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악마와 대중음악
“이번 달도 적자인가…….”
나의 시종이자 부관인 시틀라가 내 앞에서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죄, 죄송합니다! 단탈리온 님을 제대로 보좌해 드렸어야 하는데…….”
“되었다. 다 내 부덕이니라. 첫 시작부터가 71위였지 않느냐.”
“허나…….”
“되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나는 들고 있던 시집을 탁, 덮으면서 말했다.
마계의 악마. 그중 71위 마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 몸, 단탈리온의 상징과도 같은 책을 덮은 것이다.
“이대로는 마계 71위도 위험…… 아니, 그냥 71위 마계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겠지.”
나는 조용히 마계 통장을 열어보았다. 통장에는 마계코인 –999,537,059,440,389이라고 찍혀 있었다.
“마계코인 대출금이 1,000조가 넘으면 징계위원회도 열릴 거야. 그렇지 않은가?”
“예, 예에……. 그렇습니다.”
“흐음…….”
기왕 대출받은 거 1,000조만 넘지 않도록 200억만 더 대출을 받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다른 마왕들의 언행이 마음에 걸렸다.
“어제 아몬이랑 바르바토스가 다녀갔을 텐데.”
“예에……. 단탈리온 님께 긴히 전달하실 말씀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제 두 악마를 만나지 않았다. 읽고 있던 소설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차마 손에서 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지금도 산적해 있는 업무들을 대부분 시틀라가 처리하고 있었지만.
“그래서. 자네에게 따로 전한 말은 없었나?”
“그게…….”
시틀라는 꺼내기 조심스럽다면서 살짝 눈동자를 내렸다.
“괜찮으니 말해 보거라.”
“그…… 지금 부실기업인 71위 마계를 누가 인수할지 고민 중이라고…….”
이미 아몬과 바르바토스를 비롯한 다른 악마들 사이에서는 71위 마계가 그렇게 인식되었단 말인가.
나는 마계가 꺼지라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다른 마계들의 마력은 지금도 상승 중인가?”
“그렇습니다, 단탈리온 님.”
마계를 관리하는 가장 중요한 존재.
그건 바로 마력과 마계코인이었다.
마력은 인간들로부터 받아 내는 에너지 같은 것. 이 마력이 없으면 마계는 전체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인간 세계의 전기 같은 것이다.
없어도 살 수는 있다. 하지만, 마력이 없다면 너무나 비효율적인 기업 운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계코인은 인간들의 세계로 비유하자면 ‘돈’이다. 마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폐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나는 71위 마계를 통치하는 단탈리온이며…… 인간들의 문화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기업 운영을 소홀히 했다.
그 결과가 지금처럼 부실기업 취급이나 받는 상황을 만들었다.
“어쨌든 우리도 마력과 마계코인을 더 벌어들이지 않으면 파산이겠지. 그렇지?”
“아…… 그…… 그렇습니다…….”
시틀라는 내가 언제 화를 낼지 불안해하면서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둔 바가 있다.”
“……예?”
나는 불안해하는 시틀라의 앞에 미리 생각해 둔 계획을 이야기했다.
“이 종이를 보거라.”
종이에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71위 마계 재건 계획’이 적혀 있었다.
“지금 우리 71위 마계에 닥친 위기의 원인은 바로 이 몸, 단탈리온에 대한 인간들의 인지도가 낮기 때문이다.”
“그렇지는…….”
“일단 듣거라. 이 몸의 인지도가 낮은 것은 사실이다. 다른 악마들에 비해 특별한 임팩트가 없으니까.”
나는 종이에 아주 좋은 사례로 적어둔 마계 68위인 벨리알의 이야기를 꺼냈다.
“보거라. 벨리알은 68위에 불과하지만, 꾸준히 마력과 마계코인을 벌어오고 있지 않느냐.”
따지고 보면 벨리알 역시 68위에 불과하다. 물론, 몇 위니 몇 위니 하는 게 제대로 된 순위를 나타내는 건 아니었다.
다만, 마계라는 하나의 기업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벨리알의 마계인 68위 마계는 사이즈가 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자도 나지 않았다.
“벨리알은 수많은 인간의 머리에 기억되고 있다. 알고 있느냐?”
“네 어렴풋이는…….”
“벨리알은 파괴와 살인을 즐겨 하는 녀석이다. 그렇다 보니 대중매체의 악역으로 아주 제격인 것이지.”
