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락밴드?
“나이는 28살. 가족들과는 적당한 관계인 남성이다. 대한민국 서울에 거주 중이며 대중음악으로 크게 성공한 가수로 히트곡도 다수 보유 중이다. 안타깝게도 방금 불의의 사고로 인해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입원 중이지.”
손바닥을 올려 크게 원을 그렸다. 빙의할 상대의 영상이 나타났다. 병원에 누워 있는, 혼수상태의 모습이었다.
“상황 파악은 얼추 되었겠지?”
“예, 예.”
“그럼 시작하마.”
나는 영상이 담긴 고리를 홀 중앙으로 옮기고, 양초를 준비했다. 마력을 조금이라도 아끼고자 무릎을 꿇은 채 별 모양으로 모두 직접 손으로 이동시켰다.
“내가 인간계에서 마력을 만들어 오면, 이따위 아날로그 활동도 청산이라네.”
“감개무량합니다, 단탈리온 님.”
연신 고개를 숙인 시틀라가 양초로 만든 마법진 위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나는 손바닥을 작은 나이프로 스윽 그었다.
보랏빛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고, 천천히 그 자리를 한 바퀴 돌았다.
“이 정도면 되겠군.”
“단탈리온 님, 내려가셔도 저와 통신을 주고받으실 수 있습니다. 마력은 대출을 받아서라도…….”
“마력도 하루빨리 현지에서 조달하도록 만들어야겠지. 부탁하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시틀라의 대답을 듣고 곧장 손바닥을 들었다.
“잠시 후에 통신으로 만나세.”
손바닥으로 나의 가슴을 내리치자 내 몸에서 악마의 혼이 빠져나갔다.
빠르게 지구로 향하는 영혼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가사는 뭘로 하지? 역시 마계를 주제로 삼으면 좋으려나. 아니지, 일단은 예명부터 만들어야지. 아니면 예명도 아예 단탈리온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시틀라가 다급히 통신을 했다.
“단탈리온 님, 단탈리온 님!”
“응? 시틀라, 왜 그러는가?”
“그, 그 빙의체가 방금 눈을 떴습니다!”
“뭐!?”
이제 막 빙의하러 날아가는데 상대가 의식을 차렸다고?
“지금 당장 다른 상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음……!”
혹시나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몰라 대비는 해 둔 상태였다. 나는 곧장 첫 번째 후보가 아니라 두 번째 후보를 향해 날아갔다.
“만약 상대가 없으시면 다시 돌아오셔도…….”
“허튼소리 말게! 그렇게 될 경우 막대한 마력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가! 또 대출을 받을 수는 없느니!”
“하지만……!”
“걱정 말거라. 이럴 때는 대비해서 플랜B 정도는 만들어 두었으니!!”
나는 처음 상대가 있는 병원이 아닌, 옆 건물의 병원으로 향했다.
‘저기로군!’
상대는 바로 지금, 공연을 준비하던 중 머리에 천장의 스피커가 떨어져 뇌진탕으로 쓰러진 가수였다.
어떻게 지금 이 순간에 사고가 날지 알았냐고?
이 몸은 단탈리온이다. 상대의 정신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71위 마계의 지배자.
미래 예지력도 어느 정도 갖춘 이 몸이다.
그러니 한낱 인간의 미래쯤이야.
나는 미리 다른 가수들의 미래를 훑어보기라도 하기를 잘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때 시틀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10초 남았습니다, 단탈리온 님! 더 늦으면 귀환도 어렵고, 천사들도 방해하러 올 겁니다!”
“알겠다……!”
서둘러 플랜B 목표가 있는 방향을 두리번거렸다.
‘찾았다!’
목표물을 향해 최고속도로 돌진했다.
그리고 곧바로,
파아앗!!
내 영혼이 인간의 몸으로 돌진했고, 그와 동시에 인간의 영혼이 빠져나갔다.
이미 죽은 자의 혼. 금방이라도 스러질 듯한 힘없는 영혼이 마지막 작별을 고하듯 하늘 위로 사라졌다.
잘 가라. 이 몸은 내가 잘 쓰도록 하마.
71위 마계의 흑자 경영을 위해서.
* * *
번쩍.
눈을 떴다.
시야에 보이는 것은 병실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물건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있는 어떤 인간.
“으…….”
빙의를 하고 난 직후에는 몸이 나른해지고, 시야가 제한된다.
나도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은 오래간만이었다.
시력이 회복되지 않아 선명하지는 않다. 그러나 내 오른손을 잡고 있는 인간이 내 얼굴을 보며 놀라는 것만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야! 너, 정신이 들어!?”
“음…….”
“야야, 와 봐! 아니 다 어디 간 거야 지금!”
남자가 핸드폰을 몇 번인가 조작하더니 세 명의 인간이 우르르 들어왔다.
“데스맨! 괜찮아!?”
