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쥬피터
“이런……!”
“무슨……!”
앤디와 제인이 어안이 벙벙한 채로 데스맨, 단탈리온을 바라봤다.
“어떠한가. 괜찮았는가.”
“너, 너…… 어떻게 이런 실력이…….”
앤디의 질문에 단탈리온은 대답하기보다는 오른손을 슬쩍 들었다. 그리고는 한쪽 눈을 가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젖히며 스윽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단탈리온을 향해, 앤디도 제인도 아닌, 시틀라가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
[오오오오 위대하신 단탈리온 니이이임!! 당신을 끝까지 따르겠나이다!!!!]
“훗. 별거 아니다.”
단탈리온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마족 지배술 1절, 하급 마족의 절규를 응용하였느니라.”
앤디와 제인의 머리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그게 뭔데?”
“모르는가? 헤비메탈을 한다기에 악마와도 접점이 많을 거라 생각했거늘.”
단탈리온이 진심으로 아쉽다며 입맛을 다셨다. 앤디와 제인은 여전히 그게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몰랐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데스맨(단탈리온)의 노래는, 이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감정과 호소력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까지 RRR이 빛을 보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보컬의 능력이 고만고만했기 때문이었다. 기존 데스맨의 목소리는 쇠를 긁는 소리를 내는 헤비메탈 밴드의 기본 목소리를 닮으려고 ‘노력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다른 밴드들로부터 많은 질책, 무시를 받아 왔었다.
-당장 보컬부터 바꾸지 그래?
-그런 목소리가 무슨 락이야 락은.
-헤비메탈? 밴드 감성도 못 따라가 너희는.
그런 수많은 멸시를 받아 왔었던 밴드. 그게 바로 RRR이었다.
그래서 앤디와 제인은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고민을 해 왔었다.
이걸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숨겨야 하는가.
사실 앤디와 제인도 보컬인 데스맨의 목소리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노력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도, 벌써 7년 차 밴드인 RRR의 멤버로서도 모르지 않았다.
다만, 당사자에게 ‘네 실력이 부족해서 같이 못 하겠어’라고 말하기가 어려웠을 뿐이다.
데스맨은 실력이 다소 부족하기는 했지만, 메탈을 향한 마음과 열정, 애티튜드만큼은 완벽한 메탈의 화신 그 자체였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보컬인 데스맨이 사고로 인해 기억상실이 되었을 때, 앤디와 제인은 서로 눈치를 봤었다.
이제 이쯤이면 해체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건, 각자의 길을 가건, 지금과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었기에 앤디는 쥬피터의 기타리스트 스카웃 자리를 수락했던 것이고, 제인은 가족 사업을 물려받기로 했던 것이었다.
그렇다.
정말 아무런 미련도 없이.
깔끔하게 모든 걸 정리하고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데스맨의 노래는 달랐다.
기존의 억지로 소리를 지르던 목소리가 아닌, 진심으로 노래 멜로디와 악기 연주, 가사에 융화되어 하나가 된 듯한 감정 표현.
지금까지 그 누가 이렇게나 진심을 담아 노래를 했었단 말인가.
앤디는 그 사실이 너무나 놀라웠고,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도 보여서 혼란스러워졌다.
정말 내가 RRR을 버리는 게 맞는 걸까.
기억상실에 걸린 데스맨조차도 저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게다가 지금 데스맨은…….
‘울고 있어……!’
눈가에 맺힌 작은 물방울이 앤디의 눈에 들어왔다. 이제 곧 사라지려 하는 밴드를 붙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흑마법으로 증폭된 감정으로 인한 작은 눈물이었다.
그조차도 스스로 71위 마계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후회가 깃든, 낭패감에 가까운 감정이었기에 앤디가 생각하는 눈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앤디는 지금 데스맨의 눈물을 보면서 진심으로 감동했고, 자신도 눈을 꽉 감았다.
‘그래도…… 흔들리면 안 돼……!’
앤디는 쥬피터의 기타리스트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그렇게 하겠다고 기획사 사장에게도 말을 다 끝내 놓은 상태였다.
지금 데스맨의 목소리가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 주기는 했지만, 이미 했던 약속을 무를 수는 없었다.
그렇게 감정을 잡고 있는데, 데스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떠한가. 악마를 컨셉으로 잡는다기에 한 번 흉내를 내봤는데.”
단탈리온이 멤버들에게 물었다.
“악마, 그것도 마왕의 왕국이라면 어땠을까 하고 불러 보았다.”
그때 제인이 갑자기 생각났다면서 손을 번쩍 들었다.
“야, 야! 우리 지금까지 마물 이미지였잖아. 근데 왜 마왕이야?”
“뭐라!? 마물!?”
“응. 마왕이나 악마가 아니라 마물이었는데…….”
