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고기 찬양 메탈
[ㅋㅋㅋㅋ어제 그거 봄?]
[전국 노래장기발표회 직캠? 진짜 정신나간 밴드 나왔던데?]
[ㅇㅇ대상 수상 소감 개쩔 ㅋㅋㅋ]
[돌았ㅋㅋㅋ오늘부터 팬한다]
[난 이미 그 밴드 노래 찾아보고 있다]
[제 너튜브에 무삭제 직캠 더 있어요! 다들 놀러오세요!]
대회가 끝나고 이틀 뒤.
나와 앤디는 합주실에 모여서 제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인터넷으로 지난 대회 영상을 뒤적거리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반응이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아직 본방이 나간 건 아니었다. 전국 노래 장기발표회의 영상은 3주가 지난 뒤, 편집본이 방송된다고 한다.
공중파 프로그램으로 방송하려면 편집이라던가 거쳐야 한다던가 뭐라던가.
-인간들은 참으로 불편한 제도를 만드는구나.
-그 소감을 그대로 쓸 리가 없잖아!
아무튼, 인간들의 규칙이 있기에 지금 바로 올라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 점이 조금 아쉬웠지만, 인간들의 또 하나의 문화인 너튜브에는 영상이 올라가 있었다.
나는 그 영상의 반응을 보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음. 옳은 반응이로다.”
“야…… 데스맨…….”
“왜 그러는가 앤디여.”
“너는 지금 이게 정상으로 보이냐!?”
앤디가 노트북 화면을 보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양 귀를 손가락으로 막으며 인상을 썼다.
“경박하구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소리부터 지르니 소인배 소리를 듣는 게로다.”
“또 소인배……. 후, 됐고, 이거나 봐 봐.”
앤디의 노트북에는 우리가 참가했던 전국 노래 장기발표회의 너튜브 영상의 댓글이 띄워져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이걸 보라고. 우리가 대상 타니까 지금 다들 난리가 났어.”
“옳은 현상이 아니더냐.”
“……그게 아니라, 다들 우리처럼 정신 나간 컨셉을 밀고 나가려고 한다고! 다음 전국 노래 장기발표회가 컨셉에만 진심이 되고 있단 말이야!!”
확실히.
댓글에는 우리의 무대에 감명 받아 본인들도 비슷한 느낌을 내고자 힘쓰겠다는 말들이 있었다.
“훗. 마왕을 추종하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일일이 놀라지 말거라.”
“내가 너한테 뭔 말을 하겠냐…….”
그때 합주실 문이 벌컥 열렸다. 베이스를 메고 있는 제인이었다.
“제인 왔는가.”
“미안미안. 늦잠을 자서. 대상 축하!”
제인은 들어오자마자 바로 꽃다발을 건넸다. 내 팔 길이의 절반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 작은 꽃다발이었지만, 제인의 마음은 충분히 느껴졌다.
“와, 이런 걸 다…….”
“고맙도다.”
착한 척 말을 뱉으려는 앤디의 앞을 스윽 지나서 꽃다발을 받았다.
“데스맨, 그래도 넌 겸손이라는 걸 좀…….”
“겸손을 하나하나 따지면 험난한 마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느니라. 자네가 이 나에게 밀려 수상 소감을 한마디도 못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거랑 이거랑 뭔 상관인데!?”
“푸하하하!”
제인이 갑자기 배꼽을 잡으며 쓰러졌다.
“아, 아하하하! 너희 진짜, 나도 그거 아하하하! 봤거든!”
“뭐, 뭘?”
“왜 있잖아. 손가락.”
“아……!!!”
앤디가 머리를 감싸 쥐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미쳤어 미쳤어……! 내가 왜 저 마왕을 믿었을까! 상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인간한테……!”
“인간이 아니라 마족이니라. 그중에서도 이 몸은 가장 유서 깊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앤디는 대상 수상 소감을 말할 때 내가 했었던 손가락 모양을 따라 하더니 내 얼굴에 들이밀었다.
“이거! 이거!! 이거 누가 가르쳐 줬어!”
“? 앤디 자네이지 않은가.”
