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6화 (6/110)

6화. 생각 없나?

한참 단탈리온을 향한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그리고 분위기가 잠시 가라앉았을 때, 바르바토스가 말했다.

“단탈리온. 의도는 알겠네. 그런데 대중음악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내가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는가 싶네만…….

단탈리온은 침통한 말투로 통신에 대고 말했다.

-나는 이미 얼마 전부터 천계가 관리하는 인간계와 마계의 격차가 심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네. 그리고 이게 지속된다면…….

그 뒤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단탈리온이 잠시간 침묵했다. 그러나 해야 하는 이야기라면서 어렵게 입을 열었다.

-마계 전체가 붕괴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뭣……!?”

“뭐라고!?”

“잠깐! 그게 진짜야? 정말이냐고!”

마왕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생각이 많아지는 시점에, 바르바토스는 설마, 하면서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설마 자네…… 인간계에 내려간 이유가……!”

“바르바토스! 무슨 소리인가! 단탈리온은 방금 음악을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니네 아몬. 지금 단탈리온은…… 우리를 대신해서 몰래 정보를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럼 대중음악은 표면적인 행위이고…….”

“진짜 목적은 정보를 얻고, 균형을 잡아가겠다는 뜻이었단 말인가!?”

바르바토스가 고개를 들고 눈을 감았다.

“단탈리온이 갈 수밖에 없었던 게야. 지금의 인간계라면 중급 마족도 하루를 못 버티고 소멸할 테지.”

“그렇다고 해서 마왕이 직접……!”

“생각해 보게. 그렇다고 군단장을 한 명 보내자니 그것도 그렇잖은가. 특히나 정신계통 군단장이 아니라면, 자칫 잘못했다가는 천사들에게 혼이 먹힐 수도 있어.”

군단장 한 명의 상실은 어느 마계에서든 심각한 사안이었다.

마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최상위 공무원 같은 존재였기에, 인간계로 치면 장관 자리가 공석이 되는 것.

그렇기에 모든 마왕들은 군단장의 존재를 가장 아꼈다. 문제가 생기면 가차 없이 바꿔 버리지만, 자신의 일만 잘 처리하면 그렇게 많은 애정을 쏟는 자리가 또 없었다.

“그럼 단탈리온은……!”

“이제야 알겠는가 아몬. 단탈리온은…… 우리의 친우는! 인간계에 내려가서 가장 잘 버틸 수 있는 악마는 자신이라 생각하고서 내려간 거라네! 우리가 내려갔다면 정신이 벌써 붕괴했을지도 모르는 일일세!”

단탈리온이 정신계를 지배하는 악마여서 가능한 일.

마력이 다소 부족해도 자신의 혼을 지켜 낼 수 있는 이유.

그 모든 것은 단탈리온의 방대한 마력량과 그의 정신력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르바토스의 설명에 아몬을 비롯한 모든 마왕이 경악했다.

“단탈리온! 네 이 녀석!”

“크윽…… 이렇게 기꺼이 자기 한 몸을 바치다니……!”

“소멸될 것 같으면 바로 연락하게! 나와 교대하시게!”

“마계코인 일부를 지원해 줄 테니 이거도 사용하라고!”

총회에 모인 마왕들이 하나둘 성금을 모금하기 시작했다. 그 금액이 순식간에 1억 마계코인이 되었다.

단탈리온은 그들의 성의를 무시하지 않고 모금액을 거둬들이며 말했다.

-다들 고맙네. 더더욱 임무를 완수해야겠구만.

“고맙기는. 우리가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나저나, 우리가 또 도와줄 건 없는가?

바르바토스가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단탈리온은 이미 계획이 다 있다면서 크큭, 웃었다.

-이곳에서 천계와 마계의 힘을 조금씩 조절해 나가겠다 하지 않았나. 습격하는 건 그 이후로 해도 늦지 않을 게야. 다만, 자네들에게 한 가지 허락을 받을 게 있다.

“무엇이지?”

아몬이 묻자 단탈리온이 침착하게 말했다.

-천계의 힘을 약하게 만들기 위해 자네들의 모습을 알리고자 한다. 적절한 분장과 명칭 사용을 허가해 주게나.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아몬에 이어서 바르바토스, 바엘 등 다른 마왕들이 동의했다.

-고맙다. 그럼 나를 믿고 당분간은 대기하시게. 천계와의 전쟁은 지금이 아니어도 된다.

“알겠다. 나의 친우, 단탈리온을 믿도록 하지. 이견이 있는 자 있는가?”

총회를 마무리하려는 아몬의 말에 반대 의견을 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르바토스도, 벨리알도, 1위인 바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분간 단탈리온, 자네에게 부탁 좀 하겠네.”

-걱정 말게나. 내 무언가 알게 되면 다시 연락함세.

통신은 그렇게 끊어졌다. 모여 있던 마왕들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단탈리온…… 역시…….”

