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110)화 (110/141)

110화

쟈이든의 말과 동시에 두 사람 사이에 일순간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실내가 아님에도 주변을 맴도는 답답하고 불편한 공기에 숨 쉬는 것이 버거울 정도였다.

단순히 죄책감이라는 단어로 지금 감정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그저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게 자신이 아님에 안도했던 얄팍했던 이기심, 그리고 그 이기심 뒤에 찾아온 자괴감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까지.

어린 마음들에 깊이 자리 잡은 그 불편한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어리니까.’

‘어른들의 일이니까.’

‘귀족들이 하는 일이니까.’

‘우리는 그냥 평민 아이일 뿐이니까.’라고 넘기는 게 옳은가.

밤새 고민을 해 보아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하아, 아마도 그렇겠지.”

목구멍까지 차오른 답답함을 후- 하고 깊게 내뱉은 리안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왜 죽은 걸까?”

“…….”

“목장에서 죽을 일이 뭐 있다고. 우리를 불렀던 그 돌벽에 뭐가 있나?”

“…….”

“그래, 작은 개구멍 같은 게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그치?”

쟈이든이 기억을 상기하듯 고개를 갸웃하며 리안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리안은 쟈이든의 말에 관심 없다는 듯 허공 중에 나무 칼만 휘둘러 대고 있었다.

하루에 꼭 해야 하는 양은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라도 있는 건지.

어설픈 자세로 휘둘러 대는 나무칼을 보던 쟈이든이 혀를 쯧, 차며 고개를 저었다.

“됐다, 말을 말자.”

“…….”

하지만 무관심한 행동과 달리, 리안 역시 그 아이들이 왜 거기서 죽었는지 궁금하고 의아했다.

목장에서 아이가 하나도 아니고, 두 명이나 죽을 일이 뭐가 있을까.

아니, 왜 하필 아이만 죽었을까.

‘일을 구하고 싶으면, 홀데 목장으로 가 보거라. 거기가 요 며칠 어린 애들을 많이 고용하더구나.’

그리고 왜 어린 애들을 많이 고용한다던 아저씨의 말과는 달리, 목장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을까.

그 아이들은 전부 어디로 갔을까.

‘설마 다 죽었을까?’

휙- 휘익-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며 나무칼을 휘둘렀다.

‘우리처럼 도망친 것일 수도…….’

“우리도 거기서 더 일했다간 걔네처럼 죽었을 거야. 그치?”

그리고 그 순간.

“…….”

휙 소리가 나게끔 칼을 휘두르다 멈춘 리안이 허공중에 떠 있는 나무칼을 바라보았다.

‘그래,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 아이의 손을 보지 못했다면.

자그마치 실버 1개.

제가 벌 수 있는 최대치의 임금을 주겠다는 말에 순간 욕심이 났던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리안.”

“그랬겠지.”

멍하니 칼날을 허공중에 띄우고 있던 리안을 부르는 쟈이든의 부름에 다급히 손을 내린 그가 몸을 돌렸다.

“진짜 개죽음이던데.”

버려진 것처럼 한쪽 구석에 처박혀 뭔가로 대충 덮어 놓았던 그 작은 손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은 리안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뱃속이 아주 불편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느낌.

‘지금이라도 방위대에 신고…….’

하지만 방위대를 떠올리다 말고 고개를 저은 리안이 입술을 잘근 씹었다.

방위대가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저 같은 어린애의 말만 듣고 목장을 조사할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아직 있지 않을까?’

그러면 그 죽음에 대해서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쟈이든을 돌아보았다.

“지금이라도 가서 신고…….”

“안 돼!”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를 막아 세운 건 쟈이든이 아닌.

“주인님!”

‘레티시아 에시어.’

레티시아였다.

* * *

순간 내지른 목소리가 너무 컸던지, 목구멍이 살짝 칼칼할 지경이었으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금방이라도 방위대로 갈 것 같았단 말이지.

일단은 그를 막고 봐야 했기에 먼저 지르고 난 후, 울타리 사이에 난 작은 문을 열었다.

“안녕.”

“주인님! 언제 왔어요?”

“…….”

내 등장에 쟈이든은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고, 리안은 멀찍이서 나를 보고 있었다.

잔뜩 경계하는 그의 표정에 일단은 더 안쪽으로 들어가진 않은 채, 울타리 안으로 살짝 들어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게, 내가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니….”

“들으려고 한 게 아니면 그냥 듣지 말았어야지. 아니면 나서질 말든가.”

“야!”

까칠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리안의 말에 쟈이든이 펄쩍 뛰었다.

“말하는 거 하고는. 주인님, 쟤 지금 예민해요.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요.”

“으응.”

나를 위로하듯 다가와 리안과 내 사이를 막아선 쟈이든의 말에 아랫입술을 살짝 말아 물었다.

쟈이든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리안의 시선이 너무 차가웠으니까.

