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그녀의 모든 힘을 쥐어짠 일격이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샤리에는 다치지 않았고, 물론 죽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런 공작부인도 마찬가지였다.
칼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은 누군가를 찌를 때에 칼자루에서 손이 미끄러져 날에 베기 마련인데, 찌르는 그 순간 샤리에가 칼자루를 움켜쥐어 빼앗아 다행히도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곧장 마고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공작부인은 방 안에 유폐되었다.
“내 허락 없이는 방 안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게 해.”
문에 못만 박지 않았을 뿐, 방 안에 갇힌 공작부인은 매일을 울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미쉘은 검을 내려놓았다.
제가 사랑하는 엄마가 제 검으로 샤리에를 죽이려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는 충격을 받은 듯했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미쉘이 검을 잡으며 좋아했던 걸 떠올린 샤리에가 그녀를 몇 번이고 설득하려 했지만 미쉘은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이능도 없는데, 뭐.’
‘노력해도 안 될 거야.’
‘그냥 조용히 지낼래.’
그렇게 미쉘은 검을 내려놓고 매일 같이 공작부인의 처소에만 오갔고, 안드레아는 어머니의 유폐 이후 제 모든 것을 샤리에에게 빼앗길까 불안해하며 미쳐 갔다.
그리고 샤리에는 그 모든 것이 제가 후계의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오네에 다녀와 후계의 자격을 갖추었기에 아버지에게 여지를 남겨 주었다고.
* * *
“내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아빠는 그렇게 생각했단다.”
“…….”
“그래서 아빠는 네가 아빠와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기를 바라, 레티시아.”
아빠가 내 뺨을 쓸어내렸다.
“그때 아빠가 말로만 후계에 관심이 없다고 하지 말고, 그냥 완전히 포기해 버려서 오네에도 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내내 후회가 되었거든.”
엷게 웃는 아빠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아빠는 너무 어렸는걸요.”
“…….”
“당시에는 아빠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었잖아요.”
후계의 자격이 없으면 선대 공작이 사생아인 아빠를 인정하지 않았을 테고, 그러면 아빠는 에시어에서 버틸 수 없었을 테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깟 가문 버리면 그만이지.’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때 아빠가 7살이었어.’
자기 자신을 증명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7살.
실상 선택지는 주어졌지만 아빠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었을 거다.
오네에 가는 것 말고는.
“아빠가 그랬잖아요. 레샤 나이에는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구. 그냥 어리광부려도 되는 나이라구. 다른 어른들의 사정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구.”
“…….”
“그냥 아빠는 아빠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거야. 그러니까 마음 아파하지 마요.”
그러곤 아빠의 목을 당겨 꽈악 안았다.
“…….”
그 손길에 아빠의 손이 내 등 언저리에서 잠시 주저하는 게 느껴졌다. 어린 딸에게 위로받은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그 기척에 아빠를 조금 더 꼬옥 안아 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에 어깨를 늘어트린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맙다.”
그러곤 내 어깨를 토닥여 주는 아빠의 목소리에 더욱더 꽈악 안아 주었다.
과거의 어린 아빠까지도 모두 위로해 줄 수 있을 정도로 꼭 말이다.
그렇게 부녀간의 애틋함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흠흠.”
저기 저쪽 아빠의 집 앞에 세워진 마차 안쪽에서 헛기침 소리가 요란스럽게 이어졌다.
마치 ‘나 여기 있으니까 그만하고 어서 와서 알은 척을 하거라.’라는 의도가 너무 선명한 기침 소리였다.
외면하려고 해도 외면할 수가 없는, 할아버지라는 게 너무 명확한 그 기침 소리에 아빠의 목에 매달린 채 귀에 작게 속삭였다.
“할부지 오셨나 봐요.”
“그러게.”
내 말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아빠의 시선이 아주 싸늘하게 굳어지는 게 보였다.
“방해꾼이다, 그치?”
귓가를 살짝 간질이는 아빠의 목소리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흠흠! 크흠!”
그러자 마차 안에서 더욱 큰 헛기침 소리가 들렸고, 난 어쩐지 내 미래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오늘 쉽게 못 자겠다.
예지가 아니어도 직감할 수 있는 나의 미래였다.
* * *
그 시각.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루 내 장례를 치르고는 녹초가 된 폴을 향해 리안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어제오늘 사이 많이 울어 지친 리안의 모습에 코끝까지 내려와 있던 안경을 바로 올려 쓴 폴이 고개를 저었다.
“감사는 무슨.”
폴이 검지로 코끝을 슥 문질렀다.
“어른이고, 주치의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폴의 말에 리안이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폴이 아니었다면 지금 제가 어떤 모습일지 솔직히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엄마의 장례를 어떻게 치렀어야 할지도, 무엇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도 전혀 몰랐으니까.
