같아 그냥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난 그냥 여기 없는 사람이야. 너 안 보여.”
“…….”
하지만 그런 나를 리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래도 잡은 손을 놓지는 않는 걸 보면, 내가 아주 싫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간질간질한 느낌에 아주 잠깐 눈을 떴다가 이내 도로 감아 버렸다.
“아니야, 나 눈 안 떴어.”
“눈 떠도 돼.”
“아니야. 뜨지 않을 거야.”
“이미 다 봤잖아.”
그렇게 말한 리안이 손등으로 눈가를 쓱쓱 닦는 게 느껴졌다.
그 기척에 슬쩍 한쪽 눈을 올려 떴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지는 않고 여전히 내 시선은 앞을 향해 있었다. 목이 뻣뻣하게 굳어 버린 사람처럼 뚫어져라 앞만 보는 내 옆얼굴에 리안이 픽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러곤 이내, 죄책감에 표정을 굳혔다.
“슬픈데 웃음이 나오네.”
지금 제 혼란스러운 감정을 담담하게 말하는 리안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안 보겠다던 다짐은 또다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듯 리안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자 멀찍이 떨어져 있을 때보다 더 선명한 슬픔이 마음에 닿는 것 같았다.
시큰거리는 숨을 몰아쉬자 리안이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슬프지 않는 걸까?”
울음을 참으려 떨리는 입술을 말아 문 리안의 표정에 그의 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슬퍼. 슬픈데, 막 엄청 많이 슬픈데. 너무 막 슬프기만 하면 안 돼. 그러면 살 수가 없잖아.”
“…….”
“슬퍼하는 것도 필요한데 잊는 것도… 아주 잘 잊는 것도 필요해.”
물론 지금 이 이야기를 리안에게 하는 건 조금 이른 소리라는 건 안다. 하지만 아이의 죄책감을 마주한 순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네 감정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너희 엄마도 네가 슬퍼만 하는 걸 바라지는 않으실 거야.”
“…….”
“넌 여기 남아, 살아야 하니까.”
난 리안의 슬픔을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까, 헤아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떠올려 보니 이시아 시절, 나를 엄청나게 예뻐하셨던 원장 수녀님이 내 나이 19살에 돌아가셨고, 전생에 아주 가깝지는 않았지만 나를 많이 사랑했던 아빠와 할아버지를 잃기도 했었다.
물론 리안이 지금 겪어 내는 그 슬픔의 깊이가 당시의 나와 같지는 않겠으나.
슬픔은 동일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저 말이었다.
‘슬퍼만 하는 걸 바라지 않으실 거야.’
난 여기 살아야 하니까.
“그러니까 웃기도 하고, 울어도 돼. 나쁜 거 아니야.”
“…….”
내 말에 리안이 눈꺼풀 가득 찬 울음을 툭 하고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일그러진 미소였지만, 잦아드는 울음에 호흡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게 느껴졌다.
조금 도움이 된 건가. 하는 마음에 어깨를 살짝 늘어트리자-
“리안아.”
삐걱 대는 문을 열고 폴이 걸어 나왔다.
그러곤 그를 빤히 볼 뿐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질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침묵에서 알 수 있었다.
안젤라, 리안의 엄마가 죽었다는 걸 말이다.
* * *
폴이 집 안에서 걸어 나오고, 이내 서럽게 우는 남자아이의 등을 토닥이는 레티시아를 바라보던 헤일이 몸을 일으켰다.
“다녀올게요.”
레티시아가 멀찍이 떨어져 있어 달라고 했으나, 지금 상황에서까지 그럴 수가 없었던지 헤일이 피어스를 돌아보았다.
“피어스는?”
“전 근처에 있겠습니다.”
“그래, 그럼.”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젓자, 헤일이 알겠다는 듯 레티시아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피어스 역시 아주 가깝게 다가서지 않은 것뿐, 방금 전보다 조금 더 거리를 좁히며 레티시아의 지척에 섰다.
금방 손에 닿을 수 있을 것처럼.
한데 한 발 그녀의 가까이로 다가선 순간, 내내 잔잔한 수면 같던 공간의 파장이 조금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뭐지, 이 느낌?’
무슨 일이 벌어지거나 아기씨께 해가 될 느낌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거북하고 께름칙한 느낌이 영 달갑지가 않았다.
‘돌아가야 하려나.’
괜스레 온몸을 바짝 긴장시키는 이 흔치 않은 느낌에 피어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한 발 더 가깝게 다가섰다.
뭔가 익숙하게 기분이 더러워지는 느낌이 뒷덜미를 잡아채는 것만 같았다.
갑작스럽게 뒤통수를 얻어맞아도 이상할 것 없는 익숙한 섬뜩함.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딱 대장이 뿜어 내는 파장이었다.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사람을 긴장시키는 그의 기운 말이다.
근데 그건 말이 안 되는데.
타루스에 있어야 할 대장이 황도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 하하.’
대장이라니. 말도 안 되지.
뭐, 타루스가 말로 반나절이며 갈 수 있는 황도 옆 동네도 아니고.
포털로 황도 가까운 마을로 이동한다 해도 그로부터 장장 말로 보름을 달려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이 타루스였다.
‘그치, 말도 안 되지.’
하지만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뒷머리가 따끔거리는 이 느낌은 대장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렵긴 했다.
근데 만에 하나 대장이 아니라면 그에 비견될 다른 사람이 있다는 의미인데.
그건 그거 나름대로 최악이었다.
샤리에 에시어 같은 사람이 둘이라니.
‘거기가 지옥이네.’
그쪽으로는 고개도 돌리고 싶지 않은 피어스가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레티시아 에시어.”
피어스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나타난 그의 모습에 피어스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
‘젠장, 망했네.’
말도 안 되지만 진짜 샤리에 에시어가 나타난 탓이었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