“데스맨 너, 머리는? 머리는 안 다쳤고?”
“아까 의사쌤이 위중하다 그랬는데 괜찮은 거야!?”
“……괜찮은 것 같다.”
나는 억지로 멀쩡한 척 목소리를 냈다.
그렇다.
데스맨이라 불리는 이 몸.
단탈리온인 내가 빙의한 이 인간의 예명이었다.
아직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을 최대한 활용해 가면서 목소리를 냈다.
“너희는…….”
병상에 누워 있는 나를 에워싸고 있는 인물들.
시야가 서서히 돌아오면서, 녀석들의 얼굴이 또렷하게 변해 갔다.
“……이런 미친!”
설마, 왜, 왜 여기에!?
“바르바토스!?”
“응? 바르, 뭐?”
내 앞에 서 있는 남성이 뾰족 위로 솟은 뿔을 매만졌다.
“야, 내가 분장 지우고 오라 그랬지.”
뾰족 머리 남자의 옆구리를 다른 멤버가 쿡 찔렀다.
……멤버?
“아, 미안 미안. 우리 공연 준비하다가 급하게 뛰어왔잖아.”
“그러는 너도 그 가죽 재킷이라도 벗고 오지 그랬냐. 폭주족도 아니고.”
나는 다른 인물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또 한 번 화들짝 놀랐다.
“……바엘!?”
“뭐? 왜 이래 얘?”
“야, 데스맨. 너 괜찮냐?”
“역시 머리를 부딪힌 충격이 컸나.”
왜, 왜, 인간계에 내려온 내 앞에, 바르바토스와 바엘이 있지!?
“네, 네놈들, 네놈들도 인간계에……!”
“얘 뭐라는 거야. 의사쌤 불러와. 빨리!”
“감히 이 몸의 노력을! 네놈들이 감히!”
나는 팔다리를 휘저으며 거세게 인간들을 밀쳐냈다. 그러나 아직 빙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몸.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못 해 보고 인간들에게 붙잡혔다.
“이거 놓아라! 감히 마왕 단탈리온 님에게……!”
“얘 머리가 어떻게 됐나 봐! 빨리 잡아 봐!”
소동은 약 삼십여 분쯤 지나서야 겨우 진정되었다.
* * *
“……그러니까, 내가 데스맨이라는 이름을 가진 보컬이고.”
끄덕끄덕.
“너희는 함께 일하던 ‘밴드 멤버’라는 건가.”
“그래. 그런데 그 말투 좀 어떻게 안 되냐?”
“기억상실 오면 말투부터 바뀌나.”
나에게 불만 섞인 말을 내뱉는 뾰족 머리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지금 내가 빙의하고 있는 이 몸의 주인은 김도권. 예명은 데스맨.
이번 서울 뮤직 페스티벌에 어렵게 초대되어서 무대를 준비 중이었던 락 밴드의 보컬이었다.
밴드의 이름은 RRR.
속칭 쓰리알.
“그런데 왜 RRR인가.”
“롸캔롤 레볼루셔언!”
나는 미간을 좁혔다. 어째 내가 인간계에 내려오기 전에 조사했던 것과는 조금 정보가 다른 듯 보였다.
일단, 이 녀석들의 행색이 이상하다.
뾰족 머리에 바르바토스 분장을 한 남자가 손가락 두 개를 접고는 하늘 위로 번쩍 손을 들었다.
“이거도 잊었냐? 네가 말했잖아. 우리는 롹의 정점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롹의 혁명을 꿈꾼다!”
남자의 옆에 서 있던 바엘 분장을 한 여자도 양손으로 손가락 피스를 만들더니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머리가 아프다.
“락 밴드…… 는 모두 그런 분장을 하는가.”
“응? 그야 우리가…… 어라 너, 이제 기억이 좀 돌아오나?”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손을 내밀었다.
“잠시…… 혼자 있게 해다오…….”
“? 그래, 뭐.”
“앤디, 정신없을 텐데 잠깐 나가 있자.”
“앤디?”
생각해 보니 다른 멤버들의 예명은 파악해 두지 못했다. 내 의문에 옆에 있는 여자가 답했다.
“아, 얘 예명이잖아. 우리 쓰리알의 기타리스트.”
“얘는 베이시스트 제인. 그런데 너, 기타나 베이스 같은 건 뭔지 기억나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다행이네. 아무튼 쉬어라. 이따 다시 오마.”
앤디라 불린 뾰족 머리가 손을 흔들면서 병실을 나갔다. 제인 역시 기운 내라며 어깨를 토닥이고 갔다.
병실에 이제 혼자 남아 있게 되자 나는 황급히 마계로 통신을 보냈다.
“시틀라 있는가.”
[예, 단탈리온 님. 괜찮으십니까?]
“그래. 플랜B를 만들어 두기를 잘한 것 같도다.”
