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11화 (11/110)

11화. 경영 수완

동네에서 가장 좌석 수가 많다고 하는 PC방인 스타트 PC방. 큰 규모에 비해 겨우 두 명의 아르바이트생만 일하는 곳이었다.

“35, 36번에 치즈 파스타랑 너굴볶이 하나!”

“210, 211, 212 군만두, 감자튀김, 오렌지 에이드 준비해 둬!”

“268, 269 캔 커피 하나씩! 잔돈 들고 가!”

사뭇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모습.

스타트 PC방의 밤 9시에서 10시로 넘어가는 시간은 완전히 피크 타임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마치.

“정말이지, 식당이나 다름이 없구나.”

단탈리온은 인간계의 PC방을 처음 방문해 보았다. 이전에 소설에서 배경으로서 확인한 적은 있었다.

그때는 오로지 PC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만 적혀 있었다. 그러나 막상 와서 보니 며칠 전 시틀라의 이야기대로, 정말 요리 업무가 훨씬 많았다.

“시틀라, 자네 말이 맞았구나.”

시틀라는 자신의 설명이 정답이었다는 사실에 순수하게 기뻐했다. 단탈리온 역시 시틀라 덕분에 미리 요리를 연습하고 올 수 있었기에 진심으로 시틀라의 공을 치하했다.

“이번 일이 잘 풀리면 자네에게 저주를 내려 주겠도다.”

[감사합니다, 단탈리온 님!!]

시틀라의 감격 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단탈리온은 카운터 앞으로 걸어갔다.

“야! 168번도 콜라랑 닥터솔트…… 어?”

“안녕하신가.”

단탈리온은 카운터에서 주방 쪽으로 지시를 내리고 있는 젊은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여성이 들고 있던 PC닦는 용도의 행주를 집어 던지고 카운터 앞으로 달려 나왔다.

“도권이!!”

여성은 단탈리온의 얼굴과 몸을 살피면서 감격한 듯 말했다.

“몸은 괜찮고?”

“괜찮다. 그런데 자네는…….”

“아, 기억상실이라 그랬지. 앤디한테 들었어.”

“앤디가 다녀갔느냐?”

“그래. 멤버 다쳤다고 제일 먼저 와서 알려 줬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성은 이곳 ‘스타트 PC방’의 사장이었다.

지금은 단탈리온, 즉 김도권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고 하지만.

‘책임감이 강한 인간이로구나.’

사장이 직접 나와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탈리온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오늘부터 나도 일을 도울 것이다. 무엇부터 하면 되는가.”

“그러고 보니, 너 일도 다 까먹지 않았어? 용케 아르바이트는 기억했네.”

“기억이 단편적이라 그렇다. 이해해 주게나.”

“이상한 말투도 앤디 말대로고. 오케이. 일단 교육부터 다시 해 볼까?”

PC사장은 자신의 이름을 이연주라고 소개하면서 단탈리온에게 행주를 건넸다.

“앞으로 연주 누나, 라고 불러.”

그러자 주방에서 불쑥 직원 하나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사장님, 제가 누나라고 부르면 갈구시잖아요.”

“이게 진짜. 가서 라면이나 만들어라?”

보아하니 PC방 사장은 직원들, 아르바이트생들과 꽤 친한 모양이었다.

‘그렇군. 이게 바로 가족 같은 분위기인가.’

단탈리온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연주 누나, 라고 하였는가.”

“그래그래. 누나.”

“누나의 경영 수완이 궁금하구나. 옆에서 많이 배우도록 하겠다.”

인간들의 경영 방식과 마계의 경영 방식은 세세한 부분은 다를지라도, 큰 틀에서는 비슷했다. 그래서 단탈리온은 PC방 사장에게 경영을 배우고자 했다.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이게 바로 인간들의 속담으로 일석이조라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럼 일단 저기 1번부터 100번까지 빈자리 청소부터 해 보자. 따라와.”

