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10화 (10/110)

10화. 앤디 계약

RRR의 밴드는 모두 네 명이었다.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

딱 밴드라고 하기에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조합.

그 조합이 처음으로 깨진 건 드러머가 탈퇴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완전히 박살 났다고 여겨지게 된 건 보컬이 사고를 당하면서였다.

설상가상, 기억상실에 걸렸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금까지 연습했던 모든 것들을 잊어버렸을 가능성이 높았기에 앤디는 RRR밴드를 완전히 해체할 때가 되었나 깊게 고민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건 대체 누구란 말인가.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로, 마력을 생성할 수 있어서 이걸 토대로 종을 부릴 수도 있느니라. 김철민을 보지 않았느냐.”

“그, 그, 그, 그…… 러면 우리도 종으로……?”

“그런 비효율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 내가 그대들에게 정체를 밝힌 것도 그저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자신을 단탈리온이라 밝힌 데스맨, 아니 데스맨의 몸을 한 사내는 대중음악을 하고 싶어서 인간계에 내려왔다고 한다.

이거 뭐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 나오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 뭐 이런 건가?

[단탈리온 님! 정체를 벌써 밝히시면……!]

“괜찮도다. 이게 훨씬 효율이 좋다.”

[흑마법으로 조종하시는 방법도 있으셨을 텐데……!]

“시틀라여,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천계와 마계는 힘의 불균형이 가속화되고 있다. 마력이 불안정하지 않느냐. 자칫 잘못하면 내가 먼저 쓰러질 수도 있다.”

이제는 혼잣말을 마구 중얼거리는 단탈리온을 보면서 앤디는 헛웃음을 삼켰다.

다리가 너무나 떨려서,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겁먹을 필요는 없다네. 내 자네들이 공포를 느끼지 않게끔 공포 저항 장비를 제공해 주겠네.”

마왕은 미리 준비해 두었다며 팔찌를 하나씩 건네주었다. 그걸 앤디와 제인에게 강제로 채우고는 말했다.

“흠. 이제 괜찮을 걸세. 아무튼, 커흠! 어떤가 자네들. 내가 함께한다면 우리 밴드의 앞날은 밝을 것이다.”

왜, 어째서 앞날이 밝다고 단언할 수 있는 걸까.

단탈리온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는 고고한 귀족처럼 어깨를 세웠다.

“나는 마왕이다. 인간들이 파악하지 못하는 여러 사항을 자네들에게 전수해 줄 수 있도다.”

자신을 마왕이라 밝힌 남자가 말했다.

자신을 따르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 남자는 데스맨이 아니다.

팔찌의 힘을 빌어 앤디가 가까스로 입을 뗐다.

“데스맨은…… 어떻게 된 거……입니까?”

“말은 편하게 하거라.”

“하지만 마왕이면…… 잘못 말했다가 우리를 잡아먹거나…….”

“쯧쯧. 악마의 이미지가 이토록 저열해졌단 말인가. 우리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인간을 잡아먹는 건 마계에서도 쫓겨난 방랑자 마물들뿐.”

저게 무슨 소리인지,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그대들은 나와 동등한 위치로 말을 할 수 있는 권한을 허하겠다. 그래야 밴드로서의 합이 맞지 않겠는가.”

“아…… 알겠…… 습니…….”

“어허! 동등하게 하라 하지 않았나.”

“그……럼 진짜…… 말 놓는다……?”

앤디는 두려운 마음에도 용기를 내서 단탈리온을 똑바로 바라봤다.

“데스맨은…… 어떻게 된 거야?”

“데스맨. 김도권을 말하는가.”

“그래. 우리 밴드의 보컬.”

“데스맨이라면 저기 있노라.”

단탈리온이 하늘 위를 가리켰다.

“데스맨의 영혼은 지금 천사들이 수거해 갔다.”

“뭣……!?”

“하지만 나라면 이자의 영혼을 다시 되돌려 놓는 것쯤 간단한 일이다. 다만, 마력 부재가 걱정이로구나.”

그렇기에 더더욱 단탈리온은 메탈 밴드를 하면서 마력을 생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젠가 이 몸은 마계로 떠날 것이다. 그때가 되어서 데스맨이라는 남자의 영혼을 챙겨 올 수 있는 기회도 사라질 터.”

“뭐라고!?”

“이게 무슨……!”

앤디와 제인이 깜짝 놀라며 눈을 사납게 떴다.

“허나 괜찮다. 마계를 살릴 정도로 충분한 마력만 만들어 내면, 내 반드시 데스맨, 김도권의 영혼을 되살려 주겠노라고 약속하마”

“……믿어도 되는 거야?”

“당연하다. 이 몸은 마왕이고 악마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이미 데스맨의 몸에는 인간의 영혼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단탈리온이 빙의를 하던 시점에 데스맨의 영혼은 몸을 빠져나갔다. 자연스러운 죽음의 순간, 단탈리온이 빙의했던 것이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데스맨의 영혼은 천계에 있는 누군가가 수거해 갔겠지.

일반적이라면 그 영혼은 천계의 관리하에 놓이게 되지만.