반면 나, 단탈리온은 책을 사랑하는 악마라 전투력은 떨어지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단탈리온이라는 이름이 언급되는 대중매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벨리알은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이런 인간들의 대중매체 속에서 대활약을 하고 있지. 나름 인기작들도 많다.”
인간들의 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벨리알이 어떻게 인간들의 문화에 녹아들었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분석을 해 보았다.
“그게 바로 벨리알의 장점이다.”
“그러하시면…….”
“그렇다. 이 몸도 인간들의 머리에 각인이 될 수 있는 활동을 할 생각이다.”
그러자 시틀라가 감격에 젖은 얼굴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크흑…… 드디어…… 드디어 단탈리온 님께서…… 단탈리온 님께서……!”
“그만하거라. 누가 보면 내가 철없이 자란 줄 착각이라도 하겠구나.”
사실 철없이 지내기는 했다.
그 점이 살짝 마음에 걸렸지만,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환기했다.
“아무튼, 이 자료를 보거라.”
“벨리알 님이 중간보스로 나오는 게임이 아닙니까?”
“그렇다. 벨리알이 나온 게임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작품이었지.”
나 역시도 그 게임을 플레이했었다. 실제 벨리알의 특징을 교묘하게 뒤섞어서 재창조를 해 낸 캐릭터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인간들에게 벨리알이라는 존재를 각인시키는 건 어렵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 게임에서는 벨리알을 쓰러뜨려야만 최종 보스가 나타나지. 그런데 그 최종 보스가 누구였는지 아느냐?”
시틀라가 침을 꼴딱 삼켰다.
“바로 바르바토스다.”
“헉……!”
“게다가 최종 컨텐츠로는 바르바토스의 미궁이라면서 초고난도의 던전을 만들어 놨지. 그래서 게이머들은 벨리알과 바르바토스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다.”
딱히 추종을 하지 않더라도, 악마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계에는 마력이 생성된다. 따라서 벨리알과 바르바토스의 마계가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 단탈리온 님도…… 게임으로……?”
“아쉽게도, 지금 보여 주는 모든 대중매체들은 이미 포화상태다.”
나는 준비해 둔 자료를 추가로 더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벨리알, 바르바토스, 아가레스, 베리스 등 게임이나 영화,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악마들의 이력들이 적혀 있었다.
“각 마계를 다스리는 악마들의 이력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꾸준히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 왔지. 하지만, 이 몸, 단탈리온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유를 알겠는가?”
“그게…….”
시틀라는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쭈뼛거렸다.
“할 말이 있다면 해 보거라.”
“그…… 매일 책만 보시느라 경영을 게을리하신 게 아닌가…… 하는…….”
시틀라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내 입가가 찢어질 듯이 위로 치솟았다.
“히이이익!!”
아무리 71위라 해도, 나 역시 악마. 마계를 다스리고 있는 71위 마계의 왕이었다. 시틀라는 자신이 불경한 소리를 했다면서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용서를…….”
“아니, 시틀라 자네 말이 맞다.”
그래.
내가 다스리는 71위 마계.
이곳이 지금처럼 경영난, 자금난에 허덕이게 된 이유는 바로 나 때문이었다.
“인간계에 내려가는 부하들에게 신작 소설이나 영화를 갖고 오라고 하고, 게임이나 들고 오라고 하는 수준이었다. 인간들의 문화에 집중하다 보니 마계를 다스릴 겨를도 갖지 못했지.”
“아, 아닙니다, 그렇게까지는…….”
“나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마계코인도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여기서 몇백억 더 쓰는 순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들고 있던 시집을 가슴 안에 품었다.
“우리 71위 마계는 파산한다.”
“단탈리온 님!? 파산이라니 그건 안 됩니다!”
파산을 하는 순간 71위 마계에 속한 마족들은 모조리 타 마계로 이직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타 마계도 티오에는 한계가 있는 법.
“이직에 실패한 마족들은 모두…… 그대로 홈리스가 되어 어느 마계에도 속하지 못한 채 떠돌이 신세가 됩니다!”
“그렇다. 나는 내 수하인 마족들을 그런 취급을 받도록 만들고 싶지는 않다.”
“하면…….”
“인간계로 내려가겠다.”
그 말에 시틀라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이, 인간계로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직접 내려가서 이 몸의 이름, 단탈리온이라는 네 글자를 인간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시켜 줄 생각이다.”
