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샤우팅
오늘은 합주가 있는 날이다.
[합주가 무엇입니까?]
“다 같이 모여서 연주, 노래를 하는 시간이다.”
시틀라는 아직 밴드 용어들을 잘 모르겠다면서 물었다. 하긴, 시틀라뿐 아니라 마계에 있는 전 악마들이 합주라는 개념은 잘 모를 것이다.
합주하는 장면을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건’ 했겠지만, 단어를 직접 들은 경우는 별로 없을 테니까.
“오늘 밴드 멤버들을 만나서 향후 방침을 논의할 것이다.”
돈이 급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PC방 야간 아르바이트 급여가 일부나마 들어왔다.
사고가 나서 며칠 쉰 부분을 계산해서 받은 금액은 약 50만 원 정도였다.
[그나마 집주인에게 월세는 갚아서 다행입니다.]
“그렇다. 자칫 잘못했으면 길바닥에 나앉을 뻔하지 않았느냐.”
실제로 마계에서는 월세로 마계코인을 지불하지 못하면 바로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마계는 그 누구 하나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뜨끔하기는 하네.
나는 책을 가까이 두고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 할애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오늘 중요한 것은 마계의 사정이 아니었다.
바로 현실 세계에서 이 몸, 단탈리온이 헤비메탈 밴드로서 우뚝 서기 위한 전략을 구상해야 하는 시간. 그 어느 때보다도 비장한 얼굴을 하고서 거울 앞에 섰다.
“흠…… 이 얼굴도 나름 제법이구나.”
김도권, 예명은 데스맨을 사용하는 본체의 얼굴은 창백하기는 했지만, 그 알맹이가 나인 이상 치명적인 퇴폐미를 보여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얼굴이었다.
한참 거울을 보고 있는데 원룸의 현관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온 모양이로구나.”
나는 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자 앞에는 앤디와 제인이 각자 악기를 메고서 나를 바라봤다.
“여어 데스맨! 잘 쉬었냐?”
앤디의 힘찬 인사와 함께
“몸은 어때? 나갈 수 있겠어?”
제인의 걱정 어린 인사도 있었다.
그리고.
“……이거 뭐냐? 마법진?”
방에 늘어 있는 다섯 개의 양초와 마법 문양을 바라본 앤디와 제인이 입을 떡 벌렸다.
“너, 너…… 야! 자꾸 이상한 영화 보지 마!”
“미쳤네, 이거 벽지 탄 거야? 집주인이 뭐라 안 해?”
앤디와 제인이 기겁을 하면서 내가 만들어낸 마법진을 파괴하려 다가갔다.
“미쳤느냐! 이걸 건드리면 아니 된다!”
“미친 건 너지! 집에다가 저걸 만들어 놓는 인간이 어딨어!”
“야! 데스맨 정신 차려! 너 대체 무슨 영화를 본 거야! 그래, 엑소시스트들이라던가 퇴마 파티 이런 거 본 거 아냐?”
“아니 된다! 이게 이 몸의 삶의 원천이 되어 주거늘!!”
“진짜 단단히 미쳤네! 제인! 당장 저거 치우자!”
“네…… 네 이놈들이!!!”
확 지금 정신 마법을 걸어? 마력 소진이 크기는 하지만, 있는 힘을 다 하면 최소한의 마력은 남기고 멘떼 크몽뗴를 입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걸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이 몸으로 밴드를 하려면 여기 있는 두 사람이 필수였다. 게다가 단순히 돈만 벌어서는 71위 마계의 위기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둘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생각을 해라 생각을! 정신의 지배자 단탈리온 아니더냐!
“자네들은 기억상실에 걸린 불쌍한 인간의 노력을 이리도 쉽게 부숴 버리는가!”
“!?”
“뭣……!?”
그러자 앤디와 제인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자네들도 알다시피 나는 기억상실에 걸려 있도다! 판타지 영화를 보면 저런 마법진은 많이 나오지 않느냐! 기억을 되찾기 위해 도움이 될까 싶어 흉내를 내봤을 뿐이거늘…….”
나는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기억이 없는 나에게 저 마법진은 나의 마음을 지탱해 주는 기둥과도 같은 존재! 그걸 무조건 부숴 버린다니, 상식 개변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아니 상식은 네가…….”
“자네는 기억이 모조리 사라져 버린 경험이 있는가!”
“……아니 없지.”
“그럼 그대로 두게나. 이 몸의 노력이 자네와 같은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인다는 걸 알았으니, 합주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사진 하나만 남기고 정리하겠다.”
눈물 섞인 나의 말을 듣자 앤디와 제인도 더 이상 말릴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나를 붙잡던 손을 놓았다.
“우선 양초의 불부터 꺼. 잘못하면 불나.”
“……알겠다.”
