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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님, 메탈하신다-5화 (5/110)

5화. 마왕 총회

“학생 이미 한 달 봐줬잖아. 보증금도 다 까먹고, 한 달을 더 봐줬어. 진짜 없는 거야?”

“잠시 기다려다오. 월세라 하였는가.”

“말투가 왜 이래? 그래. 월세.”

그게 무슨 소리인가.

월세라는 개념이 마계에 있었던가?

아니, 여기는 인간계다.

인간계에서 월세라는 것은 제법 사이즈가 되는 집에나 해당되는 개념일 터.

“감히 이 몸에게 거짓말을! 드라마에서 봤느니라. 월세라 함은 적어도 30평 이상의 아파트에서부터 들어가는 게 아니더냐. 이런 고블린 코딱지만도 못한 방 한 칸에 월세가 왜…….”

“……코딱지?”

중년 여성의 눈가에 점차 실핏줄이 도드라지며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매우 불길한 기운이 오싹하게 느껴졌다.

“정 뭐하면, 학생 뒤에 불타 있는 벽지도 물어내라고 할까? 내가 최소한의 온정으로 저건 뭐라 안 하는 건데.”

“…….”

잠시 뒤를 돌아본 나는 한숨을 깊게 쉬었다.

그래. 남의 집을 허락도 없이 태우는 것은 마계에서도 허용되지 않는 행위였다.

미리 불태우겠다고 선포를 하고서 하는 거라면 모를까.

아무런 언질 없이 곧장 태워 버렸으니, 이것은 나의 실책이 맞았다.

“그래. 얼마면 되겠느냐.”

“……기억상실이라더니 진짜네. 그래도 월세는 내야 해. 30만 원.”

“끄응…… 접수했도다.”

중년 여성이 방을 나가자마자 시틀라를 호출했다.

“시틀라여. 지금 김도권이라는 인간에게 통장이 있느냐? 가족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가족은 멀리 지방에 있는데 교류가 거의 없다 합니다. 통장은 아마 책상이나 이런 곳에 숨겨 두었을 텐데…….]

나는 시틀라의 설명을 들으면서 김도권의 책상, 침대 등을 뒤졌다.

그러나 통장이 나오지 않았다.

“음…… 돈이 아예 없지는 않을 텐데.”

[그렇습니다. 저도 좀 더 찾아보겠습니다.]

“아니다. 생각이 나는 부분이 있도다.”

마계에서 읽었던 소설의 주인공은 핸드폰을 통해 월급을 받았다고 묘사가 되어 있다.

그렇다면 김도권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곧장 액정이 잔뜩 깨진 김도권의 핸드폰을 꺼냈다.

“……역시 있구나.”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은행 어플을 터치하고 다시 한번 지문인식을 했다.

그러자 로그인이 되면서 계좌의 잔액이 나타났다.

잔액: 50원

“……시틀라여.”

[예, 단탈리온 님.]

“인간계에서 30만 원이라면, 어느 정도의 돈인가?”

시틀라가 마계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더니 알려 주었다.

[인간계의 30만 원은 마계코인 30만 코인과 비슷하다 보시면 되겠습니다.]

“30만 코인?”

30만 코인이면 분명…….

“악마손국밥 30인분 가격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그럼 30만 원을 벌려면…….”

시틀라가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적어도…… 국밥 30그릇은 참으셔야 합니다.]

“하루에 50원씩 모으면 며칠에 국밥 한 그릇을 살 수 있지?”

[그렇다면…… 200일 저축하시면 국밥 한 그릇을 드실 수 있습니다.]

“…….”

나는 허탈한 표정으로 거울에 비친 김도권을 바라봤다.

창백한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 세간에서는 잘생겼다고 할 법한, 어떻게 보면 마족에 어울리는 얼굴을 한 인간이었기에 친밀감이 드는 외모였지만.

“참으로…… 네가 밉구나.”

돈 좀 모아 두지 그랬느냐.

김도권, RRR의 데스맨에게 아쉬움이 더더욱 남기만 하는 순간이었다.

* * *

[충격적인 사실이 두 개 있습니다.]

다음 날, 시틀라가 이른 아침부터 통신을 열었다.

“하나씩 말해 보거라.”

[서울에서 월세 30만 원이면 저렴한 편이었습니다.]

“무어라!?”

[다른 서울의 원룸들은 월세가 55만 원 이상이 되는 곳도 많습니다. 많게는…… 월세 300이 넘는 아파트도 있습니다.]

시틀라의 말에 나 역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나 비싼 동네였단 말인가.

“……이런 부분들을 알아 두지 못한 것은 패착이로구나.”

[아쉬운 부분이 있기는 하나,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시틀라의 말에 나는 희망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

“오, 방법이 있는 것이냐.”

[예. 지금 단탈리온 님의 몸 주인인 김도권은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야간 PC방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계에서 시틀라는 꾸준히 김도권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다. 그 덕분에 사고가 나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조금씩이나마 파악해 갈 수 있었다.

[야간 PC방 아르바이트 시급은 현재 김도권이 근무하는 곳 기준으로 9,200원입니다. 매일은 아니고 3일 근무이기는 하지만, 3일 근무로 주휴수당 포함, 소득세 3.3%를 제할 경우 실수령 1,113,322원의 월급이 나옵니다.]

