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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136)화 (136/141)

136화

그 순간, 레티시아를 지켜보고 있는 안드레아는 미칠 것만 같았다.

‘대체 저게 왜 저기 있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의 안드레아가 입 안의 여린 살을 씹었다.

분명, 케벨에게 죽이라 명했다.

‘며칠간 지켜보았는데도 독이 전혀 먹히질 않습니다.’

‘독이 바뀌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제가 마도구로 확인까지 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 직접 손을 쓰는 수밖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독이 먹히지 않는다면 다른 무슨 수를 써서든 반드시 죽이라고!

한데 진작 죽었어야 할 계집은 멀쩡히 살아와 가주의 앞에서 울고 있었다.

그것도 누군가 저를 죽이려 했다, 고해바치며.

‘버러지 같은 것들.’

저 작은 것 하나 밟아 죽이지 못하는 것들을 수하로 두고 있으니.

‘내가 이 꼴인 게지.’

안드레아가 어금니를 바득 갈며 뒤쪽으로 물러서 있는 수하를 노려보았다.

“오지 못할 것이라 하지 않았더냐.”

“소, 송구합니다.”

질책하는 안드레아의 낮은 목소리에 몸을 떤 수하가 고개를 숙였다.

“멍청한 놈들.”

“…….”

낮은 일갈에 수하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 정수리에 칫, 하고 입을 다문 안드레아가 가주와 그 앞에 선 사생아의 딸을 응시했다.

제법 사이가 좋아 보였다.

누군가에겐 할아버지가 손녀딸을 걱정하고 있는 훈훈한 장면으로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제 눈에는 제 것을 강탈해 가려는 도적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평생을 빼앗겨 왔는데.

‘마지막까지 빼앗길 수는 없지.’

“진행하라 전해라.”

“하지만 보는 눈들이 너무 많습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수하가 염려를 담아 목소리를 쥐어짰다.

하지만 그런 그의 염려를 내친 안드레아는 흔들리지 않았다.

“뒷일은 내가 책임지겠다.”

안드레아의 말에 짧게 숨을 내쉰 수하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어느 한 점을 향해 짧게 고갯짓을 했다.

그러고는 그 역시 안드레아의 뒤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아마도.’

오늘이 지나면 새해가 밝아 오듯, 에시어가 달라질 것이었다.

바로 이 안드레아의 발아래에서.

그걸 위해 지금의 위험쯤은 감내해야만 했다.

‘훗날의 대의를 위한 것이니.’

안드레아가 머지않아 맞이할 미래를 꿈꾸며 뒷짐을 졌다.

설혹 실패한다 해도.

‘난 어머니 아들이야.’

선대 공작부인의 유지가 있는 한, 가주인 공작은 그 어떤 상황에서건 제게 손을 댈 수 없었다.

그게 샤리에 그 개자식을 어머니 아래로 받아들이는 조건 중의 하나였다. 안드레아에게 가주직을 보장해 줄 수는 없으나, 그를 제 손으로 내치지는 않겠다는 보증.

‘어머니께서는 끝까지 저를 지키시는군요.’

그러니 가주인 제 아비를 죽일 수 없다면, 샤리에의 딸이라도 죽여야 속이 시원해질 것 같았다.

그게 제 자리를 탐내는 사생아에게 적당한 경고가 되어 줄 테니까.

‘제깟 놈이 돌아온다 한들 나를 건드릴 수 있을 리도 없을 터.’

제 놈이 감히.

샤리에를 떠올리느라 파르르 떨리는 입술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 순간-

“네, 저를 해치려 한 살수를 잡아 왔어요!”

울음에 살짝 뭉개지긴 했으나, 제법 또렷한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하지만 레티시아의 말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들이 저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

전부 다른 이의 원한을 빌렸으니까.

‘범인을 밝혀 내긴 어려울 게다.’

쯧.

가볍게 혀를 찬 그가 조소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순간-

“그리구 저희 집에 침입한 남자도요!”

이어진 말에 고개를 홱 하고 쳐든 안드레아가 레티시아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뭐?

침입?

‘설마.’

저도 모르게 빠르게 박동하는 심장에 작게 헛기침을 한 안드레아가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기사들의 손에 이끌려 들어오는 검은 옷을 입은 살수들 뒤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젠장!’

* * *

가문 기사들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 이들은 차례로 할아버지 앞에 꿇어 앉혀졌다.

검은 복면의 사내와 케벨.

그리고 그 케벨이라는 사내는-

“안드레아 님 곁에 있던 사람 아니에요?”

“가끔 같이 있는 걸 보긴 한 거 같은데.”

