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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님, 메탈하신다-16화 (16/110)

16화. 버스킹 (2)

무사히 버스킹 신청까지 완료한 우리는 다시 합주실에 모여 앉았다.

“주제는 고기로 한다고?”

“정확히는 고기 찬양이다.”

“그…… 그래. 고기 찬양으로 할 건데……. 어떤 내용으로 할 거야?”

“솔직히 내용만으로 봤을 때는 포크송도 괜찮을 거 같았는데.”

어쨌든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음악은 메탈이었다. 이 메탈 밴드 안에서 힘을 키워야만, 향후 악마숭배 음악을 관장하는 단탈리온으로 성장할 수 있을 터.

그렇기에 다른 장르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니, 메탈을 해야만 하느니라.”

“이유가 있어?”

“편법으로 제인의 아버지를 설득해 봤자, 그 효과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도다. 제인은 메탈 밴드의 베이시스트가 아니더냐?”

결국 우리 밴드의 베이시스트가 자리를 굳건하게 잡기 위해서는 제인의 아버지를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제인의 메탈 외길을 응원하지 않는 이유는.

“제인이여, 돈이 궁한가?”

그 말에 제인과 앤디가 동시에 나를 돌아봤다. 나는 고고한 학처럼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은 채로 다시금 말했다.

“다시 한번 묻겠다. 돈이 궁한가?”

“야 데스맨, 아무리 그래도…….”

“궁한가?”

앤디가 나를 말리려 했지만, 나는 그대로 또 한 번 물었다. 제인의 얼굴이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했다가, 이제는 마치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변했다.

“맞아. 돈, 궁해. 내가 사실 부모님 돈으로 학비도 내고 그러느라고 부모님 뵐 면목도 없고, 음악 한다고 괜히 나와서 살다가…….”

“알겠노라. 요컨대, 돈이 궁하고 부모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이거 아니겠는가?”

그런 이야기라면 마계에도 많이 있었다.

특히 애매한 귀족이라 불리는 중급 악마들 사이에서 말이다.

중급 악마의 자제로 태어났으나 그 자질이 하급 악마보다도 못할 경우, 그들이 받는 괄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역시도 모두 교양이라고는 국밥 말아먹은 악마들에게나 해당되었다.

“제인의 아버지가 교양인인지 아닌지 판가름이 나겠군.”

“교양……?”

“자고로 교양인이란 자식의 능력이 본인의 희망 사항에 걸쳐지지 않는다 하여도, 나름의 능력을 인정해 주어야 하는 법.”

상급 악마들의 삶을 되돌아보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인간들의 문화, 게임이나 영화 등에서는 뱀파이어 족이 무분별하게 동족을 늘려나가는 무식한 악마로 표현되곤 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단탈리온 님을 받듭니다.

상급 악마인 드라큘라 백작. 그리고 그가 통솔하는 상급 악마 종족인 뱀파이어 종족.

그들은 드라큘라 백작과 함께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신사적으로 행동했다. 또한, 자녀들이 보이는 기행들을 모두 하하호호 웃으면서 저주를 내려 주었었다.

-요 녀석, 자꾸 그러면 피의 저주를 뿌릴 테다?

-아하하하! 아빠, 그럼 선혈로 뿌려 줘요!

그렇기에 뱀파이어 종족들 사이에서는 어떤 집안은 아버지는 무투가이나 자식은 행정 직원으로 취업하기도 했다. 또 어떤 부모는 영업 직원이지만, 자식은 악마 약물 연구원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그러니 제인의 아버지도 옳은 교양인이라면 제인의 재능과 가능성을 확인하고 인정을 해 줄 터.”

“…….”

이야기를 듣던 앤디와 제인이 입을 꾹 다물었다.

“왜들 그러는가?”

“아니 그…… 뱀파이어니 뭐니 하는 게 좀 이해가 안 되기는 한데……. 아무튼, RRR밴드의 가능성을 보여드리면 된다는 뜻이지?”

나는 앤디의 말에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인도 이해했는가.”

“……뭐 대충은.”

생각보다 반응이 뜨뜻미지근한 제인이었다. 나는 고개를 기울여 앤디를 바라봤다.

“사실 제인이 이전에 콘서트표를 드린 적이 있거든.”

“오, RRR도 콘서트를 했었는가. X망 밴드라 생각했거늘.”

“……그런 표현은 어디서 배운 거야?”

“어제 인터넷에서 배웠노라.”

“아무거나 다 흡수하지 마. 아무튼, 인기는 없어도 소형 클럽에서 공연은 한 번씩 했었어. 그거 공연 티켓도 드렸었는데…….”

앤디가 한숨을 쉬고는 제인을 바라봤다.

“그 자리에서 티켓을 내팽개치셨다고 하더라.”

“흐음…….”

제인의 아버지.

생각보다 강적일지도 모른다.

잔여 마력량: 4680

‘마력은 충분하나…….’

나는 떠오르는 의문을 뒤로하고는 말했다.

“그건 걱정 말거라. 이 몸의 힘이 있을지니.”

“이상한 짓 하면 안 돼.”

