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9화 (9/110)

9화. 다 내놔

김철민은 불을 붙이려던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낀 채로 얼어붙었다.

‘뭐지 저 미친놈은?’

사장실 문을 걷어차고 들어온 남자는 창백하다 못해 서리가 낀 것처럼 새하얀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키는 180이 훌쩍 넘어 보였고, 호리호리한 몸매의 체형이 입고 있는 슬랙스와 하늘색 셔츠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모델이나 배우 지망생인가?’

그러나 그런 지망생이 사장실 문을 걷어차고 들어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생각에 김철민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뭐 하는 새끼야?”

“데스맨이라고 한다. 자네가 이 기획사의 사장이 맞는가.”

“어엉? 데스맨?”

설마 RRR밴드의?

찬찬히 데스맨의 얼굴을 살펴보던 김철민이 헛웃음을 날렸다.

“분장 지우니까 진짜 못 알아보겠네. 너 아이돌 해도 되겠다?”

“훗, 알아보는 건가. 확실히, 이 몸은 아이돌을 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그래. 너 잘났다. 여긴 왜 왔어?”

상대가 데스맨이라는 걸 알게 된 김철민이 담배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만만한 상대, 아니 한참은 자신에게 부족한 상대라 여긴 것이다.

“이 미친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게다가 문도 걷어차고…….”

“응? 앤디로부터 침공 연락을 받지 못한 겐가?”

“그게 사장님…… 죄송합니다…….”

뒤에서 앤디가 몸을 최대한 숙이고는 처량하게 주저앉아 있었다. 딱 봐도 그림이 보였다.

지금 앤디는 보컬인 데스맨에게 협박을 당했고, 그로 인해 억지로 여기에 끌려온 그림이었다.

하지만, 김철민은 그런 그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앤디. 이건 무슨 상황이지?”

“죄송합니다, 사장님! 아무리 말려도 듣지를 않아서…….”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관심법으로 알았느니라.”

단탈리온은 언젠가 사극에서 봤었던 말투를 흉내 냈다. 그러자 김철민이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단탈리온이 대답을 기다리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자, 김철민의 헛웃음은 곧 진짜 터질 듯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푸하하하하! 관심법? 크하하하!”

“무엇이 웃기더냐.”

“야~ 이거 말투도 존나 이상해졌네. 야, 앤디. 너희 밴드 보컬이 정신병자가 됐는데 아직도 안 버린 거냐? 용하다 용해.”

김철민은 웃다 눈물도 다 흘려 본다면서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정신병자?”

잠시 그게 무슨 단어인지 떠올린 단탈리온이 고개를 숙였다.

“뭐야, 상처받았어? 문을 발로 뻥뻥 차면서 들어오길래 아주 돌아 버렸나 했는데…… 뭐 그것도 아니네?”

김철민은 건성건성 손을 흔들면서 단탈리온을 조롱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단탈리온은 김철민을 향해 시선을 올렸다.

“시끄러운 족속이로구나.”

“응?”

“이 몸은 네놈 같은 저급한 인간과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다.”

화아아악!

단탈리온이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김철민의 주위에서 검붉은 안개가 펼쳐졌다.

시전자와 시전에 당한 상대만 눈치챌 수 있는 흑마법.

“리끄루도 리즌.”

상대의 과거를 읽어낼 수 있는 흑마법, 리끄루도 리즌.

본래 포로로 잡아 온 적군의 전략을 파악하고, 상대의 거짓말을 감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흑마법이지만.

사실, 마계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마법이다. 마계의 전투광들은 기억을 읽어 내기 전에 상대를 전부 부숴 버리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그러나 어떤 흑마법이든 사용처가 다 있는 법이다. 그걸 끊임없이 연구해 낸다면 말이다.

그리고 마계에서 그걸 하고 있는 마왕은 단탈리온이 유일했다.

‘그게 바로 이 몸의 장점이지.’

단탈리온은 히죽 웃으며 마법에 걸린 기획사 사장, 김철민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의 이마에 검지를 올렸다.