어찌 이리도 치밀하단 말인가.

이 모든 상황을 계산이라도 한 듯, 마왕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거기에 냉정하고 침착한 상황 판단에다가 솔선수범하여 인간계에 내려가는 용기까지.

“71위 마계의 미래는 걱정 없겠군.”

바엘의 중얼거림이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마왕들의 귓가로 들어갔다.

“재정 위기라니, 다 이유가 있었어.”

“미래를 위한 고심이 여기까지 느껴지더군.”

“71위 마계가 망하지 않도록 다른 마왕들도 다들 신경을 쓰도록 하지. 어떠한가.”

“좋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바엘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을 때.

“후……. 이걸로 다시 대중음악에 집중할 수 있다.”

정작 단탈리온은 71위 마계를 지키고자 아이돌, 아니 밴드계의 아이돌이 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을 따름이었다.

* * *

“받아라, 시틀라여.”

나는 방금 마왕 총회에서 모금한 1억 마계코인을 송금했다. 시틀라의 비상금의 일부를 갚기로 한 것이다.

[다, 단탈리온님! 저의 미천한 비상금 따위, 그냥 잊으셔도…….]

“내가 어찌 그러겠느냐. 자네 같은 충직한 부하가 있기에 이 몸이 있는 게다. 군말하지 말고 받거라.”

시틀라는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몹시 흐느끼며 말했다.

[감사…… 크흐……! 감사합니다, 단탈리온님……!]

“되었다. 잔돈은 알아서 마계 재정에 보태거라. 그것보다, 알아보았느냐.”

나는 마왕총회에 들어가면서 시틀라에게 PC방 야간 아르바이트에 대해 조사해 보라고 명령해 두었었다. 시틀라는 열심히 인터넷을 서치해 보면서 알게 되었다며 설명했다.

[찾아보았는데, PC방은 말이 PC방이지 사실 요즘은 거의 식당이라고 합니다.]

“식당? 국밥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인가.”

[국밥은 아니지만 라면을 끓여 준다거나, 함박스테이크 덮밥을 만들어 준다거나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어라? 함박스테이크 덮밥?”

라면이라면 나도 알고 있었다. 인간들은 PC방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게임하는 것을 즐겨한다는 사실쯤이야. 영화를 보면서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함박스테이크? 덮밥? 이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럼 이 몸이 가서 요리까지 해야 한단 말이더냐.”

[현재 인간계의 사정으로 따지면 그렇습니다. 어쩔까요 단탈리온님. 아니면, 제가 직접 내려가서 PC방 사장의 사지를 뒤틀어 버리면…….]

나는 평소라면 허가했을 시틀라의 계획을 손을 휘저으며 거절했다.

“잊었느냐. 우리의 목적은 대중음악을 통해 인간들에게 악마, 마계의 이름을 알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들에게 당분간은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줄 필요가 있다. 즉, 김도권, 데스맨이라고 불리는 이 인간의 행실에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간들은 타인에게 공격을 받거나, 묻지마 폭행을 하면 경찰이라는 집단에 신고를 한다.”

[경찰이 무엇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PC방에서 난동을 부리는 인간이 있으면 112에 신고를 한다고 합니다.]

나는 시틀라의 질문에 적절한 예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마계로 따지자면 마족감찰국이라고 보면 되겠구나.”

[가, 감찰국……!?]

시틀라가 기겁을 하며 목소리를 떨기 시작했다.

[가, 가가, 감찰국이라면…… 불법을 저지르는 마족은 찢어 죽인다는 잔인무도한 녀석들 아닙니까!]

같은 악마들도 그들의 잔인함에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고 하는, 악마 중의 악마라고 불리는 녀석들.

그게 바로 마족감찰국이었다.

나는 시틀라의 반응에 흡족해하면서 크크큭, 웃었다.

“그렇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감찰국이라 할 수 있는 경찰이라는 존재를 간과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확실히…… 인간들도 갑작스러운 피해를 입는다면 당황할 것이 뻔하겠지요.]

시틀라는 서서히 인간들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된다는 듯 말했다.

[그러하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방법이 있겠느냐? 오늘부터 요리를 연습한다.”

나의 말에 시틀라가 다시 한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위대한 71위 마계의 왕, 단탈리온 님께서 요리를 직접 하실 필요는……!]

“시틀라여.”

나는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나는 지금 71위 마계의 마족들을 지켜야 하느니라.”

[허나……!]

“괜찮대도! 어차피 인간의 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간단한 요리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겸사겸사 배운다고 생각하려무나.”

그날, 나는 시틀라가 인터넷에서 찾아준 레시피를 토대로 반숙 계란후라이라는 요리를 만들었다.

밤이 늦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계란을 깼고, 구웠으며, 태우다가 다시 카놀라유를 붓고, 뒤집개로 뒤집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른 아침이 되었을 때.

“……해냈노라.”

