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3화 (3/110)

3화. 헤비메탈 밴드

“마치 마족의 핏덩이 같구나.”

마족 중에는 하얀색 피를 보유한 이들도 있었다. 마치 그걸 얼굴에 펴 발라 놓은 듯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간호사가 건네다 준 클렌징티슈를 손에 들고는 거울을 바라보며 벅벅 긁어 댔다.

“김도권 환자분, 괜찮으신가요?”

티슈를 건네주었던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와서는 물었다. 나는 반쯤 지워진 얼굴로 간호사에게 말했다.

“해 보니 지워지기는 하는구나. 그런데 여기서 더 지울 수는 없는 것이냐.”

나는 여전히 마족의 핏덩이처럼 눌어붙어 있는 하얀색 피부를 보여 주며 물었다. 간호사가 내 볼을 스윽 보더니 키득 웃었다.

“다 지워졌는데요?”

“……뭐라?”

“원래 환자분 피부가 하얀 거 같아요.”

내가 본래의 마족의 몸, 단탈리온으로 있을 때도 피부는 창백한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빙의한 몸도 제법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던 건가.

묘하게 이전 몸과 동질감이 느껴졌다.

‘몸은 완전 다르지만 말이지.’

근육은 하나도 없고, 마력도 당연히 느껴지지도 않는다. 종교가 따로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알겠네. 그럼 나가 보게.”

“이제 회진 시간인데요?”

“회진?”

그게 뭐였지?

아무리 인간들의 지식을 책으로 공부했다지만, 이렇게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항들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지금 나는 기억상실에 걸려 있다는 핑계가 있었다. 간호사 역시도 그걸 알고 있다며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환자분들 병실을 돌며 진찰하시는 거예요. 의사, 간호사는 기억나시죠?”

“단편적으로는.”

간호사와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담당 의사라는 남자가 들어왔다.

그에게 나는 기억상실이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세상의 상식이라는 건 일부만 기억나고, 데스맨이라는 남자의 삶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기억상실이다.”

“그러니 더 자세히 설명을…….”

“기억상실이다.”

“그때 머리 위로 떨어진 게…….”

“기억상실.”

“좋아하는 음식은?”

“기억상실.”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이 김도권, 데스맨이라는 예명을 쓰고 있는 락 밴드 보컬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알게 된 거라면…….

“직업은 기억나십니까?”

“락 밴드 보컬.”

아마 평범한 락 밴드는 아닐 것이다.

언젠가 인간들의 문화를 책에서 볼 때 알게 된 부분이었다.

당시 대중음악 중 아이돌 음악에 심취해있던 나는 차트 100위권에 있는 음악들 중 락 밴드 음악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락 밴드 음악의 특징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분장은 대체 뭐지?

인간들이 악마들을 숭배하는 행사가 있다고 하던데, 할로윈…… 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그런 행사의 초대 가수였나?

그런 생각들이 이어졌지만, 결국 지금 시점에서 내가 이 몸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락 밴드 보컬 데스맨’이라는 사실뿐이었다.

“그럼 집 주소는…….”

“기억상실.”

결국 이야기를 포기한 의사는 한숨을 쉬면서 병실을 나갔다.

“잠시만.”

문을 열고 나가려는 의사와 간호사를 보며 중요한 사항을 물었다.

“언제쯤 여길 나갈 수 있는가.”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는 여기 계셔야 해요.”

“몸은 멀쩡하다. 내 지금 바로 나가 봐야…….”

“안 돼요!”

나를 노려보며 으르렁대는 간호사였다.

“……안 된다고?”

“네. 좀 더 쉬세요. 기억상실인 사람이 어디를 간다고.”

“내 갈 곳이 있다 하지 않았는가!”

“안. 된. 다. 고. 요.”

흐음. 아무래도 이 간호사는 말로만 해서는 통할 인간은 아닌 모양이다.

나는 간호사를 향해 가까이 오라며 손짓을 했다.

