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집주인
“정신이 들어?”
“헉!”
나는 평소의 체통도 잊은 채 비명을 지르며 몸을 벌떡 세웠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윽……!”
“야, 역시 퇴원이 너무 일렀던 거 아냐?”
“그 새끼 돌팔이네. 내가 가서 병원비 다시 받아 올게.”
앤디와 제인이 흥분하며 마구 팔을 휘둘렀다.
‘저런 가냘픈 몸으로 상대를 위협하겠다는 것인가?’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지금은 내 몸 상태를 걱정하는 게 우선이었다.
잔여 마력량: 40
‘큰일이구나.’
조금이라도 더 지체했다가는 마력을 모두 소진해서 다시 마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 몸은 괜찮으니 어서들 가 보거라.”
“무슨 소리야? 코앞에서 쓰러진 친구를 두고 누가 가냐?”
“정말 괜찮도다.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도록 하마.”
“너 핸드폰도 사고 나면서 망가졌잖아. 어쩌려고?”
“……조용히 혼자 쉬고 싶구나.”
마력만 충분했어도 흑마법으로 조종하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단 말인가.
“맞아. 이제 막 퇴원했는데 우리가 너무 힘들게 했지.”
제인이 옆에 세워 둔 악기를 손에 쥐며 말했다.
“앤디, 슬슬 가자. 혼자 쉬라고 해 두고.”
“어? 야 진짜 괜찮은 거야? 데스맨, 진짜지?”
“괜찮다 하지 않았느냐. 어서 들어가거라.”
제인이 눈치껏 혼자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앤디는 제인에게 끌려가듯이 나가기는 했지만.
아무튼, 혼자가 되자마자 시틀라를 호출했다.
“시틀라, 있느냐.”
[예, 단탈리온 님.]
“마계코인으로 마력을 좀 구할 수 있겠느냐.”
지금 잔여 마력량이 40…… 에서 39로 내려갔다.
정말 조금이라도 더 지체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예,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벌써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래 그래, 잘하였도다. 역시…… 응? 잠깐.”
나는 시틀라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는 다시 물었다.
“이미 준비를 했다 하였느냐.”
[예, 단탈리온 님.]
“그럼 자네는 나의 승인 없이 멋대로 마계코인을 대출받았다는 뜻이더냐!”
그 말에 시틀라가 다급히 무릎을 퍽! 꿇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치도 않습니다! 이 마력은 오롯이 저, 시틀라가 용돈을 한 푼 두 푼 모아 구매한 것입니다!]
“용돈……?”
기본적으로 마계에서는 충분한 마력을 생성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71위 마계는 마이너스의 정점을 찍어 가고 있었으니 더더욱 생성되는 마력량이 부족한 게 현실이었다.
그런 71위 마계를 유지하느라 시틀라도 고생을 많이 했을 터인데.
그사이에 용돈까지 모아 왔었단 말인가.
이런 때를 위한 비상금으로 말이다.
“참으로…… 참으로 갸륵하구나.”
정말이지, 시틀라의 마음에 감격한 내가 녀석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위대한 단탈리온의 총애가 있으리.”
[단탈리온 님의 총애를 받듭니다.]
허공을 향해 뻗은 내 손을 천천히 말아쥐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시틀라에게 저주를 내려주듯이 살짝 눈을 감았다.
“이 몸, 단탈리온의 이름으로.”
부스럭.
“거기 누구냐!”
“아, 미안. 기타를 두고 가서.”
앤디가 황급히 문 옆에 놔둔 기타 가방을 들고는 후다닥 달려갔다. 녀석의 걸음이 평소보다 더 급해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앤디가 사라지는 걸 확인한 나는 다시 시틀라에게 말했다.
“시틀라. 마계코인으로 마력을 생성하여 나에게 전송 후, 인간들에게 세뇌를 건다면 어떨 것 같은가.”
시틀라는 잠시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어흠, 헛기침을 했다.
[1천 마계코인에 마력은 1이 생성됩니다. 그리고 지금 인간계에서는 20배의 마력이 더 필요합니다. 만약 말씀하신 것처럼 하게 된다면…….]
“지금으로서는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로군.”
[그렇습니다. 최소 투자 최대 효율을 내기 위해서는 단탈리온 님이 노래에 마력을 담아 불특정 다수에게 악마의 매력을 알리는 것입니다.]
“허나, 그렇게 하기에는 지금 부족한 것이 많도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궁극적인 질문에 시틀라도 적절한 답변을 찾지 못했다.
“큰일이로구나……. 헤비메탈 밴드라는 것은 정말이지 비주류라고 하는 것 같고 말이다.”
[예. 저도 인간들의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확실히 인기 차트에 헤비메탈 밴드의 음악은 없었습니다.]
“흐음…….”
나는 미간을 좁히며 고민했다.
인간들 하나하나에게 마력을 넣어가며 세뇌하는 것은 시간 대비 효율이 좋지 않다.