“허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대중매체인 게임, 영화 등은 이미 다른 악마님들께서 자리하시지 않았습니까. 방금 전에 단탈리온 님께서도 포화 상태라고…….”
나는 시틀라의 걱정 어린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미 그쪽은 레드오션이지. 그렇기에, 나는 다른 분야를 뚫어 본다.”
“다른 분야라 하심은…….”
“나는 ‘대중음악’을 공략하겠다.”
마계의 수많은 악마가 진출하지 못 했던 분야.
아니, 진출했다가도 정작 자신들의 이름을 제대로 알리지는 못해서 결국 투자를 중단한 분야.
바로 인간들의 대표 대중매체인 ‘대중음악’이었다.
“아…… 맞습니다, 음악도 인간들의 정신세계에 아주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허나, 단순히 가사에 내 이름이 들어가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나도 어느 정도 인간계의 대중음악은 알고 있었다. 책을 읽을 때 BGM으로 깔아 두면 제법 집중하기에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단순히 가사 이름이 들어간다는 사실만으로는 악마의 이름을 알리기 어려웠다.
“이 몸이 직접 노래를 부를 거다.”
“노…… 래를요!?”
시틀라가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그래. 노래를 부르고, 직접 가사를 쓸 것이다. 작곡까지는 어렵더라도, 수많은 소설책과 시집을 독파한 이 몸, 단탈리온이라면 가사 쓰는 것도 어렵지 않을 터.”
“단탈리온 님, 하지만 그건…… 단탈리온 님께 들어가는 부하가 너무 심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마계와의 연결이 끊어질 수도……!”
“걱정 말거라. 빙의를 할 거니까.”
그 말에 시틀라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것 역시 문제입니다. 적임자를 찾는 데만 한 달이 넘게…….”
“아니, 적임자는 이미 찾아 두었다.”
이미 마계코인이 마이너스 900조를 찍었을 때, 나는 여러 대책을 구상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내가 직접 내려가서 악마 단탈리온의 이름을 인간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타인의 입을 빌리는 것보다, 내 이름을 내가 직접 알리는 게 훨씬 마력 생성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악마의 몸 그대로 내려가서는 안 된다. 인간계는 악마의 마력이 반토막 나 버리는 세계라서 오래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몸이 쇠약해진다.
따라서, 악마들은 인간계로 내려갈 때 대부분 빙의를 사용한다.
“하지만, 장기간 빙의를 한 사례는 없습니다! 그 아몬 님과 바르바토스 님도…….”
“시틀라. 자네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가?”
시틀라의 눈동자가 잠시나마 떨림을 멎은 채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위대하신 71위 마계의 지도자, 정신의 지배자 단탈리온 님이십니다.”
“그래. 다른 악마라면 몰라도, 나는 가능하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말이지.
뒷말을 살짝 흐리면서 나는 인간계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바로 내려가겠다. 배웅은 됐느니라.”
“단탈리온 님…….”
“걱정 말거라. 71위 마계를 지켜내고자 이 몸이 최선을 다하겠다.”
시틀라는 내 말을 들은 뒤에도 무언가 불안한 듯 몸을 꼼지락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그것이…… 단탈리온 님이 자리를 비우시면 기본적인 행정 처리는…….”
“그건 자네에게 모두 일임하겠다. 내가 가장 신뢰하는 부관이 아닌가.”
시틀라가 눈물을 글썽이며 그 어느 때보다 감격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행정 일을 처리하는 시틀라였다. 그렇기에 내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71위 마계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려가기 전에 한 번 더 체크해 보도록 하지.”
악마들이 인간계에 내려가려면 빙의할 매개가 필요했다.
매개의 조건은 각자의 목적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조건은 동일했다.
바로, 매개인 인간이 죽음을 앞두고 있을 것.
영혼이 스러져 나가는 동시에 악마의 몸이 대신 빙의한다.
일시적인 빙의가 아니라, 장기적인 빙의를 생각할 때는 기본 상식이었다.
때문에 내 목표는 우선 죽음을 앞둔 인간. 그리고 대중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어야 하기에 가수여야만 했다.
나이는 20~30대가 가장 적합하다. 그래야 체력 문제도 덜 하고, 청소년이라는 어린아이들의 법적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이 정도의 조건만 형성되면, 큰 문제는 없다.
“지금부터 빙의체를 보여 주겠다. 시틀라 자네도 서포트를 해 주게나.”
“네,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시틀라가 믿음직스럽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