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버스킹 (1)
총 72위의 마계들이 모여 있는 마계국.
그중에서도 인간들의 문화들이 가장 많이 퍼져 있는 소수의 마계가 있다.
단탈리온이 지배하는 71위 마계 역시 그 소수의 마계 중 하나였다.
“단탈리온 님이 인간계로 내려가셨다는 게 참말이오?”
“그렇다고들 하더군. 단탈리온 님이 우리 마계 전체를 살리시려고 큰 결단을 내리셨어.”
그리고 단탈리온의 활약은 이미 71위 마계 전체에 퍼져 있었다.
단탈리온이나 시틀라가 알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너희들은 주군께서 목숨을 바쳐 일하시는데 대체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이냐!”
“죄, 죄송합니다, 에키드나 님!”
에키드나라 불린 여성이 채찍을 손에 들고 고함을 질렀다.
“여기 있는 네놈들은 머저리만도 못한 머저리들이다! 우리 71위 마계의 통치자, 단탈리온 님을 보좌하지는 못할망정! 여기서 시간이나 죽 치고 있단 말이더냐!!”
에키드나의 채찍이 바닥을 수십 회 때렸다. 채찍과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소름 끼칠 정도로 끔찍한 비명을 질렀지만, 앞에 앉아 있는 악마들은 그저 몸을 덜덜 떨며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71위 마계의 11군단장인 나, 에키드나가 명령한다! 지금 당장 인간계로 내려가서 단탈리온 님을 보좌할 악마는 없는가!”
그 말에 모여 있는 악마들이 모두 웅성거리며 저들끼리 토론을 벌였다.
“내, 내가 가도 되려나?”
“멍청아! 넌 음악의 음도 모르잖아. 가서 도움이나 되겠어?”
“맞아 발목이나 잡겠지…….”
“넌?”
“난 게임만 해서…….”
“나도 드라마만 보니까…….”
71위 마계는 인간들의 문화가 많이 알려진 마계였지만, 악마들이 즐기는 문화는 가지각색이었다. 문화가 다양한 만큼, 대중음악을 많이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나마 있다고 해도 이 정도.
“야, 넌 대중음악 많이 듣잖아.”
“나도 아이돌 말고는 모르고……. 게다가 전문 지식은 아무것도 없어.”
거기에 인간계로 내려가려면 하급 악마여야만 하는 조건이 있었다.
마력이 부족한데 내려가자마자 소멸하는 거 아니냐고?
-때문에 서번트로 내려가는 게 가장 좋다.
‘시틀라는 서번트라면 괜찮다고 했지만…….’
지금 단탈리온이 인간계에 내려가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빙의는 물론이고, 원체 마계 최고의 마력을 소유하고 있던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약 20배의 차이가 나는 인간계에 있었기에 마력이 많이 소진되어 있는 상태.
‘하급 서번트까지가 한계야.’
그렇기에 에키드나는 중급 이상의 악마가 아니라 하급 악마 중에서 인원을 선발하려 했다. 그래야 단탈리온이 인간계에서 서번트로 소환하기에도 적합하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모인 11군단의 추출 인원 중에서는 선뜻 나서는 자가 없었다.
그나마 인간계의 문화들에 익숙한 최정예 하급 악마들로 구성을 하였거늘.
‘정녕 아무도 없단 말인가?’
최상급 악마인 에키드나는 한숨을 쉬며 모여 있는 수하들을 바라봤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가고 싶다.
군단장 급이라면 인간계에 현현하더라도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에키드나 자신도 괜찮기는 할 터.
하지만 그러는 순간.
‘단탈리온 님이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시겠지.’
단탈리온은 시틀라를 71위 마계의 최고 결정권자로, 그 바로 아래로 군단장들을 배치하고 내려갔다.
그런데 자신이 군단장의 업무를 팽개치고 내려간다면?
‘온갖 축복을 받으며 파면당해도 싸.’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에키드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지금도 바깥에서는 단탈리온 님을 위해 힘쓰고자 다들 노력하고 있다! 11군단이 단탈리온 님을 지키지 않으면 누가……!”
그때 강당의 대문이 끼긱, 소리를 내며 열렸다.
“누구냐! 감히 대강당에 노크도 없이……!”
에키드나가 거대한 채찍을 휘둘러 대강당의 대문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러자 대문이 쩌적 갈라지며 반으로 박살 났다.
“아. 수리비가…….”
또 시틀라 님께 대출 보고를 드려야…….
부관의 혼잣말을 들은 에키드나는 살짝 마음이 찔렸지만 짐짓 아무것도 모른 체하며 말했다.
“크, 크흠! 웬 놈이더냐!”
“에키드나 님, 제가 가겠습니다.”
그 누가 봐도 날렵해 보이는 다리. 자신의 다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붉은 망토. 양손은 다리와 함께 단단한 근육이 붙어 있고, 머리는 무엇보다도 용맹하다 할 수 있는.