드디어 계란 노른자를 모두 익히지 않고 절반만 익힌, 반숙 계란후라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성공입니다, 단탈리온 님!!]

비록 영상은 보이지 않지만, 시틀라는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알겠다며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도 매우 뿌듯한 감정에 휩싸인 채 눈을 감고 생각했다.

‘요리라는 것은…… 참으로 어렵도다.’

계란 20여 개를 실패하면서 겨우 완성한 후라이를 보며, 앞으로의 요리의 길이 험난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 * *

단탈리온이 마왕총회를 하고 반숙 계란후라이를 연습하고 있을 때.

“수고하셨습니다!”

세션 아르바이트를 나갔던 앤디는 홍대의 N클럽 스탭실에서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있었다.

그의 앞에서 오늘 공연을 주관했던 쥬피터 밴드의 기획사 사장이 담배를 물었다.

“고생했어, 앤디. 어제 갑자기 기타리스트가 손목을 다쳤지 뭐야.”

“아닙니다, 저야말로 불러주셔서 영광이었습니다!”

기획사 사장이 주머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더니 앤디에게 건넸다.

“자, 이건 오늘 일한 노동의 대가.”

생각보다 두툼한 봉투를 받으면서 앤디는 허리를 더욱 깊숙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아냐, 아냐. 우리가 고맙지 뭘.”

기획사 사장은 정말 그렇지 않느냐며 뒤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쥬피터 밴드 멤버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쥬피터 밴드의 보컬이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정말, 앤디 형님의 기타 실력은 최고라니까요. 합주를 많이 해 본 것도 아닌데, 오늘 합이 최고였다고나 할까.”

“그렇지? 내가 봐도 그랬어.”

보컬의 말에 기획사 사장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앤디는 이들이 자신의 실력을 칭찬해 주자 괜히 기분이 좋아서 실실 웃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불러만 주십쇼!”

앤디의 대답에 기획사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스케쥴표를 꺼냈다.

“그렇지 않아도 말이야, 이거 한번 봐 봐.”

기획사 사장이 내민 스케쥴표에는 밴드 쥬피터의 공연 스케쥴이 가득 차 있었다.

“앤디 자네, 시간 되는 날 체크해 봐.”

기획사 사장의 말에 앤디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락 장르 중 헤비메탈은 이미 인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그래서 앤디를 비롯한 RRR의 멤버들은 어떻게든 일상을 유지해야 했다.

데스맨처럼 PC방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제인처럼 고기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다.

즉, 음악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앤디는 행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

쥬피터의 기타리스트가 손목을 다쳤고, 그 손목이 완치되기까지는 빨라도 3주가 걸린다는 이야기였다. 기획사 사장은 그 기간 동안의 공연들은 모두 앤디가 들어오게끔 하겠다는 뜻이었다.

“음음, 좋아 좋아. 다 체크했나?”

“예, 사장님! 연습 날을 제외하면 모두 가능합니다!”

앤디가 제외한 날짜는 RRR 멤버들과 약속해 둔 정규 연습 날이었다.

“그런데 자네가 지금 있는 밴드. 그…… 쓰레기 밴드?”

“쓰리알 밴드입니다, 사장님.”

“아아, 그렇지, 쓰리알 응.”

뒤에서 쥬피터의 보컬이 말하자 기획사 사장이 말실수를 했다며 키득 웃었다.

“밴드 보컬이 다쳤다며?”

보컬 데스맨의 이야기에 앤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네에…… 천장에서 떨어진 스피커에 머리를 다쳐서…….”

“기억상실이라는 것도 진짜인가?”

그건 어떻게 알았냐며 앤디의 두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하하하, 나도 이 업계에 있다 보면 크고 작은 소문 정도는 금방 듣거든.”

“그…….”

앤디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 사람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

그렇다고 숨긴다 한들 뭔가 문제가 될까 싶기는 한데.

생각을 마친 앤디는 천천히 말했다.

“기억이 조금…… 부족한 것 같지만, 곧 회복될 겁니다. 악기랑 밴드도 잘 기억하더라고요.”

혹시 몰라 앤디는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답했다. 그걸 들은 기획사 사장의 얼굴이 살짝 아쉬움이 돋아났다.

“음…… 그렇군.”

“그나저나 그건 왜…….”

“본론부터 말하지. 지금 쥬피터는 기타리스트 부재가 커. 곧 앨범 발매도 해야 하고, 홍보 겸 공연도 해야 하는데 손해가 막심해.”

기획사 사장은 쓰고 있던 안경을 살짝 벗고는 셔츠로 안경 렌즈를 열심히 닦았다.

“그래서 말이야, 우리가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려고 하는데…….”

그 뒤의 이야기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앤디의 목구멍으로 마른침이 꼴딱 삼켜졌다.

“앤디 자네, 쥬피터로 들어올 생각 없나? 돈은 섭섭지 않게 챙겨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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