그렇다고 대출을 받아 마력을 생성하고, 그 마력으로 다시 마계에 돌아가자니, 돌아간 뒤도 걱정이다.
남은 방법은 역시, 지금 이 몸을 성공한 가수로 만들어서 대중음악으로 인간들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아예 장르를 바꿔 보는 것도 좋겠군. 가사를 서정적으로 바꿔 볼까. 시를 많이 읽은 나에게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을 터. 허나 현재 마력이 부족한 상황인 데다 노래 연습도 제대로 못 해 봤으니 검증할 게 많구나. 그것도 아니면…….”
생각을 이어 가며 김도권, 데스맨의 방을 빙빙 돌았다. 주변에는 이 녀석이 사용하던 물건으로 보이는 마이크, 장갑, 기타가 보였다.
그러다가.
“음?”
한 사진에서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언젠가 RRR 녀석들이 공연을 할 때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곳은 작고 어두운 공연장이었지만, 분명 관객들은 이 녀석들을 향해 손이 아닌, 주먹을 흔들고 있었다.
“시틀라.”
[예, 단탈리온 님.]
“헤비메탈 밴드는 분장을 화려하게 하지 않은가?”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본 사진들에서는 영 같잖은 하급 마족 분장들뿐이라 별 감흥이 없더군요.]
“바로 그거다 시틀라.”
내 말에 시틀라가 의문을 던졌다.
[……예?]
“헤비메탈 밴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있다.”
그렇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한 장의 사진.
“그리고 그것은…… 바로 이 몸이 71위 마계의 지배자, 단탈리온이기에 가능하다.”
사진 속의 김도권, 데스맨을 비롯한 RRR의 멤버들은 모두 화려한 분장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하얀색으로 분칠을 가득 해둔 채 해골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드라큘라의 수하인 박쥐를 형상화한 무늬를 눈가에 그리고 있었다.
긴 머리에 붉은 문자를 눈가에 새겨 힘을 과시하는 듯한 얼굴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이들 앞에서 열렬히 환호하는 관객들이 있었다.
“이런 어설픈 분장에도 사람들은 마치 이들을 섬기듯 온몸을 다해 복종의 맹세를 하고 있지 않느냐.”
열 명의 공포에 떠는 사람보다도, 심장을 바치는 광신도 하나가 마계코인에는 도움이 되는 법.
시틀라 또한 그것을 눈치챈 듯 숨을 집어삼켰다.
[이것이……!]
“그렇다. 이게 바로…….”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악마 숭배의 음악…… 메탈의 힘이다.”
* * *
뭐야. 저놈 드디어 미친 건가?
앤디는 제인의 손에 억지로 데스맨의 집을 나오느라 기타도 깜빡했다. 그래서 다시 데스맨의 원룸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그때 발견한 것이다.
“위대한 단탈리온의 총애가 있으리.”
의식이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데스맨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대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
어떡하지? 나가야 하나?
아니면 나중에 올까?
근데 세션 알바 가려면 기타 가지고 가야 하는데.
온갖 생각이 펼쳐지면서 앤디는 어렵게 한 걸음 옮겼다.
아니면 직접 물어볼까?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라고.
데스맨은 밴드 내에서 앤디와 가장 친했다. 기억을 상실한 지금도 데스맨과 제일 친밀하게 지내려 노력하는 건 앤디였다.
그러니 그 정도 질문은 해도 되지 않을까.
‘미쳤냐고!’
하지만, 지금 상황은 앤디에게도 망설임을 품게 해 주었다.
의식이 깨어난 데스맨이 돌연 사극투의 말투를 하고 있는 것부터도 이상했다.
기억이 단편적이라는 부분보다도 말투가 바뀐 게 마음에 걸렸다.
혹시 병실에서 틀어준 사극 드라마 영향인가?
그럼 의식이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억상실 상태에서 사극 드라마의 대사를 들으며 잠이 들다 보니,
<사극 드라마 대사 = 정상적인 화법>
이라는 공식이 성립한 건가?
그리고 저 단탈…… 뭐시기 저거는 또 뭐 고?
저건 무슨 ‘팔찌의 제왕’이나 ‘해리포탈’ 같은 판타지 영화에서라도 들은 건가?
‘그래, 기억상실이면 세상의 상식도 지워져 있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어설프게 대중매체를 접하면 그게 세상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런 거라면 내가 하나하나 잡아 주어야 한다.
그게 RRR밴드의 보컬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니 내가 도와…….
“이 몸, 단탈리온의 이름으로.”
“…….”
음. 그게. 지금은 아닌 거 같지만.
부스럭.
“거기 누구냐!”
“아, 미안. 기타를 두고 가서.”
그래서 앤디는 일단 무난하게 지금 상황을 모른 척 넘어가기로 했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
그래. 어쩌면 나보다 더 전문가가 나타날 수도 있다.
