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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시어 공작가의 레이디 (139)화 (139/141)

139화

저택에서부터 오네의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빠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새해가 밝고, 하루가 꼬박 지나도록 아빠의 방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식사도 하지 않으셨고, 부관들의 면담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그 누구도 단단하게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왜 난 여기 서 있는가.

분명 아빠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아빠랑 처음 같이 지내는 새해를 이렇게 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해서 용기를 내 문 앞에 서는 것까지는 했는데.

손이 나가질 않았다.

아우.

‘그냥 확 열고 들어간다고 아빠가 나를 혼낼 것도 아닌데, 뭐 이렇게까지 주저해!’라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그래도 한편으로는 ‘아빠를 기다려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이 연신 두방망이질 쳤다.

하지만 끝내 이긴 건.

아, 몰라!

“아빠!”

아빠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오랜만에 본 아빠의 품에 안겨서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그래서 아빠를 부르고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음?

당연히 잠겨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문고리는 너무 쉽게 돌아갔고, 문은 더 쉽게 열려 몸이 앞으로 훅 딸려 들어가 버렸다.

“으악!”

하지만 그대로 넘어져 코가 깨질 뻔한 그 순간-

“!”

손을 뻗어 나를 끌어안은 아빠의 품에 폭 하고 안겨 들어갔다. 콩닥콩닥 빠르게 뛰는 아빠의 심장 소리와 들썩이는 가슴에 그제야 아빠가 옆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레샤!”

다급한 목소리까지도.

어제는 너무 큰일을 겪어 차마 실감 나지 않았던 순간이 이제야 현실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아빠.”

“그래, 괜찮니? 발을 삔 건 아니고?”

놀란 얼굴로 내 몸을 살피는 아빠의 시선에 와락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진짜 아빠다.”

“…….”

그리고 내 행동에 놀란 아빠의 몸이 그 상태 그대로 굳어졌다. 그러곤 이내 그 품에 볼을 비비는 내 몸을 안아 주셨다.

아주 꽈악.

“그래, 잘 다녀왔단다.”

그리고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내내 발밑에 깔려 있던 불안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부녀 상봉을 하고 나서, 수박 겉핥기식의 안부를 물었다. 아빠와 나는 중심 화제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야기들만 늘어놓았다. 나 역시 아빠가 먼저 물어오기 전까지 그 이야기를 입에 올릴 생각은 없었기에 그냥 웃으며 있었던 일들만 신이 나서 말했다.

“그래서 피어스가 요즘 엄청 호랑이 선생님이에요.”

“타루스에 있는 그 아이의 형들이 들으면 놀랄 이야기인데.”

“얼마나 입에 단내가 나게 굴리는지, 한겨울에도 훈련 끝나고 나면 쟈이든이 바닥에서 일어나질 못한다니까요? 진짜 진이 빠지게 만든대요. 욕도 얼마나 먹는지, 쟈이든한테 먹은 욕으로도 피어스는 오래 살걸요?”

“제 형들한테 당한 걸 여기다 푸는 것 같은데.”

“피어스 말로는 아빠한테 당한 걸 푸는 거라던데요? 아빠가 엄청 무서운 선생님이라구.”

흘끗 아빠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리자, 그가 작게 헛기침을 했다. 아무래도 아빠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듯한 반응에 큭, 하고 작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아빠 역시 엷게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빤히 보았다. 그 아련한 시선에 어깨를 늘어트렸다.

“저 잘 지냈어요.”

“…….”

“올가랑 수업도 열심히 받았구요. 그래서 이번에도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간 거구요.”

“일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느냐.”

“아리나요?”

내 말에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도 둘째의 사람들이었지.”

그건 그렇지.

하지만-

“처벌받을 거잖아요.”

이번엔 달랐다.

그때는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숙모들이 할아버지의 비호 아래에서 용서를 받고 그냥 넘어갔지만, 이번 안드레아 숙부는 운이 나쁘면 정말 최고형을 받고 사형당할 수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어떻게 결정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남은 건 어제 말한 것처럼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그러니 괜찮을 거예요.”

“레샤.”

아빠의 짧은 부름에 담긴 주저에 고개를 들었다.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걸, 아빠에게 알려 줄 필요는 없었으니까.

해서 차분히 아빠의 뒷말을 기다리자-

“아빠가 이번에 영지를 하사받을 것 같구나.”

아빠의 입에서 드디어 영지 이야기가 나왔다.

됐다.

“어딘데요?”

눈을 반짝이며, 아빠를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타루스란다.”

“타루스는 아빠가 있던 곳이잖아요.”

“…그래.”