“그래서 저번에도 나는 고블린, 앤디는 코볼트 분장을 했던 거고.”
“고블린? 코볼트?”
“왜 있잖아. 제인이 했던 귀 뾰족한 초록 괴물. 그게 고블린.”
앤디의 말을 들은 단탈리온의 눈이 잔뜩 찌푸려졌다.
바엘을 따라했다고 생각했건만, 그게 고작 고블린이었다고?
마계에서는 최하급으로 인정받는 쩌리 마물을 대상으로 했었다니.
창피한 줄을 알아야지!
“작아. 너무나도 작도다!”
“뭐가?”
“겨우 허접 마물 따위나 흉내 내느라 고블린 분장을 하고 그랬단 말이더냐!”
“고블린은 너도 좋다고 했었어.”
“그랬느냐. 아무튼, 이제는 그런 저급 마물 따위는 다루지 않겠다.”
앤디와 제인은 대체 데스맨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물어봐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노래를 너무 잘하게 된 부분?
갑자기 밴드 컨셉을 이야기하는 부분?
그것도 아니면 지금까지의 컨셉을 비판하는 부분?
어디부터 이야기를 걸어야 할까 생각하던 앤디는 방금 전 노래에 대한 감상부터 이야기하기로 했다.
“아, 데스맨, 노래 진짜…… 잘 들었어.”
“그러하냐. 다행이로다. 어떠냐. 밴드를 계속할 마음이 들었느냐.”
앤디는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했다.
데스맨의 지금 노래는 정말 뛰어났다.
어지간한 기성 보컬이라 해도 이 정도의 감정 전달이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였다.
데스맨의 기량이 어떠한 이유로 인해 올라갔다 할지라도, 지금 당장 돈을 벌어올 수는 없는 법이었다.
“데스맨, 그래도 난…….”
그때, 데스맨이 앤디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다 알고 있느니라. 다…….”
데스맨은 앤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분장을 하지 않아 솟아오르기보다는 옆으로 퍼져 있던 앤디의 머리가 더 헝클어졌다.
“내 다 이해하느니라.”
앤디의 머리 위를 쓰다듬던 손은 어느새 앤디의 볼을 감싸 쥐기 시작했다.
“돈이 없으면 그럴 수도 있다. 너무 괘념치 말거라.”
“크흑……!”
앤디는 그 말로 바로 울음을 터트렸다. 제인은 앤디의 옆에서 묵묵히 앉아 있었다. 데스맨은 계속해서 앤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앤디를 위로해 주었다.
딱히 엄청난 말을 하기 보다는, 그저 감정을 담은 손길로만.
* * *
‘이거 괜찮군.’
나는 앤디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펜시 인텐시키온’. 인간들에게 효과적일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자신의 감정을 극대화시켜서 상대의 감정이 폭발하게끔 만드는 마법.
일반적으로는 타 종족을 설득하거나, 동정심을 얻은 후 뒤통수를 칠 때 사용하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마계에서는 감정을 지닌 마족들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 흑마법이 자주 사용되지는 않았다.
가끔 상급 악마인 서큐버스, 인큐버스가 쓰는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인간들에게는 달랐다.
인간은 여러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동물. 감정에 집중하는 종족이기에 감정전달력이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쉽게 상대에게 마음을 열어준다.
그 덕분에 노래 전달력이 훨씬 좋았고, 이렇게 한 사람을 위로해 주며 호감을 얻는 일도 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우선 앤디에게 어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묻기로 했다.
“앤디여. 어제 기획사 사장을 만났는가.”
“응? 어떻게 알았어?”
“밴드를 정리한다 하지 않았느냐. 쥬피터라고 하는 밴드에 들어간다고도 했고 말이다.”
이 정도 파악하는 건 마왕이라면 어렵지 않다. 내 말을 들은 앤디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제인에게는 했던 이야기이기는 한데…….”
앤디는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계약했는지에 대해 입을 열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밴드를 그만두겠다 한 것이더냐.”
“그치. 아무래도 계속 밴드만 해서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잖아.”
그야말로 현실적인 이야기.
삶과 직결되는 문제 때문에 앤디는 고민하고 있었다.
“기타리스트는 돈이 안 되는가.”
“그야 그렇지. 세션만 하면서도 잘 되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애초에 우리는 헤비메탈이라…….”
“비주류 음악이라 이건가.”
확실히 헤비메탈이라는 락 장르는 이미 인기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과거에는 인기가 많았다고는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고 해도 무방할 수준의 장르라고.
“그런데도 자네는 헤비메탈을 추구했던 이유가 있는가.”
“……응?”
“자네 눈빛에 근심이 깊어 보여 묻는 것이다. 어떠한가.”
내 질문에 앤디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침묵을 유지하기를 수 초. 앤디는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남들에게는 잘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쥬피터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 거야……?”