-섭섭지 않게 챙겨 줄게.

-사장님 정말입니까?

-그럼. 벌써 가계약서도 준비해 뒀어. 우리 일 하루 이틀 해 봐? 걱정하지 말라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

……

-이거면 될까요?

-그래, 잘 만들었네.

-하지만 수익률 3%를 지급하는 건 좀…….

-어차피 공연도 없어서 개고생하던 놈이야. 뭐든 공연 기회를 주면 좋다고 달려드는 강아지나 다름없지.

-그리 말씀하시면 그렇기야 하지만…….

-이보게 박 팀장. 자네는 우리 회사 직원인가, 아니면 앤디가 차린 밴드의 직원인가? 당장 이 계약서로 준비해 둬. 써먹을 수 있을 때 열정페이로 부려 먹어야지.

거기까지 기억을 읽어 낸 단탈리온이 살짝 비틀거렸다.

‘역시 장시간 버프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군.’

잔여마력량: 100

이제는 마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필요한 내용들은 모두 파악했다.

“으, 으어…….”

하급 좀비가 비틀거리듯 김철민이 움직였다.

“계약서는…… 저쪽이군.”

기억을 뒤져 본 단탈리온은 서랍장을 하나씩 열어 보더니 종이로 보이는 것들은 죄다 밖으로 꺼냈다.

“계약서를 찾아보거라.”

앤디는 당황하는 와중에도 단탈리온의 말대로 종이들을 뒤적였다.

“찾았다!”

계약서는 제일 위 칸에 놔두었는지, 종이 뭉치 중에서도 위에 놓여 있었다.

“읽어 보거라. 어떠한지.”

“이건……!”

앤디는 계약서 내용을 쭉 읽어 보더니 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분하기도 하겠지.’

지금 밴드를 박차고 나와 받게 될 계약서의 내용이 노예계약서나 다름없다는 걸 알게 되면 앤디는 어떤 기분이 될까.

“음원 제작자로도 안 들어간다고……?”

“음?”

그런 내용이 있었는지는 몰랐다며 단탈리온이 앤디에게 물었다.

“노래를 만들면 거기에 대한 수익을 주지 않겠다는 뜻인가.”

“……몇 번을 읽어도 똑같아. 그런 거 같아.”

“잠깐, 이거 계약 기간 두 달인데?”

“뭐!?”

옆에서 제인이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계약서는 겨우 두 달. 그사이 수익도 전체의 3%만 챙겨 주는 수준이었다.

즉, 100만 원을 벌었다면 앤디에게 떨어지는 돈은 겨우 3만 원.

다른 멤버들에게 주는 돈도 있기야 하겠지만, 너무 적은 금액이었다.

계약서를 쭉 훑은 앤디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그렇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이 정해졌구나.”

단탈리온은 앤디의 계약서를 바라보면서 씨익 웃었다.

“쥬피터인지 제우스인지 하는 이상한 밴드는 말이다. 앤디 자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앤디의 얼굴에 실망감과 분노가 깃들었다. 단탈리온은 마력을 더 낭비하지 않기 위해 서서히 흑마법을 거둬들였다.

‘이쯤이면 되겠지.’

단탈리온의 예상대로, 이미 김철민의 만행에 대해서는 모두가 알게 된 상태였다. 앤디와 제인은 싸늘한 시선으로 김철민을 바라봤다.

“흐억! 갑자기 왜 이리 숨이 막히지……?”

이제야 흑마법이 풀린 김철민은 숨을 헐떡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서류들, 그걸 읽고 있는 앤디와 제인. 그리고 본인을 노려보고 있는 데스맨까지.

“이게 무슨…… 너, 너 대체 뭐 하는 놈이야!”

김철민은 주변이 난장판이 되어 있는 것에 대해 소스라치게 놀랐다.

적어도 방금 전까지의 기억에서는 이렇게 어질러진 사무실이 아니었으니까.

“정신이 들었느냐.”