단탈리온은 이연주 사장과 함께 자리를 모두 돌아보면서 빈 그릇, 쓰레기들을 카트에 실었다. 카트를 밀고 왔다갔다하는 단탈리온을 보며 이연주가 박수를 쳤다.

“이전보다 센스가 더 좋아졌는데?”

“고맙다. 이 일은 어렵지 않구나.”

단탈리온이 카트를 내밀었다. 빈 그릇과 쓰레기들이 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보며 엘리엇 김이 말했다.

“좋아. 그리고 쓰레기는…….”

그렇게 단탈리온은 야간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하기 전에, 교육부터 받기 시작했다.

* * *

“기본은 이 정도면 되겠네. 다 외웠지?”

“걱정 말거라. 기억력 하나는 내가 좋도다.”

단탈리온의 기억력은 마계에서도 탑이었다. 만약 단탈리온의 기억에도 없는 주제라면 그건 정말 쓸모가 없는 주제라는 이야기도 돌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걱정 말거라.”

“마계니 탑이니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알바만 할 수 있으면 됐지 뭐.”

이연주는 바쁜 시간이 지나고 이제야 한숨 돌린다며 음료를 마셨다.

“크으! 역시 노동 후의 콜라가 최고야!”

“그런 것인가.”

“그럼 그럼. 그나저나 도권이, 밴드 한다더니 그거도 계속하는 거야?”

이제 근황을 물어볼 수 있겠다며 이연주가 물었다. 단탈리온은 깊은 고민이 있었다면서 눈을 감았다.

“밴드는 계속 할 것이다.”

“노래랑 악보 보는 법이라던가 악기 연주법, 뭐 이런 것들도 다 까먹은 거 아냐?”

“다행히 일부나마 기억이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RRR밴드를 부흥시킬 것이다.”

“부흥?”

밴드와 부흥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 단어인지 생각하던 이연주가 호탕하게 웃었다.

“아무렴 어때! 사지 멀쩡하게 돌아왔으면 됐지!”

“고맙구나.”

“밴드 계속할 거면 돈 필요하지 않아? 야간 시간 늘려줄까? 1.5배까지도 고려해 줄게. 없으니까 알겠더라. 너 보러 온 여자 손님들이 매출 40%는 되던데?”

“오, 1.5배라면 꽤나…….”

여기까지 답한 단탈리온이 흠칫 놀라며 대답을 중단했다. 그리고는 머릿속에서 일정들을 정리하며 답했다.

“……아쉽게도 그건 어렵다. 이미 다른 시간은 합주 시간으로 연습실도 모두 예약해 두었다.”

“그래? 아쉽네.”

‘큰일 날 뻔했구나.’

이연주, 이 여자…….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서 근무시간을 늘려 버리려 했다.

그것도 보수를 1.5배를 더 줄 ‘수도 있다’는 애매하지만 매력적인 조건을 덧붙여서 말이다.

‘악마 같은 인간이로군.’

인간계에서 만난 그 어떤 인간보다도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인간.

그게 바로 스타트 PC방 사장인 이연주였다.

단탈리온은 다시는 인간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말했다.

“일손이 많이 부족한가 보구나.”

“그렇다니까. 그저께도 새로 뽑은 알바가 하루 만에 튀었는데…….”

일손이 부족하다면서 이연주는 약 십여 분을 더 신세 한탄을 했다. 요즘 아르바이트생들은 근성이 없다느니, 노력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하던 이연주는 캔에 남은 콜라를 다 털어 넣은 뒤에야 다른 주제를 꺼냈다.

“콜라는 맛있느냐.”

“그치. 아, 신제품 줄까? 이거 새로 나온 사이다인데.”

“아니다, 괜찮다. 하얀색이 마치 천계의 상징 같아서 기분이 나쁘구나.”

“? 천계?”

“혼잣말이다. 좀 더 빨간 음료는 없느냐.”