“왜요?”

“그…… 말하지 못한 사항이 있네. 그런데 비밀스러운 이야기인지라…….”

최대한 조심스러운 행동을 취하자 간호사의 얼굴이 조금 바뀌었다.

“선생님, 환자분…….”

“오오, 다른 기억이 떠오른 건가!?”

간호사와 함께 의사도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나는 그들이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가 두 사람의 손을 꽉 잡았다.

“멘떼 크몽떼.”

화아악!

의사와 간호사의 주위에 붉은 기운이 솟아났다.

멘떼 크몽떼.

마법에 걸린 상대의 정신을 잠시간 지배할 수 있는 흑마법.

멘떼 크몽떼에 걸린 인간은 적게는 일주일, 많게는 한 달 동안은 내가 주입해 놓은 기억대로 움직이게 된다.

인간에게 있어서 짧은 시간은 아니겠지만.

이것만 걸어 두면 빠르게 이 병원을 탈출할 수 있을 터였다.

멘떼 크몽떼가 발휘되는 순간, 두 사람에게 지금 나는 퇴원해도 좋다는 인식을 심어 줄 것이니.

붉은 기운이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불을 밝히고 머릿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돌연 붉은 기운이 사라졌다.

“뭐라고요?

의사가 인상을 썼다.

“……멘떼 크몽떼?”

나는 당황하지 않고 다시 한번 의사와 간호사를 향해 속삭였다.

하지만, 여전히 붉은 기운이 나타났다가 사라질 뿐이었다.

“……저기, 선생님, 이거 혹시…….”

심각한 간호사의 말에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위중한 상황인 것 같아. 차트에 기록하고, 내 동기가 정신과 전문의니까…….”

“멘떼 크몽떼!!”

“이거 봐. 계속 미친 소리만 하잖아.”

“네, 기록해 두겠습니다.”

“아니 아니! 기다리거라! 이……이거 왜 이래?”

아무리 빙의체라고 해도 이렇게나 흑마법 발동이 어렵다고?

“메…… 멘떼 크몽…….”

“네에네에, 멩텐지 몽테 크리스토인지 일단 안정을 취하세요.”

의사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이렇게 된 이상…… 잔존 마력은 최소한으로만 남기고 힘을 쏟는다!

“으으음……!”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의사와 간호사의 팔목을 쥐어 잡고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내며 소리를 질렀다.

“멘떼 크몽떼!!!!!”

그제야 붉은 기운이 의사, 간호사의 두뇌 속을 휘감고 들어갔다. 두 사람의 동공이 탁 풀리는 순간,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김도권 환자는 내일부로 퇴원이다. 김도권 환자의 몸은 지극히 건강하다. 그러니 너희는 이 몸을 더 이상 찾지 않는다.”

의사와 간호사가 멍하니 서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되었느니라.”

흑마법을 거둬들였다. 붉은 기운이 두 사람의 두뇌에서 빠져나와 공중에서 흩어졌다.

“……환자분?”

“예.”

“건강해 보이시니 내일 퇴원하시면 되겠습니다.”

“네. 내일 퇴원하시면 병원에서 찾을 일도 없을 거예요.”

풀린 동공이 다시 돌아온 의사와 간호사는 내가 희망하는 이야기를 꺼내며 빙긋 웃었다. 그 미소를 보며 나도 한쪽 입꼬리를 스윽 올렸다.

“고맙소이다.”

두 사람이 병실을 나가자마자 침대에 다시 쓰러지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흐읍, 흐읍, 흐읍……!”

병실에 다른 사람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하급 마법 하나 시전하지 못하고 망신을 당할 뻔하지 않았는가.

‘그나저나 생각보다 부하가 심하다……!’

이 몸의 상태가 안 좋은 걸까?

아니면 급하게 들어오느라 마력을 예상보다도 더 소진한 걸까.

한차례 숨을 고른 후 시틀라를 불렀다.