숙덕거리는 사람들의 말처럼, 안드레아의 부관이었다.

‘물론 숨겨진 부관이지.’

극독을 사용하는 이들을 대놓고 곁에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하지만 숨겨진 부관이라고는 하나, 안드레아의 방정맞은 성격상 그는 애당초 사람을 숨기는 데 소질이 없었다.

제 곁에 있는 이들을 부리는 데에 안드레아는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그가 케벨이라는 이의 존재를 들켜서는 안 되는 대상은-

할아버지랑 울 아빠지.

물론 할아버지는 다 알고 계셨지만.

아빠는 관심도 없었고.

다만 할아버지가 알고 있는 건 케벨의 존재까지만이었다. 그가 내게 손을 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하신 듯, 할아버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저러다 넘어가시는데.

괜스레 그의 병이 걱정되어 고개를 슬쩍 돌리자, 벽 쪽에 붙어 선 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할아버지의 곁에서 거의 떨어지질 않는다고 하더니만.

오늘도 지척에서 할아버지를 감시, 아니 지켜보고 있는 중인 듯했다.

폴이 저런 성격을 가졌기에 할아버지가 아끼시는 거겠지.

폴에게 향했던 시선을 거두어 도로 할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을 느낀 듯 할아버지 역시 나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에시어를 건드리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한 짓이겠지.”

“가, 가주님! 전, 마차에 타고 있는 이의 정체까지는 몰랐습니다. 그저 마차의 표식을 알려 주며 그 마차에 타고 있는 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의뢰를 받았을 뿐입니다.”

“고용한 이가 누구냐.”

살수가 고개를 들었다.

“그것까지는 모릅니다. 그저 돈과 종이가 놓여 있었을 뿐입니다.”

숙부께서는 나를 뒤탈 없이 처리하고 싶으셨던 모양이었다.

싸구려 용병까지 고용할 줄이야.

놀라운 안드레아의 한심한 짓에 살수의 어깨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케벨이 잡혀 사색이 되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그를 믿는 듯 태연한 얼굴이었다.

거기다 용병을 고용한 이를 들키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도 엿보였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혀 봐야지.

안드레아에게로 향했던 시선을 거두곤 케벨의 뒤통수를 응시하자-

“넌.”

할아버지의 서릿발 같은 눈동자가 케벨을 향했다. 그리고 그 시선에 오금이 저린 듯 케벨이 고개를 납죽 숙였다.

“저, 저저전.”

“…….”

할아버지는 말을 더듬는 케벨을 빤히 응시했다. 아무 말도 안 한 채 그냥 빤히 보고만 있는 그의 눈동자에 벌벌 몸을 떤 케벨이 고개를 푹 하고 숙였다.

머리만 숨긴 자라 같은 모양새에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팍, 하고 내리쳤다.

“네 녀석은 왜! 레티시아의 집에 들어간 게냐! 거기에 뭐 도적질할 것이라도 있더냐!”

“그, 그것이.”

“똑바로 말 않느냐!”

“아, 안드레아 님의 명령으로.”

“저, 저 미친 자식을 보았나!”

뭉개지듯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벼락처럼 소리를 내지른 안드레아의 얼굴이 검붉게 물들었다.

그 고함에 할아버지의 시선이 안드레아에게로 향하자, 화를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온 안드레아가 할아버지 앞에 섰다. 아니,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저자의 말을 믿으시는 건 아니겠지요. 이건 모함입니다. 저자는…… 예, 제가 곁에 데리고 있던 아이가 맞습니다만.”

괴로운 듯 입맛을 쩝, 하고 다신 그가 고개를 들었다.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러 내쫓은 지 오래입니다. 아무래도 그것에 앙심을 품고는 저를 음해하려는…….”

“아, 아닙니다!”

안드레아의 말을 막으며 무릎으로 기어 나온 케벨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안드레아가 호통을 치듯 고개를 돌렸다.

“네 이놈! 네놈이 집안 물건을 내다 팔아 사익을 취하는 걸 눈감아 준 은혜를 이따위로 갚는 것이냐! 내 그간의 정을 보아 영지로 내쫓아 주었으면, 그것대로 감사하며 살아 갔어야지!”

“안드레아 님! 제가 언제!”

“허어, 이놈! 내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혀를 끌끌 찬 안드레아가 마고를 돌아보았다.

“아버지, 저를 믿어 주십시오. 제가 어찌 제 조카를 해치는 짓을 하겠습니까.”

“…….”

저 멍청이.

그 누구도 케벨이 아빠의 집에 침입했을 뿐, 나를 해치려 했다고 말하지 않았건만.

쯧쯧, 제 무덤을 저 스스로 파고 들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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