“무슨 소리냐. 나는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다.”
나는 앤디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자네는 평범한 밴드에서는 음악적 재미를 느끼지 못하지 않는가. 다른 락 밴드도 많을 텐데, 왜 꼭 쥬피터에 들어가려 하는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앤디에게 물었다.
앤디는 내 시선을 여전히 피하기만 했고, 별다른 답을 하지는 않았다.
“듣고 싶어서 그러느니라.”
“……뭐?”
“왕은 시종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는 존재. 거기에서부터 통치가 시작되느니라.”
그렇다. 나는 71위 마계를 통솔하면서도 항상 부관들, 부하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통하는 마왕. 그 유일무이한 존재가 바로 이 몸, 단탈리온이었다.
특히 최근 읽었던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앤디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엇이 자네를 밴드로 이끌었는가. 이 몸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데스맨 너…….”
앤디의 파란 생머리가 살짝 흔들렸다. 나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앤디를 바라봤다.
“앤디여, 들려주게나.”
지금까지 침묵을 일관하던 앤디가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나…… 나는…….”
그리고 앤디의 이야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제인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인 듯, 제인도 놀란 눈으로 앤디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합주실 대여 시간이 끝나갈 때까지 앤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합주 시간을 보냈다.
* * *
앤디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이어진 후, 다들 합주실을 나와 커피를 마셨다.
“……들어줘서 고맙다.”
“아니다.”
앤디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 감사인사로는 좀 그렇겠지만, 쥬피터나 다른 밴드에 자리 나오면 내가 사장님께 잘 말씀드려 볼게. 데스맨도, 제인도.”
“아니, 지금 연락하거라.”
내 말에 앤디가 깜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엥? 지, 지금?”
“그렇다. 지금이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아니 될 것이다.”
방금 전까지 앤디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그 계약은 수상하다.’
마력만 넘쳤으면 기억도 읽어 보고 미래를 예측해 보고 했을 텐데 아쉽도다.
“발로 뛰어 봐야겠다.”
몸이 직접 움직이는 건 내 취향은 아니다만, 지금은 그게 가장 안전했다.
“이 몸, 단탈…… 아니 데스맨이 쳐들어간다고 연락해 두거라.”
거기까지 말한 나는 들고 있던 캔 커피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정확히 CAN이라 적힌 쓰레기통이었다.
* * *
“흐흐흐, 이제 기타리스트도 채워졌구만.”
쥬피터의 기획사, 럭키뮤직의 사장인 김철민은 낄낄 웃으며 다음 공연 스케줄을 점검했다.
“앤디는 따로 연락 없지?”
김철민이 묻자 매니저를 맡고 있는 박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 톡이 하나 왔는데…….”
“톡?”
박 팀장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 주었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이번에 기타리스트로 합류한 앤디입니다. 혹시 오늘 사장님 계신가요?>
여기에 박 팀장은 잠시 외출 중이라고만 답변을 해 두었었다. 실제로 그 시간에는 외출 중이기도 했었다.
“갑자기 왜 그러지?”
“글쎄요 잘…….”
그저 고개를 숙이고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며 말하는 박 팀장이었다. 김철민은 코를 긁적이며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궁금한 게 많겠지. 앞으로 스케줄이라든가 차량이라든가, 복장 등등. 박 팀장이 알아서 챙겨 줘.”
“네, 사장님. 알겠습니다.”
박 팀장이 자리를 떠나자 김철민이 담배를 하나 입에 물고는 투덜거렸다.
“쳇. 그냥 하라는 것만 열심히 할 것이지 왜 굳이 나를 찾아? 별도 명령 있을 때까지는 쉬라고 했구만.”
김철민은 혀를 차면서 라이터를 꺼냈다.
‘이대로만 가면 된다.’
쥬피터는 인디계에서도 꽤나 주목받고 있는 밴드다. 그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지금 심각한 손목부상으로 잠정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당장 잡혀 있는 공연들을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
때문에 이번에 앤디라는 RRR의 기타리스트를 세션 알바로 데리고 왔었는데, 실력이 상당히 괜찮았다.
그래서 아예 수습 직원처럼 3개월 정도 열정페이로 부려먹어 보고, 회사에 군말 없이 잘 따르면 정식 멤버로도 고려해 볼 생각이었다.
물론, 헐값에.
“수익은 3% 정도 주는 거면 충분하겠지.”
김철민은 이 정도면 무명 밴드의 기타리스트에게는 기회 아니냐며 거들먹거렸다. 마치 앤디에게 계약 이야기를 할 때처럼.
“한두 달 써먹고 아니다 싶으면 버릴 거니까 지금…….”
그때 럭키뮤직 기획사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자네가 사장인가.”
단탈리온이 하등한 족속을 바라보듯 거만한 자세를 뽐내며 문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