‘천계의 힘이 약해지면 충분히 빼낼 수 있지.’

지금처럼 천계의 힘이 막대하다면 불가능하지만, 마성전쟁 때처럼 양측의 힘이 비슷해지기만 하면 충분히 가능해진다.

이미 죽은 영혼을 꺼내 되돌리는 일.

그건 과거에도 한 번 해 봤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거짓말은 아닌 것이다.

데스맨의 영혼을 되찾기 위해, 이 몸이 힘을 키우고 마계를 살린다.

즉, 나와 앤디, 제인은 서로 윈윈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

“좋아……. 그럼 그렇다고 치자. 네가 어떤 점에서 우릴 도와줄 수 있는데?”

제인의 질문에 단탈리온이 히죽 웃었다.

“자네들에게 흑마법을 활용해 버프를 걸어 줄 수도 있지.”

“……그건 예상했어. 그리고?”

“마물 분장을 하지 않는가. 나는 악마들과 마물, 마왕들의 생김새를 모두 알고 있다. 보다 현실적인 악마들을 본뜬 분장을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호소력도 생길 것이다.”

단탈리온이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분장 하나만 제대로 하면 훨씬 더 많은 인기를 얻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저 녀석 진짜 마왕이야?’

앤디와 제인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헛소리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 그래 응……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럼 분장만 잘하면 알려진다고?”

“적어도 지금보다 절반은 더 알려질 것이다. 뭣하면 내 수하들에게 분장 컨설팅을 명령할 수도 있느니라.”

점점 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단탈리온이었다. 앤디는 머리를 휘휘 젓고는 데스맨의 몸 안에 깃든 단탈리온에게 물었다.

“좋아. 다 좋아. 그러면…… 너만 믿고 가면, 우리 밴드가 살아난다는 거야?”

“이론상으로는 그러하다. 준비할 일들이 몇 가지 있지만, 이 몸이 함께라면 어렵지 않을 터.”

웃음이 나왔다.

지금까지 밴드라는 건, 락 스피릿으로 버틴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락 스피릿은 무슨.

이번 사건을 통해 알고 보니 결국 남은 건 락 스피릿이 아니라 현실에 굴복할 기회를 찾고 있던 루저 의식이었다.

그런데 단탈리온이 그런 썩어빠진 우리가 있는 밴드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금전적인 문제도 줄어들 것이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계획은 모두 수립되어 있도다.”

대체 그게 무슨 계획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단탈리온이라는 저 마왕이, 지금 김철민으로부터 자신에게 돈을 되찾아 준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할게.”

앤디는 돈이 가득 든 봉투를 움켜쥐었다.

“대신, 6개월이야.”

“6개월이 지나서도 성과가 없다면 탈퇴하겠다는 건가. 그 제안, 받아들이도록 하지.”

단탈리온이 양쪽 입꼬리를 스윽 올렸다. 그 미소가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악마와 같다고 생각한 앤디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앤디! 진심이야?”

“……어차피 난 세션 알바 아니면 답이 없다고 생각했어. 김철민에게 착취당하면서 사느니 우리 밴드를 살려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앤디가 결연한 의지를 담고는 주먹을 쥐었다.

“비록 그게,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방법이라고 해도 말이야.”

앤디의 대답을 들은 단탈리온은 허공에서 양피지를 하나 꺼냈다.

“아주 만족스러운 답변이로다. 그렇다면 이 계약서에 서명을 하도록 하거라.”

<악마 계약서: 마왕의 권한으로 인간과 계약하는 최상급 계약서. 계약 내용을 불이행할 경우 상대에게 모든 보상을 책임진다.>

<1. 앤디(이하 갑이라 한다)는 단탈리온(이하 을이라 한다)에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밴드 부흥에 힘쓴다.

2. 을은 갑의 음악 활동을 적극 지원하며 과정에서 여력이 될 경우 마법 사용으로 서포트를 해 준다.

3. 갑은 을에게 활동 중단을 요청할 수 있으며, 이때는 상호 합의 하에 계약 연장 또는 계약 해지로 이어질 수 있다.

4. 을은 갑의 음악 활동 집중을 위해 주변의 쓰레기를 모조리 처리해 주며…….>

이후로도 계약서 내용들이 쭈욱 나타났다. 앤디는 양피지에 적힌 글자를 하나하나 읽어 보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뭐야?”

마왕과의 계약이라 혹시나 영혼이 먹히는 건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기에 더 신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계약서 내용은 기본적으로 믿기가 어려웠다.

“악마가 인간과 계약을 할 때 사용하는 계약서다. 이 몸이 마왕이기에 최고급 양피지로 만들었느니. 어떠냐. 촉감이 좋지 않으냐.”

“확실히 부드럽……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거 갑이랑 을이 바뀐 거 아냐?”

앤디의 물음에 단탈리온이 몸을 모델처럼 세운 채로 고개만 기울였다.

“바뀐 것이냐?”

“그치! 지금은 아무리 봐도 내가 너한테 도움을 받았고…….”

“아니다. 제대로 적힌 것이 맞도다.”

단탈리온은 확신에 가득 찬 어조로 말했다.