그러자 이연주가 닥터솔트를 꺼내 주었다.

“이거는 체리에이드랑 비슷하니까 괜찮을걸?”

“오호라, 고맙구나.”

닥터솔트 캔을 따서 한 모금 가져다 댄 단탈리온은 온몸에서 전율이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이, 이것은 무엇이더냐!”

“응? 이거 닥터솔트.”

“이런 유혹적인 맛이 있다니…… 내 인간들의 음료수를 다시 봤도다!”

이런 맛은 마계에서도 맛본 적이 없었느니라! 닥터솔트의 캔을 이리저리 돌려 보는 단탈리온이었다.

“맞다. 도권아, 너희 이런 건 안 나가니?”

그런 단탈리온에게, 이연주는 지인 부탁을 받았다며 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 두었던 종이를 꺼냈다. 종이를 펼쳐 보니 꽤나 흥미로운 행사의 홍보 포스터가 나타났다.

<전국 노래 장기발표회>

<사회: 박해>

<초대가수: 김호민, 도운설, 눈웃음>

<참가신청: 마포구 홈페이지 접수>

<자격: 마포구 주민, 직장인 누구나>

<예심: 마포 주민센터 강당>

“아는 언니가 이쪽에서 촬영팀으로 일하거든. 그래서 받아 왔지.”

“이건 또 무엇이냐?”

“몰라? 아 기억상실이랬지. 이거, 전국 순회하면서 동네 사람들 장기자랑하는 프로그램인데, 노래만 해야 해.”

“노래만 해야 하는가? 밴드는 어려운가.”

“그건 글쎄? 여기 담당자한테 연락해 봐. 아무튼, 좋은 기회 같아서.”

이연주의 말에 단탈리온이 한쪽 입꼬리를 스윽 올렸다.

“그래, 아주 옳은 기회로구나.”

마력을 담은 노래가 얼마나 먹힐 것인가.

그걸 시험하기에 적절한 기회가 찾아왔다.

* * *

“뭐? 전국 노래 장기발표회?”

합주실에서 모인 앤디와 제인은 나의 제안에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야, 거긴 우리가 갈 곳이 아니야.”

“어째서인가. 다 같은 노래이지 않느냐.”

“아니, 장르가 다르다고 장르가.”

“무슨 소리냐. 노래 장르는 무엇이든 좋다고 적혀 있다.”

나는 아침에 새로 구매한 보급형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보여 주었다. 아직 세세한 조작은 못 해도 인터넷 검색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여기 홈페이지에 보면 ‘장르 제한이 있나요?’ 라는 질문에 ‘기본적으로 모든 장르가 가능합니다’ 라고 되어 있지 않느냐.”

“그 ‘기본적으로’가 문제라고 ‘기본적으로’가!”

앤디의 말에 나는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안 되는 것이냐.”

“그야 그렇…… 아니, 너무 실망하지는 마. 너 마왕이라며.”

나는 앤디를 원망하듯이 바라봤다.

“됐다. 내가 자네 같은 소인배와 함께 밴드를 부흥시키려 했다니, 내가 어리석었다.”

“미안…… 잠깐, 소인배!?”

“부딪쳐 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는 게 소인배이지 무엇이더냐.”

정말이지, 지금 앤디의 말에 나는 실망을 금하지 못했다.

이제 자신감이 조금 생기려나 싶었는데, 이 녀석은 여전히 변화가 없다.

‘아니, 변화를 두려워하는 건가?’

마계에서도 새로운 임무를 쥐여 주면 다들 당황해하기는 한다.

그렇다면 앤디도 그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소인배가 대인배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역경도 뚫고 나가야 하느니라.”

“그야 그렇지만…… 아니 소인배라 하지 말고.”

“나도 데스맨 말에 동의해, 앤디.”

제인이 들고 온 껌을 쫙쫙 씹으면서 말했다.

“너희는 메탈 계속 한다며? 그럼 여기저기 다 찔러 보면서 어필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제인은 안 해?”