만약 진짜 정신이 어떻게 된 거라면, 일반인이 뭔가를 해내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런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허둥지둥 기타를 등에 멘 채 뛰어 내려가는 앤디였다.
* * *
[준비되셨습니까.]
시틀라는 의식을 준비하면서 침착하게 말했다.
“되었느니라.”
나 역시 굳게 다문 입술을 살짝 열며 조용히 답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김도권의 집인 작은 원룸 방의 중앙에 놓은 양초 다섯 개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마계수와 마계과실, 마계코인의 로고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한 손에는 길에서 주운 작은 나무 막대가 들려 있었다.
“참으로 신기하구나. 이 몸이 탄생 직후에나 했을 법한 흑마술을 인간계에서 하고 있을 줄은.”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단탈리온 님. 제가 미리 더 준비를 했어야 했습니다.]
“되었다. 시틀라 자네의 잘못이 아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지금 인간계는 지나치게 천계의 힘이 증폭되어 있다.
악마와 천사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직접 마력 소모가 20배가 되는 일을 겪어 보니 꽤나 심각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마력진부터 형성하겠다. 언제까지 자네 비상금으로 마력을 받을 수는 없지 않느냐. 대출을 받을 수도 없고 말이다.”
[단탈리온 님…….]
아마 다른 악마였다면 시종의 비상금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빼앗았겠지.
하지만 이 몸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것도 모두 단탈리온, 이 몸의 놀라운 지도력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니 시틀라여. 오로지 의식에 집중하거라.”
[예……!]
나는 마력진에 손을 올리고 나무막대를 중앙에 세웠다. 막대가 넘어지지 않게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막대의 위를 간신히 붙잡았다.
“……흡!”
시틀라의 비상금으로 받은 마력이 쑥쑥 빠져나갔다. 내 몸을 나온 마력은 검붉은 빛을 띤 안개로 변해갔다.
“넉투먼 포야.”
[포야 비랑가.]
“크레만피온…….”
[헤모제네레…….]
“포데르 포르자!”
[포데르 포르자!]
화아악!
중앙에 새겨진 각종 로고들이 검붉게 빛나면서 안개를 빨아들였다. 안개는 이내 양초 다섯 개 안쪽에 하나둘 자리 잡더니, 각각 한 점이 되었다.
“후우…….”
의식을 끝낸 나는 조용히 마력량을 체크했다.
잔여 마력량: 300
그리고 잠시 뒤.
잔여 마력량: 301
조금씩 마력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성공이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단탈리온 님!]
“아니다. 자네도 알려 준 호흡법을 정확히 따라 했도다.”
[감사합니다. ‘…….’ 이런 숨쉬기 포인트를 잘 잡아야 실패하지 않는다는 점은 뼛속까지 각인되어 있습니다.]
“역시 그대는 항상 믿음직스럽구나.”
시틀라의 유능함을 칭찬하면서 나는 검붉은 점 위에 놓인 양초들을 바라봤다.
“……음?”
양초의 심지에 붙은 불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음…….”
[왜 그러십니까, 단탈리온 님.]
“불이 커지고 있다.”
나는 미간을 좁히면서 다른 양초들을 확인했다.
다른 양초는 멀쩡했다.
“딱 하나만 말썽이로구나.”
화르륵!
손을 들어 양초 위에 대고 불길을 조절했다. 그러자 검붉은 불꽃이 양초 위에서 한 번 화악 타올랐다가 이내 잦아들었다.
“이제 괜찮은 것 같구나.”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단탈리온 님.]
그렇게 의식을 마치고 침대에 걸터앉았을 때였다.
“학생, 학생!”
“……누구더냐.”
“사고 났었다며. 몸은 좀 괜찮은 거야?”
문을 살짝 열고 보니 중년 여성이 나를 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거 먹어. 몸에 좋은 거야.”
“……이게 무엇이냐.”
“양파즙이랑 마늘즙. 몸에 좋은 거니까 꼭 챙겨 먹어. 당분 최소화한 제품이야.”
양파와 마늘!?
중급 악마인 뱀파이어 족들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아닌가.
물론, 최고위 악마인 이 몸, 단탈리온에게는 고작 저런 걸로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계에 있을 때의 이야기일 뿐.
힘이 무려 20배는 차이가 나는 지금의 인간계와 이곳에 내려온 나라면.
비록 양파와 마늘이라도 나에게 어떤 효과를 들고 올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설마 이 여자.’
이 몸의 정체를 알고 있는 건가.
“용건이 하나 더 있어.”
나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경계심을 풀지 않고는 기운을 갈무리했다.
‘마력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여기에서 붙잡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용히 멘떼,를 발음하려는 순간.
“나 집주인이잖아.”
“집주인?”
중년 인간 여성이 양쪽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말했다.
“월세도 받으려고. 한 달 밀린 월세.”
어지간한 상위 악마 저리 가라 할 만한 사악한 미소를 짓는 여성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월…… 세?”
그러고 보니 이 몸의 원래 주인.
돈이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