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128)화 (128/141)

128화

황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빠에 대한 소문들은 바람을 타고 조금씩 흘러 내 귀에까지 전해졌다.

대부분 허황된다 싶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나, 개중에는 궁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소문들도 존재했다.

그리고 그건 며칠 전 쪽지로 받아 본 것과 같은 내용이었다.

“쪽지대로네.”

“…네.”

베넷이 황실과 궁내부 내에 심어 놓은 우리 쪽 사람이 헛소리를 할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헛소문이길 바랐었다.

근데 진짜였네.

‘하하.’

이 망할 놈들.

이미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였으나 그래도 조금, 아니 많이 화가 났다.

“타루스에 가지 않을 수 없게끔 아빠를 궁지로 몰고 있네?”

관자놀이 쪽 여린 피부에 힘줄이 바짝 서는 게 느껴졌다.

‘이러면 곤란하지.’

솔직히 공적을 치하하여 영지를… 비록 신이 버린 땅이긴 하지만 영지와 작위를 내려 주겠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아빠가 가지 않겠다고 거부하면 어떻게 되겠어.’

그 후폭풍은 며칠 전 홀데 목장 건 때문에 생긴 오명의 몇 배가 될 것이다.

아빠가 황실을 우습게 본다는 소문부터 타루스가 아닌 더 큰 영지를 바라서 거부를 한다는 소문까지 온갖 말들이 나올 게 뻔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건, 이 상황을 내가 처음 겪는다는 점이었다.

‘전생에는 없었던 내용이니까.’

흠.

짧은 팔로 팔짱을 낀 채, 턱 끝을 톡톡 두드렸다.

전생의 아빠는 그냥 타루스의 마물들을 처리하기 위해 꾸려진 토벌대의 대장이었을 뿐이었다.

근데 뜬금없이 영주라니.

‘신이 버린 땅.’

소드마스터인 아빠 개인에겐 전혀 영광스럽지 않은 곳이었으나, 그곳에 애정을 갖고 있는 아빠라면.

“아빠가 승낙하겠지?”

“아무래도, 예. 그러실 겁니다.”

아빠는 바보니까.

“내가 가지 말라구 해도 가실까?”

축 처진 어깨를 조금 더 늘어트리며 베넷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도 쉽게 입을 열기 어려운 듯한 표정이었다.

‘이해해.’

그가 나를 어떻게 위로하겠어.

에휴.

솔직히 더 큰 문제는 아빠가 영지를 하사받게 되었을 때, 에시어의 후계 구도였다.

물론 영지만 받게 되면 상관이 없지만, 작위가 같이 내려온다면.

‘아빠가 에시어의 가주가 되는 건 어려워질 거야.’

정확한 건 황명을 받아 봐야 알겠으나, 아빠가 타루스로 돌아가는 걸 피할 수 없다면 지금은 최대한 ‘영지만’ 받아야 했다.

“할부지는 아셔?”

“네, 알고 계십니다.”

그럼 아빠 문제는 할아버지가 해결하시려나?

해서 베넷을 올려다보자 그가 짧게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할아버지가 황제를 만나 보기로 하셨다는 의미일 거다.

“할아버지 화나셨겠네.”

“네.”

그렇다는 건, 할아버지가 내심 아빠를 후계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거면 됐어.

일단 할아버지가 나선다면 최악의 경우는 상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작위 따위 개나 줘.’

우리 아빠는 공작님이 될 거라구.

그렇다면!

“베넷, 타루스에 있는 폐광들 그거 소유권이 황실에 있는 거지?”

“네, 타루스가 황제령인지라, 그곳에서 나온 모든 광물들을 황실이 소유해 왔습니다.”

역시. 그랬으니 광물이 고갈됨과 동시에 그냥 바로 손을 떼 버린 거구나.

황실은 굳이 이 정도 규모의 광산에 목맬 필요는 없었으니까.

널리고 널린 게 황실 소유의 광산이었고, 또한 마법석은 무조건 황실을 통해서만 유통이 가능했으니까.

황실 입장에서는 타루스에까지 돈을 들일 이유가 없었을 거다.

‘타루스가 아니어도 광산은 많으니까.’

만약 타루스가 영주 개인의 것이었다면, 아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파고, 파고 또 파서 디웨스까지 발견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잘 된 거지.’

“구럼, 만약에 아빠가 영주가 되면?”

내 물음에 순간, 베넷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들썩였다.

그 희미한 미소에 그가 뭐라 예상할지 알 것만 같았다.

“아빠가 영주가 되면, 그 폐광 우리 거야?”

해서 아주 천연덕스럽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를 빤히 올려다보며 눈을 깜박였다.

* * *

‘아마도, 그럴 겁니다.’