“시틀라. 들리는가.”

[네, 단탈리온 님.]

“흑마법이 제대로 발동되지 않는구나. 이유를 알겠느냐.”

시틀라는 잠시 생각하더니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첫 번째 가능성으로는 시전자의 신체 건강입니다. 지금 빙의하신 김도권이라는 남자의 몸은 제법 연약해 보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가능성이 있지?”

[현재 마계에서 측정한 결과 단탈리온 님의 마력은 초기 예상하신 1천을 조금 넘긴 1200 마력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시틀라가 충격을 받았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지금은 잔존 마력량이 100이 겨우 넘습니다.]

“벌써 100 가까이로 떨어졌단 말인가!?”

나는 황급이 잔여 마력량을 확인했다.

잔여 마력량: 101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다.

기초 흑마법 한 번 시전한 걸로 이렇게나 마력을 소진했다고?

[예……. 그래서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시전자의 신체 건강, 그리고 인간계와 마계의 환경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계에서의 마력은 마계에 비해 두 배의 부하가 걸린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그걸 생각하고서 나는 최소한의 마력을 유지한 채 빙의하였다. 그런데 지금 이건…….”

원래 마력의 양이 1억이라면, 멘떼 크몽떼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마력은 고작 50 정도였다.

하지만 인간계에서는 마족의 힘이 약해져서 마계에 비해 약 두 배 가까운 마력이 필요했다.

때문에 혹시 모를 비상시를 대비하여 흑마법을 시전할 수 있을 정도의 마력, 1,200마력은 챙겨 온 참이었다.

왜 더 챙겨 오지 않았냐고?

이건 어디까지나 비상수단으로 준비해 온 마력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71위 마계는 재정이 바닥을 뚫고 이세계를 넘어갈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마계코인을 활용하여 정말 소수의 금액만 대출을 받고, 이를 마력으로 전환하여 예비 마력을 챙겨 온 것이었다.

하지만, 1천이 조금 넘는 마력을 챙겨 온 지금도 멘떼 크몽떼가 발휘되려다 말았다. 마력이 넘쳤다면 그저 속삭이는 것만으로도 시전이 되는, 이 몸 단탈리온의 기초 흑마법이 말이다.

“음……. 생각보다 천사들의 힘이 강하다는 뜻일지도 모르겠구나.”

혹은, 내 마법이 발휘되지 않을 정도로 악마의 위상이 약해졌다거나.

“시틀라여, 지금부터 현재 인간계, 특히 한국의 서울에서 천사들의 입지와 악마들의 입지가 어느 정도인지 조사해 보게.”

[예, 단탈리온 님.]

시틀라는 내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최대한 변화된 몸에 적응하고자 노력했다.

* * *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20배라고!?”

생각보다도 더 악마력이 약화되었음을 깨달은 나는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시틀라, 다시 계산해 보거라. 20배가 맞느냐?”

[예, 예에 단탈리온 님…… 몇 번을 다시 계산해 봐도 똑같습니다. 오차는 0.001% 이내입니다.]

“단순 산수만으로도 마계에서의 생활보다 20배는 더 힘들겠군…….”

[역시 단탈리온 님. 참으로 명석하십니다.]

시틀라의 혼신이 담긴 칭찬을 뒤로 하고 나는 현재 마력량을 체크했다.

잔여 마력량: 91

“91이라…….”

인간계에서 빙의체에 머물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마력을 소진해야만 했다.

아직은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기에 마력 소모가 적었지만, 연예계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마력이 소모될 터였다.

“하루빨리 마력진을 만들어야겠구나.”

김도권, 데스맨이라고 불리는 지금 신체의 남성이 살고 있었던 거처. 그곳에서 마력진을 제작한다.

인간계에 내려갔었던 마족들의 기록을 토대로 만들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금방 제작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그냥 집에서 마력진을 만들고 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하루빨리 김도권이라는 인간의 삶을 공부하고, 여기에 맞춰 노래를 준비해야만 했다.

