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64)화 (64/141)

64화

그 시각.

희뿌연 담배 연기가 매캐하게 차오른 공간에 왁자지껄한 소음이 귀를 자극했다.

귀족 남자들이 자주 드나드는 사교 클럽의 모습을 띠고는 있으나, 그 어느 곳보다 퇴폐적인 공간엔 음습한 분위기마저 맴돌고 있었다. 그 분위기는 자리에 모인 이들의 혼탁한 눈동자가 대신 설명해 주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펠루아나 따위가 정녕 이기고 있다는 겁니까?”

깊게 담배 한 모금을 빨아 댄 젊은 백작이 고개를 내저었다.

“리비스 영주는 대체 뭐 하는 작자이기에. 고작 그 미개한 놈들을 못 막아서 황도에까지 소식이 전해지게 만드는지. 요즘은 그 어딜 가도 펠루아나 이야기뿐이라니까? 우리도 봐. 이 좋은 날 만나서 하는 소리가 고작 펠루아나, 펠루아나. 분위기 뒤숭숭하게.”

혀를 끌끌 찬 백작이 다시금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중년의 귀족이 백작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러다 행정부에서는 이러다 은퇴하신 에시어의 가주님께서 나오시는 거 아니냐고 우스갯소리가 나온다더군요.”

“아아, 나도 그 이야기 들었네.”

‘으하하.’ 하고 웃으며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백작이 한구석에서 내내 침묵하고 있는 안드레아를 흘끗 보았다.

‘바보 같은 새끼.’

겉으로는 여유 만만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그의 초조함이 연신 잘근 씹어 대는 입술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불안한 발밑을 보느라 다른 걸 볼 정신이 없는 듯했다.

어릴 때부터 에시어의 소공작으로 불리며 제가 성인만 되면 금세 공작가를 물려받아 제국을 쥐락펴락하는 별 중의 별이 될 것이라 생각했을 텐데.

아직도 후계자가 되질 못했으니.

‘쯧.’

그 뒷배였던 공작부인은 너무 일찍 죽어 버렸는데, 심지어 마고 에시어는 너무 정정하질 않은가.

“에시어의 가주님께선 너무 정정하신 것이 탈이야.”

백작이 길게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허공에 후- 하고 내뿜었다.

“그렇지 않은가, 안드레아. 자네를 보면 쓰레기 같던 내 선친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은 아무래도 일찍 돌아가 주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라니까.”

조롱하듯 안드레아 쪽으로 연기를 훅 하고 뱉은 그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다, 문득 떠올랐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아, 그리고 내가 듣자 하니 샤리에의 딸이 이능력자라던데. 사실인가?”

백작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술잔을 입에 댔던 안드레아가 고개를 돌렸다.

“그걸 자네가 어찌…….”

말끝에 입술을 씹은 안드레아가 얼굴을 미미하게 찌푸리자, 건수를 하나 잡았다는 듯 허벅지를 탁 소리 나게 내려친 백작이 주변 사내들을 쭉- 바라보았다.

“내 뭐라 했나! 보게, 사실이잖은가.”

가슴을 툭 하고 내리친 백작이 껄껄 웃으며 안드레아를 돌아보았다.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대단한 게 아닌가. 귀족 이능력자가 대를 이어 나온 것이니.”

“그래, 자네 조카딸의 이능은 뭔가? 제 아비를 따라 검기? 아니면 학문 쪽인가? 아니면 치유?”

꼬치꼬치 캐묻는 귀족들의 말에 입매를 바르르 떤 안드레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이능력이 있다고는 하는데 아직 발현은 안 되었다더군.”

“아아. 그래서 샤리에가 황도에 온 모양이구만.”

그 순간, 안드레아가 들고 있던 술잔에 얼음이 달그락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누가 와?”

“샤리에 에시어, 그대의 사생아 형 말이네. 마법부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자니, 며칠 전에 황도로 향하는 포털을 사용했다더군. 아, 그리고 에시어에서 타루스로 보내는 포털도. 열렸다 닫혔다고 하던데.”

에시어에서 타루스로 뭘 보냈다고? 처음 듣는 말에 안드레아가 분을 참듯 입꼬리를 씰룩였다.

그러자 이야기를 꺼낸 백작이 헛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몰랐나? 아마 지금쯤 황도에 도착했을 텐…….”

탕!

백작의 말에 내내 여유 있는 척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던 안드레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나 먼저 일어나지.”

그러곤 다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등 뒤에서 저를 향한 조롱의 말들이 이어졌으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샤리에 그 더러운 사생아가 느닷없이, 황도에 온 것이 그저 불안할 뿐이었다.

“저택으로 서둘러 돌아가자.”

* * *

하지만 그 시각.

샤리에, 그러니까 아빠는 나와 리안의 앞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운 채 서 있었다.