베넷의 목소리를 곱씹을 때마다, 입가가 헤- 하고 벌어지는 것만 같았다.

며칠, 아니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빠에게 영지가 내려지면 어쩌나, 하고 짜증을 내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만-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지. 별수 있나.’

어차피 아빠가 그 땅의 주인이 된다면, 긍정적인 부분만 보는 게 옳지.

그리고 아빠의 작위 문제만 해결되면 이건 그야말로 황금 알을 낳는 오리를 얻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건 황금보다 더 좋은 거야.’

산맥 전체가 마그누스 광산이라니.

하, 진짜.

태만한 영지 관료, 진짜 최고다.

그들이 일을 안 했으니까, 이 복덩이가 우리에게 굴러 들어온 게 아닌가.

누군지 알았다면, 선물이라도 보내 주고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아 심장이 팡팡팡 뛰었다.

물론 과도한 김칫국은 자제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무조건이야!’라고 호언장담했다가 마그누스는커녕 디웨스도 얼마 없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제를 하려고 해도, 솔직히 타루스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긍정적인 신호가 너무 확실하지 않나!

산맥 전체에서 마력을 감지한데다가, 그 동네에만 유독 대형 마물들이 날뛰는 것도 다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받아먹으려는 거라니!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어!’

아빠가 잡아 죽인 마물만 해도 산 하나를 가득 메울 정도인데도 매번 끊임없이 나온다지 않나.

아니, 대체 마그누스가 얼마나 묻혀 있으면 걔네를 다 먹여 살릴 수 있는 거냐고.

흐흐.

자제를 하다가도 의식의 흐름대로 풀려나가는 생각의 끝에 다다르면 나도 모르게 바보처럼 웃음이 나왔다.

신조차 버렸다는 타루스가 이 정도로 엄청난 복덩이일 줄이야.

나중에 황실에서 배 아파할 모습을 떠올리니, 어쩐지 고소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에시어는 망하지 않… 아니, 망할 수가 없어.’

마그누스의 존재도 모르는 자들과 달리, 나는 아주 잠시나마 마그누스의 시대를 살았다.

직접 보고 경험했던, 마그누스로 만들어 낸 그 엄청난 마도구들을 좀 더 일찍 출시하면 되는 거였다.

에시어와 상관없는 아빠의 이름으로.

‘그걸 위해서도 아빠에게 영지가 있는 편이 낫지.’

“암요.”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며 팔짱을 꼈다.

너무 빠른 태세 전환이었으나, 앞서 말했듯 피할 수 없다면 즐기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생각의 유연성이라고 하지.’

그렇다면 이제 해야 할 건 마그누스를 이용해서 타루스를 보호하며 발전시킬 방법과 아빠가 살아남을 방법을 생각하는 거였다.

미래가 달라지긴 했으나, 아빠가 죽을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걸 위해서-

‘올가를 보내야겠지?’

솔직히 그를 보내는 게 못내 아쉽기는 했다.

언제나 나를 한계치까지 몰아붙이는 수업 방법이 매우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그럴수록 이능을 다스리는 게 수월해지긴 했으니까.

‘물론 내 이능이 정확히 뭔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와의 수업 덕분에 이것저것 잡다한 이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손끝에서 일렁이는 금빛을 내려다보다, 손을 말아 쥐었다.

‘달리 방법이 없잖아.’

올가는 이능력과 마력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이능력자일 뿐만 아니라, 황실의 마법사와 용병 마법사, 심지어는 저 어둠 속에 숨어 사는 흑마법사에게까지도 손을 뻗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보면 사람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면 난 그가 몇 살인지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한 100살쯤 됐으려나?

외모를 그렇게 자유자재로 바꾸는 사람이니.

내일 만나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일단은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 3층 다락으로 올라갔다.

여기서 리안이네 뒷마당을 볼 수 있게 된 이후로 머리가 복잡할 때면 이곳을 찾아 내려다보았었다.

이렇게라도 두 사람을 봐야겠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이렇게라도 두 사람을 보지 않으면 솔직히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요즘에야 피어스랑 베넷에게 간간이 두 사람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해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건 달랐으니까.

‘제법 머리가 좋습니다. 어깨너머로 배우는 건데도 하나를 알려 주면 최소 네다섯은 깨닫는 거 같습니다.’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움직일 줄을 알더군요.’

‘조금만 가르쳐도 두각을 드러낼 텐데.’

‘스스로 배우려 하면 좋을 텐데요.’

고집불통.

여전히 대놓고 배우지는 않고 있다며 웃는 베넷과 피어스의 말을 떠올리며, 3층 다락의 창문을 살며시 열었다.

“으아! 힘들어!”

오늘도 일을 하고 돌아온 건지 먼지투성이인 두 사람의 모습에 의자에 앉아 창틀에 가만 턱을 괸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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