갑작스러운 숫자들의 등장에 머리가 잠시 아파졌다. 나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간략히 설명하라.”

[아, 예! 죄송합니다! 아무튼, 실수령액 1,113,322원을 받으면…….]

“대략 110만 원 정도라고 하거라.”

[존명!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은 시틀라가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월급은 약 110만 원. 여기에서 월세 30만 원을 내면 생활비는 80만 원이 남습니다. 충분히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대중음악으로 마왕 단탈리온의 이름을 알리려면 기본적으로 서울에서의 생활이 가능해야 했다. 이건 단기간에 완성되는 프로젝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전에 선별해 두었던 후보는 비축해 둔 돈들도 많은 녀석이었거늘…….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와 만약을 생각해 봤자 의미가 없지. 알겠다. 이 몸이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PC방 아르바이트라는 것을 다시 나가야겠구나.”

[그렇습니다. PC방 사장도 김도권이 사고를 당한 소식을 듣고는 딱히 자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준비가 되실 때 연락하시면 될 겁니다.]

확실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면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을 터.

“김도권이라는 작자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음악에 투자했던 모양이로군.”

어찌 그리 힘들게 살았을꼬.

나는 김도권의 영혼이 마계로 넘어가 희희낙락하며 살 수 있도록 저주를 하며 말했다.

“그래,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실은 무엇이더냐.”

시틀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두 개라고 이야기했었다. 나머지 하나가 무엇인지 묻자 시틀라가 이야기하기를 조금 꺼리기 시작했다.

[저어…… 그것이…….]

“왜 그러느냐.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거라. 아, 숫자가 나오는 건 간략하게 이야기해야 하느니라.”

[아, 예, 숫자 이야기는 아니옵니다만…….]

시틀라는 정말 꺼내기 어려운 주제라면서 통신으로 작게 속삭였다.

[지금 마계가 조금 시끄러워졌습니다.]

“71위 마계가 말이냐?”

[아닙니다. 1위부터 72위 마계까지 전부 다 난리가 났습니다.]

그 말에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번에는 또 무엇 때문이더냐.”

[그…… 우선 단탈리온 님이 인간계에 내려가신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시틀라는 어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했다.

제법 긴 이야기였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러니까 다른 마왕들이 인간계와 마계의 격차가 20배로 늘어났다는 사실에 인간계 침공을 계획 중이다. 이것이더냐.”

[예, 예, 맞습니다.]

이 멍청한…….

어찌 이리도 무식한 방법만 생각한단 말이더냐.

솔직히 71위 마계를 지배하는 이 몸, 단탈리온을 제외하면 다른 마왕들은 모두 뇌 속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싸움광들이었다.

그래서 이전부터도 호시탐탐 인간계를 집어삼키자며 의견을 내기도 했었고, 그로 인해 얼마 전인 5000년쯤 전에는 마성전쟁이 발발하기도 했었다.

당시 인간들은 그 전쟁을 성마전쟁이라며 신화처럼 취급하는 것 같았지만, 아무튼.

“왜 그런 쓸데없는 낭비를 하려고 한단 말이더냐.”

[그래서 제가 마계코인과 마력의 가치가 인간계에서는 지나치게 낮으니, 지금 공격해 봤자 손해가 크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뭐라더냐?”

[우리 악마들이 언제부터 인간계 눈치만 보고 있었냐면서 욕만 뒤지게 먹었습니다…….]

시틀라의 시무룩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이 멍청한 악마들은 교양이 부족하다.

이게 다 독서와 사색이 부족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었다.

악마도 갖추어야 하는 교양이 있거늘, 그런 걸 생각하지 않고서 밀어붙이기만 하니까 계속 전쟁이니 뭐니 하는 것이었다.

“마왕 총회가 언제인가.”

[오늘 밤에 긴급 총회가 열립니다. 일정이 되는 분들만 참석하십니다.]

“그 총회에 나도 참여하겠다.”

그 말에 시틀라가 깜짝 놀랐다.

[다, 단탈리온 님!? 하지만, 아직 영상을 송출할 정도의 마력이 생성되지는 않았습니다!]

“괜찮다.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하다. 시틀라 자네는 음성 연결에 집중해 주기만 하면 되느니라.”

이번에 악마들이 전쟁을 준비한다고 하면, 사실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71위 마계였다.

다른 마계들은 대출을 팍팍 받아 가면서 마력을 공급받고, 그걸 원동력으로 삼아 전투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

하지만, 71위 마계는 어떠한가.

지금 대출금만 990조가 넘는다. 조금만 더 대출을 받으면 금방 1,000조를 넘기고, 그렇게 되면 마계의 존속 위기에 다다를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리까지 끌어들여서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곧 있을 총회가 기대되는구나.”

* * *

아몬과 바르바토스를 비롯한 마왕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늘 긴급 총회는 인간계의 건방진 마력 환율을 어떻게 다시 바꿔 나갈 것인지에 대한 회의였다.