“나 안 한다니까. 이제는 힘들기도 하고. 대신, 가끔 로드 매니저나 메이크업 정도만 해 줄게.”

“로드매니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필요할 정도로 커지기나 했으면 좋겠다.”

“불가능하지 않다.”

앤디와 제인의 말에 내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 가능성을 보다 키우기 위한 첫 발판이 바로 이 노래 장기발표회가 될 터. 제인도 함께하지 않겠나.”

“나는 됐다니까. 이제는 못 해.”

“야, 그래도…….”

“앤디. 두 번 세 번 말하게 하지 마. 진짜 못 한다고.”

“……알았어. 그만 말할게.”

앤디가 아쉬워하며 애꿎은 기타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나는 제인의 말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걸로 바꾸었나.’

흑마법으로 속내를 파헤쳐 볼까, 싶었지만 그리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억지로 이유를 알아내고, 그걸 토대로 윽박질러 봤자 해결될 이야기가 아니다.

멘떼 크몽떼로 조종해 봤자 기간은 겨우 일주일에서 한 달이고, 매번 세뇌를 갱신하는 건 대상자의 피로감을 높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연주 퀄리티가 떨어질 수도 있겠구나.’

역시 가장 좋은 건 자연스럽게 제인에게 매력적인 제안을 던지는 것이다.

이연주가 나에게 ‘1.5배까지도 고려해 줄게’라고 할 때처럼 매력적인 제안을 해야 한다.

“제인이여.”

“응?”

“나와 앤디가 이 노래 장기발표회에 나가서 수상을 해 오겠다. 목표는 최우수상 이상이다.”

“최, 최우수상!?”

그게 말이나 되냐며 앤디가 벌떡 일어섰다.

“데스맨! 최우수상이면 그 위로 대상 말고는 없잖아!?”

“그렇다.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이마저도 내가 혹시나 싶어서 기준을 낮춘 것이었다. 하지만, 앤디는 여전히 허들이 너무 높다며 반대했다.

“메탈은 완전 비주류라고 비주류! 일단은 우수상, 아니 인기상 정도라도…….”

“앤디여, 당장 말을 멈추거라.”

나는 앤디의 입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제인을 바라보라며 눈치를 주었다.

“제인은 우리 밴드를 탈퇴할 생각이다. 그렇지 않느냐.”

“그렇지.”

“하지만, 우리 밴드의 가능성을 알려 주면, 제인도 다시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그 말에 제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능성?”

“그렇다. 나와 앤디가 메탈을 주제로 이 대회에서 최우수상 이상을 수상하면, 대한민국 전국에 메탈의 가능성을 알리는 것이 된다.”

그리고 지금 제인에게 닥친 문제는 앤디와 비슷하다.

돈을 벌지 못하니,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는 문제.

제인에게는 그 직업이 부모의 가업을 잇는 것이었다.

“지금 제인 자네가 밴드를 탈퇴하려는 이유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렇지?”

“응 맞아. 기억하네?”

“당연하다.”

부하들의 세세한 이야기들을 기억해 주는 것. 그게 바로 이 몸, 단탈리온의 통치 방식이었다.

어쨌든, 지금 제인에게는 현실적인 이유를 극복해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했다.

바로 밴드, 메탈을 통해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

앤디처럼 음악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라는 수준이 아니다.

“우리가 최우수상 이상을 수상하면 자네의 영혼을 악마에게 바치거라.”

“뭐……?”

“그리고 최우수상 상금은 제인, 자네에게 모두 주겠다.”

그 말에 앤디와 제인, 두 사람 모두가 놀랐다.

“어떠한가. 최우수상 상금은 자네 거다.”

“……좋아.”

제인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무르기 없기다.”

“훗. 마왕에게 별걱정을 다 하는구나.”

고맙다, 이연주 사장.

자네 덕분에 한 건 잘 풀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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