“내가 언제 중지 올리라 그랬어! 검지잖아 검지!!”
“그건 천사들의 표식이라서 싫도다.”
“그래서 중지를 올리셨다……?”
“아니 되느냐? 소악마들이 들고 다니는 삼지창처럼 생기고 예쁘지 않은가.”
“중지는 욕이라고! 욕!!”
앤디가 길길이 날뛰면서 중지를 왜 올리면 안 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 설명만 벌써 세 번째 듣고 있다. 나는 지겹다는 손짓을 하면서 제인에게 말했다.
“제인, 받거라.”
“이게 뭔데?”
봉투를 받은 제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이거 혹시 상금……?”
“그렇다. 확인해 보거라.”
제인이 봉투를 열자 그 안에서 5만 원권으로 이루어진 150만 원이 나왔다. 지폐를 한 장 한 장 세어 본 제인이 물었다.
“그런데 왜 150만 원이야? 대상은 200만 원 받잖아.”
“잊었는가? 최우수상 상금을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엥?”
앤디도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렇다. 이것은 모두 이 몸의 책략.
-어떠한가. 최우수상 상금은 자네 거다.
-……좋아.
지난번, 전국 노래 장기 발표회에 참가하기 전에 나와 제인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눴었다.
내가 말한 상금은 분명 ‘최우수상’뿐이었다.
PC방 사장인 이연주의 경영 수완을 통해 한 수 배우고 직접 활용해 본 것이다.
“이 몸은 분명 최우수상 상금을 준다고 하였다. 대상 상금을 준다고는 하지 않았느니라.”
“와…… 이렇게……?”
“그렇기에 대상 상금 200만 원 중 150만 원을 주는 것이다. 제인이여, 자네도 나의 제안에 ‘무르기 없기다’라며 동의했을 터. 오히려 세금을 제하지 않은 것은 이 마왕의 자비에 가까운 저주다. 그걸 알도록.”
제인이 허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킥킥 웃으며 말했다.
“맞아 맞아. 내가 그랬지. 오케이 인정!”
“제인 잘됐네. 이걸로 금전 문제가 조금은…….”
“아주 쿨하구나. 옆에 있는 누군가와는 달리 말이다.”
“뭐가 어쩌고 저째!?”
“앤디여, 시시콜콜한 일로 소리를 지르는 것 역시 경박함의 상징이다. 자중하도록 하여라.”
“……아오!”
흥분한 앤디를 진정시키고, 나는 다음 스텝을 이야기했다.
“그럼 제인, 자네의 의견을 듣고 싶다.”
“응?”
“밴드에 다시 들어올 생각이 들었느냐.”
그렇다.
이 몸이 앤디와 단둘이서 전국 노래 장기발표회에 참가한 이유는 제인 때문이었다.
공석이 된 베이스 자리.
그 자리는 기존 멤버이자,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히 메탈 음악을 추구했던 제인이 들어와 주는 것이 제일 좋다.
그 이유는.
“맞다 제인. 다시 들어올 거지?”
앤디가 그녀를 강력하게 원하고 있다.
단순히 와 줬으면 한다, 가 아니다.
-제인이 아니면 안 돼.
-이유가 있는가.
-일렉 기타와 베이스는 락의 양 날개 같은 존재야. 나랑 제인이 지금까지 맞춰온 합을 유지해야 군더더기 없는 연주가 가능해.
-다른 베이시스트와는 어려운가.
-그거 맞추려면 아무래도 오래 걸리지. 제인이랑은 7년이나 같이 해 왔는걸.
-음…….
하긴, 나도 시틀라가 없다면 꽤나 곤혹스러울 터였다.
지금의 시틀라처럼 완벽하게 업무를 행하는 악마가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일이고, 나의 요구 사항을 제때 행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일 것이다.
그렇다. 즉…….
“앤디에게 있어 제인은 시틀라 같은 존재라 하였다.”
“시틀라?”
“아직 소개를 못 하였구나. 내 시종이자 부관인 악마이다. 지금은 통신으로만 연결이 가능하도다.”
“야 앤디. 너, 나를 시종 취급했던 거야?”
“으응? 그럴 리가 없잖아?”