마치 잔뜩 가시를 드리운 채 날이 서 있는 짐승처럼 빤히 보는 그의 시선에 애써 마음을 다독여야 할 정도로.

그래,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이해한다고.

나 같아도 누가 내 말을 엿들었다고 하면 기분 나쁠 거라고.

그것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귀가 있어서 들은 건 어쩔 수 없잖아.

내가 듣고 싶어서 들은 것도 아닌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혹시나 뒷문에서 부르면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왔다가 진짜 우연히 들었어. 심각한 얘기인 거 같아서 돌아가려고 했는데, 오늘은 리안, 아니 쟈이든을 꼭 봐야겠어서 이대로 돌아갈 수가 없었어.”

“…….”

“너희가 집에 계속 없었잖아. 나 이사 온 지 보름이 넘어가는데. 안 보이니까 걱정도 됐고.”

시무룩한 내 말에 짧게 한숨을 내쉰 리안이 어깨를 늘어트리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조금 누그러진 반응에 입술을 말아 물자, 쟈이든이 신이 나서 내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주인님, 나 보러 온 거예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나도 주인님 보고 싶었는데!”

“아.”

맞다.

음식 가져온 거 혹시라도 거부당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음식을 챙겨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핑계 대기 적절하네.

“쟈이든, 이고 주려구. 들구 있어 봐 봐.”

품에 꼭 안고 있던 우유병을 쟈이든에게 건네주곤, 무겁게 꽉꽉 채워 온 가방도 내려놓았다.

가방을 어깨에서 내려놓은 순간에 바닥에서 쿵 소리가 나서 살짝 놀라기는 했지만, 쟈이든은 음식 냄새가 나니 일단 좋은 모양이었다.

“빵이, 우와. 고기도 있네? 이건 육포예요? 우와. 리안아 우리 당분간 먹을 거 걱정 안 해도 되겠다. 과일도 있네? 우와!”

쟈이든이 호들갑과 함께 가방을 뒤지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쟈이든의 반응에도 리안은 가까이 오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선 채, 적절한… 아니 거리감 느껴질 정도로 멀찍이 떨어진 채 나를 빤히 보고 있을 뿐.

아무래도 그의 말을 엿들은 것뿐만 아니라, 그를 막아 세운 게 마음에 들지 않은 듯한 시선이었다.

고작 열 살 남짓한 애 시선이 뭐 저렇게 살벌해.

누가 남자 주인공 아니랄까 봐.

‘주변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뭐 그런 것 외에도 남주인공인 칼리안의 서사에 어릴 때의 트라우마와 상처로 까칠하고 성격이 좋지 않다던 설명이 있었던 것도 같았다.

소설 서사 진짜 짜증 난다니까.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그의 차가운 시선을 못 본 척 등진 채 쟈이든을 보았다.

“육포는 헤일이 가져다 주랬어. 빵은 펠이 오늘 만들어 온 거야. 우유는 어제 사 왔어.”

“우유는 저희도 요 며칠간 질리게 마셨어요. 목장에서 일을…….”

“쟈이든.”

주절주절 흘러나오는 쟈이든의 말을 막은 리안의 부름에 그가 입을 꾹 다물었다.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마.”

며칠 전보다 한층 굵고 낮아진 목소리였다.

벌써 2차 성징이 온 건가?

변성기가 이렇게 순식간에 오는 건가 싶어 그를 흘끗 돌아보자, 쟈이든이 입맛을 쩝 하고 다시며 나를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

“저거 눈치에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네요. 아무튼 잘 먹을게요, 주인님.”

눈을 찡긋하며 바로 빵 하나를 입에 넣어 오물거린 쟈이든이 이내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크게 뜬 채 남은 빵을 몽땅 입 안에 밀어 넣었다.

“마이쪄!(맛있어!)”

입 안 가득 빵을 넣고 씹는 쟈이든의 얼굴에 번지는 행복한 미소에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 마주 웃자, 쟈이든이 홱 하고 리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 어도 어거. 엄나 마이어.(야, 너도 먹어. 겁나 맛있어.)”

그러곤 리안 쪽으로 손을 뻗어 빵을 내밀었다.

하지만 쟈이든의 권유에도 리안은 미간을 좁힌 채 고개를 저었다.

“됐어.”

“너나 많이 먹…, 웁!”

하지만-

“그냥 먹어.”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의 성향을 생각해 나중에 내가 없을 때 먹겠거니, 했겠으나 오늘은 그냥 말을 하느라 벌어진 리안의 입 사이로 빵을 밀어 넣어 버렸다.

누가?

“너 내내 굶었다며.”

내가.

그가 뿌리치지 못하도록 입에 쏙 넣어 준 빵이 혀끝에 올라앉은 걸 보며, 그의 턱을 위로 밀어 올리며 입을 닫았다.

“먹어. 먹어야 뭘 하든 하지. 오물오물. 이렇게 씹어.”

“…….”

“쓰읍. 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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