말 머리.
“오로바스 족이더냐.”
“예, 에키드나님. 11군단의 3연대 본부 행정악마, 오로바스 인사올립니다.”
오로바스 족인데 이름이 오로바스? 고개를 갸웃한 에키드나를 보면서 오로바스가 말했다.
“부친께서 종족의 이름을 소중히 여겨야 하신다며 지어 주셨습니다.”
“음……. 알겠다. 그나저나 자네가 간다고? 자신은 있는 것이냐?”
에키드나는 오로바스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봐도 녀석은 달리기 정도에나 특화되어 있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오로바스 족 자체가 말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대로 오로바스 족은 마계의 군단 내에서 기병 훈련이나 기병 자체를 담당하는 종족이었다.
“바로 그 지점입니다, 에키드나 님. 저는 오로바스 족이지만, 행정병을 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구나.”
대체 저 신체 조건을 버리고 왜 행정병을 하는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는 에키드나에게 오로바스가 말했다.
“저는 인간들의 문화, 그중에서도 악기 연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전선에 나서면 언제 팔다리가 없어질지 모르는 법.”
오로바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망토 안쪽에서 두 개의 막대기를 꺼냈다.
“저의 드럼을 향한 열정을 그런 위험에 노출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평소에는 행정병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겁을 집어먹고서 숨어 있던 게 아니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든 건 단탈리온 님의 보좌를 위해 노력한 것입니다.”
에키드나는 뻔뻔하게도 말하는 오로바스를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잘 할 수 있겠느냐?”
“최근 드럼으로 커버했던 곡들만 수십 곡. 가능합니다.”
“좋다. 하급 악마이고, 악기에 대한 조예도 깊은 편으로 보이는군. 나름대로 강단도 있어 보이는구나.”
에키드나의 말에 오로바스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감사합니다, 에키드나 님. 그리고 하나 더 저의 장점이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저는 선동을 잘 합니다.”
에키드나는 잭프로스트에게 냉기 마법이라도 당한 것처럼 발이 얼어 붙었다.
‘그렇구나. 이 녀석은 오로바스 족.’
오로바스 족이 잘 하는 것 중 하나로 선동도 있었다. 속도가 빨랐기에 항상 정보전에서 능숙했던 종족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대중음악이라 함은 팬층 형성을 위해 적절한 선동은 필수였다.
‘언젠가 단탈리온 님께서도 말씀하셨었지.’
선동을 잘 해야 인간들의 문화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
-인간들의 문화에는 죽어도 충성하는 추종 팬층이 있더구나.
실제 들은 말은 이것뿐이었지만, 이 말을 에키드나는 선동의 중요성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선동의 중요성은 오로바스의 이야기에도 신빙성을 심어 주었다.
“어떻게 해 볼 생각이더냐?”
“적절한 팬층을 형성하고, 이를 토대로 단탈리온 님을 숭배하는 인간들을 만들 것입니다. 또한, 최근에는 SNS와 댓글을 활용한 선동법도 공부하고 있는 만큼 인간계의 문화를 적극 활용해 볼 생각입니다.”
“좋다. 믿음직스럽구나.”
에키드나는 최종적으로 앞에 모여 있는 악마들에게 소리쳤다.
“71위 마계, 11군단의 용맹한 마왕군은 듣거라!”
“예!”
“지금 시간부로 여기 있는 오로바스가 단탈리온 님이 계신 전장, 인간계로 내려갈 것이다!”
“예!!”
“장소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해당 장소로 전이 준비를 서둘러라!!”
“에키드나 님을 받들겠습니다!”
“용맹한 오로바스에게 저주를!”
“오로바스에게 저주를!!”
11군단의 정예 인원들이 각자의 병장기를 들고 받들어 총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오로바스가 빠진 3연대 행정병 자리는 조속히 채워 넣거라! 단 한 명도 행정인력 낭비가 있어서는 아니 된다!”
그 와중에 11군단까지도 챙기는 에키드나였다. 오로바스는 그런 에키드나를 보면서 생각했다.
‘단탈리온 님,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개인 드럼 스틱을 품에 안은 채로 말이다.
* * *
다음 날, 합주실.
나는 제인, 앤디와 함께 고기 찬양 메탈 노래를 준비하고자 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제일 먼저 입을 연 앤디가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다 좋아. 다 좋은데.”
앤디는 현재 모여 있는 우리를 한 번씩 돌아보며 말했다.
“인원이 부족하잖아?”
“아, 드럼 없지.”
그걸 잊고 있었다면서 제인도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드럼이 없으면 아니되느냐.”
“아무래도 사운드가 많이 비잖아.”
“으음…….”
내가 생각해도 그건 심각한 문제였다.
최대한의 사운드를 때려박아 인간들에게 세뇌 수준의 음악을 귓구멍에 넣어 줘야 하는데, 사운드가 빈다고?
“애초의 목적이 달성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구나.”