‘아빠?’

황도에 있는 에시어 저택에서 마주 선 것도 아니고, 오네에 있는 에시어 소유의 가옥도 아닌. 작고 허름한, 그래서 귀족이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서서 서로를 마주할 만한 집처럼 보이지 않은 곳에서 만난 아빠는 너무 낯설었다.

“아빠.”

“네가 왜 여기 있는 게냐.”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아빠는요?”

아빠는 왜 여기 계시는데요?

“할아버지가 아빠는 타루스에 있다고 했는데요?”

대체 황도에서 보름 거리인 타루스에 있어야 할 아빠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그 현실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지금 상황에 고개를 갸웃하자 아빠의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지는 게 보였다. 그러곤 나와 리안이를 그리고 내가 주저앉아 있는 바닥과 집까지.

눈앞의 모든 상황이 다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렇겠지.’

이 밤 중에 당연히 저택에 있어야 할 나는 오네에, 그것도 웬 낯선 남자애와 골목에 주저앉아 있는데다가 하녀는 하나고, 호위는 보이지도 않고. 거기다 내 옆의 남자애는 울고 있고. 내가 아빠의 입장이었어도 단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게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나도 조금 황당했다.

아빠가 온 건 좋은데 여기서 이렇게 마주할 줄은 몰랐으니까.

“아빠?”

거기다 아빠의 시선이 어쩐지 내가 꼭 잡고 있는 리안의 손을 향하고 있었다. 마치 짐승의 사지를 찢어 놓으려고 노리는 사람처럼 아주 빤히 나와 리안이 맞잡은 손 틈을 집요하게 보는 듯한 그 시선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착각이겠지.’

아빠가 내 손을?

말도 안 돼.

근데 그렇다기엔 아빠의 시선이 그 위치에서 떨어질 생각을 않고 있었다.

‘에이, 설마.’

아빠가 요 작은 꼬맹이한테 질투라니.

아빠가 나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질투라니.

그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있다면 그중의 하나가 질투일 거라는 생각에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빠는 샤리에 에시어니까.

그래도 내가 손잡고 있는 남자애니까 소개는 시켜야겠지?

“아빠, 얘는 리아니예…….”

“이리 오렴, 레티시아.”

하지만 아빠는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듯, 리안을 소개하려는 내 말을 막으며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빠의 커다란 손에 시선을 잠시 두었다가 눈을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아빠 왜 이러는 거지?’

원래 우리 아빠 이런 캐릭터 아니었는데.

의아함에 아빠를 빤히 보며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아빠는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편한 시선에 내가 꼭 잡고 있던 리안의 손이 꼬물거리는 걸 느껴졌다.

‘에이씨, 리안이 손 빼려고 하잖아.’

‘아빠 때문이야.’라는 생각에 리안의 손을 조금 더 꼭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시룬데.”

“…….”

그리고 그 순간 당황해 흔들리는 눈동자가 나와 리안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동공 지진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아빠의 눈동자에 조금 너무 했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만 그렇다고 리안의 손을 놓고 아빠한테 갈 수는 없었다.

“리아니랑 가치 있…….”

“피어스는 어디 있지?”

해서 설명을 덧붙이려 했는데, 당황한 아빠가 내 말을 뚝 끊어 버리곤 피어스를 찾으려 고개를 돌렸다.

아빠 당황했구나.

“피어스 저기.”

근데 손가락으로 피어스를 가리키면서도 아빠가 피어스 어떻게 알지?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해서 고개를 살짝 갸웃하자 마침 도살장 끌려가는 짐승처럼 피어스가 기어 나왔다.

“대장.”

대장?

피어스가 아빠를 부르는 호칭에 고개를 들자,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보듯 아빠가 손을 까딱했다.

그리고 그 손짓에 피어스의 고개가 더 수그러졌다.

“잘못했습니다.”

그 모습에 아빠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피어스를 돌아본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

원래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제일 무서운 거지.

고개를 끄덕이며 리안을 보자, 그 역시 나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우리 아빤데 오랜만에 봐서 반가워서 그래.”

리안이는 지금 막 엄마를 잃었는데. 난 아빠가 등장해서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근데 리안이 너도 조금 있으면 아빠 올 거야.’

물론 그 아빠가 황제라 그로 인해 네 삶이 많이 힘들고 어려워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네가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걸 선택했을까.’

리안을 빤히 보자, 그가 흐릿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왜 미안해. 미안해하지 마.”

“…….”

“네 말대로 슬퍼만 하고 있을 수 없는 거고, 나 때문에 그럴 필요 없어.”

그러곤 나를 보내 주려는 듯 손을 살짝 놓으려는 리안의 꼼지락에 그의 손을 더욱 꼭 쥐었다.

“네가 놓고 싶지 않으면 그냥 잡고 있어. 나 아빠한테 안 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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