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107)화 (107/141)

107화

마그누스.

현재 흔히 통용되는 마력석인 엘리멘투가 품고 있는 마력량의 20배.

하지만 그 크기는 엘리멘투의 반의반도 되지 않아 당시 마법사들 사이에서 혁명으로 불렸던 마력석이 마그누스였다.

‘그게 지금이었구나.’

그것 때문에 한참 동안 제국이 떠들썩했었다.

아니, 단순히 떠들썩한 정도가 아니었다.

이 마력석 하나로 테파로아 제국은 더욱 위대해졌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제국 내 모든 마도구의 급이 달라졌고, 마도구로 발명되는 물건들에 제한이 없어졌다. 마법사들은 그야말로 상상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그건 마력을 가진 검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소드마스터들이 자신들의 마력을 증폭시키기 위해 마그누스를 검에 박아 넣는 일이 잦아졌고, 그로 인해 전쟁의 판도가 바뀌기도 했다.

한데 하필 그 마그누스 광산이 황제의 목장에서 발견될 줄이야.

물론 목장 자체는 홀데 남작의 명의이니 황제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겠으나, 어찌 됐든 황제의 시종이었던 자가 목장주라는 건 황제의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울 할아버지 배 많이 아프시겠네.’

할아버지가 그 평생 딱 하나 갖지 못한 것이 마력석 광산이었으니까.

희한하게도 에시어 소유의 토지인 기피르에는 마력석 광산이 흔치 않았다.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할아버지가 꿈꾸는 광산과는 아주 많이 거리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매장되어 있는 마력석의 양도 너무 적었고, 그 순도도 떨어져서 아주 하급의 마도구밖에 만들어 낼 수 없었으니까.

해서 할아버지의 숙원 사업이 제대로 된 마력을 품고 있는 마력석 동굴을 갖는 것이었는데.

그걸 황제는 흔해 빠진 목장에서도 얻을 수 있게 된 거 아닌가.

배 아프실 만하지.

‘흠, 근데.’

마그누스가 여기서만 발견된 건 아닐 텐데.

전생에서 폐광 직전의 광산 몇 군데에서 마그누스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었었다.

‘그 폐광을 찾아서 할아버지한테 선물해 드릴까.’

폐광 직전의 금광이면 그렇게 비싸진 않을 거 같은데.

어디였지.

턱 끝을 톡톡 두드리며 전생의 기억을 쥐어짜는 사이, 베넷이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종류인 건 확실하다고 합니다. 일부 토사에 섞여 나온 것을 분석해 보니 현재 통용되고 있는 엘리멘투가 품고 있는 마력의 다섯 배에 달한다고만…….”

다섯 배?

“응? 아닐 텐데.”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느라 순간 나도 모르게 뱉어 버린 의아함에 베넷과 할아버지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향했다.

“뭐라 했느냐.”

개중에서도 기대하는 기색이 역력한, 매우 부담스러운 할아버지의 눈동자에 슬쩍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두 아녜요!”

하지만 내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듯한 시선이었다.

뭐, 나 같아도.

‘못 믿지.’

그리고 실상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마그누스가 뭔지 모르는 두 사람에 마그누스의 존재에 대해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건 내 영역이 아니니까.

“그, 진짜 아니에요.”

“…….”

“진짜로 말이 헛나왔어요.”

어색하게 웃으며 ‘제발 이대로 그냥 넘어가 주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내 표정에 베넷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할아버지의 시선을 잡아끌어 주었다.

“그래서 요즘 그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민하는 모양입니다. 그 때문에 동굴에 맞닿아 있을 거라 추정되는 주변 목장들도 사들이고, 최근 들어 고용인들도 많이 바뀌었고요.”

아아, 그래서 목장이 그렇게 어수선했던 거구나.

이 동굴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최대한 적어야 할 테니까.

이제야 어색하던 목장의 분위기를 이해하곤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베넷이 불편한 숨을 내쉬며 마저 말을 이었다.

“거기다 요 며칠 사이 어린아이들을 고용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목장에서 일꾼으로 쓰겠다며 굳이 마르고 작고 어린아이들만 골라서 뽑아…….”

하지만 그 순간-

“작고 어린아이들?”

그냥 넘길 수가 없는 단어 하나가 귀에 걸렸다.

아니, 거슬렸다.

“작은 아이들을 고용한 게 근래에 처음 있는 일이야?”

“네ㅡ 그렇다고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베넷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들을 고용한 적이 없던 곳에서 굳이 어린아이들은 고용해 돈을 주고 부리고 있고, 그곳엔 미심쩍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누가 봐도 수상한 상황이었다.

한데-

“동굴 앞에 나 있는 입구가 마른 아이들이나 들어갈 법한 아주 작은 구멍인데, 마침 홀데에서 마르고 어린 남자아이들을 여러 명 고용했다더군요.”