“어허, 이 몸을 뭘로 보고. 아무 걱정 말거라.”

까짓것, 멘떼 크몽떼 한 번 날려주면 될 일이다.

잠깐 공연 보고 오도록 조종하는 거야 어렵지 않으니까.

“아무 걱정 말고, 우선은 고기를 먹으러 가자꾸나.”

“고기?”

“고기 찬양 메탈을 준비하려면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합주실을 나온 우리는 곧장 삼겹살 무한리필 집으로 향했다. 돈이 많지 않아 가장 저렴한 가게였지만, 우리는 잔뜩 배가 부르도록 고기를 굽고, 먹었다.

* * *

“시틀라여.”

집에 돌아온 나는 책상 앞에 앉아 팔짱을 낀 채 시틀라에게 통신을 걸었다.

[예, 예!? 다, 단탈리온 님.]

왜 이리 당황하지?

화장실에라도 있었나.

나는 별일 아니라 생각하고는 말했다.

“마력잔여량이 다소 불안정하구나.”

왜 계속 5천을 넘기려다가 못 넘기는 걸까.

오늘은 합주실에서 회의를 하고, 버스킹 신청을 한 것 말고는 딱히 한 것도 없었다.

공인인증서와 한바탕 전투가 있기는 했지만, 마력을 소진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렇다면 이건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가정을 해 보도록 하지.”

인간과 빙의를 한 이후 마력이 불안정해지는 대표적인 이유 두 가지.

하나는 빙의한 악마의 급이 낮아서 제어를 못 하는 것.

또 하나는 빙의한 인간의 급이 낮아서 제어를 못 하는 것.

지금의 경우는 명백히 후자라 볼 수 있다.

마왕인 이 몸의 급이 낮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이 빙의체의 무엇이 부족한 걸까.

지능? 경험? 감정?

거울 앞에 서서 본래 주인의 몸을 관찰해 보았다. 그러자 무엇이 문제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운동을 해야겠구나.”

내가 마계에서 책만 보면서 탱자탱자 놀기는 했지만,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기는 했었다. 수하들과 대련을 하기도 했고, 범죄자 마족들을 사냥하기도 했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력이 깃드는 법.

[단탈리온 님, 운동은 버프 마법을 활용하시면…….]

“무슨 소리냐. 어렵게 모은 마력을 그런 식으로 소진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게다가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아직은 인간계에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계에서 나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력이 조금만 더 쌓이고, 내 이름이 헤비메탈, 락으로 알려진다면…….

“유명해지는 순간 천사들이 나를 잡으러 올지도 모른다.”

[그런……! 그럼 너무 유명해지는 것도 곤란한 것 아닙니까!?]

“걱정 말거라. 그에 따른 대비책도 모두 구상해 두었으니.”

다만, 거기에는 조건이 필요했다.

“그 대비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마력 보존이 필수이다. 이 귀걸이, 1만까지 보존할 수 있는 것이 맞더냐.”

[예, 그렇습니다.]

나는 귀걸이를 한 손으로 감싸 쥐었다.

“악세서리는 다양하게 만들어 두거라.”

[예, 단탈리온 님. 필요 수량을 알려 주시면 납품시기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맞추겠나이다.]

“좋다. 필요 수량은 최소 10개로다.”

시틀라에게 명령을 내리고 통신을 마쳤다.

거울 안에는 키는 크지만, 아직 몸이 완성되지 않은 삐쩍 마른 남자가 서 있었다.

“그리고 운동도 운동이지만, 중요한 사항이 있도다.”

[예, 말씀하십시오.]

“지금 71위 마계의 상태는 어떻지?”

내 질문에 시틀라의 목소리가 잔뜩 떨려왔다.

[그, 그것, 그것이, 지금 그…… 추가 대출은 없습니다. 아주 잘,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시틀라여.”

시틀라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고개를 허공 위로 들었다. 그러고는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뜨면서 눈동자만을 위로 치켜올렸다.

“마력이 안정되지 않는다.”

[……! 예, 예……!]

“71위 마계의 인원들에게 전하거라. 이 몸, 단탈리온이 인간계에 있는 동안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말이다.”

[조, 존명!!]

시틀라가 큰 소리로 다짐했다. 통신 너머로 바닥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도 무릎이 부서지라 꿇으면서 대답했겠지.

시틀라 녀석, 쓸데없이 충성이 과하도다.

‘하긴, 그렇기에 이 몸의 시종이자 부관을 할 수 있겠지.’

녀석의 충성도를 다시금 확인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인해 봐도 괜찮겠지.”

[예, 예! 어떤…….]

“서번트.”

지금 이 몸은 너무나 비루하다.

자칫 잘못하면 쓰러질 수도 있는 몸.

최근 며칠은 전국 노래 장기 발표회 상금이 있었기에 바깥 음식을 양껏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사치를 부리기에는 어려웠다.

밥값을 아끼기 위해서는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야 하고, 잔여 금액에 맞춰 자금 운용을 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71위 마계의 존속 위기까지 대출을 받아 버린 마왕이다.

그 배포가 크다고는 하나, 인간계에 머물기 위해서는 배포가 큰 것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시종이 필요하다.”

