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아빠를 찾아온 두 남자는 황제의 명령서를 가져온 궁내부의 행정관들이었다.
“축하드립니다. 황제 폐하께서 제국군의 기사단장으로 임명하셨습니다.”
기사단장?
아니, 세상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기사단장?”
“예, 단장님.”
찾아온 두 행정관의 깍듯한 대꾸에 내 표정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아빠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탈루스의 대장이었던 아빠가 갑자기 제국군 기사단장이라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인사이동이었다.
그것도 내일 당장?
아무것도 아닌 나도 이렇게 당황스러운데, 아빠는 오죽할까.
‘거기다 아빠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설마.
‘할아버지?’
전날 내내 ‘들어와라.’, ‘싫다.’ 하며 싸우던 할아버지와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다,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할아버지는 아닐 거야.
그래, 만약 할아버지가 아빠를 황도에 남게 할 작정이었다면, 아빠한테 기사단장 같은 하찮은 자리를 주시지는 않았을 거니까.
아빠가 내 앞에서는 이렇게 헐렁해 보일지라도 나름 소드마스터였다.
하려고만 했다면 제국군의 기사단장 따위 골백번도 더 했을 텐데.
고작 기사단장이라니.
할아버지가 했을 리 없었다.
할아버지였다면 차라리 황도에서 벗어나지 않을 직함을 줬겠지.
예를 들면, 국방장관이나 그런 자리 말이다.
근데 제국군 기사단장이라니.
이거 펠루아나에 출병해야 하는 거 아닌가?
순간 스치는 생각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성을 포기하고, 길목을 막아야 합니다.’
말도 안 되지만 정말 그 장면이 이 상황과 이어지는 걸까?
아니야, 아닐 거야.
내가 분명 그 장면을 보고 아빠를 불렀는데, 아빠가 다시 그곳에 갈 리 없잖아.
이건 내가 며칠 전에 했었던 오지랖처럼 상황을 비튼 거였다.
그것도 아주 작정하고 뒤집어엎으려고 한 일이란 소리였다.
아빠가 절대 그곳에 있지 못하도록.
근데 왜 결과는 같아지려고 하는 거지?
‘왜? 하필 이것만?’
쟈이든은 내가 되돌리려 해도 돌아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때문에 남자 주인공인 리안의 서사에는 이상이 생겨 버렸는데, 왜?
우리 아빠한테만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리광이라고 해도 괜찮았다.
‘아빠 거기 보내기 싫어.’
울음이 꾹꾹 차오를 것처럼 시큰한 코끝을 들어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빠, 펠루아나랑 싸우러 가야 해?”
“응?”
“아.”
내 말에 아빠와 두 명의 행정관이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다.
“응? 가야 하는 거야?”
“레티시아.”
“가야 하는 거야? 안 가면 안 되는 거야?”
고개를 저으며 울먹이는 내 모습에 아빠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안아 들었다.
“레샤, 왜.”
“아빠, 거기 가지 마요.”
“…….”
“안 가면 안 돼요? 지금처럼 그냥 레샤 옆에 있으면 안 돼요?”
내내 괜찮다고 웃던 것과는 달리, 울먹이는 내 목소리에 아빠의 시선이 흔들렸다.
아빠는 기사였고, 황제의 신하였으니까.
명을 어길 수 없을 거다.
할아버지처럼 다 때려치우고 나올 게 아니라면.
그래, 그러니 이건 내가 억지를 부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내가 본 건 고작 그 장면 하나였으니까.
아빠가 리비스 한복판에 있었던 그 장면. 다친 것도 피를 흘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사람들에게 작전을 설명하는 것, 그뿐이었다.
한데 불안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미래 속에 아빠가 있다는 게 그게 무서웠다.
쟈이든처럼 내가 아는 미래가 뒤바뀌게 될 것 같아서.
몇 년 뒤의 일이지만, 이미 난 아빠가 전장에서 다쳐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직 그 상황에 대한 대비도 하지 못했는데.
근데 제국의 패배가 예상된, 그것도 피해가 막심하고, 제국군이 굉장히 많이 죽는 그 전쟁에 아빠를 보낼 수가 없었다.
보내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렇게 아빠랑 시간을 보내고 나니, 더욱 아빠를 놓을 수가 없었다.
내가 미래를 볼 수 있다고 말하면서 모두 질 테니까, 그러니까 가지 말라고 해 볼까?
“안 가면 안 돼요?”
“…….”
하지만 아빠는 울먹이는 내 말에 거짓으로도 약속하지 못했고, 그런 나를 보며 행정관들은 당황해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저 사람들만 안 왔어도.
괜히 죄 없는 사람에게 화살을 돌리는 게 못나 보였지만.
“할아버지한테 이를 거야.”
그래도 그들이 저렇게 있는 모습이 밉고 서러워 아빠의 품에 안겨 으앙 하고 울어 버렸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머릿속은 이미 아빠의 출병을 예상에 두고, 펠루아나 전쟁을 떠올리느라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뭐? 누가 뭘 어디를 가?”