하긴, 자칫 잘못하면 약하디약한 인간들의 집에 해를 끼칠 수도 있었다. 의도치 않은 공격이 들어오면 지난번 집주인 같은 사람들이 와서 공격을 할지도 모르는 법.
나는 양초의 불을 끄면서 시틀라에게 몰래 통신을 보냈다.
‘시틀라여, 내가 나간 후 양초에 불을 다시 붙이거라. 마력 경로는 연결해 두었다.’
[하지만 집이 또 태워지면…….]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한 방도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불을 다시 붙이고 기본 술식을 저장하거라. 저장된 술식을 귀걸이나 헤어핀 같은 소형 악세사리에 이동시키는 거다.’
사실 이 정도의 작업은 내가 직접 하면 금방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내 몸이 본체가 아니라 빙의체라는 점이었다.
‘빙의체에서는 내 본 실력을 선보이기 몇 배는 더 어려운 법. 마력이 얼마나 소진될지 알 수 없다.’
마계에서 작업을 마친 후, 그것을 인간계로 송출하는 것이 마력 소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천계에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작은 액세서리여야 하느니라.’
[존명!]
압도적인 마력을 지닌 아이템이 나타나게 되면, 천계로 알람이 울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일이 복잡해진다. 천계에서 천사들을 파견시켜 악마의 존재를 잡아내기 위해 혈안이 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최대한 작은 액세서리로 마력생성 마법진을 옮겨 두라고 일러두었다.
‘다소 힘들 수 있는 작업이다. 할 수 있겠느냐.’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명을 받들어 반드시 수행하겠나이다!]
나는 시틀라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앤디와 제인의 뒤를 따라갔다.
합주라고 하는, 음악 활동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참, 술식 저장이 끝나면 양초의 불은 꼭 끄거라.’
이 집마저 불타오르면 정말로 길거리에 나앉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 * *
합주실은 원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데스맨의 자취방인 망원동을 지나서 합정역을 지나, 약간의 언덕을 올라가면 있는 장소였다.
“여기는 기억나?”
“……여기도 기억에는 없구나.”
앤디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지 그런 기억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기억의 단편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빙의를 하는 순간, 김도권이라는 인간의 영혼은 소멸했다. 영혼이 소멸하면서 조금의 흔적을 남겼다면 그것을 토대로 기억을 되짚어보는 것도 가능했을 터.
허나,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합주가 끝나면 이전의 나에 대해 알려다오.”
“그래. 그런데 그 전에, 우리 노래는 뭔지 기억은 해?”
제인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노래?”
“거 봐. 모른다고 했지?”
“응…… 그렇네.”
합주실에 주저앉아 있던 앤디가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인이 말했다.
“데스맨.”
“불렀느냐.”
“미안한데, 우리, 오늘 합주를 끝으로 정리하면 어떨까 해.”
“정리?”
그게 무슨 의미인가 되물었다. 그러자 제인은 이미 앤디와 많은 논의를 했었다면서 베이스를 꺼냈다.
“오늘부로 RRR을 해체하려고 해.”
“해체……?”
설마 그 해체는 내가 알고 있는 그 의미대로의 해체인가?
아니 잠시만. 어째서지?
“드러머는 탈퇴한 지 오래고, 보컬인 데스맨은 기억상실, 앤디는 타 밴드 스카웃 제의까지. 여기서 나 혼자만 RRR에 남게 생겼는데 어떻게 밴드를 유지하겠어? 나도 다른 길을 찾든가 해야지.”
제인의 말에 나는 사고가 정지했다.
드러머는 탈퇴한 지 오래라는 말은, 드러머가 없다는 뜻이다.
“드러머가 없으면 지금까지는 어떻게 했느냐.”
“세션 알바 썼지.”
“앤디는 어디에서 제안을 받았느냐.”
“…….”
“대답해 보거라, 앤디!”
앤디를 향해 눈을 이글이글 불태웠다. 앤디는 내 시선을 살짝 피하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쥬피터야.”
“쥬피터……?”
그게 어디인가 물었다.
“쥬피터는 인디 밴드 중에서는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밴드야. 우리 같은 쩌리랑은 달라.”
“정통 밴드라서 그런가 공연도 많고……. 기회도 많아. 헤비메탈이랑은 달라.”
제인과 앤디가 번갈아 가며 쥬피터에 대해 설명했다.
나는 이건 또 무슨 소리냐며 인상을 팍 썼다.
“잠깐. 그럼 그 밴드에 들어가면 기회가 더 많다는 뜻이냐?”
“응, 아무래도 그렇지.”
“그럼 나도 가겠다.”
“아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안 되지.”
“왜 안 되느냐? 이 몸도 보컬이지 않느냐.”
“아니 그게…… 거기는 기타 말고는 자리가 없어.”