[그, 그럼 제가…….]

“헛소리 말거라. 내가 왜 자네와 군단장들에게 71위 마계를 맡기고 왔는지, 그 이유를 잊었는가?”

나는 허공에 대고 서늘하게 시선을 보냈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시틀라의 목소리가 점점 더 떨려 왔다.

[죄, 죄송합니다! 죽여 주시옵소서!]

“함부로 죽겠다는 말도 금지니라. 알겠느냐?”

[예, 예, 알겠습니다!]

“한 번만 더 그러면 자네에게 축복을 기도할지니. 아니, 군단장급에게도 모두 기도하겠다.”

[다, 단탈리온 님! 그것만은 제발……!!]

물론, 나도 이들에게 축복을 기도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천사들이 내 기도를 들어주기나 할지도 의문이었고.

“아무튼, 시종이 필요하다. 알겠느냐.”

[예, 예!]

시틀라가 빠르게 대답을 했다.

이 정도면 경고가 되었겠지.

71위 마계는 군당장들과 시틀라가 잘 지휘해주고 있다.

그런 와중에 녀석들에게 짐을 지어 줄 수는 없는 법.

“그것이 마왕의 무게니라.”

인간계에서 목숨이 왔다갔다할 수도 있는 임무를 수행하는 이 몸이다.

인간계에서는 밥 해 주는 서번트 하나 정도만 있어 주면 그만이다.

‘변형 슬라임이라도 좋다.’

나는 도도한 걸음으로 냉장고 앞에 섰다. 텅텅 비어 있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으면서 가볍게 웃었다.

“훗. 어지간히도 검소하게 살았구나.”

원래 주인인 데스맨, 김도권이여.

그래도 덜 검소하게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 * *

단탈리온과의 통신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시틀라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허억……!”

하마터면 들킬 뻔했다.

“이게 무슨….”

“중압감은 여전하시군…!”

숨을 몰아쉬는 건 시틀라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시틀라 주변에 모여 있는 71위 마계의 군단장들도 마찬가지였다.

“기도하신다 말씀하실 때는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네.”

“저, 정말이지……. 단탈리온 님의 통찰력은 종잡을 수가 없군 그래.”

군단장들은 방금 전 통신을 모두 듣고 있었다.

사실 그들이 오늘 시틀라의 집무실에 모여 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단탈리온 님 비밀 서포트 프로젝트 결사대>

그들은 단탈리온에게 들키지 않도록 자신들이 섬기는 마왕을 지원하고자 모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지원의 방책으로 에키드나가 서번트를 보내기로 했다면서 이들을 부른 것이었다.

“에키드나, 너…… 단탈리온 님께 들킨 거 아냐?”

시틀라가 물었다. 그러자 에키드나가 채찍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불안한 듯 몸을 떨었다.

“그, 그그,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런데 왜 이리 떨어!”

“하, 하지만…… 단탈리온 님이 먼저 서번트를 언급하셨다는 건…….”

단탈리온 님이 언제나 강조했던 것.

-마왕이란 모든 패를 꺼내서는 아니되는 존재. 때로는 내 말을 듣고 경들이 적절한 해답을 찾아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단탈리온 님이 ‘서번트’라고 딱 집어서 말씀을 하셨다?

‘벌써 걸렸는지도 몰라……!’

이것은 서번트로 드러머를 보낼 게 아니라, 차라리 지금 인간계에서의 모습을 지킬 수 있는 시종을 데리고 오라는 뜻이었다.

왜 쓸데없이 드러머를 마계에서 구하느냐.

드러머는 인간계에 더 많다.

그러니 너희는 가정부 서번트를 데리고 와라.

바로 그런 뜻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에키드나는 손을 덜덜 떨면서 찻잔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었다.

“어, 어어, 어떡, 어떡하, 지, 시틀라?”

“낸들 알겠어!? 벌써 서번트 소환 준비는 끝났다며?”

이미 오로바스를 인간계의 서번트로 보내기 위한 마법진 형성과 오로바스 전용 술식 설계까지 끝난 참이었다.

남은 건 단탈리온의 허가를 받아 정식 서번트로 소환을 하는 것.

“마력 4000 정도면 하급 서번트 하나 부리셔도 무리는 없으실 거다. 허나…….”

“진짜 이걸 보내는 게 맞는 것인가? 정녕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7군단장과 8군단장이 의문을 던지며 책상을 팍 내리쳤다.

“대답해 보거라, 에키드나경!!”

“……!”

에키드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오로바스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오로바스를?”

7군단장이 의문을 표시했다. 에키드나는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오로바스가 집안일을 할 줄 안다면, 크게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연락을 받아 달려온 오로바스는.

“청소라면 장기입니다.”

“오오! 요리는 어떤가!”

“말죽이라면 맛깔나게 끓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요리가 가능하지?”

“고기말죽, 해산물말죽, 참깨말죽, 그리고…….”

할 줄 아는 요리들을 어필하면서 자신이 내려가야 하는 이유를 계속해서 강조했다.

군단장들의 얼굴에 화색이 돋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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