“애초의 목적?”
“혼잣말이니라. 세션 알바를 쓰는 건 어떠한가?”
“돈 있어?”
“……나쁜 새끼.”
“왜 욕이야!”
“못된 인간.”
“그거도 기분 나빠! 아니 팩트를 이야기한 건데 왜 욕을 먹어야 해!?”
하지만 앤디의 말대로, 지금 우리에게는 돈이 없었다.
그래서 세션 아르바이트를 쓰기에도 어려웠다.
상금 남은 게 있었지만, 이건 당장 생활비로 돌리기에도 벅찬 수준이었고.
“제인, 혹시…….”
그때 앤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받은 상금으로 세션 알바 구해도 되냐고?”
“아하하, 응. 어려울까?”
“앤디여. 그건 아니 된다. 줬다가 뺏는 것만큼 악질도 없는 법이다.”
실제로 악마들도 줬던 걸 바로 빼앗아가지는 않는다.
적어도 그걸 누릴 만한 시간은 쥐여 주는 법.
하지만, 아직 제인은 이 돈이 가져다주는 풍요를 누려 보지 못했다.
“차라리 앤디 자네가 회수한 돈을 쓰는 건 어떤가.”
“……밀린 카드값, 월세 내니까 끝났어.”
“참으로 원망스럽구나.”
그 돈을 그리도 허투루 사용하다니.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찼다.
“나도 길바닥에 나앉을 뻔했다고. 아무튼, 셋 다 돈이 없는 거네 그럼?”
“그렇게 되겠구나.”
“다음 세션 알바도 멀었는데…….”
“PC방 급여도 월 1회이니 아직 멀었도다.”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드럼 없이 공연을 한다?
인간들의 속담을 빌리자면 앙꼬 빠진 찐빵이 된다.
“일단은 노래부터 고민을 해 보자꾸나.”
“아, 그거 말인데, 아빠한테 허락 못 받았어.”
제인이 손을 들며 말했다. 앤디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
“당연히 가게 앞에서 공연하는 건데, 가게 주인 허락 받아야 하지 않겠어?”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주인의 허락도 없이 가게 안에서 난동을 피우다니.
하급 악마 따위라면 모를까 고고한 이 몸, 마왕 단탈리온에게는 당치않는 얘기다.
“옳은 말이구나.”
“아니 잠깐. 그게 의문이었던 거야? 난 당연히 근처 버스킹 장소에서 한다고 생각했는데?”
앤디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핸드폰을 꺼내서 지도 어플을 열었다.
“제인네 아버님 가게가 여기. 그리고 근처 버스킹 가능 장소는 여기고.”
앤디가 보여 주는 장소는 나도 인간들의 문화를 알아보다가 자주 확인했던 장소였다.
“오호라. 인사동이로구나.”
“응. 고기집도 이 근처거든. 여기서 공연도 하고, 홍보도 하면 어떨려나?”
앤디의 의견을 들은 나와 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의견이로다.”
“인사동에서 메탈 공연이라니. 아빠가 알면 뒤로 쓰러질지도 몰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제인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서려 있었다.
“제인이여, 자네 참으로 악마처럼 웃는구나.”
“그래? 마왕에게 그런 소리 들으니까 기분이 묘하네. 칭찬이지?”
“칭찬이다. 아주 좋은 얼굴이다.”
저렇게 교활한 웃음을 띠고 있어야만 악마 숭배 음악, 메탈을 할 수 있는 법이다.
나는 그 이야기는 굳이 꺼내지 않았다.
자고로 마왕이란, 부하들에게 모든 속내를 꺼내지는 않는 법.
부하들이 그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만들어 조종하는 것 또한 마왕의 역량이었다.
“그럼 언제 할까?”
“일정은…….”
보니까 버스킹 신청은 서울문화재단관광 페이지에서 신청해야 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중 가장 가까운 신청 가능일을 선택하며 말했다.
“그럼 이 몸이 해 보겠다. 어디 보자…….”
그렇게 수십 분이 지나도록 나는 한 단계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요망한 것…… 공인인증서라 하였느냐.”
나는 앤디를 바라보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이런 하급 마물 따위, 이 몸이 직접 상대할 필요도 없느니라.”
자고로 마왕이란 귀찮은 일은 부하들에게 넘기는 법이다. 그래야 부하들도 활약할 기회를 얻고, 나에게 충성을 맹세할 계기가 생기는 법일지니.
“앤디, 자네가 하거라.”
“……귀찮아서 떠넘기는 거 아냐?”
나는 그저 양쪽 입꼬리를 사악 올리며 말할 뿐이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버스킹을 잘 알고 있는 자네이기에 떠넘기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귀찮아하는 거 같은데.”
그렇게 우리는 버스킹을 무사히 신청할 수 있었다.
앤디도 공인인증서를 제대로 찾지 못해 십 분은 헤매다가 겨우 신청하기는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