“이 새끼…… 내가 정신 잃은 사이 뭘 한 거야……!”

단탈리온에게 달려들려는 김철민을 앤디가 막아섰다.

“사장님.”

“어, 어. 그래 앤디. 너도 당장 이런 미친놈이랑은……!”

“아니요, 계약서. 이거 무슨 일이죠?”

앤디는 손에 들고 있는 계약서를 촤락 펼쳤다.

“계약이 왜 겨우 두 달이죠? 저한테는 1년이라 하셨는데요?”

“어? 아니 그게, 우리도 그…… 인턴이라든가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개념이야. 자네가 밴드 멤버들과 잘 어울리는지도 확인해 봐야 하고…….”

“그런 거라면 이미 세션 알바 하면서 많이 보여 드렸잖아요. 그걸로는 부족했습니까?”

김철민은 당황해하면서 앤디의 계약서를 빼앗으려 했다. 그러나 단탈리온이 그 앞을 막아섰다.

김철민은 그런 단탈리온에게 당황해 삿대질을 시작했다.

“데, 데스맨 너 인마 어딜 막아! 인디계에서 매장당하고 싶어?”

“인디계가 무엇이냐.”

“인디밴드들의 세계다, 이 멍청한 놈아! 기억상실이라더니 기본 상식도 다 말아먹었냐!”

“상식 미달은 내가 아니라 자네 같구나. 어느 안전이라고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느냐.”

“이게 진짜 정신이 나갔나……!”

어질러진 사무실을 보면서 김철민이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사진을 마구 찍기 시작했다.

“너희들, 다 신고할 거야. 앤디 너! 넌 왜 계약서를 훔쳐보는 거야! 이거도 주거침입, 손괴죄야, 알고나 있는 거야!?”

“헉.”

앤디가 깜짝 놀라며 몸을 떨자 김철민은 기회라 생각하면서 앤디와 단탈리온에게 말했다.

“너희들, 내가 싹 다 경찰에 신고해서 콩밥 먹인다. 앤디 너도 쥬피터에 이제 못 들어올 줄 알아!”

앤디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갔다. 제인도 수세에 몰렸다고 생각했는지 당황스러운 낯빛으로 바뀌었다. 설마하니 김철민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이렇게까지 치사하게 나올 줄은 몰랐던 모양.

그저 단탈리온만이 우두커니, 의연하게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단탈리온 님.]

시틀라였다.

“말하거라.”

[완성했습니다.]

“크기는 괜찮겠지?”

[예. 작은 반지입니다.]

“좋다. 전송하라.”

단탈리온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곧 허공에서 검은 기운이 떠오르더니 안개가 맺혔다. 그 안에서 작은 보석함이 튀어나왔다.

단탈리온은 안개를 걷어내고 보석함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안에 담긴 해골 반지를 꺼내 착용했다.

잔여마력량: 1190

“초기 비축량이 제법이로구나.”

[단탈리온 님께서 챙겨 주신 비상금으로 마력도 조금이나마 더 채워 넣었습니다!]

시틀라의 충성에 단탈리온은 적잖이 감격을 했다.

“고맙구나, 시틀라여.”

[아닙니다, 단탈리온 님!]

“이제는 이 미친놈이 혼잣말을 하네. 야 당장 병원에 집어넣어!”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면서 정작 아직도 신고를 하지 않은 김철민을 향해 단탈리온이 한쪽 입꼬리를 잔뜩 올렸다.

“자네는 경찰을 부를 수 없을 걸세.”

악마처럼 비대칭 미소를 지은 단탈리온이 손바닥을 들어 김철민에게 말했다.

“멘떼 크몽떼.”

화아악!

붉은색 안개가 김철민을 집어삼키고, 곧장 그의 뇌로 침투했다. 김철민은 눈을 썩은 동태눈처럼 뜨고는 어버버거렸다.

“흐음…… 우선 앤디의 계약서 문제도 있지만…….”

단탈리온은 이 작자를 만나면 반드시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면서 언젠가 인간들의 소설에서 읽은 대사를 그대로 읊었다.

