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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112)화 (112/141)

112화

“뭐?”

“모!”

너만 성깔 있냐? 나도 성깔 있거든?

어른이고 뭐고.

내가 지금 빡치면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 자리에 드러누워 버리는 어린애라는 걸 상기하며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그러자 그런 내 기색이 심상치 않았던지, 까칠하게 굴던 리안이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런 리안의 태도에 몸을 휙 돌려, 쟈이든을 돌아보았다.

“쟈이든, 너는?”

“나?”

“검 배울 생각 있어?”

“아, 음.”

눈치를 슬쩍 살피는 쟈이든의 시선에 발을 쿵 하고 굴렀다.

“있어, 없어?”

“있어요!”

그 모습에 쟈이든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요. 있지, 암. 있어야죠. 있습니다.”

“알겠어!”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는 쟈이든의 모습에 알겠다는 듯 ‘후.’ 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럼 내일부터 내 호위 보낼 테니까 검술 배워. 알겠지?”

“네.”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쟈이든의 모습에 가방을 탈탈 털어 속에 있던 음식을 모두 꺼내 놓고는 빈 가방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앞으로 음식은 내 호위를 통해서 보낼게. 먹을 거라도 잘 챙겨 먹어. 매일 넉넉하게 보낼 테니까.”

“아, 네.”

내 말에 쟈이든이 흘끗 리안을 보았다.

하지만 그런 시선에도 난 꿋꿋이 쟈이든만 응시했다.

어른이어도 상처는 받을 수 있다구.

그리고 나도 나 싫다는 사람 싫거든?

캐릭터 서사 쌓기 진짜 거지 같네.

어쩐지 씩씩거려질 것 같은 숨을 가다듬었다.

“나 간다! 다신 안 올 거야!”

그러곤 가방을 다시 한번 힘주어 꼭 끌어안은 채 뒤돌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뒷문을 발로 뻥 차서 열고 나갔다.

하지만.

가다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

아니, 내가 굳이 리안을 만나려 한 이유가 따로 있었으니까.

멍충이.

작게 말아 쥔 주먹으로 머리를 콩콩 때렸다.

다신 안 온다고 큰소리 뻥뻥 치고 문도 발로 차고 나왔는데, 다시 돌아가서 미안하다고…….

할 수 있지.

난 어른이니까.

해서 바로 몸을 돌렸다.

그러곤 방금 나온 문을 열었다.

“근데!”

“…….”

“미안해.”

뜬금없는 내 사과에 리안이 미간을 살짝 좁히는 게 보였다.

그 순간, 마음속이 울컥했다.

리안이 내게 하는 말과 차가운 시선에 상처 입을까 싶어 더는 그와 마주 선 채 설명을 이을 수가 없었다.

해서 도망치는 사람처럼 다급히 그 말만 남긴 채 몸을 돌렸다.

울타리가 내 키보다 크니까.

돌아서서 집으로 가는 내 모습은 리안에게 보이지 않을 게 분명했다.

잔뜩 일그러져서 당장이라도 울음을 와락 쏟아 낼 것처럼 코끝과 눈가를 붉힌 내 얼굴을 말이다.

* * *

탕-타앙-탕.

울타리 사이에 난 작은 문이 닫히다 말고 달랑거렸다.

작은 몸이 저기에 잠깐 있었던 것 같은데.

‘미안해.’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혼란스러운 리안이 입술을 깨물자-

“미련하고 멍청한 고집불통 바보, 말미잘 같은 놈. 아, 똥개도 있었지.”

쟈이든이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솔직히 그의 빈정거림조차 위잉윙 소리로 들릴 뿐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레티시아가 제게 사과한 것만 그리고 그녀의 뒷모습만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 맴돌았다. 마지막으로 돌아선 뒤로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저를 보며 한 말이 ‘미안해.’라니.

리안이 주먹을 꼭 말아 쥐었다.

‘왜?’

“삐진 거 언제까지 할 건데?”

“…….”

“주인님 눈가 발개진 거 너 못 봤지?”

쟈이든의 말에 리안이 고개를 돌렸다.

“멍청이.”

“…….”

“주인님이 방위대 가지 말라면서 한 말, 그거 네가 나한테 했던 말이잖아. 소용없을 거라고.”

그 말에 리안이 고개를 들자, 쟈이든이 길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래, 네가 갑자기 왜 그러는 건지 난 모르지. 그래, 모르겠는데.”

“모르면 가만있어.”

쟈이든의 말에 리안이 제 감정을 숨기듯 몸을 굳힌 채 방어적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그런 리안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쟈이든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근데 그래도 너한테 잘해 주려고 애쓰는 사람한테 그렇게 상처 주는 건 아니라고 본다.”

“…….”

“주인님이, 뭐 네 부모 죽인 철천지원수인 것도 아니고.”

쟈이든의 말에 리안이 눈을 감았다.