베넷의 보고에 서류를 살피던 마고가 고개를 들었다.
그 서슬 퍼런 노기가 성성한 그의 시선에 베넷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샤리에 님께서 제국군 기사단장으로 부임되어서, 리비스에 출병을…….”
탕!
책상을 강하게 내리친 마고의 분노에 베넷이 고개를 숙였다.
“누구 마음대로 내 아들을 그리로 보낸다는 게야.”
“아무래도 스벤 백작의 공작인 듯한데…….”
말끝을 뭉개는 베넷의 말에 안경을 벗은 마고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 애송이가 뭘 어쨌기에.”
“며칠 전부터 레티시아 아기씨 주변으로 사람이 보여서 알아보았더니 스벤 백작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애송이가 뭘 알고 레샤에게 사람을 붙여.”
“아무래도 뭘 알고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광범위하게 사람을 심어 두고 정보를 모으는 듯한데 그중에 하나 걸린 것 같습니다.”
베넷의 말에 마고가 손을 쥐었다 폈다.
고작 마흔 살이 갓 넘은 백작 하나가 궁내부에서 설치고 다닌다는 소리를 예전부터 듣기는 했었다. 네투아의 뒷배를 믿고는 움직이고 있다 하여 거슬려 하고 있던 찰나에 황명을 받아 내 집에 드나들더니.
사람을 심어 놔?
‘거기다 감히 대놓고 내 아들을 사지로 몰아?’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순간 타들어 갈 것 같은 가슴을 움켜쥔 마고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호흡을 내쉴 때마다 가슴이 조여 드는 게 느껴졌다.
“가주님!”
“협탁에 약.”
그 모습에 놀란 베넷이 가깝게 다가서자, 손을 내저은 그가 협탁에 있는 약을 달라 말하곤 한입에 털어 넣었다.
“폴, 폴을 불러오겠습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마고의 얼굴에 당황한 베넷이 몸을 일으키자,
“그만.”
그런 베넷을 만류한 마고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안 돼.”
“하지만, 가주님.”
“됐어, 약 먹었으니 괜찮아질 거야.”
제가 병을 이유로 은퇴를 하였다는 소문은 있으나,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알고도 속은 소문이 사실이 되는 순간, 에시어가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러니 버텨야 했다.
“샤리에는.”
“아직 별다른 말씀이 없으신 듯합니다.”
“레티시아가 놀랐겠구나.”
애당초 샤리에를 황도로 부른 이유가 펠루아나 전쟁 때문이었다. 그 한복판에 샤리에가 있다며, 아이가 처음으로 아비를 불러 달라고 울었었다.
그 울음을 떠올리며, 마고가 움켜쥔 가슴을 주먹으로 쿵쿵 치며 쓸어내렸다.
“샤리에는 받아들이겠지.”
“아마도.”
‘출병을 하시지요.’
‘다만 제국군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 제국군의 수장이 자신의 아들이 되었다.
제국군의 승리는 샤리에 에시어의 공이 아니었고, 만약 샤리에가 나가 싸우다 밀리게 되었을 때에 제가 그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는 계산속이겠지.
그리되면 모든 공로는 제국군인 황제의 차지였고, 손해는 오직 에시어에만 남는 것이었다.
전쟁도 에시어의 기피르에서 이루어지는데 싸우는 이도 에시어였으니까.
한데 공은 모두 지들이 먹겠다.
계산이 아주 꽃밭이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샤리에는 절대, 결코 에시어의 후계가 되어 가주직을 물려받을 리 없다는 가정하에 이루어지는 짓거리가 분명했다.
그들에게 샤리에는 에시어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사생아인 샤리에를 후계로 세우면 가문의 꼴이 우스워지니 제가 그리 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듯한데.
‘그럴 리가 있겠나.’
에시어가 남의 시선에 우스워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애당초 제게 후계자는 샤리에 하나뿐이었다.
“샤리에에게 가주직을 수락하라고 전하거라. 지원은 에시어에서 은밀히 힘쓸 것이라고.”
이 싸움의 모든 공은 황제 이에로가 아닌, 샤리에에게 모두 돌아가게 해야 했다.
그게 에시어에게 싸움을 걸어온 이들에게 최고의 복수가 될 터였다.
“차질 없이 준비시키겠습니다.”
베넷이 고개를 숙였다.
되레 어깨에 짐처럼 올라앉아 있던 걸 내려놓고 나니 운신의 폭이 더 넓어졌다.
“용병들도 움직이고, 무엇보다 리비에 백작에게 일러 돈줄을 옭아매라 전해라. 특히 알프레도 스벤, 그 개자식은 천천히 말려 죽여야 한다고.”
“알겠습니다.”
그들이 제게 바라는 것이 흑막이었으니, 원대로 해 줘야지.
마고가 사악하게 웃으며 안경을 도로 올려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