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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132)화 (132/141)

132화

여기서는 ‘올리움’이라 불리는 올리브의 열매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열매를 수확하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나무는.

“처음에 네 설명만 듣고는 그게 뭔지 몰라 헤맸는데, 알고 보니 올리움이더구나. 올리움 나무라면 영지에 제법 많이 있단다. 한데 그 열매로 기름을 만든다고?”

“네. 구걸로 비누를 만들 거예요!”

“…비누?”

“네, 기름이랑 잿가루랑 마력석 조금만 섞으면 비누가 되거든요.”

“그럼 며칠 전 마법사들을 부른 게.”

“맞아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모습에 할아버지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장사를 할 생각이더냐.”

“아뇨?”

할아버지야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만하시지.

올리움, 그러니까 올리브 열매로 만드는 비누는 비싼 축에 속했다.

할아버지의 영지에 그 열매가 많아서 썩어 날 지경이라고 해도 어쨌든 평민들이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으니까.

“허면?”

“오네 아이들한테 나눠 주려구요. 겨울만 되면 감기가 유행하잖아요. 손만 잘 닦아두 감기 많이 나아지는데. 비누가 없으니까.”

“돈이 많이 들 텐데.”

“저 부잔데요.”

할아버지를 보며 해맑게 헤헤, 하고 웃었다.

할아버지의 재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이기는 했으니까.

그리고 할아버지도 내 그런 멋쩍은 웃음을 느끼셨는지, 나를 보는 시선이 한층 더 유하게 풀어져 보였다.

이때, 거래에 들어가야지.

“잿가루는 벽난로에서 긁어 쓰면 되구, 마력석은 홀데 목장에 많구, 올리브는 할부지한테 싸게 사면 되지 않을까요?”

“누가 싸게 준다더냐?”

“움. 손녀딸이니까?”

“왜? 공짜로 달라지?”

“그건 너무 양심 없잖아여.”

“하이쿠?”

“히히.”

배시시 웃으며 할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비누를 팔아서 돈을 벌면 좋긴 한데, 아픈 애들 보니까 마음이 아파서요.”

“치료소가 있지 않으냐.”

“치료소가 있긴 해두, 애당초 안 아픈 게 더 낫지 않겠어요? 손만 잘 씻어두 덜 아프잖아요. 위생이 얼마나 중요한데.”

“…….”

“우리 귀족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안 도는 이유도 그거잖아요. 위생.”

내 말에 할아버지 역시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자, 그러면 쐐기를 박아 볼까?

“구러니까. 싸게 주세요.”

“얼마를 생각하고 있느냐.”

“현 시세의 절반?”

내 말에 할아버지가 나를 빤히 보았다.

“남은 절반 금액은 영지민들에게 손해를 보라 하고?”

“에이.”

할아버지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슬쩍 노려보았다.

“할부지, 시세의 절반이면 영지민들이 할부지한테 넘기는 금액이잖아요.”

“그러니 네 말은.”

“영지민들이 넘긴 값에 주세요. 할부지는 부자니까 손해 좀 보시구요.”

“허!”

“저두 제 피 같은 디웨스 쓸 건데!”

뻔뻔한 말에 할아버지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와 할아버지의 짧은 눈싸움은 할아버지가 파앗, 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걸로 끝이 났다.

“내가 졌다.”

“할부지가 져 주신 거죠.”

마지막까지 애교 섞인 말을 덧붙이자, 할아버지가 내 통통한 뺨을 아프지 않게 쥐었다 놓았다.

“어찌 그 고지식한 곰 같은 놈에게서 이런 여우 같은 녀석이 나왔을까.”

‘고지식한 곰’이 아빠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알기에 시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자-

“베넷.”

여전히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할아버지가 베넷을 향해 올리움을 내어 주라고 지시하셨다.

“원하는 만큼 내어 주고. 가능하면 기름으로 짜서 주거라. 괜히 애 고생시키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베넷을 흘끗 보자, 그의 시선이 아주 빠르게 할아버지의 지팡이로 향했다가 이내 멀어졌다.

그리고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내 시선 역시 그 지팡이, 특히나 할아버지가 손을 대고 있는 그 부분으로 향했다.

이어서 전날에 했던 베넷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안드레아 님께서 끝내 선을 넘으신 듯합니다.”

“…….”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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