“근데 방금 데스맨이 그랬잖아. 너가 나를 자기 시종이랑 같은 존재로 취급한다고.”
“이건 또 뭔 헛소리야!?”
“아니었는가?”
“당연히 아니지! 아무튼, 제인은 어떻게 할래?”
제인은 한껏 고뇌에 잠겼다. 그리고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전처럼 연습을 많이 하지는 못할 거야. 그리고 일단은 아빠 가게 일을 우선으로 해야 할 거 같아.”
가게 일? 내가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 하고 있자 앤디가 부연설명을 했다.
“제인네 아버지께서 고기집 하시거든.”
“오호, 고기라.”
그러고 보니 마계에서도 고기는 많이 먹었었지.
“나도 오래간만에 고기를 먹고 싶구나.”
“아, 그럼 상금도 받았으니까 고기 먹으러 갈까?”
“옳은 생각이로다.”
합주실 근처에 괜찮은 고기집이 있다면서 앤디와 제인이 안내를 했다.
* * *
그리고 인간계의 고기집에 들어온 나는, 조금의 인내 끝에 첫 고기를 집었다.
“이것이 인간계의 삼겹살인가.”
고기를 한입 가져가자 입안에 고기 풍내가 한 번에 느껴졌다.
“참으로 훌륭하도다. 마계로 수입하고 싶어지는 맛이로구나.”
“많이 먹어. 여기 무한리필집이니까.”
“무한……! 고기가 계속해서 나온단 말이더냐!”
“응응. 우리가 가서 받아와야 하지만.”
“이곳 사장은 참으로 도량이 넓구나.”
그날, 우리는 즐겁게 고기를 먹었다. 무한정으로 제공되는 고기를 몇 접시나 가져다 구웠고, 인간들의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 * *
‘뭐야 정말.’
제인은 앞에서 열을 올리고 있는 앤디와 평온한 얼굴의 데스맨을 보며 피식 웃었다.
다시금 밴드를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그녀가 베이스를 잡을 수 있었던 건, 사실 집안의 영향도 있었다.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것.
제인에게 RRR밴드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렇기에 밴드를 그만두겠다고 결정하는 건 쉽지 않았다.
드러머는 탈퇴한 지 오래고, 보컬은 사고를 당해 기억상실. 이제는 더 이상 밴드를 유지할 수 없었다.
어떻게 맞춰온 7년의 합인데, 이걸 버리고 새로운 멤버를 영입한다?
이제는 나이도 적지 않다.
30대를 넘어가려는 시점, 확실하게 진로를 정해야 하는 시기였다.
그때 그녀의 부모가 가게 일을 도와 가업을 이으라고 제안했다.
어차피 취업을 위한 스펙도 없는 마당에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 밴드는 그냥 취미로 했던 거다.
앞으로도 앤디나 데스맨이 부르면 잠깐 놀러나 가는 정도로 하자.
분명 거기까지만 생각했을 터였는데.
‘나도 빨리 끼고 싶어.’
데스맨과 앤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인은 오래간만에 심장이 두근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두 사람의 전국 노래 장기발표회 너튜브 영상을 보면서였다.
-퐈이야아아아아아아!!!!!
이제는 마왕이 깃들어 있는 데스맨의 몸. 단탈리온이라고 하는 이 마왕은 마치 메탈, 락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는 듯 샤우팅을 외쳤다.
쟈쟈쟈쟝 따다라다다
앤디의 기타 속주는 여전히 최고의 실력, 어딜 가도 빠지지 않을 뛰어난 연주였다.
그리고 이어져야 했을 베이스 솔로 구간에, 제인의 모습은 없었다.
‘내가 있었다면…….’
더 멋진 연주가 나왔을 텐데.
전국에 우리의 이름을 더 알릴 수 있었을 텐데.
물론 그 중지가 올라간 건 충격적이기는 했다. 제인은 배꼽을 쥐어잡고 끅끅대며 웃기는 했지만.
“제인, 이제 일어나자.”
“어? 아 그치. 다 먹었어?”
제인은 깨끗이 비워진 테이블을 보면서 웃었다.