“…….”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십니까.”

베넷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짐작?

솔직히 말하면 이건 내 기억에 없는 일이었고, 전생에서도 겪은 적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어떤 예지나 다른 능력이 없어도 그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뭘 하려 하는 건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화가 났다.

“짐작은 모르겠구, 화가 나네?”

“네?”

“애들을 죽이려고 하는 거잖아.”

씩씩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어른인 자신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동굴 안으로 못 들어가니까. 어린애들, 약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힘없고, 약자인 애들.”

“…….”

“그런 애들 데려다 동굴 안으로 밀어 넣어 죽이려고 하는 거라구!”

* * *

‘화가 나네?’

작은 방에서 베넷과 마주 앉은 마고가 레티시아의 말을 떠올리며 의자 팔걸이를 문질렀다.

그렇게 한참의 침묵 끝에 마고가 고개를 들었다.

“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툭- 주먹으로 팔걸이를 내리친 마고의 손끝에 베넷이 시선을 돌렸다.

“다른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었어.”

“…….”

“사실 그 아이들을 이용해서 황제를 겁박할 생각이었다. 목장을 내놓으라고 말이지.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죽은 아이들은 없나, 알아볼 작정이었지.”

마고가 씁쓸한 얼굴로 흐릿하게 웃었다.

“황색 신문을 이용해서 여론 작업을 하면 황제의 입지를 좁힐 수도 있고, 그 사이에 샤리에에 대한 은근한 무용담도 흘릴 작정이었지.”

“저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에시어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만 생각하면 그게 합리적이지요.”

베넷의 말에 마고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맞은편 벽을 바라보았다.

이 벽 너머에 레티시아가 잠들어 있을 터.

“그러니 저 아이가 특별한 것이겠지.”

‘조금만 더 오래 살 수 있다면…….’

아니.

‘이것조차 내 이기심이지.’

쓴맛에 뱉지도, 그렇다고 삼키지도 못하는 감정 그대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 * *

그 시각.

“며칠 지켜보니, 너희가 일도 성실히 잘하고 열심히 해서 승진시켜 주는 거다.”

“…….”

“요즘 것들은 다들 끈기가 없어서 문제인데, 너희는 이 더러운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심지어 꼼꼼하기까지 하니까. 더 좋고 편한 일로 옮겨 주어야지 싶더구나.”

사내의 말에 쟈이든이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사람은 아무 이유 없이 호의를 베푸는 존재가 아니었다.

뭐든 그 기저에 깔린 의도가 있었고, 그 의도가 없다면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에 도취되어 있기라도 해야 했다.

자신의 선함과 의로움에 말이다.

‘대가 없는 호의는 없어.’

그러니 그가 보이는 호의에도 분명 의도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제가 이리저리 구르며 경험해 본 바에 따르면, 이렇게 생긴 사람에겐 반드시 악한 의도가 있었다.

옆으로 쭉 찢어진 눈, 뱀처럼 가는 눈동자, 탁한 흰자에 얼굴에 길게 난 상흔까지.

남자에게서 풍기는 모든 것이 그를 믿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요?”

해서 잔뜩 가시를 세운 채 리안의 손목을 잡아 그를 제 뒤에 바짝 붙여 숨겼다.

그도 그럴 것이 뱀눈을 가진 사내의 시선이 자꾸만 리안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요.’는 뭐가 ‘그래서요.’야. 앞으로는 여기서 일을 하면 된다는 거지.”

“싫…….”

“여긴 다른 일꾼 아저씨들이 돌이 많이 떨어져서 위험하다고 했는데, 여기서 일하는 게 어떻게 승진이죠?”

싫다는 쟈이든의 말을 자르듯 리안이 고개를 들었다.

그 말에 사내의 입매가 사납게 실룩거렸다.

금방이라도 저 두터운 손을 휘두르고 싶어 근질근질한 듯 허벅지를 손끝으로 툭투둑 두드리는 사내의 움직임에 쟈이든이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리안의 손을 꽉 잡았다.

“가만 좀 있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

“뭐?”

“아니에요!”

리안의 목소리에 버럭 소리를 내지르려는 사내를 막아선 쟈이든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저희는 똥 치울래요. 승진 안 시켜 줘도 괜찮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쟈이든은 사내를 흉흉한 기세를 피해 고개를 꾸벅 숙이곤 리안의 뒤통수도 눌러 숙였다.

당연히 붙잡을 거라 생각했던 사내는 두 사람을 잡지 않고 그대로 보내 주었다.

아마도 다음을 노리는 것일 터.

하지만-

“저 옆에 봤어?”

“봤어.”

“다른 일 구해 보자.”

쟈이든의 말에 리안이 짧게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어두웠지만 거적 밑으로 살짝 삐져나온 작은 손끝을 본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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