“이 몸은 자네들의 도움을 받아 마계를 일으켜야 하느니라. 그러니 자네들의 권한이 더 강해지는 것이 맞다.”

단탈리온의 제안에 앤디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아직은 미흡하나, 밴드 활동으로 금전적 여유가 생긴다면 악기 지원도 적극 검토해 주도록 하마.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무기가 좋아야 하는 법이다.”

마계에서 전쟁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마력, 마계코인이 여유 있는 마계는 전쟁에서도 보다 우위를 점한다. 그들이 가지는 무기와 마법, 아이템이 최상급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마계는 전투에서 항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마성전쟁에서도 그러했지.’

약 5000여 년 전, 학살당했던 약한 하급 마족들을 떠올리며 단탈리온은 쓰게 웃었다.

“서명은 아래쪽에 손가락으로 그리면 된다.”

“이렇게……?”

앤디가 검지를 들어 양피지에 대고 선을 그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검은빛이 LED 조명처럼 쏘아졌다.

“으와악!”

“어허, 호들갑은.”

단탈리온은 앤디의 서명이 적힌 양피지를 돌돌 말았다. 그리고는 빈 공간 아무 곳에 그것을 꽂아 넣었다. 그러자 마치 책장에 꽂히기라도 하는 듯, 양피지가 쑤욱 어딘가로 빨려들어 갔다.

“이것으로 앤디와는 계약이 되었도다. 제인, 자네는 어떠한가.”

“뭔가 재밌어 보이기는 하는데…….”

제인은 흥미가 생긴다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웃었다.

“역시, 안 할래.”

* * *

결국 제인을 설득하는 것은 실패로 끝났다. 나는 앤디와 함께 향후 방향성을 논의하기 전에, 우선 각자 집에서 쉬기로 했다.

-저기, 사장님이 나한테 복수하려 하면 어쩌지?

-걱정 말거라. 이미 협박 수단은 다 준비되어 있느니라.

-아니 협박의 문제가 아니지 않아!?

중간에 앤디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기는 했었지만,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제인은 어떤 방식으로든 분명 다시 데리고 올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으니.

그리고 또 하나.

<관리비 고지서>

<총각! 가스, 전기도 꼭 내야 해! 두 달 밀렸더라!>

“참으로 난감하구나. 이것은 또 무엇이더냐.”

마계에서도 마도구를 통해 마력을 사용하면, 일정 기간에 맞춰서 마족들의 집으로 고지서가 날아갔었다. 그러나 마계는 마력 하나만 따지면 되었다.

“반면 인간계는 가스, 전기, 월세…… 참으로 어렵구나.”

어쨌든 대한민국 서울, 이 원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다.

“흐음…….”

생각보다 챙겨야 할 것이 많음에 나는 깊이 고뇌했다. 그런 나를 향해 시틀라가 통신을 걸어왔다.

[단탈리온 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한 가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말해 보거라.”

[어째서 인간들에게 기회를 준 것입니까. 단탈리온 님이라면 그저 정신 지배만으로도 놈들을 수하로 부리실 수 있으실 텐데 말입니다.]

“시틀라여. 자네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마력 부족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입을 놀리느냐!”

[죄,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주의하거라. 아무튼, 나는 여러 고민을 했다. 밴드 멤버들을 흑마법으로 조종할지, 아니면 설득할지. 그 결과 나온 방법은 설득이었다. 마력 부족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바로 ‘규모의 경제’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 말씀이십니까?]

시틀라는 처음 듣는 용어라면서 그게 무엇인지를 궁금해했다.

“그렇다. 지금 이 몸이 한 명, 한 명 인간들을 지배할 수는 있다. 이상한 종교를 만들어서 광신도를 모집할 수도 있겠지. 허나, 그렇게 되면 ‘진정한 팬’이 없다. 이는 곧 마계의 힘을 떨어뜨리게 하는 주범이 될 것이다.”

[그럼 지금 저 인간들을 포섭하시는 이유가…….]

“그렇다. 내 흑마법으로 진정성을 담아 승부를 봐야 한다. 그리고 진정성이 통하고, 우리의 음악이 인간들에게 알려진다면…….”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앞에 놓인 마이크를 바라봤다.

“노래 한 곡만 발표해도 수백, 수천, 아니 수십만 명의 인간들이 단번에 우리를 기억하고 따를 것이다.”

[그것이……!]

“그렇다. 그것이 바로 규모의 경제다.”

시틀라가 무릎을 꿇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왕님의 뜻도 파악하지 못한 이 미천한 종을 죽여 주시옵소서!]

“되었다. 자네는 지금처럼 나를 마계에서 계속해서 보좌해 주면 되느니라.”

실제로 시틀라의 통신 보조는 꽤나 도움이 되었다. 시틀라가 아니었다면 이 마력 귀걸이가 완성되지는 않았겠지.

“마력이 안정되면 술식을 추가할 것이다. 그때 또 다른 액세서리를 부탁한다.”

[존명!]

“그리고 음…….”

나는 손에 쥐고 있는 <관리금 고지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쨌든 여유 자금은 벌어 두어야겠구나.”

아르바이트. 잘리기 전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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