“여! 데스맨! 퇴원 축하한다!”

그렇기에 지금은 밴드의 멤버라고 하는 앤디와 제인을 만나야 한다.

나는 병원의 정문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둘을 향해 마주 손을 들었다.

“데스맨! 이제 괜찮은 거야?”

“그러하다. 몸은 쌩쌩하다.”

양팔을 빙빙 돌리며 건강함을 과시하자 앤디가 낄낄 웃었다.

“잘됐네. 그럼 당장 연습하러 가자.”

“연습이라니, 무슨 연습 말인가?”

“우리 매주 홍대에서 연습하잖아. 기억 안 나냐? 아 맞다 기억상실.”

앤디는 지금 다시 떠올랐다면서 위로 솟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두 사람 다 악마의 모습이 아니구나.”

“오늘은 공연이 없으니까 당연하지.”

“그렇기도 하고, 보컬이 없으면 공연을 어떻게 하냐?”

앤디와 제인이 그런 점에서는 내가 퇴원하기를 꽤나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이 몸이 퇴원하기만을 기다렸구나.”

“그래그래. 기억상실이어도 하나씩 공부해 나가면 되고.”

“그래서 말인데,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노라.”

나는 락 밴드의 보컬인 김도권. 예명은 데스맨이다.

얼마나 인기가 많은 밴드인지는 아직 모른다. 게다가 이 락 밴드의 음악 스타일도 모르는 상태였다.

“락 밴드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지.”

“하지만 하급 악마처럼 하고 있었지 않았는가. 내가 알고 있는 락 밴드는 모두 평범한 모습이었느니라.”

내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던 앤디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럼 데스맨, 락 밴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기억하는데?”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이루어진 멤버들이 합을 이루어 노래를 부르는 장르로 알고 있다. 적절한 악기 사운드가 청자로 하여금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다는 정도로 알고 있다.”

나는 이전에 락 밴드에 대해 찾아보고 들어봤던 기억을 토대로 최대한 간략하게 이야기를 했다.

“으으음……. 그게 다야?”

“그러하다.”

“그러면 이거는 좀 곤란할지도.”

“무엇 때문에 그러하느냐.”

“우리가 하는 락 밴드, 그냥 락이 아니잖아.”

앤디는 제인에게 답변과 설명을 떠넘기며 손을 휘저었다. 제인이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꺼냈다.

“이거 봐봐.”

제인이 보여 준 핸드폰 안에는 RRR의 공연 사진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마치 마족 같구나.”

“응. 우리 컨셉은 마물이니까.”

“마물……?”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두 눈을 끔뻑거리고 있는 나를 향해 제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쓰리알 밴드는 헤비메탈 비주얼 락 밴드야.”

“헤비……?”

제인은 또박또박, 그리고 선명하게 다음 설명을 이어 나갔다.

“헤비메탈 비주얼 락 밴드. 다른 사람들은 헤비메탈 비주류 락 밴드라고도 하고.”

“비주류……?”

“응. 인기가 지랄맞게 없다는 뜻이지.”

인기가…… 지랄맞게 없다고……?

나의 창백한 얼굴이 더욱 사색이 된 채로 앤디의 멱살을 잡았다.

“그, 그럼! 이 몸의 락 밴드는! 한마디로 무명 밴드란 말이더냐!”

“으아아아 진정해 데스맨!”

“내가 진정하게 생겼느냐! 인기도 쥐뿔 없는 밴드 따위! 이 몸이 여기 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잔여 마력량: 49

‘이런 상황을 인간들의 언어로 뭐라고 하더라?’

앤디가 쓰러진 나를 향해 소리쳤다.

“야! 데스맨! 이거 완전 X 됐네, 이 새끼 이거 아직 아픈 거 아냐!?”

‘그래. 그거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아주 X발 X 됐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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