“가진 돈 다 내놔.”

“……드리겠습니다.”

* * *

내 흑마법에 걸린 김철민은 동공이 탁 풀린 채로 사무실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다. 그러다 한 책장에 우두커니 멈춰 섰다.

“……여기에 있습니다.”

“꺼내거라.”

“네.”

김철민은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꺼내서 펼쳤다. 그러자 그 안에 돈뭉치가 발견되었다.

“와, 이게 얼마야!?”

제인이 어안이 벙벙한 채 돈뭉치를 열어 보았다.

대충 세어 봐도 500만 원은 되었다.

“앤디여.”

“응?”

“자네, 떼먹힌 돈이 얼마인가.”

“분명 계약금도 주신다 하셨는데 안 주셨고…… 지난번에도 세션 알바비에서 차량비라며 일부 가져가셨고…….”

“그럼 괘씸죄까지 더하면 충분하겠구나.”

나는 제인에게서 돈뭉치를 받아들고는 각자에게 돈을 나눠 주었다.

앤디에게는 300만원, 나와 제인은 각각 100만원이었다.

“근데 이거 도둑질 아냐?”

“무슨 소리냐. 정당하게 받지 못했던 돈을 받아 가는 것이다.”

마계에서는 불공정계약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마족에게는 최대한의 보상을 해 주고자 가해자의 집을 완전히 뒤집어엎는다. 오히려 이 정도면 봐준 수준이었다.

“아니 그래도 이게…….”

“김철민. 말해 보거라. 우리가 도둑질을 하였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 보거라. 아무 일도 아니라 하지 않느냐.”

“아니 지금 사장님 정신이 나가 있잖아! 게다가 애초에 너 지금 이거 뭔데!”

앤디의 말에 나는 내 주위를 둘러보았다. 붉은 안개가 내 주변을 감싸고 있었고, 김철민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이 안개가 마력이라고는 1도 없는 저들에게 보일 리는 없을 터.

“무엇을 말이냐?”

“손가락 하나 가져다 댄 걸로 사장님이 변했잖아! 무슨 약 먹인 거 아냐?”

“흐음…… 정신을 차린 거라 보면 되지 않겠느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그나저나 말이다.”

나는 오늘 김철민에게 돈을 받으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을 앤디에게 물었다.

“앤디여, 자네는 최소한의 수익이 보장된다면 RRR밴드를 유지할 계획인가.”

“그건…….”

앤디가 깊게 고뇌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럴 거야.”

“그렇다면 문제없겠구나.”

내 말에 앤디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내가 이미 조치를 취해 두었다. 앤디와 제인, 두 사람 모두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 줄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 궁금해하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김철민에게 명령을 내렸다.

“종자 김철민은 들어라.”

“예에.”

“앞으로 앤디와 제인을 연주 아르바이트로 부를 거라면 수익의 70%를 지급하거라. 계약서에도 일말의 거짓이 없어야 할 것이니라.”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이걸로 적어도 한 달 동안은 두 사람에게 적당한 급여가 지급될 것이다. 앤디뿐 아니라 제인도 말이다.

계약서도 다시 쓰겠지.

“흠. 우선 이거면 되겠군.”

“데스맨 너 진짜…….”

어떻게 된 거냐……?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앤디였다. 제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두 사람에게는 말해 둘 생각이었다.”

가까이 둘 수하들이라면 지금부터 이야기를 해 두는 게 필요할 것이다. 나는 앤디와 제인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잘 보거라.”

붉은 안개가 김철민의 몸을 빠져 나와 내 몸을 감싸 돌았다. 그리고 앤디와 제인의 머리 주위를 빙글 돌더니 주변에 붉은 안개막을 형성했다.

“으악!! 이게 뭐야!?”

“잠깐, 꺄악!!”

[듣거라. 나는 71위 마계의 지도자, 정신의 지배자. 위대한 마왕 단탈리온이니라.]

앤디와 제인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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