감은 눈앞으로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겨우겨우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간신히 내쉬는 숨결 사이로 당부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리안아, 귀족들을 믿어선 안 돼. 특히…….’

“에시어.”

“뭐?”

저도 모르게 흐르듯 나와 버린 말에 눈을 뜬 리안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마치 흘러나온 말을 주워 담듯 고개를 저은 그가 레티시아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문을 바라보았다.

엄마의 말.

‘에시어 공작가는 더더욱 믿어서는 안 돼, 절대.’

“아무것도.”

아니야.

* * *

그 다음 날.

“올가.”

“네.”

홀데 목장에 갔던 게 언제였냐는 듯, 원래 제 모습으로 돌아와 수업을 이어 가던 올가가 내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있잖아.”

“며칠 동안 수업을 빼먹으셔서 오늘은 못 봐 드리는데요.”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못을 박은 올가가 나를 향해 방싯 웃었다.

빡빡하게 굴기는.

가식처럼 느껴지는 그의 미소를 가늘게 뜬 눈으로 노려보다 팔짱을 꼈다.

“구런 거 아니거든?”

“그럼 말씀하세요.”

수업 빼 달라는 것 말고는 모두 허용한다는 듯한 올가의 말투에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아 있던 몸을 살짝 일으켰다.

“그 날 베넷이 그랬잖아. 홀데에서 발견된 마력석. 그게 엘리멘투가 가진 마력의 다섯 배라며.”

“네, 디웨스라 부른다더군요.”

역시, 디웨스였구나.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금 되새기며 고개를 들었다.

“다섯 배면 대단한 거지?”

“그렇죠. 엘리멘투보다 작은 데 마력은 훨씬 더 많으니까요. 거기다 황제의 목장에서 디웨스 광산이 최초로 발견되었으니. 그 가치가 더 어마어마 하…….”

“그럼 엘리멘투의 스무 배는?”

“네?”

“만약에 엘리멘투랑 똑같은 크기인데 마력량만 스무 배인 마력석이 있다면?”

내 말에 멍하니 나를 보던 그가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부르르 떨었다.

“그런 게, 있습니까?”

“…….”

아, 이건 올가도 모르는 거구나.

하긴 마그누스가 대중에게 알려진 게 내가 죽기 1~2년 전쯤의 일이었고, 아무리 올가라 해도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닐 테니까.

거기다 디웨스가 이제 막 발견되기 시작했으니.

‘디웨스를 다 소진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겠지.’

디웨스의 매장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마력석을 박박 긁어 쓰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아래를 파고 또 파서 찾아낸 것이 마그누스였으니까.

디웨스의 시기를 충분히 겪은 이후에 마그누스의 부흥기가 일어나는 건 맞았다.

그렇기에 ‘그걸 지금 끄집어내는 게 옳은가.’에 대한 생각을 아주 잠시 하기는 했으나.

당장 쓸 건 아니니까.

남들은 모르는 마그누스 광산을 가지려는 거지, 지금 당장 저걸 유통시킬 마음은 없었다.

디웨스로 신이 나 버린 마법사들이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마도구들을 충분히 발명하고 사용해 봐야 마그누스가 발견되었을 때 더욱 빛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내게 아주 유능한 마법사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올가 같은.

“있다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신의 축복이지요.”

의미심장한 올가의 말에 턱 끝을 톡톡 두드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난 홀데 목장을 사고 싶어.”

“베넷에게 시키신 금광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눈치하고는.

베넷이 스스로 떠들어 댔을 리는 없으니.

아무래도 그 날 베넷과의 대화를 엿들은 게 할아버지가 아니라, 올가였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올가가 듣고 할아버지한테 전해 줬던지.

“응.”

“지금 말씀하신 스무 배와도 관련이 있고요.”

“아마도.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내가 홀데 목장을 사 봐야 알 수 있을 거 같거든.”

일단 적당히 떡밥을 던져두고는 올가를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어야 했다.

올가는 할아버지 말도 제대로 안 듣는 사람이었으니까.

올가가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려면, 그가 흥미를 가질 만한 일을 안겨 줘야 했다.

예를 들면 마력석이라든가, 마력석이라든가, 마력석 같은 거 말이다.

지금도 보면, 올가 눈빛이 달라지지 않았나.

호기심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반짝이는 눈동자에 흥밋거리는 충분히 안겨 준 듯했다.

그러니 움직여, 올가.

“그러니까 홀데 목장의 디웨스 매장량에 대해서 소문 좀 내 줘.”

“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는 듯 웃은 올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부 동료에게 매장량이 적다…….”

“아니? 그 반대루.”

“…네?”

방금 전 내 뜻을 다 이해했다는 듯이 웃던 올가는 어디 가고,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하겠다는 듯 굳어지는 표정에 고개를 들었다.

“홀데 목장 아래에 어마어마한 양의 디웨스가 묻혀 있다고 소문을 내 줘.”

“…….”

“엄청난 양이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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