조금은 겸연쩍은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빠의 시선에-

“나두 가도 돼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빠 입에서 이야기가 나오길 기다리다간 답답함에 복장이 터질 것만 같아 먼저 내질렀다.

“레샤도 아빠 영지로 갈래요.”

“하지만 타루스는.”

“알아요, 레샤도. 거기 엄청 척박하고 힘든 땅이라는 거. 그래두.”

아빠의 시선에 엷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아빠랑 같이 있고 싶어요.”

“…….”

내 말에 아빠의 시선이 흔들렸다.

마음이 아린 것이리라.

아빠를 아프게 하거나 죄책감을 자극하려는 건 아니었지만, 아빠가 이 일로 조금 더 싸울 힘을 가져 주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네 후계의 자격은.”

“아.”

맞다. 아빠한테 후계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지.

걱정하는 아빠의 앞에서 빡빡 우길 때는 언제고 이렇게 쉽게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는 게-

“이제 싫어졌어요.”

뭐, 어때. 아빤데.

그게 부모 자식 아니겠나?

물론 난 그런 감정에 대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가 만약에 엄마라면 내 딸이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기를 바랄 것 같았다.

무언가 하나를 끈질기게 하는 힘도 중요하지만, 그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을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니까.

그리고 난 고작 6살, 아니 7살밖에 되질 않았다.

그런 내가 부리는 변덕은 변덕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당연한 거였다.

어린애들의 꿈은 하루에도 골백번씩 변하는 게 아닌가.

“그냥 아빠랑 같이 지낼래요.”

그러니까 이 정도의 어리광은 부려도 상관없을 거다. 그리고 나를 빤히 보며 애써 웃음을 참아 내는 아빠의 이 표정만으로도-

“그래.”

내 변덕은 좋은 일이었다.

에시어 가주 따위. 뭐.

‘내가 에시어만큼 부자가 되면 그만이지.’

그리고 가주는 아빠의 몫이지, 내 몫은 아니었다.

20살에 죽을 내가 무슨 가주.

그러니 후계의 자격 따위.

‘필요 없지.’

난 타루스에 가서 돈이나 벌고, 아빠를 지킬 궁리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 생각을 하자니 악당처럼 흐흐 웃어 버릴 것만 같아, 급히 아빠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아빠가 그런 내 등을 다독거려 주었다.

아빠의 기쁨이 손끝에서도 묻어 나오는 것만 같은 그때-

“대장, 황궁에서 사람이 나왔습니다.”

아빠의 부관인 켈런의 목소리가 들렸다.

* * *

“황제가 불렀더냐.”

“예.”

“그래.”

베넷의 보고에 마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위 없이 영지만.

‘너구리 같은 놈.’

그 대가로 원로회 의장 자리를 떠맡기던 황제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나를 네투아를 견제할 칼로 쓰겠다.’

습관처럼 팔걸이를 매만지던 그가 베넷의 시선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올가뿐만 아니라, 조사를 위해 파견된 방위대가 가져온 마도구가 감지해 낸 독은 그의 의자에도 덕지덕지 발려 있었으니까.

“내가 잘못 살았구나.”

“…….”

마고의 말에 베넷이 침묵하자, 혀를 ‘쯧.’ 하고 찬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극형이겠더냐.”

“귀족을 상대로 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래, 그렇지. 거기다 패륜이기도 하고.”

팔걸이를 매만지던 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마고가 고개를 들자, 베넷이 어색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의아하겠지. 레티시아뿐만 아니라, 내 목숨까지 노린 놈을 왜 놓지 못하는 건지.”

심지어 베넷이 몇 달 전에 경고한 내용이었다.

레티시아의 계좌를 건드린 이유가 바로 가주인 저를 해치려 손을 쓰기 위함이었다는 걸.

영지에 광범위하게 돈을 뿌리고, 독을 준비해서 서서히 병들게 해야 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걸 전부 알고 있었음에도 왜 진작 제지하지 못했는가를 따져 묻는다면?

“안드레아 님이 말씀하신 선대 공작부인의 유언 때문이셨습니까.”

베넷의 물음에 한쪽 입꼬리를 비튼 마고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저 유언을 핑계로 제 자식을 내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

‘가주의 자격이 없는 것이지.’

마고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어디 그뿐만이겠느냐. 내가 늙어 판단력이 흐려진 탓이겠지.”

“가주님.”

“되었다.”

어설픈 위로의 말은 듣기 싫다는 듯 손을 내저은 마고가 고개를 들었다.

“황도로 돌아와야겠구나.”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베넷이 빈틈없이 고개를 숙였다 들자, 할 말이 남은 듯 손을 들어 올린 마고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몸을 돌리려던 베넷이 그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때 말한 그 방계들을 불러들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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