“그럼 보컬 담당을 없애 버리면…….”
“잠깐 데스맨!? 무슨 첩보물 영화라도 보고 온 거 아냐!?”
결국 쥬피터라고 하는 그 인디 밴드에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보컬을 조종해서 내 수하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마력 소모가 지나치게 크다.’
간단한 하급 마법 한 번에도 힘이 드는데, 정신 지배 후 수하로 데리고 다니려면 중금 마법 수준의 마력이 소진된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생각을 떠올리는 나에게 제인과 앤디는 최종 선고라도 하듯이 말했다.
“그래서 오늘 합주는 마지막을 기념하는 그런 자리랄까? 데스맨, 이거 음악 들어 볼래?”
제인이 스마트폰을 꺼내 음악을 틀었다. 강렬한 비트와 일렉 기타의 속주가 인상적인 하드 락 장르의 노래였다.
“우리의 노래더냐.”
나는 진심으로 노래가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감상에 빠졌다. 앤디와 제인은 허탈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게 데스맨이 사고 났던 공연장에서 부르려 했던 노래야. 자작곡.”
“제목이 어떻게 되느냐.”
앤디는 히죽 웃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몰락한 왕국>”
가사는 제목답게 매우 절절했다.
강렬한 기타 사운드가 돋보였지만,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가사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집을 잃은 전사]
[돌아갈 왕국이 있었다네]
[아아 이제는 집에 돌아갈 길 없는 방랑자]
[이제 나는 모든 걸 내려놓으려 해]
[나의 왕국을 포기해야 해]
[이제는 잡을 수 없어]
[영광 따위 집어 던진]
[먼지만 들끓는 왕국]
[어둠의 군주에게 집어 삼켜진]
[이제는 몰락한]
[몰락한 왕국!]
“혹시 이 가사는 앤디 자네가 썼는가.”
“이거? 우리 다 같이 썼지.”
“데스맨도 말인가.”
“? 데스맨은 너잖아. 아무튼 너도 썼어.”
앤디의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두 사람 모두 진정하고 이 몸의 이야기를 들어주게.”
“이야기?”
나는 제인의 스마트폰을 잡고 한 번 더 듣기를 선택했다.
“지금부터 내가 노래를 하겠네.”
그리고, 인간계에 내려온 내가 처음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 * *
‘뭐지?’
앤디는 단탈리온이 부르는 <몰락한 왕국> 노래를 들었다.
분명 기억상실이라 들었는데, 어째서 이 노래를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부를 수 있지?
음이 정확한 건 아니었지만 데스맨은 정말 평소에 알고 있던 노래인 것처럼 편안한 목소리로 불렀다.
“아아, 이제는 집에 돌아갈 길 없는 방랑자.”
데스맨의 목소리는 한없이 포근했고.
“이젠 나의 왕국을 포기해야 해.”
또한, 매우 절절했다.
‘몰락한 왕국이라면, 지금 내가 지배하는 마계와 비슷하구나.’
단탈리온은 노래에 감정을 실었다.
물론, 노래를 처음 해 보는 사람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지금 단탈리온이 노래에 감정을 실을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생각보다 효과도 괜찮군.’
바로, 노래하기 직전에 걸어두었던 감정 버프 흑마법 덕분이었다.
잔여마력량: 450
버프: 펜시 인텐시키온(시전자의 감정전달력을 열 배로 강화한다. 첫 시전 시 100 소진, 버프 유지 시 분당 마력 50 소진)
노래를 부를 때 흑마법으로 버프를 걸어 두고 부르면 훨씬 효과가 강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효과는 뛰어났다.
“데스맨의 노래가…….”
“이렇게 아름다웠나……?”
앤디와 제인은 입을 떡 벌리고는 단탈리온의 노래를 들었다.
‘하급 흑마법 정도는 어렵지 않겠구나.’
단탈리온은 흑마법 버프를 유지하면서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마력이 넉넉하지는 않다. 지금도 초기 시전으로 100, 1분마다 50씩 소진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노래 하나를 부르는 데에는 충분했다.
“어둠의 군주에게 집어 삼켜진!”
“!!”
“!?”
그리고 클라이맥스.
단탈리온은 헤비메탈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샤우팅을 하면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이제는 몰락한!! 몰락한 왕국!!!”
감정이 폭발했다. 단탈리온의 정신력은 이미 평소의 열 배 이상으로 올라간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몰락한 왕국’의 가사와 자신의 71위 마계를 연상하면서 최대한 감정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대망의 샤우팅.
예아아아아아아-!!!
단탈리온이 빙의하기 전인 데스맨은 하지 못했던, 초고음 샤우팅이 발사되었다.
앤디와 제인이 단탈리온의 마성에 흠뻑 빠져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