나는 두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예정에는 없었지만, 지금 들어온 이 몸도 가수기는 가수다. 그리고 어쩌면, 더 찬스가 될지도 모르겠군.”
[찬스라 하심은…….]
“자네도 들었는가? 이 몸은 락 밴드의 보컬이네.”
시틀라는 살짝 의문이 든다면서 다시 물었다.
[그 ‘락 밴드’라는 것이 단탈리온 님께 중요한 것입니까?]
“자네는 락 밴드를 모르는가?”
[아…… 예, 송구합니다…….]
“아닐세. 인간들의 문화에 관심이 많은 마족은 별로 없지. 간략히 설명하자면, 일반적인 대중음악과는 거리가 있지만, 격렬한 사운드로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 음악이라네.”
내 말에 시틀라가 무언가 알겠다면서 말했다.
[그럼 단탈리온 님이 마력만 제대로 발휘하실 수 있으면……!]
“그래. 훨씬 전달력이 강한 마력 발산이 가능할 걸세. 그렇게 되면 이 몸, 단탈리온의 이름을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겠지.”
처음에는 내가 왜 플랜B의 락 밴드 보컬의 몸에 빙의를 하게 되었나, 에 대해서 한탄을 했다.
원래 생각했던 몸은 싱어송라이터였다. 지금 빙의한 김도권, 데스맨이라는 인간의 몸도 어디까지나 녀석이 ‘가수’였다는 것만 파악해 둔 상태였을 뿐이었다.
설마 플랜A를 실패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왜 플랜 A를 이행하지 못했을까.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으면.
혼수상태의 인간이 깨어나기 전에 인간계로 이동했다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신중하게 움직였다면, 내 계획대로 상황이 만들어졌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래도 준비라도 해 두어서 다행이구나.’
하지만, 이젠 락 밴드의 장점을 살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락 음악을 많이 듣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 들었던 바에 의하면 상당히 호소력 짙은 음악을 할 수 있었네. 게다가 대중음악 분야에서도 락 밴드가 어느 정도 있고 말이야.”
[그렇다면 단탈리온 님의 목표를 이루실 수도 있겠군요!]
어쨌든 궁극적인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
대중음악을 하면서 이 몸, 단탈리온의 이름을 인간들에게 알린다.
그리고 인간들이 이 몸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하는 순간, 71위 마계에 마력이 생성되고, 이는 마계코인으로 전환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게 되면 71위 마계는 파산으로부터 벗어나, 서서히 흑자를 낼 수 있는 우수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다!
“걱정하지 말고, 나 없는 71위 마계를 잘 부탁하네. 특이 사항 보이면 통신 주게나.”
통신을 끊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락커의 삶을 살자.
그걸로도 궁극적인 목표를 이룰 수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그거면 되었다.
* * *
“앤디.”
“왜, 제인.”
“데스맨, 괜찮을까?”
병실을 나서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는 두 사람은 데스맨의 상태를 살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그 녀석은 이상했다.
“기억상실에 걸렸다 그래서 보니까 무슨 이상한 사극 말투나 흉내 내고 있고 말이야.”
“제인.”
“왜?”
“너무 그러지 마. 그래도 우리 밴드의 보컬이잖아.”
앤디는 제인이 데스맨의 상황을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사고로 인한 충격과 더불어 기억상실까지 온 상황이다.
오히려 정신이 멀쩡하면 이상할 지경이었다.
“저기 말씀 좀 묻겠…….”
그때 뒤에서 병원을 방문한 고객이 앤디를 불렀다.
“네에~ 무슨 일이십니까.”
“으아아악!!!”
친절하게 씨익 웃으며 뒤돌아섰지만 말을 건 남성은 엉덩방아를 찧고는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아.”
“놀라실 만하지. 지금 우리 얼굴을 생각해 봐.”
제인의 말에 앤디가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아깝다. 오늘 역대급 분장이었는데.”
“이러다 다른 사람들도 놀라서 자빠진다. 얼른 분장부터 지우자.”
“그래. 어차피 오늘 공연도 취소니까.”
앤디와 제인은 각자 분장을 지우러 화장실로 향했다.
“너무 분장을 빡쎄게 했나.”
거울을 보며 시뻘건 코볼트 분장을 박박 닦아 내면서도 앤디는 병상에 누워 있는 데스맨의 상태를 걱정했다.
‘그나저나 그 녀석, 우리가 헤비메탈 밴드라는 거도 잊었을 거 같은데.’
만약 그렇다면…….
“걔, 자기 얼굴 보고 기겁하는 거 아냐?”
앤디의 예상과 다르게, 지금 단탈리온은 거울을 보며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새하얀 스켈레톤 분장을 한 상태에서 사고가 났으니 분장이 되어 있는 상태 그대로인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고작 하급 마물의 흉내인가? 그릇 하고는.”
새로 가지게 된 얼굴을 꼼꼼히 살피는 단탈리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