“웬일이야? 이렇게 많이 먹고.”
“음. 공연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이 몸도 체력을 비축해 두어야 하느니.”
단탈리온은 마지막으로 컵에 담긴 콜라를 마셨다.
“닥터솔트만 하지는 않지만, 이 음료도 나쁘지 않았다.”
“닥터솔트 좋아하는 사람 진짜 드문데 너도 참 신기하다…….”
앤디가 기타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제인 역시 베이스 가방을 챙기려다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아.”
이제 합주 안 한다고 생각해서 안 들고 왔었지.
제인은 헛웃음을 삼키면서 계산대 앞에 섰다. 150만 원의 상금을 받았으니 7만 원 정도의 고기값은 자신이 지불할 생각이었다.
“제인, 됐어. 더치 해야지.”
“왜? 내가 쏠게.”
“나랑 데스맨도 남은 상금 반씩 나눠가졌어. 돈 있어.”
“아냐, 그래도 내가…….”
“앤디여, 제인이 사겠다 하지 않느냐. 잘 먹었도다, 제인.”
“데스맨 넌 눈치가…….”
“아하하하! 됐어 됐어.”
그래. 지금은 저게 데스맨이다. 단탈리온이라는 마왕이 깃들어 있지만, 데스맨이다.
그리고 그 단탈리온 덕분에, 데스맨은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 또한, 단탈리온 덕분에 메탈의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알려졌다.
그럼, 나도 더 해 볼 수 있을까?
다시 한번 RRR에서 메탈의 부흥을 꿈꿀 수 있을까?
게다가 잘 되면 본래 데스맨의 영혼도 되살려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 밴드도 부흥하고, 친구도 구하고.
이거야 말로 일석이조가 아닐까.
“저기, 있잖아.”
그렇기에 제인은 고기집을 나오자마자 두 사람에게 말했다.
“나, 아마 음악에 집중을 한다거나 하기는 어려울 거 같아.”
다시 음악을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취미의 영역일 것이다.
이제 제인은 가족들에게 가업을 잇겠다고 말했다. 이제 와서 그걸 무를 수는 없다.
“다 알고 있느니라.”
“그래서…… 응?”
“못 들었는가? 다 알고 있다고 말했도다.”
데스맨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인의 손을 맞잡았다.
“가업을 벗어나 새로운 직업을 갖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일 터. 그렇지 않은가.”
“……응.”
어떻게 이 녀석은 이런 걸 알고 있지?
흑마법으로 속마음을 읽은 건가?
아니 그럴 리 없다.
저 고고한 귀족 같은 마왕이 그런 치졸한 행동을 할 리는 없다.
분명 우리한테 버프를 제외한 흑마법을 사용하지는 않겠다고 그랬기에 그는 지금도 마법을 사용한 상태는 아닐 것이다.
그럼 지금 이 고민을 어떻게 알게 되었지?
“이 몸은 모두 알고 있느니라.”
“어…….”
“제인, 자네의 고민도, 그리고 자네 아버지의 고민도.”
단탈리온이 고개를 위로 젖혔다. 그리고는 앤디의 어깨를 잡았다.
“앤디여. 우리의 다음 목표가 정해졌다.”
“다음 목표?”
앤디와 제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인의 가게를 알려다오.”
“거기는 왜? 고기 먹으러 가려고?”
“쯧쯧. 이래서 저급한 인간이란.”
“무시하면 안 알려 준다.”
“……고귀한 인간…… 의 의견도 존중…… 해 주마.”
“좋아 좋아. 가게는 종로 쪽에 있어. 그런데 왜?”
앤디의 말에 단탈리온이 양쪽 입꼬리를 잔뜩 끌어올린 채 말했다.
“고기집에서 특별 공연을 연다.”
“……뭐!?”
“우리 가게에서……?”
RRR이 고기집에서 공연을 한다고?
“당연히 주제는 메탈이다.”
단탈리온이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고기 찬양 메탈을 준비하자.”
RRR의 새로운 도전이 선언되는 순간이었다.
“……아빠가 싫어하실 것 같은데.”
제인의 현실적인 고민은 뒤로한 선언이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