아마 죽은 엄마를 끌어안고 울기만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말도.
‘너희 엄마도 네가 슬퍼만 하는 걸 바라지는 않으실 거야.’
그 말이 아니었다면 울다 문득 나오는 웃음조차 죄책감을 느꼈겠지.
엄마가 죽었는데 웃으면 안 되는 거지.
엄마가 없는데 기뻐해도 되나.
좋아해도 되나.
매 순간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갔겠지.
너무 당연한 말인데, 그게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발휘하는 듯했다.
‘그래도 되는구나. 괜찮구나.’ 하면서.
‘근데 난 상처를 줬네.’
그렇게 차갑게 대할 생각은 없었는데, 성급한 마음에 너무 급히 아이를 밀어내 버렸다.
상처 입은 듯 흔들리던 아이의 푸른색 눈동자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제가 돌아서서 들어가던 순간까지 내가 밀어냈던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던 모습이 잔상처럼 남았다.
내게 도움을 많이 줬는데.
그 귀족들한테서 구해 주기도 했고, 지금도 주머니에 있는 은화도 그 아이가 줬다.
그리고 울던 내 손도 잡아 줬고.
‘근데 왜 그랬을까.’
아주 가끔이지만 그 아이를 마주할 때마다 자신이 온몸으로 그녀를 거부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그렇게 싫은 것도 아닌데.
제게 잘못한 것도 없는 사람을 미워하는 게 스스로 이상하다 싶은 리안이 고개를 들자 마차가 의원 앞에 멈춰 섰다.
“다 왔다. 내리자.”
* * *
“어서오……셨어요.”
쟈이든이 두 사람의 모습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환자들은.”
“한두 명 정도요. 간판 안 내놔서 그런지 거의 안 오셨어요.”
“다행이네.”
폴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몸 같은 외눈안경을 내려놓았다. 뻑뻑한 눈을 비비듯 손등으로 문지르자 리안이 폴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벌써 가려고? 저녁이라도 먹고 가지.”
“생각 없어요. 집에 가서 좀 쉬고 싶기도 하고요.”
하루 종일 굶었는데 생각이 없을 리가.
하지만 더는 폐를 끼치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은 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일 갈게.”
“네.”
폴의 말에 리안이 웃으며 몸을 돌리자-
“잠깐만 같이 가.”
리안을 붙잡은 쟈이든이 작은 짐가방을 챙겨서 그의 곁에 섰다.
그 모습에 폴이 고개를 갸웃했다.
“넌 어디 가려고?”
“얘네 집이요.”
“왜?”
“얘랑 같이 있으려고요.”
“그러니까 왜.”
“주인님이 그러래요.”
“주인이면…….”
“안녕히 계세요.”
제 주인에 대해 말하려는 폴의 말을 막듯 쟈이든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황당한 건 리안이었다.
“싫은데.”
“싫어도 같이 가.”
“남이랑 같이 있는 거 불편해.”
“나도 불편해. 그래도 그냥 가. 나도 주인님 부탁이라 어쩔 수 없어.”
쟈이든의 퉁명스러운 말에 리안이 미간을 좁혔다.
“어쩔 수 없는 거면 더더욱 오지 마.”
“안 된다니까.”
두 사람의 투닥거림이 길어질 기미를 보이자, 중재하듯 폴이 양팔을 벌리며 걸어 나왔다.
“그만, 거기까지.”
그러곤 두 사람의 거리를 벌리듯 떼어 놓고는 쟈이든을 바라보았다.
“네 주인이 오늘 왔더냐?”
“네.”
“네 주인이 리안이랑 같이 있으라고 했고.”
“네.”
흠.
솔직히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그 집에서 리안 혼자 지내게 하는 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제가 그 집에서 지낼까도 잠깐 생각했었으니까.
“내 생각에는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그 집에서 혼자 지내는 거, 좀 걱정됐었거든.”
“…….”
“근데 쟈이든이랑 같이 지내면 서로 의지도 되고 좋…….”
“의지는 나만이지.”
“저런 의지 필요 없는데요.”
당장에 발끈하는 두 사람의 신경전에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좋은 생각인 거 같아. 네 주인이 역시 현명하시다.”
“당연하죠.”
괜히 제가 칭찬받은 것처럼 콧대를 올려 든 쟈이든이 리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리안은 쟈이든의 주인이 누군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듯했다.
‘알려 주지 말아야지.’
그리고 분명 주인님이 자기가 왔다는 거 알리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더더욱 입을 봉해야겠다 생각한 쟈이든이 리안을 내려다보았다.
“자, 오늘부터 잘 지내 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