바로 전쟁을 일으키자는 강경파와 함께 아직은 신중해야 한다는 온건파가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악마가 그러하듯, 온건파는 정말 극소수에 불과했다.

“당장이라도 전쟁을 일으켜야지! 인간들이 좀 봐줬더니 기고만장한 것 아닌가!”

아몬이 열을 내며 책상을 쾅쾅 두드렸다. 바르바토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인간들도 그렇지만, 천계도 문제야. 천계에게 인간계를 맡겼더니 이딴 식으로 경계가 무너지지 않았는가. 선을 지켜야지, 20배가 뭔가 20배가.”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제가 나온 문화 콘텐츠를 즐기러 한 번씩 내려가는데…….”

“다들 조용.”

시끌벅적하던 총회 자리가 순식간에 침묵했다. 전 마계 중에서도 가장 첫 번째 숫자. 1위 바엘이 발언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모일 마왕들은 다들 모였군. 그럼 이제부터 총회를…….”

지직-

“응?”

그때 어디선가 노이즈 낀 음성이 들려왔다.

지직- 잠깐.

“단탈리온인가.”

아몬이 중얼거리자 음성 수신이 양호해졌는지 보다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인간계에 있는 단탈리온이다. 아직 영상송출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음성만으로 참여하는 점, 양해 바란다.

“괜찮네. 다들 바쁘니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지.”

바엘이 자리에 모인 마왕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 우리 마계는 인간계와 천계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다. 인간계와 마계의 마력량이 20배나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바로 그 점을 증명하고 있지.”

그러자 모여 있는 마왕들이 정말 그렇다며 열을 올렸다.

“그렇기에 나는 우리 마왕들이 힘을 합쳐 마계의 위상을 다시 한번 인간들에게 깨우쳐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바엘의 말에 수많은 마왕이 손을 들며 발언을 했다.

누군가는 직접 전투를 해야 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천계부터 조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몬과 바르바토스 역시도 강경파에 속했기에 마계가 더 약화되기 전에 침공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대로 듣고 있기가 매우 힘들군.

반면, 단탈리온은 달랐다.

“무슨 소리인가, 단탈리온.”

-생각들을 해 보게. 지금 자네들과 인간계, 그리고 천계의 마력량은 20배의 차이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도 모르는 건가.

음성 안에서 단탈리온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아무도 거기에 화를 내거나 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단탈리온. 우리는 언제나 자네의 지혜에 많은 도움을 받아 왔지. 이번에도 자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할 생각이니 자유롭게 말해 주게.”

“그래 단탈리온!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봐!”

“너, 뭔가 알고 있는 거냐.”

바엘, 아몬, 바르바토스가 물었다. 단탈리온은 모여 있는 마왕들에게 말했다.

-흑마법 시전의 마력량이 20배가 들어간다는 건, 인간계에서 몸을 유지하는 데에도 20배의 마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뭐라……!?”

단탈리온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지금도 나는 빙의한 몸을 유지하는 데에만 약 1분에 1마력씩 소진하고 있다. 잘 듣게나. 본체가 아니다. 빙의체다.

물론,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단탈리온은 과장을 약간 섞기로 했다.

-당장의 마력과 경험이 부족했었다면 나 역시 곧 소멸되었겠지.

이제는 자리에 모여 있는 모든 인원들이 침을 꼴딱 삼켰다.

“그렇다면…….”

아몬이 말을 하려다 말고 날카로운 이빨을 딱딱딱 불안한 듯이 부딪혔다.

-사실상 1분에 1마력씩 소진하면서 20배의 마력 소모까지 감당할 수 있는 악마는 마계에서 군단장급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단탈리온이 하는 말은 모두 일리가 있었다.

지금 상대와의 격차는 20배가 난다.

거기에 1분에 1마력 소모라는 새로운 정보까지 얻었다.

그런 상황에서 천계가 관리하는 인간계를 습격한다?

사실상 다 죽고 보자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단탈리온은 바로 그 지점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날카롭군, 단탈리온.”

-그러니 인간계는 당분간 나에게 맡겨라.

“자네에게는 무슨 수가 있단 말인가?”

아몬의 질문에 단탈리온은 조용히 말했다.

-나는 가능하다.

“어떻게?”

-나는 대중음악을 할 거다.

단탈리온의 말에 마왕들이 수근거렸다.

“음…… 악……?”

-그렇다. 인간들에게 마계와 마왕의 이름을 알릴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단탈리온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마계의 이름이 인간계에 알려지면서 천계와의 격차가 줄어들 것이다.

“…….”

단탈리온은 이어지는 침묵에 잠시 말을 멈췄다.

아무래도 자신의 설득이 먹히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한 찰나,

“……천재.”

누군가의 말을 시작으로 마왕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단탈리온은 마계 제일의 천재다!”

“그런 기막힌 방법이 있다니! 이 녀석 두려울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구만!”

“전재애애앵! 전쟁이다! 단탈리온의 계획만 성공하면 천계 놈들은 이제 끝이다!”

“뭔지 모르겠지만 고함을 지르고 싶어졌다!”

“단탈리온 만세! 자네만 믿는다!”

마왕들의 주먹이 굳세게 쥐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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